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167)
#재능만렙 플레이어 167화
이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닌 송기열이었다. 송기열이 성큼성큼 걸어와 송정희의 뺨을 세게 때렸다.
찰싹!
커다란 소리가 났다.
얼핏봐도 송기열의 힘이 잔뜩 담겨 있었다. 거의 풀스윙에 가까운 동작. 나름 랭커라 할 수 있는 송기열이다. 게다가 힘 스탯이 높은 탱커 계열의 플레이어. 송정희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서 주저앉았다.
송정희는 굉장히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오빠……?”
송정희의 표정으로 미루어보건대, 송기열의 평소 성격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였던 것 같다. 오빠가 자신의 뺨을 때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송기열이 버럭 소리 질렀다.
“제정신이야?”
“오빠야말로 제정신이야?”
“닥쳐. 죽고 싶지 않으면.”
송정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상태 : 수치/괴로움/분노
──────────
하기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영문도 모르고 뺨을 맞았으니 화가 날 법도 하지.
“오빠. 폭행으로 고소당하고 싶어? 우리끼리 한 번 법적으로 싸워볼래?”
“당장 사과해.”
“뭘?”
“여기. 김혁진 플레이어에게 사과하라고.”
“그니까 뭘!”
송정희는 뺨이 아픈지 계속 만지작거렸다. 얼굴이 잔뜩 붉어져 있었다. 수치스러워서 그런 건지, 분노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구성민을 시켜서 적안을 훔치려고 했잖아.”
뺨을 얻어맞은 충격 때문일까. 아니면 대화하는 상대가 오빠라서 그런 걸까. 송정희는 굉장히 쉽게 사실을 인정했다.
“그건 내 시나리오 퀘스트가 얽혀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
빙고. 어쨌든 적안을 훔쳐가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네.
“남의 것을 훔치려고 했으면…… 들켰을 때 어떻게 될지도 각오했겠죠?”
그와 동시에 송기열이 내 팔을 잡았다. 그 팔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뿌리치지 않았다.
“김혁진 씨. 정말 죄송합니다. 이 아이는 제 동생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동생 교육을 단단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송정희에게 철혈여제라는 이명은 어울리지 않는다. 송기열의 상황판단이 훨씬 빠르고 대응이 훨씬 좋다. 동생의 뺨을 때린 것은, 정말로 동생을 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 당할 보복을 막아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냥 동생을 위한 오빠의 바보 같은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흠. 이를 어쩐다.
‘태극방패 길드장의 위신을 좀 세워줄까?’
송기열을 윽박질러서, 구성민과 송정희를 완전히 궁지로 몰아넣는 방법이 있고 조금 물러나주는 방법이 있다. 당장 속이야 구성민과 송정희를 갈구는 게 좋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게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이렇게 물렁하게 대응해 주면…….’
밟을 때는 확실히 밟아야 한다. 어중간하게 밟을 거면 안 밟는게 낫다. 지금처럼 유야무야 그냥 넘어가게 되면 반드시 2차, 3차 어떤 일이 벌어질 거다.
‘송정희가 나를 만만하게 보겠지?’
그러면 또 이런저런 궁리를 할 거다. 어. 그래. 그거 괜찮다. 그리고 그 모든 궁리는 나와 세니아의 좋은 콘텐츠가 되어주겠지. 좋네. 맘껏 기어오르도록, 발악하도록 놔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송정희가 제아무리 날고뛰어도, 절대로 내 상대가 되지 못하니까.
“송기열 길드장님께서 나서신 이유를 알 것 같군요.”
송정희 본인은 모르고 있겠지만.
“좋습니다. 이쯤에서 본인의 사과를 받고 마무리하도록 하죠.”
“사과라 함은…… 동생의 사과 말입니까?”
“예.”
철혈여제 송정희. 남에게 굽히지 않기로 유명했던 여인. 지금의 송정희는 어떨까.
‘다른 건 몰라도 자존심 하나는 기똥차네.’
지금도 마찬가지다. ‘철혈여제’에 어울리는 상황판단능력과 자질은 보이지 않았으나 과연 철혈여제라고 불릴 만큼의 강한 자존심은 가지고 있었다.
“내가 왜? 훔쳤어? 훔치지도 않았잖아. 나는 오빠한테 폭행까지 당했고.”
아니나 다를까. 송정희는 전혀 반성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진짜 어리숙하다. 속마음이 어찌됐든 지금은 내게 사과를 하는 게 옳다. 적어도 나와 조금이라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면 말이다.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정 싫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
나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안서희를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안서희와 곧바로 연결이 되었다.
‘구성민 그냥 놓아줘.’
지금 구성민은 자기가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알까. 구성민의 팔다리를 옭아매고 있던 붉은실들이 사라졌다.
철푸덕!
구성민은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오. 하느님, 맙소사.”
구성민은 식은땀을 많이 흘렸다. 정말로 공포에 질렸었나보다. 내가 몸을 돌렸다. 굉장히 피곤하다. 눈이 저절로 감긴다. 오늘 너무 큰 일을 겪었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많이 힘들다.
나를 바라보는 송정희의 눈빛이 참 즐겁다. 표독스러운 저 모습이 무섭지 않고 즐겁다니.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어디 한 번…….’
송정희에게 다가갔다. 송정희를 조심스레 일으켜주었다.
‘기어올라 봐.’
두렵지 않았다. 이렇게 약하게 대응해줬으니, 다음번에는 조금 더 과감하게 내게 덤벼들겠지. 아주 작게, 송정희에게만 속삭였다.
“다음번에 나를 건드리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거야.”
[특수스킬. 패기(霸氣)를 사용합니다.]“내 경고. 진심이야.”
공포를 느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송정희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 공포가 무뎌진다면? 공포를 느낀 만큼 더 수치스럽겠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철혈여제가 어떻게 움직일지 두고 보겠어.’
* * *
‘불 거인’을 사냥하고서 3일이 흘렀다. 사실 경회루 필드를 몇 번 더 클리어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3일동안 잠을 자다니.’
너무 오래 잤더니 온 몸이 쑤신다. 사람이 이렇게 잘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불 거인을 상대하면서 너무 많은 힘을 사용했나보다.
‘어쨌든…… 활력이 도네.’
상위 등급의 불길을 만나서인지는 몰라도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화기(火氣)’는 더욱 정순해졌고 깨끗해졌다. 불이 깨끗해진다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기는 한데 분명히 그랬다. 아마 조금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내가 조금 더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아마도 이 화기 자체가 더 높은 등급의 어떠한 힘으로 변화할 거다.
‘실마리는 잡았어.’
성장의 길을 봤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이 ‘화기’는 반드시 성장한다. ‘화기’의 성장은 곧 나의 성장이 되겠지. 나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불 거인’을 만난 것이 내게는 생명의 위협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성장의 발판이 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선화와 함께 디지털미디어시티(DMC) 근처에 위치한 우리 사무실로 이동했다.
“다들 모였으니까, 건배하자.”
우리도 이제 어엿한 길드 사무실을 가지게 됐다. 위치는 디지털 미디어 시티(DMC) 근처. 플레이어 협회와 가까운 빌딩 내에 위치하고 있다.
약 반년 만에 참 많은 것이 변했다. 이 정도 빌딩의 한 층을 우리가 전부 쓴다. 사람이라고 해봐야 6명밖에 없는데 말이다. 물론 월세는 안 낸다. 성신이 내주니까.
신연서가 내게 작은 꽃다발을 내밀었다.
“축하해. 대장. 우리도 이제 어엿한 길드가 됐네.”
곽태운이 말했다.
“형. 제가 길드 등록해 놓을까요?”
“아니야. 송기열씨가 알아서 해주기로 했어.”
마상현은 굉장히 신이 난 것 같았다.
“월세도 송기열 님이 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형님?”
“물론.”
신연서가 또 밝게 웃었다.
“월세 내주는 게 왜 당연하고 물론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우리 돈 안 나가니까 좋은 거지, 뭐. 안 그래?”
다들 그렇다며 웃었다. 아참. 정확히 말하자면 월세를 대신 내주는 게 아니다. 그냥 이 빌딩 자체가 송기열 개인 소유일 뿐.
‘어쨌든…… 진짜 많이 변했네.’
지난 반 년간 나는 많이 변했다. 그리고 세상도 많이 변했다.
정식적인 ‘길드’들이 출범했고 이 길드들은 ‘플레이어 협회’의 인정을 받아 길드 라이센스를 발급 받았다. 물론 개개인 역시 플레이어 라이센스를 획득할 수 있었다. 전에 송기열이 내게 말했던 ‘중위 등급’과 ‘최상위 등급’ 라이센스처럼 말이다. 참고로 나는 한국에 단 하나뿐인 등급인 ‘로열 등급’과 더불어 ‘7급’ 라이센스를 함께 받았다.
‘공시생이었던 내가 정식 플레이어 라이센스를 갖게 될 줄이야.’
로열은 송기열이 내게 성의를 보이기 위한 상징적인 것이니 그렇다 치고, 사실 7급만 해도 크게 나쁘지 않다.
재능이 뛰어나지는 않아도 비교적 성실하고 열심히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보통 7~8급을 받는다. 라이센스는 10급부터 시작한다. 10급. 9급. 8급. 7급. 이 순으로 등급이 높아진다. 7급 라이센스는 어디 가서 아주 무시받지도, 또 아주 대접받지도 않을 정도의 딱 평균 이상의 등급이라 할 수 있다.
선화는 약간 상기된 얼굴이다. 정식이름을 가지게 돼서 설레는 것 같다.
“학교가면 애들이 막 거짓말하지 말라고, 길드 이름도 없는 게 무슨 길드냐고 막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
“마상현 아저씨랑 연서 언니랑 같은 길드라고 그래도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네이버 안 믿어요.”
뭐. 나쁘지 않다. 우리가 그만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아무튼 우리는 길드 이름을 정했다. 아이디어는 강상구가 냈다.
“야. 슈밤. 우리가 누구냐? 불 거인을 마구 때려잡은 초특급 슈밤 센 길드 아니겄냐?”
강상구는 암, 그렇고말고. 우리야말로 초특급이지, 하고서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자랑스레 말했다.
“거인(巨人)도 때려잡았으니 거신(巨神)이라고 하면 되지 않겄어?”
그리고서 혼자 사무실 책상을 톡톡 치면서, ‘탕! 탕! 탕!’ 하고 말했다. 거신(巨神) 길드. 뭐. 어감이 나쁘지 않다. 다들 ‘이름’ 자체에는 큰 감흥이 없는 지 만장일치로 ‘거신’이란 이름을 정했다.
“자자. 혁진아. 그러면 로열티를 줘야지?”
“…….”
“내가 이름 지었으니까.”
“이름 바꾼다.”
“…….”
강상구가 입술을 죽- 내밀었다.
“하여튼 있는 놈들이 더한다더니.”
뭐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강상구는 입술 모양을 바꿔가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그렇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내가 지었지만 간지라는 것과 감성이라는 것이 폭발하는 거 같어. 그렇지 않냐, 거-신 얘들아?”
라고 활기차게 말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누구도 강상구의 말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강상구는 시무룩해져서, ‘나는 개똥 떵구~ 친구가 없네~’라는 괴상한 노래를 불러댔다.
어쨌든 우리 ‘거신 길드’의 길드장은 당연하게도 내가 하기로 했다.
‘과거에는 거신 길드가 없었는데.’
마상현과 신연서. 곽태운과 강상구까지. 이 조합이 함께 있는 파티가 결성될 줄이야. 8영웅 중 4명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신기했다.
‘적어도 이 네 명과 마왕의 격돌은 없겠지.’
8영웅의 호칭은 마왕군과 대적하며 얻은 호칭이다. 그런데 이제 ‘거신 길드’에 속하게 됐으니 마왕군과 부딪칠 일은 거의 없을 거다. 나는 마왕과 완전히 적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다. 나 때문에, 미래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역시 큰 흐름이 변하지 않아.’
세부 내용과 퍼즐들이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큰 흐름은 변하지 않고 있다.
‘2018년 11월 27일.’
그랑서울(Gran Seoul) 던전이 오픈되는 날짜.
그랑서울은 광화문 D타워와 인접해 있는 커다란 빌딩이다. 광화문 D타워와 마찬가지로 그랑서울 역시 던전으로 변화하게 된다.
‘사실상 초보구간의 종식을 알리는 던전.’
초보구간을 돌파하여 중수구간에 진입하는 관문이 되는 던전이다. 중수구간에 돌입하기 위해서 한국서버의 모든 플레이어가-아주 예외적인 이레귤러를 제외하고-반드시 진입해야만 하는 던전이다.
‘곧 열리겠네.’
그 사이 우리는 경회루 필드를 계속해서 클리어하면서 경험치를 쌓으면 된다. 나는 애들과 헤어진 뒤 플레이어 협회 건물로 향했다. 송기열을 만나기 위해서다.
송기열을 만나서 말했다.
“송정희 씨를 많이 위하시나 보군요.”
그래서 3일 전. 송정희의 뺨을 때렸다.
“저번에는 송기열 길드장님의 얼굴을 봐서 그 정도로 넘어갔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먹잇감(송정희)을 놔준 것에 가깝지만. 어쨌든 생색은 내야하지 않겠는가.
“다음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과연 송기열은, 동생이 구성민을 가차 없이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믿고 싶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약점은 존재한다. 송기열에게 있어서 송정희가 약점인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약점.
“예. 그때 그렇게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아뇨. 가족이니까요. 이해는 합니다.”
과연 송정희도 당신을 가족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대화를 더 나눈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함께 과거로 돌아온 ‘요약집’을 또 읽었다.
-2018년 11월 27일. ‘그랑 서울 던전’의 오픈.
이제 2주도 남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또 지루한 노가다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어느덧 내 레벨은 38이 되었고, 다른 애들도 37 내지 38이 되었다.
’이 정도 레벨이면 충분하겠어.’
11월 24일. 나는 선화와 함께 ‘그랑 서울’ 건물로 향했다. 주변을 탐색했다. 혹시 또 ‘얼리 어답터’ 시나리오가 생성되는지 해서 열심히 탐색해 봤는데 별다른 단서는 얻을 수 없었다. 11월 25, 26일도 별다른 소득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대망의 2018년 11월 27일.
‘오늘 열리겠네.’
그랑 서울 던전이 열린다. 그곳은 중수 구간에 돌입하기 위해 반드시 클리어해야만 하는 곳이다. 좋든 싫든 말이다.
그런데 열리지 않았다.
다시 또 하루가 흘렀다. 2018년 11월 28일. 그랑서울 던전은 여전히 오픈되지 않았다. 뭔가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