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3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37)
투란은 정신을 집중하고 조금 전에 벌어진 일을 되새겨봤다.
‘나는 분명히 눈깔꽃을 꺼내려 했어.’
거기에 아르고누스는 바로 반응해서 ‘눈알’을 꺼냈다.
그리고 그 ‘눈알’은 투란이 원했던 눈깔꽃이 아니었다.
‘어?’
잠깐 투란은 가슴속에서 두근거리며 ‘악마의 심장’이 냉정하게 지목하는 바를 느끼고 깨달았다. 투란이 원한 눈깔꽃, 분명히 ‘눈알’이기는 했다. 그런데 왜 ‘눈알’로 끄집어낸 것은…… 돌이 되는 리저드의 눈알인가?
살짝 투란은 등골을 타고 서늘하고 오싹한 느낌이 샘솟는 것을 알았다.
‘이 녀석 설마…….’
정신을 모으고 투란은 블러드 레이를 쏘아냈던 눈동자를 떠올리면서, 아르고누스를 통해 그 눈알의 형태를 찾아내길 염원했다. 아르고누스가 꺼내보였던 그 ‘눈알’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가를 알고 싶으며, 어떻게 기억하는가를 알고 싶다고 염원했다. 그런데…….
‘눈알? 눈알! 전부 그냥 눈알이라니!’
분명히 수많은 눈알을 아르고누스는 품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고누스는 그 눈알들을 투란처럼 기억하지 못했다.
조금 전에 느닷없이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알을 불쑥 꺼낸 것처럼, 아르고누스는 투란의 염원에 호응하면서 바로 수많은 ‘눈알’ 중에 하나를 그냥 덥석 골라내려 하잖는가!
꽉, 손을 쥐면서 시커먼 잉크 속에 아무렇게나 골라 나오려는 ‘눈알’의 형성을 막아낸 채로 투란은 멍한 표정으로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분명히 아르고누스가 투란을 막아내려 할 때는 어떤 눈알에 어떤 힘이 담겨 있는가를 활용했다. 즉, 눈알을 분별하고 기억하며 필요에 따라 꺼내 쓴 셈이다.
한데 왜 지금 어떤 ‘눈알’이 그때 활용한 ‘눈알’인지 모르는가?
―투란, 몬스터와 너 사이의 감각에 차이가…….
‘아냐, 그게!’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지적이 끝나기도 전에 부정했다.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를 새로 얻었을 때, 본래 지닌 감각과 몬스터의 고유한 감각의 격차 때문에 의도에서 벗어난 짓을 하는 경우는 흔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이 그런 것과는 아예 다르다…… 라고 투란은 확신했고, 실험할 방법을 알아차렸다.
곧 투란의 눈길이 하늘을 향했다.
산 정상의 주변, 창공의 색채가 짙은 곳에서 빙그르 맴도는 궤적을 따라 날고 있는 큰 매…….
‘해보면, 알겠지!’
투란의 등에서 드레이크의 날개가 불쑥 흘러나왔다.
아직 성장이 모자란, 그러나 그것과 무관하게 고작 한쪽의 길이가 2미터 정도에 불과한 날개가 조여들 듯이 힘을 모았다가 세차게 움직였다.
파아앙!
투란이 서 있던 자리에 가벼운 소음과 함께 여린 티끌이 살짝 치솟았다. 단단한 바위인 탓에 지나치게 쌓인 먼지 따위는 없다는 듯…… 티끌은 여리게 흩어지며 금방 깨끗하게 빈자리만 남았다.
그리고 투란은 산의 정상까지 단숨에 치솟아서, 느릿하니 아래편에서 맴돌고 있는 큰 매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이르렀고…….
펄럭.
가볍게, 무겁지 않은 날렵한 날갯짓과 함께 투란은 큰 매의 등짝을 향해 쏘아졌다. 드레이크의 날개가 금방 사라졌고 높은 공중에서 그저 쏘아진 화살처럼 날아간 투란이 큰 매의 등에 매달렸다.
갑작스럽게 뭔가 날아오르고, 단숨에 자기 등짝에 날아드는 광경에 큰 매가 기우뚱거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완전히 달라붙은 상대를 떨쳐내기 위한 듯한 거센 몸부림은 거침없이 드러내는데…….
‘와, 크긴 진짜 크구만!’
투란은 자기 몸을 꼿꼿하게 늘어뜨린 채로 달라붙어도 매의 목 뒤와 꼬리 끝 사이에 꽤나 넉넉하게 놓이는 것에 살짝 놀랐다. 아무리 투란이 그냥 사람의 몸을 한 채라 해도, 이 정도면 거의 2미터는 가볍게 넘기는 녀석 아닌가!
투란이 얼른 두 손으로 매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보니, 목도 두껍고 머리에는 세 가닥으로 뭉친 꼿꼿한 뿔 같은 깃털의 형상이 무슨 왕관처럼 씌워져 있다. 밑에서 올려다볼 때는 그냥 좀 뾰족하다고 넘긴 모습인데…….
‘아, 이거 뿔수리잖아!’
춤추는 산맥의 곳곳에서 서식하는 매의 품종 중에서 가장 사납고 드세다는 놈이 이 뿔수리였다. 생김새가 매이면서도 어지간한 독수리보다 더 컸고, 머리에는 이 세 가닥으로 뭉쳐 화려하게 뻗은 뿔 같은 깃털의 형상을 지녀서 뿔수리라 불리는 맹금(猛禽)이었다.
‘좋아, 잘 골랐네!’
사실 이놈 말고 주변에 보이는 것이 없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투란은 자신의 생각을 실험하는 데 이 뿔수리를 고른 일에 기분이 괜찮아졌다. 물론 느닷없이 등짝에 괴상한 놈을 태운 뿔수리의 기분은 전혀 괜찮을 수가 없었다.
끼이!
외침과 함께 뿔수리의 몸이 기우뚱거렸다.
날개가 접혔다 펼쳐지면서 뿔수리는 아래로 잠깐 곤두박질치며 돌다가 몸을 확 뒤집고 바로잡으면서…… 허공에서 곡예를 부리며 등짝에 붙은 놈을 떨쳐내려 했다. 그러나 뿔수리의 등짝에 매달린 투란은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뿔수리의 깃털 속에 스며들 듯이 달라붙어서 뿔수리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대며, 두 손으로 뿔수리의 눈을 덮듯이 움켜쥐고 있었다.
그 손아귀에는 시커먼 잉크빛이 출렁거렸고, 투란-아르고누스의 본능이 바로 호응하며 눈알의 채집이 시작되었다.
끼이이이!
뿔수리는 날개를 활짝 펴면서, 본능적으로 바람결에 걸치면서 갑자기 어두워진 풍경에 당황하는 모습을 확실히 보였다. 추락하지 않으려는 맹금의 이런 활동은 투란에게 꽤나 신선하고 신기했다.
‘이게 바로 새가 나는 방법인가…….’
드레이크랑은 너무나도 달랐다.
날개를 펼치기만 해도 부유하는 드레이크와는…….
―비행에 대한 탐구의 시간이냐?
‘시꺼!’
산만해지려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의 투덜거림이 불쑥 전해졌고, 투란은 가차 없이 대꾸했다. 분명히 뿔수리에 대해 감탄하는 중이기도 했지만, 투란의 정신은 왕성하게 패러블랙 잉크의 감각에 몰입되어 있기도 했으니까.
시커먼 잉크는 뿔수리의 눈알 위로 번지면서 그 안쪽으로 바로 스며들어갔다. 살 속까지 시커멓게 물들이듯 스며들어가서, 바로 뿔수리의 신경망―드라고니아가 신경유체라느니 신경망이라느니 하며 알려준 것에 닿으면서 단숨에 뿔수리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이 감각은 투란을 조금 놀라게 했으니…….
‘얼레? 왜 느낌이 전부……?’
단단하고 뜨겁고 차갑고, 시큰하고, 찌릿한 모든 감각이 오로지 촉각(觸覺)이었다.
뿔수리의 신경을 싹 휘젓고, 눈의 안팎을 모조리 파악하는 패러블랙 잉크에게는 다른 감각이 없었다. 오로지 더듬는 촉각, 한데 이것이 무시무시하게 빠르고 날카로우면서 정확했다. 단지 더듬는 것만으로 색칠을 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 새록새록 투란의 정신에 느껴질 지경이었다.
곧, 투란은 뿔수리의 몸상태를 본능적으로 파악했고…… 어이없었다.
‘뭐 이리 끊어지고 다친 데가 많아!’
우선 뿔수리의 눈 한쪽은 완전히 시각을 잃었다. 이 녀석은 한쪽 눈만 보이는 꼴인데, 그 한쪽 눈도 상당히 기능이 저하된 상태였다. 그리고 시각을 잃어버린 왼쪽 눈을 따라 뿔수리의 몸 왼쪽의 신경은 곳곳이 끊어지고 망가져서 왼쪽 발은 그냥 매달려만 있는 채였다. 그나마 왼쪽 날개는 제대로 움직이는데, 이 또한 뿔수리가 힘을 잔뜩 준 채로 유지하는 것에 불과했다. 오른쪽 날개처럼 가볍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상태가 아니었다.
시커먼 잉크가 이러한 뿔수리의 상태를 파악해낸 까닭은 그중에 시각과 이어진 부분을 확인하려 한 탓이었다. 그 결과 그저 눈과 뇌로 이어진 부분만이 시각의 전부인 것을 알자, 잉크는 바로 뿔수리의 눈에 좀 더 깊이 스며들며 더듬었다.
‘음, 이게 얘 눈알이라 이거지. 한쪽은 대체 어떻게 이렇게 망가졌냐.’
두 눈알의 형태, 구조, 신경의 배열(配列)을 촉각으로 기억하며 투란은 기분이 아리송해졌다. 이렇게 한쪽이 망가진 눈으로 이 녀석은 날아올랐다. 평소 듣던 대로 사납고 억세면서 고고하다는 뿔수리의 모습이 정말 딱 어울리잖은가.
끼이이이―!
뿔수리가 날개를 펼친 채로, 다시 화난 소리를 냈다.
이는 자신의 몸이 잠시 자신의 뜻에서 어긋난 것을 따지는 느낌이었다.
누가 자기 몸을 대신 주물럭거리냐고…….
‘뭐, 땅에 처박으려는 것은 아니라고.’
묻지 않는 말, 그저 느껴지는 것에 대해 마음으로 대답하며 투란은 뿔수리를 산 쪽으로 날게 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뛰어내리기 적당한…… 조금 전까지 머물다가 뛰어올랐던 암반을 향해서.
그 사이 잉크는 뿔수리의 눈알을 완전히 파악한 다음, 가벼운 경련을 일으켰다.
‘어?’
이 경련의 의미가 곧장 투란에게 느껴졌다.
잉크는 분석, 파악이 끝난 뿔수리의 눈알을 먹어치우려 하고 있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
투란은 조금 당황해서 뿔수리의 머리에 닿은 손에 힘을 줬고, 분명하게 자신의 의지로서 패러블랙 잉크를 다스렸다. 순간 뿔수리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가 투란의 마음을 스쳐 가기도 했는데…….
“고고한 놈이지. 머리에 돋은 그 뿔 같은 깃털이 꼭 왕관 같잖아. 그게 그냥 모양만 그런 게 아니라고. 우리가 사냥한 짐승을 중간에 채갈 때도, 녀석은 우리 몫이라고 사냥감을 찢어서 남기고 간다고. 세금만 적당히 받으면 된다는 것처럼, 자기 사냥터니까 당연히 그런다는 것처럼 말이야. 황당하냐? 그런데 그런 놈이야, 뿔수리는.”
투란의 기분은 문득 이런 뿔수리가 망가진 눈과 덜덜거리는 날갯짓을 벗어버린 채, 온전하게 두 눈을 번뜩이며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싶은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 기분에 시커먼 잉크가 꿈틀거렸고, 출렁이며 반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으앗!”
투란은 거의 충돌할 듯한 암반을 보며 짧은 비명을 토했다.
바로 투란의 몸이 뒤집어지듯이 날려졌고, 암반 위에 떨어지며 굴렀다.
그 순간에 뿔수리는 두 날개를 펄럭이면서, 발톱이 암반을 살짝 긁는 듯이 스치는 순간에 바람의 역류(逆流)를 타는 듯이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두 날개가 민첩하고 힘차게 움직이며, 두 눈은 번뜩거리는 총명(聰明)을 담은 채로!
끼이이!
아까 투란이 들었던 것과는 다른, 뭔지 기쁘고 놀란 듯한 뿔수리의 울음이 암반에 메아리쳐지며 멀어져 갔다.
“후아…….”
등이 닿은 바위에 그냥 기대면서 투란은 멀어져 가는 뿔수리를 잠깐 지켜봤다.
애초에 저 녀석을 사냥해서 잡아먹을 생각은 아니었고, 뿔수리는 거의 마수에 가까울지는 몰라도 몬스터는 아니므로 그냥 배웅하는 기분이 더 강했다. 그리고 이제 투란은 확인해야 했다.
‘아르고누스, 뿔수리의 눈이야.’
굳이 차분하게 생각하며 염원할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눈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갈망이 ‘투란-아르고누스’의 안쪽 깊은 곳에서 격하게 흘러나왔고 순식간에 뿔수리의 눈을 ‘획득’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투란은 놀라 흠칫해야 했다.
‘어?’
아르고누스는 원래 시커먼 잉크를 통해 눈을 파악하는 순간, ‘획득’이 완료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데 지금은 투란의 의지가 개입한 탓에 이 ‘획득’을 늦추며 참고 있던 낌새가 역력하게 튀어나온 것이다.
‘아, 이런…….’
투란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따로 이름 붙여져 있기에 분리한 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투란의 생각에 영향을 받아 아르고누스는 자신의 기능을 분리해서 움직였다.
한데 이 녀석은 원래 세 부분이 하나인 존재…….
크리스털 껍질로 자신을 감싸고, 시커먼 잉크로 활동하며, 그 심장이고 머리가 되는 핵을 지닌 몬스터가 바로 이 아르고누스였다. 지금은 어딘가 약간 망가져서 투란이 겪은 그 능력이 나오지 않는…….
투란은 숨을 고르며 집중했다.
뿔수리의 눈, 방금 획득한 새로운 눈알에 대해 아르고누스가 느끼고 기억하는 방법을 몬스터 로드로서 더듬으며 깨우쳐야 했다. 한데…….
‘온통, 만지작만지작! 이게 뭔!’
촉각의 연쇄를 느끼면서 투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고누스는 분명히 뿔수리의 눈을 기억하지만, 그 감각은 오직 정교한 촉각뿐이었다. 맛이라든가, 색채 따위의 다른 감각을 통한 기억은 저 멀리 팽개쳐버리고 없다! 투란이 손으로 뿔수리의 눈을 덮었을 때랑, 완전히 똑같다!
오싹함이 바로 투란을 찾아왔다.
“그, 그런 거냐?”
깨달음은 금방 오싹함의 뒤를 이어 투란의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뿔수리의 눈에 대한, 오롯하게 촉각으로 이뤄진 기억을 더듬으면서 투란은 먼저 끌어냈던 리저드의 눈알에 대한 기억을 나란히 할 수 있었고, 거기에 뒤이어 덧씌워진 것은 투란 자신의 기억, 투란이 아르고누스의 감각과 별개로 보고 느낀 것이었다.
―이상하군. 어째서 이전에 포획한 눈에 대한 정보가 반응하지 않는 거지? 투란, 뭘 알아낸 거야?
드라고니아가 슬슬 호기심과 의문을 참을 수 없는 듯이 물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몸을 축 늘어뜨리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없……어.”
―없어? 뭐가 없다는 거냐?
“그 눈알들에 대해, 다 잊었어.”
―뭐?
“저 검은 잉크에 눈알들이 새겨져 있기는 한데…… 그런데 그게 뭔지…… 다 지워졌어. 잊어버렸다고…….”
자신을 향해 넋두리하듯, 투란은 구슬프게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방금 깨달은 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