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163
163. 깜짝 등장.
SLimelove 채널에 올라온 설탕 먹방을 보고 라임에게 빠진 대학원생.
라임이 올리는 영상이라면 몇 번이나 보면서 그의 성공에 소소하게 일조한 그녀는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봤다.
호박 모양 달과 눈이 마주쳤다.
집, 대학원, 집, 대학원.
마치 세상에는 두 장소밖에 없다는 듯 쳇바퀴 굴러가듯 살아가는 대학원생이다. 그런 그녀가 핼러윈 이벤트에 참여하려고 슬라임랜드를 찾았다.
공휴일이 아니고 즐기는 사람만 즐기는 핼러윈 이벤트.
논문 읽고, 연구하고, 논문 쓰느라 바쁜 그녀가 이 이벤트에 참여한 이유.
논문 작성이 끝나고 학위를 따서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끝났을지도.’
대학원생의 휴일은 교수에 의해 정해진다. 명절에도 교수가 부르면 가야 하는 게 대학원생이니까.
반대로 말하면 교수에 오지 말라고 하면 그날이 휴일이 된다.
현재 그녀의 지도교수는 대학원생들에게 오라고도 가라고도 할 수 없는 상태다.
학생에 신경 쓸 상태가 아니니까.
탈세가 걸렸다.
단순히 탈세만 걸렸다면 대학원생은 학교나 집에서 연구하고 있었겠지.
탈세로 수색에 들어갔는데 이상하리만큼 많은 재산이 발견됐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시청과 국세청 공무원들은 교수를 탈탈 털어봤고.
연구 예산 횡령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연루된 사람도 많았고 액수도 컸다.
연구는 중단됐고, 교수와 연구실은 조사받고. 대학원의 분위기는 지극히 어수선해졌다.
연구가 재개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대로 엎어질 수도 있었고.
학교 측은 공부하면서 기다리면 머지않아 해결될 거라고 말했지만,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작성하던 논문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노력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대학원생은 도저히 그럴 의욕이 나지 않았다.
언제나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라임의 설탕 먹방 쇼츠도 봤다.
탕후루 영상도 봤고 추로스 영상도 봤다.
하지만 어느 것도 심란함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원생은 슬라임랜드를 찾았다.
꿈과 희망의 나라 슬라임랜드에서라면 기분 전환이 될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도피하는 형태로 와서 그럴까.
적극적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멍하니 있는 대학원생에게 토끼 형태의 이 다가와서 다리를 툭툭 쳤다.
토끼의 눈이 붉게 빛났고 송곳니가 튀어나오기는 했으나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달과 별 덕분에 주변을 그렇게 어둡지 않았으니까.
“미안.”
토끼에게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핼러윈 이벤트에 참여하러 왔는데 과자를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다.
토끼는 붉은 눈으로 대학원생을 빤히 봤다.
귀를 몇 번 까딱인 뒤 떠나가는가 싶더니 도중에 멈춰서 돌아봤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 귀를 까딱였다.
과자를 주지 않았으니까 장난치려는 것일까.
‘가볼까.’
목적도 없이 이대로 서서 있는 것보다 장난에 당하는 편이 조금 정신이 날지도 몰랐다.
대학원생은 토끼를 쫓아갔다.
토끼는 굴에 들어갔다.
기어서라면 들어갈 수 있는 높이였다.
대학원생은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이 마치 어린이 놀이터처럼 푹신푹신해서 아프지는 않았다.
잠시 기어가자, 장소가 확 넓어졌다.
토끼 굴이 아니라 동굴이었다.
동굴에는 길이와 색이 다양한 수정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척 예쁜 풍경이었지만, 대학원생은 무덤덤했다.
본래 감동하는 일 자체가 드물었고, 지금은 심장이 차갑게 식은 상태이기도 했으며, 시각적인 자극보다 청각적인 자극에 예민한 편이었으니까.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 머리로 어떤 도구를 밀어서 가지고 왔다.
‘이걸로 수정을 부숴서 내놓으라는 걸까?’
대학원생은 이 가지고 온 도구를 손에 들었다.
도구는 곡괭이가 아니었다.
이 가지고 온 것은 실로폰의 채에 가까웠다.
너무 가볍고 약해서 수정을 부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게다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장난일까?’
엉뚱한 도구를 줘서 골탕 먹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대학원생은 시험 삼아 채를 휘둘러 가장 가까이 있는 수정을 때렸다.
통~.
길게 울리는 청명한 소리에 대학원생의 눈이 커졌다.
소리와 함께 수정 동굴 전체가 공명하듯 빛이 흔들렸다.
팅~.
통~.
탕~.
수정의 색과 길이에 따라서 소리가 달랐다.
여운도 달랐고 울림도 달랐다.
그리고 그 소리의 조합에 따라 수정 동굴의 풍경이 달라졌다.
수정이 뿜은 빛이 동굴을 채색했다.
‘좋네.’
소리와 빛에 고민이 조금 쓸려 나갔다.
대학원생은 수정 동굴 내부를 걸으며 수정을 하나씩 때려봤다.
한 자리에서 연주할 수 없는 이 장소의 특성상 같은 소리를 내는 수정은 여러 개 있었다.
수정의 배치에도 규칙이 있었다.
‘도미솔 도미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걸으면서 수정을 두드려도 그럴듯한 연주가 되도록 배열해 놓았다.
어떤 수정이 어떠한 소리를 내는가.
파악이 끝난 대학원생은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은 천천히 걸으며 가볍게 두들겼다.
라임의 의도대로 구성되니 소리가 차츰차츰 쌓여갔다.
대학원생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어느 순간.
대학원생은 라임의 의도에서 벗어난 수정을 울리기 시작했다.
싱숭생숭함을 내려놓고 수정 동굴 내부를 뛰어다녔다.
소리와 함께 빛이 춤춘다.
어느덧 대학원생의 몸이 통통 떠올랐다.
복잡한 생각을 전부 내려놓은 그녀는 아미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몸이 가벼워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소리와 빛과 함께 춤췄다.
“후!”
연주를 끝마치자, 수정 동굴은 겹겹이 쌓은 오로라처럼 신비로운 빛으로 가득했다.
감미로운 잔향이 울리는 가운데 어느새 모여든 작은 동물들이 앙증맞은 발로 짝짝 소리를 냈다.
한껏 움직이고 나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연주 좋았어?”
동물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면 한 곡 더 연주해 볼까.”
앞발을 열심히 두드리는 동물 관객들과 함께 대학원생은 다음 곡을 연주했다.
“더는 못 해!”
연이어 세 곡을 연주한 대학원생은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꾹꾹 찌르는 느낌에 옆을 보자 이 선명한 붉은색의 사탕을 내밀었다.
“고마워.”
그것을 입에 넣은 대학원생은 깜짝 놀랐다.
의 당첨 수준으로 맛있었다.
소진된 체력도 꽤 돌아오는 기분이었고.
토끼 너머로 다른 동물들이 비슷한 사탕을 가지고 온 게 보였다.
트릭 오어 트릿.
과자를 안 주면 장난으로 보답하는 장난꾸러기들이었지만.
멋지게 대접받으면 그에 보답할 줄을 아는 아이들이었다.
“나 학위 못 따면 그냥 여기에 연주자로 취직할까?”
자기 앞에 생긴 보석의 산을 본 대학원생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동물들은 일제히 고개를 갸웃했다.
“연주 좋다며!”
동물들은 일제히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안 좋았으면 이건 왜 줬는데!”
동물들은 인간 말은 못 알아듣는다는 듯 딴청을 피웠다.
“너희들···. 지금 나 한 곡 더 연주시키려고 부추기는 거지.”
동물들은 일제히 앞발을 짝짝 두들겼다.
영악한 녀석들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한 곡 더 연주하면 되잖아. 대신 듣고 좋으면 추천해 주는 거다?”
은 들어보고 판단하겠다는 듯 앞다리로 팔짱이 끼려고 했다. 앞다리가 너무 짧아서 실패했지만.
대학원생은 가볍게 웃으며 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다음 곡을 연주했다.
그 곡이 끝났을 때.
은 정중하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알케미슬라임 컴퍼니 인사팀장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농담이었는데···.”
***
누군가 동물들과 온화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을 무렵.
트릭 오어 트릿의 ‘트릭’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자 셋이 허겁지겁 도망쳤다.
까악.
까악.
까악.
수많은 까마귀가 악취 나는 열매를 그들에게 던져댔다.
“우리가 장난치는 측이 돼도 되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핼러윈이 괴물들이 지상에 찾아와 장난인가 대접인가라는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라면.
이 핼러윈 이벤트는 사람들이 괴물들의 세계를 찾아갔다는 콘셉트.
이쪽이 장난을 쳐도 됐다.
자그마한 동물에게 가볍게 장난쳤다가 마찬가지로 가벼운 장난으로 되돌려 받는 사람도 있었고.
만난 괴물을 장난 섞인 재치로 넘기는 사람도 있었고.
하지만 이 셋이 한 장난은 질이 나빴다.
장난칠 상대도 잘못 골랐고.
10분 전 음침한 숲에 들어온 그들은 을 발견했다.
“애들아. 이 좀 봐! 몸매 죽이는데?”
사람이 연기하는 마녀가 있는가 하면 순수하게 으로 이뤄진 도 있었다.
“과자 내놔. 아니면 만지겠어.”
“과자는 무슨 과자야. 그냥 만지자. 인간도 아니고 어차피 슬라임인데 좀 만져도 되잖아.”
“다른 슬라임은 만져도 아무런 말도 안 하잖아. 설마 모양이 조금 다른 슬라임을 만졌다고 쫓아내기라도 하겠어?”
이번 이벤트 특유의 음침한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공포감을 감추기 위해 허세 부린 것일까.
아니면 의 분위기에 홀렸을까.
이들은 을 상대로 음흉한 속내를 대놓고 드러냈다.
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혹적으로 웃었다.
팔짱을 끼더니.
“만지고 싶니?”
예기치 못한 반응에 셋은 놀랐다.
그리고 이내 표정을 바꾸고 침을 삼켰다.
“나는 평범한 아이에는 관심이 없단다. 그러니까 내 ‘장난’을 넘어설 수 있으면 상을 줄게.”
그 말고 함께 뒤에서 대량의 까마귀가 떠올라 셋을 습격했다.
까마귀들은 끝없이 셋을 쫓아다녔다.
셋은 결국 핼러윈 이벤트 지역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까마귀들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만약 셋이 다시 핼러윈 이벤트 지역에 들어오면 다시 나타나겠지.
이렇게 자업자득인 이유로 습격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냥 운이 나쁜 사람도 있었다.
어느 산에서는.
“저건 뭐야!”
“도망쳐!”
“절대로 잡히지 마! 저기에 붙잡히면 분명히 「절규 코스」 끌려간다!”
“어? 그거 좋은데? 자, 나를 먹어라!”
수많은 촉수를 단 괴물이 사람들이 습격했다.
어느 도시에서는.
“과자를 내놔. 그러지 않으면 너희에게 장난을 치겠어. 나는 어느 쪽이든 좋지만.”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잔학성을 뭉쳐 만든 듯한 날개 달린 귀여운 아이와.
“너에게는 아까운 물건이다. 나에게 어울리는 물건이다. 내놔라.”
키가 크고 뿔이 난 거인의 콤비가 과자를 강탈하러 돌아다녔다.
어느 사막에서는.
“치사하지 않아? 왜 너만 맛있는 거 먹어? 왜 너만 즐겁게 놀아?”
미라가 사람들을 습격했고.
어느 섬에서는.
“길은 저쪽이야. 저쪽.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꺼져.”
허수아비가 엉뚱한 길을 알려주며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렸고.
어느 성에서는.
“···.”
옥좌에 앉은 흡혈귀가 따분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6마리의 특수한 괴물들.
이들의 소문은 금방 퍼졌다.
-우주전이 메인 아니었어?
-이런 걸 숨겨놨으면 미리 말해달라고!
-촉수 괴물에 잡히면 핼러윈 버전 「절규 코스」에 끌려간다!
└최악이네.
└최고인데? 목격 장소 좌표점.
-꼬마랑 거인 개짜증.
└ㅇㅇ. 과자 빼앗아 가는 것도 짜증 나는데 입도 더러움.
└은근히 기분 더럽지.
└그냥 과자 주고 떨쳐내라. 장난치는 거 당해봤는데 악랄하고 재미도 없다.
-꼬마랑 거인 vs 미라. 어느 쪽이 더 짜증?
└양쪽 다 짜증.
└미라는 사사건건 방해하는 게 엄청나게 짜증 남.
-허수아비가 보물섬 알려줌.
└나는 암초 지대 알려줬는데!
└나는 괴물들 나오는 섬!
└패배자들.
-마녀 누님 야함.
└눈나 나 주거
└누나 나 죽어(물리).
└누님. 제발 까마귀 좀 떼어내 주세요. 죽겠어요.
-성을 발견했는데 들어갈 수가 없다.
-저것들이 이번 최종 보스인가?
└다른 건 몰라도 꼬마, 거인, 미라는 죽일 거임.
└1.
└22.
└333.
└어그로 끄는 거 보니 죽일 수 있을 것 같음.
***
이번 이벤트에는 특별한 개체들을 풀어놨다.
일부러 영상에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야 핼러윈인걸.
이런 깜짝 선물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 개체들의 바탕이 된 것은 저주들이다.
그것들은 어떤 의미로는 괴물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물론 그대로 내놓지는 않았다.
사람들 정신을 망가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순화하기도 했고 핼러윈에 어울리지 않는 성질은 바꿨다.
첫 번째 저주는 사람들을 습격하여 잡아먹고 절규 머신으로 이송시킨다.
탐식은 관종 부분을 제외했다. 탐욕적으로 간식만 빼앗는다.
질투는 불신 부분을 제외했다. 함께 놀러 와서 사이가 나빠져 돌아가게 할 수는 없잖아. 그저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의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역할이다.
나태는 찾아가지 않으면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말을 걸면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고. 하지만 가끔 보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기도 한다.
색욕은 무척 매력적이지만, 그림의 떡처럼 절대로 손댈 수 없게 해뒀고.
오만은 거의 그대로다. 성에 혼자 있는데 찾아오는 자를 망설임 없이 박살 낸다.
물론 아무나 습격하는 것도 아니다.
출현하는 지역은 확실히 구분을 지어 놓았다.
또 습격하는 사람도 가린다.
괜한 트라우마를 안겨주면 안 되니까.
저주를 모델로 한 이 개체들은 핼러윈 이벤트에 긴장감을 더해주겠지.
이 여섯의 개체 가운데 절반은 공략 불가능하다.
첫 번째 저주, 나태, 색욕은 공략법이 없다.
죽일 수는 있지만, 잡지 말라고 넣어둔 적이 아니다.
체력 게이지가 아예 없다.
말재주로 무언가를 뜯어낼 수는 있겠지만.
탐식, 질투, 오만은 공략할 수 있다.
그런데 공략할 수 있을 뿐 저번처럼 메인 이벤트는 아니다.
공략하는 방식도 무력이 아니다. 탐험하여 비밀을 파헤치고 핵심이 되는 약점을 찾아내는 방식이지.
공포 게임은 대체로 그러한 방식이니까.
과연 몇이나 토벌될까?
현재 토벌 수는 6이다.
잠깐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괜찮다. 무사히 부활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