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8)
스윽.
투란은 꼼지락거리던 손끝으로 땅에 금을 하나 그었다.
늪이 쓸고 지나간 다음, 앵앵대는 바포플라이가 모두 도망치거나 잡혀 죽은 탓인가 주변은 고요한 느낌만 가득했다. 나무는 늪을 한바탕 뒤집어썼어도 별일 없었다는 듯이 껍질을 가라앉힌 얌전한 모습이고, 늪은 뭔 소란이 있었나 하는 듯이 느릿하게 찰랑이며 묵묵히 숲가에 닿아 흐를 뿐이었다.
그 바람에 투란이 바닥을 긁어 금 긋는 소리가 가장 큰 듯이 울렸다.
스윽.
“흠.”
벅벅, 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은 앉은 채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자신이 그어 놓은 서너 개의 금을 내려다봤다. 누가 봐도 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기는 했다.
—야! 정리하는 거면, 거기다 뭐라고 써 놔야지! 왜 금만 긋고 마는데?
‘응? 아, 그야…… 세는 거잖아, 몇 가지를 생각했나.’
—그러니까 그 생각한 내용에 대해서 끄적여 놓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어? 글로 쓰라고?’
잠깐 투란의 눈이 깜박거렸다.
뭔가를 헤아리거나 생각을 할 때, 몇 가지나 생각을 했나부터 헷갈리기 시작하면서 생각한 것을 다 까먹는 수가 있었다. 그럴 때는 손가락을 꼽아 미리 몇 가지 생각을 했나 세 보거나, 땅바닥에 금을 그어 헤아리고는 했다.
—키린이 힘들게 네 머릿속에 박아 놓은 것, 읽고 쓰는 법이라고!
버럭, 다시 외치는 드라고니아의 잔소리가 투란의 눈을 살짝 떨리는가 싶을 정도로 끔벅거리게 했다.
‘글자로 그런 일도……?’
—뭐라!
잠깐 멋쩍은 웃음이 투란의 입가에 맴돌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이 웃음을 본 것처럼, 바로 드라고니아가 으르렁대는 외침이 투란의 가슴에서 뇌리로 쩌렁거리며 전해진다.
—웃지 마! 이게 웃을 일이냐! 뭐든 몸으로 때우는 꼴이 이상하다 싶더니! 너 지금까지 책을 몇 권이나 읽었지?
‘그리 귀한 것을 몇 권씩이나 읽었을 리가! 누가 펼치는 거 구경은 해 봤지만…….’
—야, 이 무식한……!
“후웃!”
깊이 숨을 들이쉬고 세차게 내쉬면서, 슬그머니 귀를 막는 시늉으로 드라고니아의 엄청난 투덜거림을 외면한 투란은 천천히 첫 번째 그어 놓은 금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써질까?’
막상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하니, 낯설고 야릇한 느낌이 먼저 찾아와 투란을 머뭇거리게 했다. 키린이 뇌리에 새겨 놓은 것, 생각 없이 문자를 쓱쓱 읽게 된 상태…… 과연 쓰는 것도 될까?
투란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10년 사냥
가볍게 몇 글자가 끄적여졌다.
조금 삐뚤거리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투란은 정말 생각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이 움직여 그려 낸 꼴을 보고 놀랐다.
“와, 썼어!”
당연하다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나온 투란의 중얼거림이 투덜거림을 늘어놓던 드라고니아에게서 살짝 신음하는 기척을 뽑아내는가 싶더니 고요하게 만들었다!
투란의 손이 다시 움직였고, 두 번째 금 위로 새로운 글자를 그려넣었다.
버릇, 먹는 것과 싸는 것, 경계하는 것을 파악.
“헤헤헤, 음헤헷!”
투란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바로 투란의 손끝이 그다음의 금으로 옮겨졌고, 보다 빠르게 보다 능숙하게 새로운 글자를 그려넣는다.
인내, 끈기. 물러설 샛길의 확보.
히히거리는 웃음이 슬그머니 투란의 입가에서 사라졌다.
금은 아직 둘이나 더 남았지만, 투란은 팔짱을 낀 채로 써 놓은 세 줄의 글자를 노려보는 자세로 멈췄다. 이런 투란의 기척을 잠시 감상하는 듯했던, 고요하던 드라고니아의 물음이 나온다.
—10년 사냥은 뭐냐?
‘응?’
입을 다문 채, 투란이 잠시 눈을 깜박이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드라고니아가 조금 울컥한 기척을 띤 채로 이어 말한다.
—첫줄에 써 놓은 거, 그게 뭐냐고. 사냥하는 입장을 고려할 때 나머지 두 줄은 대충 뭔가 알겠다만…… 10년 사냥이라니, 그게 대체 뭐야? 설마 사냥 한 번 하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소리냐?
‘아, 그거…… 맞아. 예전에 몬스터였나, 마수였나, 아무튼 대단히 잡기 힘든 놈을 사냥하겠다고 나선 몬스터 헌터가 10년에 걸쳐서 사냥을 완성한 얘기가 있거든. 10년 사냥은 그 얘기야.’
—10년…… 그거 인간에게는 꽤 긴 시간이 아닌가?
‘어? 인간에게는……? 너네한테는 10년이 짧아? 당연히 길지! 10년이면 지금 내 나이의 절반 이상이라고! 아, 10년 전이면 난 엄청 꼬맹이였는데…….’
—그 사냥꾼이 꼬맹이 시절부터 사냥을 했다는 이야기냐?
‘잉? 그건 아니고…… 제대로 헌터가 되었는데, 보통 방법으로는 절대 잡을 수 없다는 사나운 놈을 잡기 위해 정말 끈질기게 그놈의 영역 전체를 덫으로 바꿔서 잡았다는 이야기지.’
—무슨 소리인지 애매하군. 그러니까 사냥감이 돌아다니는 지역 전체에 함정을 만들어서 잡는 데 10년이 걸렸다는 소리인가?
‘음, 그게 그러니까…… 에이, 그냥 다 이야기해 줄게.’
투란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10년 사냥의 이야기를 더듬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들은, 반쯤 졸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채로 들은 이야기였다.
그날, 샤오덴 할배의 대장간 불가에서 그 따스함에 엄청 포근한 잠을 잤던 기억도 함께 시간을 거슬러 투란의 마음으로 올라왔다.
‘이름은 까먹었고, 생김새가 어떻다는 말도 까먹었네. 그건 졸다가 제대로 못 들었어. 아무튼, 그 마수인가 몬스터인가는 어떤 산이랑 절벽의 틈새를 오락가락하면서 장악하고 다른 짐승이라든가, 몬스터, 사람을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는 성질 사나운 놈이라고 했어. 그 바람에 길 하나가 완전히 막혀 버렸고, 사냥꾼은 그놈을 해치워야 하는 의뢰를 받았대. 하지만 첫 번째 만남에서 사냥꾼은 함께 갔던 동료들을 모두 잃었지.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 들었던 것과 너무나도 다른 놈이었던 탓이래. 원래 그렇게 생긴 놈이 세기는 해도 사냥꾼과 동료들이 제대로 준비해 가면 큰 피해 없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생김새랑 다른 별종이었다는 거야. 그냥 그렇게 생긴 놈 중에서 제법 센 놈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특성이랑 힘을 지닌 유니크였다는 소리가 사냥꾼의 동료가 희생된 다음에나 나왔대. 그리고 그 특성이 상당히 위험해서,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다고 사냥 금지 대상으로 지정되고, 그 근처를 얼쩡대지 말라는 소리까지 나왔다더라고. 근데 사냥꾼은 실패도 실패지만, 그때까지 함께했던 동료들의 복수를 하려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래서 녀석의 둥지가 돼 버린 곳을 끝없이 오락가락하면서 녀석의 습성이며 버릇…… 뭘 먹고 어떻게 싸는가, 뭘 싫어하고 꺼리는가까지 꾸준히 조사했어. 그러면서 녀석의 둥지를 추적했대. 싫어하는 것을 하나 찾아내면 계속 녀석이 다니는 길목에 깔고, 치워지거나 파괴되더라도 새로 슬그머니 채워 넣고……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나니, 원래 그 사나운 놈이 장악했던 영역이 산과 절벽 사이의 넓은 곳에서 아주 좁은 동굴, 그런 주변으로 줄기까지 했대. 사냥꾼은 방법을 바꾸지 않고 반복해서 녀석이 싫어하는 것, 꺼리는 것을 깔았고 결국 완전히 탈진한 꼴이 된 놈을 산 채로 잡아 버렸다는 거지.’
—산 채로?
‘응, 산 채로 잡아서 산 채로 박제해 버렸대.’
—박제!
‘어, 그냥 죽여서 껍질 벗기는 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나 봐. 그 일을 10년 사냥이라고 해. 정체조차 애매한 마수인가를 집념, 끈기…… 뭐, 그런 근성으로 파악하고 완전히 제압해서 잡아 버린 거지.’
—그래서…… 지금 그 방법으로 고르고니아 스테노아를 상대하겠다고?
아주 미심쩍다는, 설마 그럴까 하는 낌새가 역력한 드라고니아의 물음이었다.
투란은 팔짱을 풀면서, 글자가 새겨지지 않은 두 줄의 금을 지웠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드라고니아를 향해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딱 지금 내 조건에 맞는 방법이잖아?’
뭔가 이해할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침묵이 드라고니아에게서 흘러나왔다.
투란은 금을 지워 버린 자리에 손끝을 대고 새로운 글자를 써넣는다.
늪 속의 작은 땅. 얼마나 넓은가?
“좋아, 다 기억했다!”
쓰인 글을 한 번 더 되뇌면서 투란은 일어섰다.
서늘한 바람이 늪의 습기를 머금고 밀려왔고, 돌아선 투란은 늪으로 다시 발을 디뎠다. 그다음에 짧은 투덜거림이 투란의 입에서 곧장 새 나온다.
“또 반나절을 헤엄쳐야 하나…….”
염려와 달리, 투란이 다시 고르고니아가 머무는 곳에 도달한 것은 두어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처음처럼 눈깔꽃 무리의 분위기를 보면서 이리저리 휩쓸리듯 흘러가지 않고, 바로 방향을 기억해서 곧장 촐랑이며 온 덕분이었다.
‘음, 생각보다 가까웠구나.’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투란은 입을 늪에 잠근 채로 자신을 향해 투덜거렸다. 너무 눈치 보느라 돌아서 움직였던 처음이 꽤 바보 같았으니까! 하지만 막상 고르고니아가 어슬렁거린다 싶은 곳에 도달하고서는 좀 더 예민하게 주변을 살피며 눈치 보는 모습이 되어 갔다.
투란이 먼저 가늠한 것은 고르고니아가 서 있는 땅, 늪을 통해 빙빙 돌면서 늪 속의 섬이 얼마나 넓은가를 파악하려 했다. 눈깔꽃 무리의 꼬락서니로는 사방이 완전히 늪에 둘러싸인 곳으로 보였지만, 혹시 가늘게나마 저편의 우거진 숲과 이어진 다리 같은 곳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없네.’
한 시간을 조금 넘게 빙 돌아서 처음 출발한 곳의 풍경에 이르러서야 투란은 확신했다. 대충 어림잡아 고르고니아는 폭이 긴 쪽이 대략 150미터이고, 좁은 곳은 90미터 내지는 100미터가량 되는 늪 속의 섬 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그런 곳을 한 바퀴 돌면서, 고르고니아의 모습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투란의 강화된 시각으로 이 작은 섬의 끝에서 끝까지 모두 시야에 담을 수야 있었지만, 땅이 지닌 굴곡과 중간에 무성하게 솟구친 채로 하늘거리는 풀잎 따위가 시야를 가린 탓이었다.
‘음, 벽 뚫고 보는 거는 안 되나.’
천천히 늪에 몸을 누이고 둥실둥실 고르고니아의 섬에서 멀어지면서 투란은 생각을 되새기고 더듬었다.
눈깔꽃 무리가 보여 줬던 섬광, 그때 느껴졌던 압력, 저 작은 섬은 산도 꿰뚫는다는 그 파괴력을 버텨 냈다.
하지만 그 위에 무성히 자란 풀잎조차도……?
—새로 자란 거다. 저거, 저렇게 자라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조금 한심하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지적하고 있었다.
‘엥? 저 풀이 뭔지 알아?’
—요초(妖草) 중에서 에지드라는 거다. 요목이란 거 들은 적 있지? 나무나 풀이 마수처럼 변한 거, 저 풀무더기가 그런 거다. 나무는 될 리가 없고 그래서 요초라고 부르지. 상당히 빨리 자라고 짐승 가죽 정도는 한 20센티 두께가 되더라도 바로 잘라 내는 절삭력이 있는 것이 저 에지드다. 저 정도 길이까지 자랄 수 있는 경우는 드문데, 역시 이곳이니까 저 정도 높이로 자랐겠지.
‘음, 저게 아주 길게 자란 거야? 1미터…… 50센티나 될까 싶은데?’
—원래 한 4, 50센티 자라다 만다. 양분으로 동물의 피와 살이 필요하고, 거기에 이런 습지여야 한다는 조건이 까다롭지. 보아하니…… 뭔지 몰라도 상당히 좋은 양분이 저 섬 위에 있는 모양이군. 그리고 이 늪의 짙은 습기는…… 저런 요초나 요목에게 상당한 힘을 부여하는 것 같기도 하네.
‘흐흠…… 그런데 저런 놈들 틈새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닌단 말이지.’
—눈깔꽃의 중첩 섬광도 그냥 서서 처맞고 어슬렁대던 놈이다. 저딴 것은 그냥 스쳐 가는 여린 바람 정도나 될까.
어딘가 씁쓸하게, 고르고니아의 강인함을 탓하는 듯도 하고 감탄하는 듯도 한 드라고니아의 넋두리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이를 듣는 투란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좋군. 저런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면…… 정말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투란, 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일단 주변을 한 번 더 돌고. 아까 보니까, 새로 왔는지 다 같이 터질 때 빠진 건지 눈깔꽃이 아직 멀쩡한 것이 조금 있더라고.’
—……뭐?
애매한 투란의 말에 조금 어리둥절해하는 드라고니아였다.
그러나 투란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더 빠르게, 늪 안에 푹 잠긴 채로 움직이면서 자신이 말한 대로 눈깔꽃을 찾는 투란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눈깔꽃, 아직 눈깔을 터뜨리지 않은 것을 잡아서 에지드라는 요초가 가득한 섬 위로 던졌다. 아주 힘차게, 날아가는 눈깔꽃이 성질나서 섬광을 터뜨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