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716
마탄의 사수 (716)
람화연은 이하에게 질문을 듣자마자 ‘어째서 이런 정보가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답을 이미 내린 상태였기에, 특히 세 사람의 전투 패턴 위주의 정보를 알려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14위와 17위가 원거리 견제로 공격, 아군을 보호 그리고 메즈Mezz를 사용해 적을 묶어 버리면…… 그때 마무리하러 나타나는 게 15위. 노르웨이 출신의 ‘비욤’. 우드 엘프 숲의 성목聖木 가지를 사용해 만든 도끼를 휘두르는데 그게 또 장난이 아니라지?
―맞아, 장난 아니더라.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이하의 답이 이상했다.
분명히 그들에 대해 모르기에 이하는 자신에게 물어봤을 것이다.
따라서 람화연이 말해 주는 상당수의 정보를 이하는 처음 들어 봐야 정상이다.
‘근데 어째 말하는 게…….’
―장난 아니라고?
―휴, 응. 고마워! 다음에 맛있는 거 쏠게!
―자, 잠깐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람화연이 이하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애당초 삼총사의 친구 창 정도가 아니라면, 일반적인 친구 창의 위치로는 개략적인 표기밖에 되지 않기에, 더더욱 추측의 재료는 부족했다.
천하의 람화연이라도 현재 이하의 상황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휴, 람화연 씨의 정보를 미리 듣고 싸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치사하게 두 개나 먹어 놓고 그런 말이 나옵니까.”
“엥? 그게 왜 치사해? 키드도 하나 따 놓고.”
“내, 내가 먹은 건 움직임으로 가까스로 따돌려서―”
“그니까. 그 움직임에 한눈을 팔아 주기에 내가 빵야! 한 방 한 거지. 원래 팀플레이가 그런 거 아냐?”
이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키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두 사람의 상태는 나은 편이었다.
“크으으으, 이 망할! 망할! 망할! 오늘만큼은 도저히 못 참아! 하이하! 키드! 당장 한판 뜨자!”
물론 그들이 ‘먹었다’ 또는 ‘땄다’라고 말하는 것은 업적이었다.
[업적: 랭커 사냥(Top20)―15위, “비욤”(B+)]축하합니다!
미들 어스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20명의 유저, 그중 열다섯 번째의 유저를 죽이셨습니다. 부디 운으로 죽인 게 아니길 바랍니다. ‘랭커 사냥’의 업적을 빼앗으러 그가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니까요! 몸조심하시길!
효과: 임시 스탯 포인트 30개 (대상 유저에게 사망 시 회수)
(명예의 전당이 없는 업적입니다.)
[업적: 랭커 사냥(Top20)―17위, “휘바”(B+)]효과: 임시 스탯 포인트 30개 (대상 유저에게 사망 시 회수)
(명예의 전당이 없는 업적입니다.)
두 개는 이하의 것.
효과: 임시 스탯 포인트 30개 (대상 유저에게 사망 시 회수)
(명예의 전당이 없는 업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키드의 것이었다.
3:3으로 꽤 까다로운 전투였으나 끝끝내 삼총사는 승리했고, 아웃사이더로서 랭커들의 전리품을 챙기는 건 당연한 권리였다.
“나와 하이하아아아아────!”
“……미쳤냐, 그런 무식한 포탄을 가진 놈이랑 싸우게.”
“음, 맞는 말입니다.”
“나, 나는! 브라운에게 배운 것까지 다 깠는데! 제기라아아아알!”
단 한 사람, 아껴 왔던 스킬까지 공개하며 업적을 노렸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한 루거만 제외하면 말이다.
500명에 가까운 우드 엘프 정예들의 급습은 ‘스칸디나비아’들이 무너지자마자 전열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삼총사의 활약과 재정비를 마친 다크 엘프들이 반격에 나섰을 때, 거기에 업적을 얻지 못해 분노한 루거가 광분하며 ‘나 혼자 300명을 죽이면 업적이 나올지도 몰라!’라며 날뛰기 시작했을 때, 우드 엘프들은 더 이상 이곳에 발을 붙이고 설 수 없었다.
“이겼다, 이겼어! 인간들이, 인간들이 우드 엘프로부터 우리들을 지켜 줬어!”
타타르의 곁에 있었던 꼬마 다크 엘프 NPC가 이하의 허벅지를 끌어안았다.
“전설이다…… 전설의 재현이야!”
“마탄의 사수! 마탄의 사수들이 예전처럼 우리를 지켜 준 거다!”
“저주받을 우드 엘프 놈들! 얼마든지 오라고 해, 우리에겐 마탄의 사수들이 있다!”
“심지어 이번엔 세 사람이라고!”
다크 엘프들은 감격의 눈물까지 글썽이며 소리쳤다.
아직 전투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데다 몰살의 위기를 갓 넘긴 탓인지, 그들은 삼총사를 향해 필요 이상의 호응을 보냈다.
“확실히 족장 NPC를 제외하면 다들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마탄의 사수‘들’이라니…….”
“무드 없기는. 이럴 때는 그냥 즐기라고, 키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중얼거리는 키드의 어깨를 짚으며 이하는 손을 치켜들었다.
와아아아아────!
완전히 몰살 직전에 놓였던 다크 엘프 일족에게서, 그렇게 세 사람은 영웅 대접을 받게 되었다.
“……업적이 안 떴다……. 내 업적…….”
루거의 중얼거림은 다크 엘프들의 환호에 들리지도 않게 파묻혔다.
* * *
‘좋아, 좋아. 이제 오늘의 해도 다 져 가는구나, 내일의 해만 뜨면 끝난다. 이 지긋지긋한 유폐 생활도 이제 끝이야!’
기정이 방패를 콱, 움켜쥐자 곁에 있던 팔라딘이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퇴마의 추기경님?”
“아, 아뇨. 아무것도. 헤헤.”
홀리 나이트이자 퇴마의 추기경.
비공식적 기록으로는 〈기브리드와 1:1로 싸워 격퇴한 남자〉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기정이었으나, 여전히 그는 순수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미들 어스의 운명을 가를지도 모를 콘클라베의 투표 실시까지 약 14시간가량 남았음에도, 근심 따위가 아니라 투표 이후의 자유를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기정이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희는 돌아가 보겠습니다.”
“네, 오늘도 교황청의 평화를 지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 가장 먼저 나오셔서, 가장 늦게 들어가시는 홀리 나이트님 앞에선 저희들의 노력조차 작은 먼지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에이, 무슨 또 그런 말씀을. 으흥흥. 그렇게 비행기 태우셔도 뭐 안 나와요.”
“비……행기?”
“아무것도 아님닷! 그럼 편히 쉬십쇼!”
기정은 몸을 비비 꼬며 팔라딘 NPC에게 장난을 쳤다. 경직된 NPC의 태도에 한참을 웃고 나서야 그는 NPC를 보내 주었다.
노을 진 저녁의 해는 곧 완전히 떨어졌다.
애매하게 로그아웃을 하고 시간을 맞춰 로그인하느니, 에즈웬의 교황청에서 다른 스킬을 연마할 게 없을까 궁리하던 기정의 앞이 더욱 어두워진 것도 딱 그 시점이었다.
“음?”
“퇴마의 추기경, 홀리 나이트, 마스터케이.”
“누구냐.”
어두운 골목에서 나온 사람들은 기정을 앞, 뒤로 포위했다.
밤이 막 되었다지만 아직은 겨우 저녁 시간대일 뿐이다. NPC는 당연하고 주변엔 유저들도 많건만 이런 대담함이라니!?
기정이 검 손잡이를 쥐자, 포위한 자들을 헤치며 누군가가 앞서 나왔다.
“교황청에서 검을 뽑았다간 추기경의 서품이 위험하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소?”
“어라? ……보르지아 추기경님. 이 시간에……. 이런 분들과 어쩐 일이십니까.”
기정은 그를 알아보았다.
에즈웬에 있는 추기경 중 한 명, 그러나 추기경이라고 다 같은 추기경은 아니다.
‘C9 위원장 투스쿨라니의 오른팔이자, 본인도 C9 소속이다.’
9인의 추기경 위원회에 소속된 보르지아는 서열상으로 보아도 기정보다 한참이나 더 상위인 셈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보자고 하는 분이 계시니 조용히 따라오셨으면 하오.”
“핫. 그렇습니까? 으음, 다들 ‘이런저런 일’로 바쁘신 줄 아는데. 보르지아 추기경님도 ‘보좌관 사건’이 밝혀지는 바람에―”
뿌드드득!
기정은 이를 갈며 자신을 노려보는 보르지아의 기세에 잠시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조용히…… 조용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소, 퇴마의 추기경.”
부들부들 떠는 보르지아의 오른손엔 작은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체카가 벌여 놓은 일 중 하나로, 투스쿨라니를 도울 수 있는 주요 세력들 또한 스캔들이 일어난 상태였다.
보르지아 역시 그 안에 포함되었고 기정이 언급한 ‘보좌관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확실히 힘들긴 힘든가 보군. 이렇게 노골적으로…….’
기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나는데 사건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네, 가시죠.”
주변에 보는 눈도 아직 많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짓이 많지 않으리라는 걸 기정은 확신했다. 예상대로 보르지아는 아무런 일도 벌이지 않았다.
혹, 공간을 잠그며 급습할 가능성까지 생각했던 기정은 한참 동안 걷다 도착한 저택을 보며 다소 당황해야만 했다.
“여기는…….”
“그대를 보자고 한 분이 계시는 곳이요. 물론 잘 알고 있겠지만.”
“그럼요.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이곳…….”
그들은 기정을 꾀어내 죽이거나 감금하려는 일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유저들과 NPC들의 눈에 노출되면서까지 기정을 데려온 곳은 오히려 아까보다 훨씬 더 밝은 곳에 위치한 집이었기 때문이다.
“투스쿨라니 추기경님의 저택을요.”
순진한 기정이라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최후의, 최후의 순간 선택한 것은 결국 그들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 * *
저택의 내부는 화려했다.
체카에 의해 많은 것이 폭로당하고 사회적으로 상당한 명예를 실추당했음에도 투스쿨라니 집안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했지. 체카가 밝힌 사실을 대대적으로 퍼뜨리며 불을 지폈어야 했는데.’
추기경들의 상당수는 등을 돌렸지만 어디까지나 그뿐. 체카의 ‘물밑 작업’도 콘클라베까지만 유효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오랜 기간 부를 축적해 온 노회한 NPC의 설정은 건재했던 것이다.
“투스쿨라니 추기경님, 퇴마의 추기경 마스터케이를 데려왔습니다.”
“오, 오오. 그래. 정중하게 모시라고 하지 않았나, 보르지아.”
“예, 옛. 죄송합니다.”
보르지아는 다짜고짜 투스쿨라니의 질책을 들으며 뒤로 물러섰다. 기정은 이미 몇 번이나 투스쿨라니의 얼굴을 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을 누가 나쁜 NPC라고 믿었겠어.’
에즈웬의 유저들, 특히 사제와 힐러 계통 직업군을 선택했던 유저들 중에도 투스쿨라니의 지지 기반은 제법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 봤을 때 악당이거나 성격이 나쁜 것은 전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기정조차도 이미지 메이킹 같은 면에서 보기에 투스쿨라니가 더 교황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얗지만 너무 표백된 흰색이 아니라 깊이가 묻어 나오는 옷감으로 만든 로브를 입은 채, 투스쿨라니는 기정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게, 퇴마의 추기경. 추기경이 되자마자 별칭을 부여받는 경우는 유구한 에즈웬의 역사에서도 극히 드물지. 안 그런가, 보르지아?”
“맞습니다.”
“과연 대단한 인재라고 할 수 있어. 하물며 홀리 나이트의 힘을 이어받다니. 우리 에즈웬으로서는 유능한 자가 추기경의 일원이 되어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네.”
투스쿨라니와 보르지아는 주거니, 받거니 기정을 칭찬했다.
다과가 나왔으나 기정은 그것을 입에 들지 않은 채 그들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따로 보자고 하신 이유가……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요.”
차를 마시며 분위기를 잡던 투스쿨라니의 눈빛이 잠시 번뜩였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기정을 마주 보았다.
“그렇지.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지. 퇴마의 추기경님. 그대를 부른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네. 요즘 에즈웬이 시끌벅적하지 않은가. 결속을 다져야 할 이 시기에, 어딘가의 외부 세력이 우리 에즈웬의 내부 결속을 갈라놓으려고 하고 있어.”
“그렇죠. 투스쿨라니 추기경님에 대한 흥미로운 소식은 저도 잘 듣고 있습니다.”
투스쿨라니는 짐짓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지만 얼토당토않은 연기를 기정은 되받아 쳐 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