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23
23. 슬라임 먹방
현관 카메라로 밖을 보니 메마른 갈대밭 같은 머리통이!
진도개 둘! 진도개 둘!
태양이 떴다!
초인종이 울린 건 내 작업실 쪽.
저번에 엄마에게 습격당한 이후로 스마트폰은 갖고 다닌다.
문제는 옷!
슬라임 탈은 구멍을 통과 못 해서 저쪽에 있다!
지금이라도 구멍을 넓혀?
그냥 문 열어주지 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행동하면 관계가 파탄 날 것 같은데!
내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건 현명하지 않다.
빠가 까가 되면 무섭다고!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진. 정. 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어차피 폐가 없으니까 물리적으로는 의미는 없으나 정신적으로 조금은 진정됐다.
내가 무슨 태양 빛에 녹아내리는 흡혈귀도 아니고 태양 좀 떴다고 무슨 호들갑이냐.
옷?
슬라임 탈을 즉석에서 제작해 뒤집어썼다.
작전명 : <>을 실행할 때다.
문을 열자 박태양 상담사는 내 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박태양 상담사는 들어오는 대신 현관에 차렷 자세로 섰다.
문이 닫히자 바로 허리를 반으로 굽혔다.
“죄송합니다.”
아니, 그렇게 세차게 머리를 숙이면 어떻게 해.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머리카락이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가잖아.
“계속 압박해 연금술사님의 부담을 가중하고 월권까지 저질러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됐어요. 들어오세요.”
박태양 상담사는 나와 협업하는 회사의 사장님 같은 게 아니다.
연금술사들에게 욕먹으면서 상황을 조율하는 사람이다.
연예인들 매니저나 소설 편집자 같은 위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이 어떻게 처리될지 정하는 건 팀장이나 그 윗선이다.
위쪽에서 시키면 따라야지, 어쩌겠어.
대들어? 잘리지는 않겠지만, 다른 일에 배정되고 진급이랑 성과급만 날아간다.
박태양 상담사가 중간에 끼어서 얼마나 마음이 고생이 심한지 보인다.
진짜로 보인다.
보라고 저 털갈이하는 레트리버처럼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갔는데 그 풍성함은 지니지 못했던 머리의 말로를.
“이건 선물입니다.”
불모지의 소유자는 내게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군만두는 아니겠지?
홍삼이다. 무난하네.
“일하는 중이셨습니까?”
“일이요?”
“보채는 게 아닙니다! 혹시 촬영 중이었나 묻는 겁니다.”
“아니요. 구독자가 1,000만 명 모일 때까지 타인의 앞에서 이 옷을 벗지 않겠다고 다짐했거든요.”
내가 이 변명을 또 써먹게 될 줄은 몰랐다.
가족이 찾아왔을 때의 변명으로 생각해둔 건데. 정작 가족에게는 사용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쓰고 있다.
“영상 제작에 진심이시군요.”
“네.”
이렇게 대답해 놔야지 영상 제작은 잠시 중단하고 이나 을 만들라는 소리를 못 하지.
“영상 제작 그만하고 을 만들라는 댓글을 볼 때마다 마음고생이 심하시겠습니다.”
“아니요. 그 광기의 소굴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는 그다지 신경을 안 써서요.”
“그렇습니까.”
“네.”
“···.”
“···.”
분위기가 참 어색하네.
이럴 때는 먹을 거지.
그런데 이쪽에는 먹을 게 딱히 없단 말이지.
“마실 거라도 드리고 싶은데 이쪽은 작업실이라 마땅한 게 없네요.”
“괜찮습니다.”
“트롤의 피가 있는데 드실래요?”
“괜찮습니다!”
“거대 굼벵이 진액도 있고.”
“정말로 괜찮습니다!”
맛 나쁘지 않은데.
“···.”
“···.”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써요?”
박태양 상담사는 아직 신발조차 벗지 않았다.
“네. 사과를 드리고자 찾아왔을 뿐입니다.”
“그런가요.”
그런 것치고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킨 게 보이는데.
내가 이번 한 번은 봐준다.
머리카락을 제물로 삼았으니까 방법 하나쯤은 소환돼야지.
“시도해볼 일이 있기는 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 머리 숙이지 말라고.
슬라임 붙여주고 싶은 땜빵이 보이잖아.
“반드시 성공한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거라도 괜찮습니다.”
내가 [분석] 스킬을 통해 몬스터의 소재로부터 몬스터의 능력을 파편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공돌이도 나를 먹으면 [분석] 스킬을 통해 나의 능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공돌이도 ‘나’니까 파편 따위가 아니라 [변환] 스킬을 통째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든 물건에 특별한 성분이 포함된 건 아니다.
약효는 여느 연금 제품과 마찬가지로 마나를 통해 일어나는 이적이지.
연금 제품의 수명은 그 안에 마나가 얼마나 오래 남아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에너지를 다른 에너지로 바꾸는 [변환] 스킬.
그 스킬의 효과가 공돌이가 만드는 제품에 깃들면 빛, 열, 진동 등의 에너지가 마나로 바뀔 거다. 자연스럽게 사용 기한은 늘어난다.
이틀 쓰던 물건을 사흘 쓸 수 있게 되면 그것만으로 수요는 30% 넘게 줄어든다.
그것만으로도 꽤 여유가 생기겠지.
그리고 비밀로 했던 게 있다.
우리 공돌이.
[공돌이스킬 :
분해 Lv. 29.
흡수 Lv. 29.
분석 Lv. 27.
분열 Lv. 29.
조종 Lv. 29.
변질 Lv. 29.
저장 Lv. 32.]
매일 먹어 치우고 생산하는 양이 있다 보니 레벨이 쭉쭉 올랐다.
실제 생산할 수 있는 양은 지금의 두 배 이상이지롱.
데헷.
변명은 있다. 너무 급격하게 성장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니야. 슬슬 성장 속도가 느려지기도 했고. 조금씩 풀어줄 생각이었다.
내가 한 번에 풀어줬으면 만족했을까? 그럴 리가 없잖아. 그냥 거기가 새로운 기준이 되고 또 내놓으라고 하지. 하지만 조금씩 풀어주면 조금은 불만족스러워도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재작년 연봉 상승이 50%였다고 하자. 그런데 올해는 15%가 오르면? 엄청 조금 오른 것 같잖아. 평균은 5%도 안 오른다고 하는데. 이래서 다음 연봉 상승을 기대하겠어?
반면 재작년 연봉 상승이 4%였는데 올해는 8%면? 기쁘지 않겠어? 다음 연봉 상승은 9%만 돼도 기쁠 테고.
물론, 이건 최소한 최저생계비를 만족했을 때의 이야기겠지.
작년에 100%가 오르고 올해 200%가 올랐다고 해도 받을 연봉이 999만 원이라면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상당히 풀어주기는 해야겠지.
한 66.7% 정도 증가시키자.
실력의 3할은 숨기라고 하잖아?
거기에 세금 3.3% 붙였다.
그리고 그냥은 안 도와준다.
“성장의 비약 같은 거 만들어서 보낼게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찾아왔을 때 져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두 번은 안 된다.
두 번 있었던 일은 세 번도 있을 수 있다고.
떼쓰면 통한다고 여기면 곤란하니까.
머리카락을 제물로 받아준 것은 단 한 번이다.
“그리고 특약 하나 넣어주세요.”
“말씀하십시오.”
“제 슬라임들이 소모하는 재료의 비용은 연금 폐기물 처리비로 충당하며 설령 재료비가 처리비를 넘어서도 제게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요.”
“네?”
“생산량이 늘어나면 재료비도 늘어나잖아요? 그게 얼마가 되든 연금 폐기물 처리비용으로 충당하라고요.”
연금센터에 돈 주기 싫다.
“수수료 쪽은 규정이 있으니 건드리기 어려워도 연금 폐기물 쪽은 자유로운 편이잖아요? 규정과 전례가 없으니까.”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네.”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저, 직접 사람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거 엄청나게 싫어하니까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 주세요. 다음에는 문 안 열어줄 거예요.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도 소용없어요. 저는 밖에 아예 안 나가니까.”
단호하게 말했다.
“···연락하겠습니다.”
“네, 네. 그러세요. 성장의 비약은 완성돼도 계약서 수정이 끝난 뒤에 보낼게요.”
박태양 상담사가 떠나고 바로 공돌이 영양제를 만들었다.
이건 말한 대로 계약서 수정이 끝내면 보내자.
슬슬 먹방 찍어야지.
오늘 먹방은 슬라임!
장난감 말고 식용으로 파는 물건도 있는데 내가 먹을 슬라임은 물론 자작이다.
냠. 냠. 맛있다.
이 집 슬라임 잘하네.
***
[요즘 인기인 슬라임을 먹어봤다.]이거 내가 올린 영상 아니다.
-, 저도 애용하는 물건인데요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먹지 마!
그걸 왜 먹어!
발에 양보하라고!
-상당히 질기기는 한데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탱탱하고 쫄깃쫄깃한 게 약간 오징어 씹는 느낌이 나네요. 초고추장에 찍으면 음~. 역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맛이 확 살아나네요. 여기 이 자국이 점점 없어지는 거 보이시나요? 이거 잘하면 회로 떠서도 먹을 수 있겠습니다.
-회는 이것과 먹어야죠. 간장에 겨자를 풀고―
-. 이건 너무 질기네요. 그냥은 못 먹겠습니다. 하지만 회칼 앞에서는 장사가 없죠. 가늘게 썰어서 설탕, 소금, 식초를 넣고―
-다음은 입니다. 이걸 먹겠다고 하면 저를 욕하실 분이 많겠지만, 그래도 맛이 궁금하니 먹어보겠습니다.
-이거 식감이 굉장히 특이하네요. 젤리와 흡사한데 그보다 훨씬 탱글탱글합니다.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목구멍으로 내려가네요. 게다가 약간 단맛이 있어 이대로 먹어도 나쁘지는 않으나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을 먹어보겠습니다. 오, 우물우물 꿀꺽. 이건 목구멍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데 고급 초콜릿 같은 매끄러운 끈적임입니다.
—
이거 내 잘못인가?
내가 슬라임 먹방을 해서 그런가?
일단 내 잘못이 있기는 하다.
영상을 올린 타이밍이 조금 공교로웠다.
저 영상을 올린 W튜버는 그렇게 인기가 넘치는 인물은 아니었다.
해산물을 사거나 낚시해서도 먹는 W튜버인데 구독자가 5천도 안 된다.
그런데 내가 올린 슬라임 먹방과 연관 동영상으로 뜨면서 [요즘 인기인 슬라임을 먹어봤다.]영상의 조회수는 10만을 돌파했다.
올리고 아직 24시간도 안 지났는데.
인생은 타이밍이라더니.
지금 문제는 저걸 따라 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과 인데 저걸 누가 저딴 걸 따라 하냐고?
‘붙여도 정력에 좋은데 먹으면 더 좋지 않을까?’
같은 참신한 결론에 도달하는 인간들은 분명히 있을 거다.
스마트폰도 정력에 좋다고 하면 씹어먹을걸?
단언하건대 내가 만든 슬라임은 식용이 아니다.
김에 들어가는 제습제처럼 먹지 말라고 포장지에 분명히 적혀 있다.
그런데도 먹겠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먹다가 죽어도 내 책임은 아니다.
그러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하고 싶은데.
먹었는데 영문 모를 이유로 정력이 진짜 좋아져. 피부가 깨끗해져. 관절의 아픔이 없어져. 머리카락이 막 나.
서울중앙연금센터의 오프라인 매점 입구는 헬게이트가 될 거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있다.
해결책은 어렵지 않다.
공돌이야. 슬라임을 쓰게 만들어라.
매우 매우 쓰게.
지금부터 생산되는 슬라임을 먹는 사람은 입에서 고삼 축제가 열릴 거다.
이렇게 해두면 먹는 사람은 없겠지.
그러고 보니 박태양 상담사의 전화가 없잖아.
자기 일은 최대한 자기가 알아서 하려는 자세.
아주 좋아.
[마키나 : 헬로헬로.]내 십년지기 인터넷 친구로부터 연락이다.
[마키나 : 만든 슬라임이 먹히는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직접 말한 적은 없어도 당연히 내가 연금슬라임이라는 건 알겠지.
내가 SLimelove라는 사실은 알려나?
마키나는 정확한 정보를 찾아내는데 매우 뛰어나다. SLimelove=연금슬라임이라는 소문에는 휘둘리지 않을 거다.
하지만 묘하게 날카로운 구석이 있는 마키나라면 내가 무심코 남긴 흔적으로부터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파악했을지도.
뭐, 저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굳이 언급할 생각은 없다.
[나 : 신발 튀겨 먹는 영상이 떠오름.나 :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이 진짜 많아.
마키나 : ㅋㅋㅋㅋㅋ
마키나 : 너 자신이 먹히는 것 같은 착각은 안 듬?
나 : 그런 착각을 왜 해?]
내가 만드는 슬라임 제품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더는 내가 아니다.
그렇게 분리해서 생각하고는 있다.
저렇게 회 쳐서 먹는 모습을 보니 묘한 느낌이기는 한데.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
[마키나 : 가끔 만든 물건과 자기를 동일시 하는 사람이 있음.마키나 : 문제없으면 OK.
나 : 신경 써줘서 땡스.
마키나 : NP.]
은근히 배려심이 깊다니까.
[마키나 : 새 게임 찾아옴.마키나 : 보냈으니까 확인.]
같이 할 게임이 있으면 자주 선물을 보내준다.
나도 다음에 찾아서 보내야겠네.
선물로 온 게임을 확인하는데.
[나 : 이거 맞아?]내가 못 들어본 게임인 건 문제가 안 된다. 마키나는 유명하고 좋은 게임만 추천하지 않으니까. 가끔은 망할 만해서 망한 똥겜을 추천하기도 한다. 자기는 깼는데 나는 못 깨면 조롱하기도 하고.
장르도 문제가 안 된다.
비주얼 노벨이기는 한데 마키나는 이런 것도 즐긴다.
내가 의문을 표하는 이유는 게임의 줄거리 때문.
주인공이 예쁜 소녀들에게 무작정 사랑받는 가벼운 분위기의 러브코미디다.
[나 : 무게감이 있는 거 좋아하잖아.]마키나는 설령 러브코미디라도 커다란 세계관이나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마키나 : 가끔은 이렇게 가벼운 걸 해줘야 해.마키나 : 그래야 삶의 활기가 생겨.
마키나 : 이런 노래도 있잖아?
마키나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하···. 진짜.
대체 어떻게 이렇게 꿰뚫어 보는지.
저 노래는 또 어떻게 알고.
[나 : 솔직하게 말해.나 : 너 지금 나 지켜보고 있지.
마키나 : ㅇ.ㅇ
마키나 : 언제나 보고 있음.
나 : 스토커냐.
마키나 : 응. 스토커임.]
내 몸에서 떼어낸 슬라임을 먹는 모습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내 인간성은 너덜너덜한 상태다.
그런 나라도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마키나의 말이 틈을 메꿔준다.
[나 : 고마워.마키나 : NP.
마키나 : 빨리 게임이나 해.
나 : ㅇㅇ]
나는 게임을 시작했다.
하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무시하고 진행했다.
그리고.
[나 : 야! 이거 함정 카드잖아!마키나 : ㅋㅋㅋㅋㅋㅋㅋ]
***
8월이 시작되고도 사흘이 흘러 8월 4일 금요일.
[이걸 잘못 쓰면 간이 망가지고 얼굴이 다 무너진다? 사용하기 전에 부작용 꼭 확인하세요.] [ 이런 사람은 쓰면 안 됩니다.] [을 이렇게 썼다가는 몸에 큰일이 납니다! 쓰기 전에 꼭 확인하세요.]W튜브에 온갖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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