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9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81)
Chapter 217. 재앙을 향해
화르르, 한낮에 다소곳하니 피어오른 모닥불은 그 빛을 널리 뿌려 내지는 못했지만 돌무더기를 둘러친 간이 화덕(火德)을 시커멓게 핧아 대는 뜨겁고 붉은 혀만큼은 높고 넓게 뻗어 내려 몸부림치는 듯했다.
그 한구석에 적당히 펼쳐 놓은 담요 위에 누운 투란은 적당히 몸을 덮은 또 한 장의 담요에 둘러싸인 채로 새근거리고 잠든 채였다. 눈꺼풀을 불룩거리는 눈동자의 움직임은 뭔가 격렬하게 꿈을 꾼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할 정도지만, 고른 숨결과 축 늘어진 몸가짐은 분명히 투란이 깊이 잠들었음을 증명하는 중이었다.
쥴은 그런 투란을 흘깃거리며 지켜보는 와중에 화덕 위편으로 커다란 철판을 지붕처럼 올려놓고 이것저것 얹는 중이었다. 두꺼운 철판이기에 달아오르는 시간만 해도 상당히 걸릴 듯했지만 쥴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온갖 식물과 동물의 파편을 두리뭉실하니 섞은 재료를 한껏 올려놓고 있었다.
고요한 바람결이 그런 풍경을 향해 웅장하게 밀려 내려왔다.
드레이번 칼릭이 날개를 펼친 그대로 쥴과 투란의 머리 위를 덮듯이 하강한 탓이었다. 하지만 날갯짓 없이 불룩한 어깨처럼 보이는 가슴의 촉수로 가볍게 바닥을 짚으며 칼릭은 쥴과 투란이 꾸민 한낮의 캠핑 터 한구석에 담장처럼 내려서며 바람결을 부드럽게 흘려 냈으니, 먼지 몇 톨이 간신히 그 바람결에 올라탄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고요한 자태로 바닥에 배를 붙이고 칼릭이 몸을 낮추는 사이, 그 등 뒤에서 탈키오가 내려섰다.
철판 위의 식재료를 뒤집는 채로 쥴이 말한다.
“뭘 그 녀석까지 데려와? 영감 날개만으로도 충분했잖아? 그냥 둥실둥실 마력만으로도 날 수 있으면서.”
“내 볼일이 아니라 자네 볼일이야, 쥴. 투란은 자는 건가? 그냥 쉬는 건가?”
부드러운 몸가짐으로 화덕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탈키오가 대꾸했다.
“내 볼일? 투란은…… 뭐, 일단 쉬어야 하기도 하고 잠도 좀 필요해. 당장 깨우지 않는 편이 좋고, 깨우기도 어려울걸? 카엘의 마법 속을 헤매고 있는 중일 테니까. 아,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려나? 들어도 깨어나진 못할 테지만.”
치이익, 고기 파편 하나를 꽉 눌러 바싹 익히는 채로 쥴이 키득거리는 말투를 섞어 말하고 있었다.
“대마도사의 마법에 걸린 채였나…… 그러면 억지로 깨우지 않는 편이 좋기는 하겠군. 그래서 며칠이나 마법의 잠이 유지되는 건가?”
“응? 글쎄? 내가 옛날에 당했을 때는 허우적거리느라고 한 열흘? 아니, 이레 정도였나? 아무튼 그 정도 퍼져 자면서 꿈속을 헤맨 것 같은데…… 얘는, 냠, 맛있군. 어, 투란은 다를 거야. 하루? 길어도 이틀? 그런데 왜? 드레이번 끌고 내려온 거랑 뭔 관계가 있는 거야?”
쥴이 갸웃거리며 대답하다가 으적거리며 살짝 탄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되묻고 있었다.
탈키오가 가만히 어깨를 으쓱하며, 덩달아 얌전히 접은 날개도 살짝 꿈틀거리는 채로 대답한다.
“툴로쉬의 전언이 있었어. 아무래도 예상보다 더 상황이 곤란한 모양이야. 가능하면 빠르게, 늦어도 사흘 안에 와 줬으면 한다네. 그보다 늦을 것 같다면, 일단 쥴 자네라도 먼저 와 달라고 말이야. 투란이 칼로드의 계승을 끝마칠 때까지 자네까지 와서 함께 버텨 줘야 할 모양이야.”
“영감, 툴로쉬가 어떻게 연락을 한 거야? 난 그게 더 궁금한데?”
아작아작 구워진 나무뿌리 조각을 씹다가 쥴이 물었다.
탈키오가 빛바랜 비늘 진 입가를 묘하게 뒤틀며 대답한다.
“메일링 포트를 칼릭의 몸에 걸어 놨더군. 타는 사람에게 입가심거리라도 넘기려고 걸어 놓은 그릇인가 했는데, 거기서 바로 전언이 튀어나오더라고. 나도 꽤 놀랐네. 툴로쉬가 기어코 메일 박스와 채널링 데포를 손에 넣었다니…… 엘더 헌터의 영역이 지나치게 확장되고 역할이 번잡해진다고 대마도사가 넘겨주지 않았던 것이잖나.”
“흠…… 직접 넘겨줬을 리는 없지. 안 그래도 바빠 뒈지려는 애들인데…… 아, 그게 아니고, 그렇게 상황이 급하다고? 이쪽도 곤란한데…… 투란, 혹시 자는 채로 듣고 있으면 되도록 빨리 그 수면 어쩌고 하는 과정을 끝내야겠다. 안 들리냐? 뭐, 안 들리면 한 이틀 기다릴 수밖에 없구먼. 영감, 칼릭이 나만 데려가면 하루 안에 툴로쉬 앞에 갈 수 있어? 투란은 영감이 마법으로 쏴 주고 말이야. 드라고니아도 품었다니까, 어찌 되는 거 아닌가?”
조금 더 빠르게 요리를 입에 넣는 채로 쥴이 빠르게, 꽉 찬 입으로도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탈키오가 그 희한한 꼴을 보다가 투란을 보며 담담하게 말한다.
“대강 이런 상황이니…… 가능한 한 빨리 마법의 꿈을 끝내도록 하시게나. 드라코눔의 마법 전송은 우리 일족에게 맞춰진 탓에 자네에게 꽤나…… 음, 거칠다고 해야 하려나? 뭐 알다시피 앙헬 녀석은 그 기회를 틈타 자넬 골탕먹이는 장난을 치고도 남을 터이니까.”
쥴은 말끝에 미묘하게 웃는 드라코눔의 대원로를 갸웃하며 봤고, 그 주변에서 은은하게 바람이 파동을 일으키며 ‘누가앗!’이라고 으르렁거리는 듯한 희미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인가 빛의 구슬 속에서 잘도 떠들던 투란의 드라고니아가 탈키오의 수작에 걸려 목소리를 잃은 듯한 분위기잖나. 물론 쥴이 이를 따져 물을 까닭은 전혀 없었다.
“힘내라, 투란.”
고작 이런 말을 더하면서 철판에서 바싹 익어 가는 먹거리를 입에 담아 넣는 일에 몰두할 뿐이었다.
* * *
시작은 반지의 풍경 속에 자신이 놓였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부터였다.
갑작스럽게 마음속에 와 닿은 몇 마디.
‘수면 학습? 몽중습득(夢中習得)? 자면서 배우고 꿈속에서 익히고 터득한다고?’
그리고 자신이 그 내용을 훤히 ‘알게’ 되었다는 자각과 함께 투란은 왜 그런 것을 당연하게 알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도 떠올렸다. 한데 그 의문은 떠오르기가 무섭게 단 한마디, ‘마법이야.’라는 답과 함께 사라졌다!
‘뭐 이런……!’
울컥하는 기분이 먼저 찾아왔다.
하지만 다음 순간 투란은 흠칫 놀라야 했다.
반지의 마법이 알려 주는 것이 몬스터 엠블럼을 다루는 바에 대해서가 아니었으니까. 반지는 몬스터 로드를 위해서 몬스터 엠블럼을 관리하고 상황에 따라 다른 문장으로 교체하는 것조차 허용해 주는 대마법의 결정체……라는 것뿐이 아니라고 새로운 ‘앎’이 투란을 파고드는 것.
그 첫 번째부터가 등골이 쭈뼛하면서 팔뚝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라웠기에 투란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 주머니, 배낭을 모두 하나로 통합해서 관리할 수 있다고? 정리정돈까지 모조리? 게다가 그 안에 재료가 있다면 재봉이나 수선은 간단해? 뭐야, 이건 도대체…….’
엉겁결에 블랙레온을, 데몬스 러그를 자신이 지녔다는 것을 떠올리던 투란은 문득 홀시딘의 마법 공방과 닮은 풍경이 새롭게 비친다는 것과 그 용도를 ‘알면서’ 새삼 놀라고 말았다.
다른 이의 마법을, 심지어 악마종이 남긴 이단(異端)의 이질적(異質的)인 마도구조차도 한꺼번에 통합하는 어마어마한 효과도 놀랍지만…… 거기서 갑자기 바느질을 기반으로 한 헌 옷 수선이라든가 재료만으로 충분히 새 옷을 재봉해 낸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왜 덧붙여진단 말인가!
엄청난 마법 뒤에 갑작스럽게 일상생활의 소소함이 덧붙으니 살짝 맹해질 수밖에 없는 투란이었다.
하지만 곧 투란은 깨달아야 했다.
저 묘한 풍경, 마법의 공방을 떠올리게 한 광경이 그 느낌 그대로 단순히 옷감이라든가 목공, 석공의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
‘아다만티어 가공도 된다고? 재료만 있으면, 레시피…… 제작법이 확인되고 기록된 것은 뭐든지 제작해 낸다고? 몬스터 장비까지? 뭐야, 이게!’
악마종의 유산으로서 아다만티어를 얻었지만 아직 어디에 써 본 적은…… 적어도 지금 기억하는 지난날 중에는 없었다. 뭘 만들지도 않았고, 가공하지 않은 채로 어디에 쓴 적도 없다. 쉽게 다룰 수 없는 소재이기도 했지만, 가공에 필요한 퀸 젤리까지 유산 속에 함께 있기는 했지만 한번 소모하면 만들어지는 불변(不變) 불괴(不壞)의 도구로서 무엇이 좋을까도 막상 선택하기 어려웠기에…… 한편으로는 딱히 그런 도구가 필요한 일도 없었으니까!
손재주의 부족이란 점에서도 슬그머니 켕기는 부분이 있어서 투란은 거의 잊고 지내던 중이었다. 방금 전에 당당하게 마법 배낭, 주머니를 모조리 통합해서 관리해 주는 마법이 그 안에 담긴 물건을 정리정돈하면서 희귀 품목이라고 냉큼 그 존재를 들이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쯤 되면 정말 사소하고 작은 뭐라도 만들어 보고 싶어지잖나!
그리고 그런 호기심에 부응하는 물품 하나가 바로 투란의 마음에 불쑥, 실로 마법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쥴은…… 노출하지 않았지?’
투란은 백금 반지를 쥴이 내놓을 때를 기억했다.
넓고 굵은 반지를 쪼개며 그 안에 박힌 것을 빼내었던…… 백금이 귀하니까 지나가던 녀석이 손가락 자르고 뺏겠다고 덤비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터였다. 어떤 면에서는 이 백금 반지가 나름대로 장갑(裝甲)을 두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이 발상과 호기심에 호응하는 마법은 없었다.
반지의 마법은 투란에게 그럴 필요가 있다는 ‘앎’ 따위는 전혀 들이대지 않고 있었다. 그저 굳이 원한다면 가능은 하다는 ‘답’만 내놓을 뿐이었다. 왜 필요한가를 전혀 알 수도 없고 상관도 않는다는 것처럼!
‘칫…… 확인이나 하고!’
툴툴거리는 속내를 억누르면서 투란은 반지를 덧씌울 반지, 반지에 입힐 갑주 같은 형상을 마음속에 그려 내면서 자신이 저지르려는 짓에 대해 필요한 의문을 떠올렸다.
아다만티어로 반지를 치장하는 덮개를 꾸밀 경우, 반지의 마법이 방해를 받는가?
답은 의문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거의 의문과 동시에 투란의 마음에 드리워졌다. 샘솟듯이 원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니.’라고.
오히려 반지의 마법으로 제작되는 덮개, 덧씌워지는 반지의 갑주는 마법을 효과적으로 지키며 받아들일 것이라고 ‘알’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하자고.’
일단 다른 생각을 걷어치우고 투란은 손을 내밀어 봤다.
이 꿈의 풍경 속에서, 반지가 만들어 내는 기묘한 심상 속에서 앉은 채인 자신의 몸뚱이로부터 뻗어 나간 손에 백금 반지가 끼워진 채일까?
‘내가 원하는 대로? 칫.’
다시 한번 의문에 대한 답을 바로 얻어내며 투란은 마법의 공방에 의지를 전했다.
그러면서 가만히 손가락을 곧추세우며 투란은 기다렸다.
그물처럼 백금의 반지를 감싸는 하얀 줄기, 어딘가 나무처럼도 천칭처럼도 보이는 무늬를 품은 그물이 금세 완성되었다. 더불어 소모된 아다만티어와 퀸 젤리의 용량도, 남은 용량도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러면…… 된 건가?’
깨어났을 때 자신의 손가락에 어떤 반지가 끼워져 있을까?
새로운 덮개를 두른 반지인가, 아니면…….
의문에 답보다 먼저 투란은 문득 들을 수 있었다.
쥴과 탈키오의 오가는 이야기…….
툴로쉬가 조급하게 소식을 보내왔다는 것까지.
‘무장인지 옷장인지는…… 아, 그런 거면 그냥 한 벌 입어두면 되네.’
의문과 동시에 답을 얻으면서, 이 꿈의 풍경이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것까지 확인하면서 투란은 잠에서 깨어나기로 마음먹었다.
* * *
부스스, 펄럭.
투란이 일어나 앉았다.
“오? 벌써?”
쥴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넓은 철판 위의 요리는 이미 반쯤 사라진 다음이었다.
탈키오가 뿔을 기우뚱하면서 더하듯 말한다.
“우리가 너무 재촉했는가?”
“아니요, 적당했어요.”
대답과 함께 투란은 담요에 덮여 있던 왼손을 꺼냈고, 주먹을 쥐면서 선명하게 반지를 드러냈다.
미묘한 일렁임이 단숨에 투란을 휘감는가 싶은 순간, 투란의 차림새가 바뀌었다.
반지가 햇살을 받아 반짝인 것은 투란이 조금 더 손을 든 순간이었고, 쥴이 쿨럭거리면서 소리친 것은 그 반지를 두른 금속을 보자마자였다.
“야, 아다만투스잖아! 그 귀한 걸로 고작 반지부터, 겹쳐 쓸 반지부터 만드냐? 차라리 바늘을 만드는 것이……!”
탈키오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림을 이었다.
“허어, 꿈속에서 아다만투스의 가공품을 만들고 현실로 끌어내 오다니, 대마도사의 마도구는 그런 일도 가능했던가…….”
쥴이 이 말에 바로 핀잔한다.
“영감, 뭘 처음 보는 시늉이야? 나도 몇 번 뭘 만들어 보여 줬잖아.”
“그래, 멀쩡하게 두 눈 뜬 채로 마력의 흐름까지 보여 주면서 말이지. 하지만 지금 투란은 그저 마법으로 무장하듯이 해냈네. 무장 마법으로 도저히 꺼낼 수 없는 아다만투스의 제조품을 말이야. 꿈에서 만들고, 현실로 꺼내 온 것이지.”
탈키오는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쥴과 투란에게는 ‘그게 뭐가 다른가?’라며 갸웃하게 하는 이야기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