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5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53)
‘무슨 말이야, 알이라니?’
―저 마크를 띄운 채로 햇빛을 흡수해서 완전한 타원체의 형상으로 자라난다. 보이는 것도 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알이다. 그 알에서 소울테이커는 자신이 기억하는 사냥감의 형상을 다시 만들어낸다. 영혼의 포식이 끝나지 않았다면, 그 형상에 다시 영혼이 깃들고…… 부활하는 셈이 되지. 그렇게 해서 소울테이커는 다시 영혼을 찢어 삼키는 거야.
드라고니아의 설명을 들으면서, 투란은 가만히 나무둥치에 걸쳐져 있는 꼬리의 파편을 바라봤다.
‘그럼, 이 조각들이 다시 뭉치거나 하는 게 아닌 거야?’
―아무래도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모양이다. 절반 이상, 드레이크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였으니까. 부서진 다른 형상을 봐도, 피를 흘리거나 껍질, 비늘 모양이라든가 뼈가 남아 있지 않아. 즉, 이 녀석이 드레이크의 영혼을 포식한 것은 꽤 된 일이다. 그리고 그 뒤로 다른 영혼에는 닿지 않았다는 뜻이지.
‘괴상하네. 이 덩치가 마음에 든다는 건가…… 윙거에게 들러붙지 않다니.’
―나름대로 미식가(美食家)인 놈이라, 사냥감을 상당히 따진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지 않아.
‘음? 그러고 보니…… 윙거는 그냥 으깨 먹었잖아? 그건 영혼을 먹는 게 아닌 거야?’
―그건 그저 형상을 유지하기 위한 흡수였다. 뭐, 통상적인 측면에서는 먹는다는 말도 맞겠군. 하지만 소울테이커에게는 의미 없지.
‘애매하네. 영혼도 먹고 고기도 먹는다는 것 같은데?’
―그런가?
드라고니아가 주춤하면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처럼 대꾸하고 있었다.
살짝 쓴웃음 지으며 투란이 묻는다.
‘그래서, 아무튼 이 무늬를 어떻게 하면 소울테이커가 죽어? 없어지는 거야?’
―아니…… 이 녀석은 죽지 않아. 이 무늬를 없애면, 이 주변의 다른 돌 어딘가에 새로 나타날 거다. 자리를 옮기는 거지. 어차피 소울테이커의 힘으로 구성된 물질이라서, 녀석은 자신의 중심이 되는 핵(核)을 전이할 수가 있거든.
‘뭐야, 그게. 그럼, 이대로 어떻게 해야 하는데?’
투란이 툴툴대는 말투로 소리 없이 물었다.
잠깐 드라고니아의 침묵이 느껴졌다.
뭔가 망설이는 듯한 침묵이었다.
투란은 기다렸다.
돌가루 위에 그려진 무늬, 소울테이커의 마크는 장난삼아 아이들이 그리는 동그라미, 결국 끝이 닿지 못해서 완전한 원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생겼다. 하지만 이것이 영혼을 잡아먹는 놈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형상이라니…… 뭔가 실감 나지를 않았다. 거대한 바위를 움직이는 꼴조차도 상상이 되지 않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왜 이놈은 바위를 깎아 만든 듯한 꼴이 되어 있었던 걸까?
소울테이커에 대해서 투란은 이모저모로 생각해봤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드라고니아의 설명이 없었다면, 이걸 그저 돌 괴물 중의 하나로 보고 넘어갔을 것이다.
―투란…….
침묵을 깬 드라고니아의 부름이 나왔다.
‘응, 말해.’
―소울테이커는 몬스터다. 너는…… 몬스터 로드이고.
‘어, 그렇지.’
투란은 미묘하게 표정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제안하려는 것이 뭔가 분명히 느껴졌으므로.
―삼켜서, 없애라.
과연, 드라고니아는 돌려 말하지 않고 대놓고 권하고 있었다.
잠시 한숨을 참으면서 투란은 되묻는다.
‘혹시 유령이라든가, 망령 같은 거 삼킨 몬스터 로드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 난 없거든.’
―언데드를 삼킨 몬스터 로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들어본 거냐!’
흠칫하는 태도로 투란은 바로 다시 물어야 했다.
투란이 만나고 들었던 몬스터 로드 중에서 유령이라든가 망령 따위에 겁먹는 모습을 보인 이는 간혹 있었다. 실제로 만나서 겁먹는 게 아니라, 그런 괴담을 아주 싫어하는 경우였다. 몬스터랑은 싸워도 유령이나 망령 같은 거는 질색하는 경우이기도 했다. 뭔가 이상해 보였지만, 그런 이들을 통해서 투란은 몬스터 로드에게도 유령이나 망령은 낯설구나 싶었다. 그리고 유령이나 망령을 삼킨 몬스터 로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아무래도 유령이나 망령은 몬스터가 아니거나, 몬스터 엠블럼의 영역에서 벗어난 걸로 여겼는데…….
투란으로서는 소울테이커가 영혼을 잡아먹는다면, 역시 유령이라든가 망령 같은 놈이 아닐까 싶었다. 괴담에서 흔히 나오는 이야기가 그 모양이었으니까! 그러니 당연히 몬스터 로드가 아니라 사제들이 나설 상황이 아닌가 했다.
한데 드라고니아는 이를 ‘언데드’라 칭하면서 몬스터 로드가 이런 놈들을 상대하는 일에 대해 들은 듯하다?
‘자세히 좀 말해줘. 몬스터 로드가 유령, 망령 따위를 삼키거나 한다고?’
―흠…… 왜 모르는 건지 모르겠군. 너에게는 낯선 이야기인가…… 어쨌든 말해보자면, 몬스터 로드 중에서도 해골의 문장, 그 타입의 몬스터 엠블럼을 지닌 이들이 주로 언데드를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고 하더군. 물론 그런 특성을 지녔다고 해도 몬스터 엠블럼으로서의 기능은 모두 갖췄고…… 굳이 해골의 문장이 아니더라도 유령, 망령이라든가 구울, 뱀파이어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이 몬스터 엠블럼이라 했다. 모두 혼돈의 파편을 품은 채로, 섭리의 경계에서 어긋난 것들이니까.
‘해골의 문장? 그런 게 있어?’
투란은 뒷부분의 설명보다, 해골의 문장이란 부분부터가 마음에 걸렸다.
천칭과 매의 문장, 그것이 투란이 직접 본 몬스터 엠블럼의 두 종류였고…… 굳이 말로만 들은 다른 것을 따져본다고 하면 거미의 문장이란 것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거미의 문장이란 몬스터 엠블럼이 유명한 까닭은 옛날에 제국에서 찾아온 유명한 몬스터 로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거미의 문장을 품은 채로 산맥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는 것이 알려진 셈이었다.
하지만 해골의 문장이라니…… 투란에게는 굉장히 낯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드라고니아는 이렇게 신기해하는 투란의 생각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투란, 대체 알고 있는 몬스터 엠블럼이 몇 가지냐?
바로 묻는 말에 어정쩡하니 투란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드라고니아를 향해 웃음 짓는 시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에…… 세 가지? 그 정도라고 알고 있었는데…… 몇 가지나 더 있는데?’
순간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깊이 한숨을 쉬는 듯한 기척을 느꼈다.
아무래도 투란이 너무 아는 게 없다고 한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음에 투란의 뇌리에 스며드는 소리는 담담했고, 침착한 설명이었다.
―우선 그림투아란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니까, 거기 나오는 용의 문장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테고, 천칭의 문장은 품고 있고…… 키린도 만났으니 매의 문장도 알 테고…… 방금 내가 말했으니 해골의 문장도 이제 들어본 셈이고…… 후우, 그냥 드라코눔에 기록된 것만 읊어줄 테니 일단 들어봐. 뱀, 거미, 사자, 늑대, 매와 천칭의 문장이 전반적으로 춤추는 산맥과 산맥에 맞닿은 지역 주변에 많다.
‘헐? 뱀, 사자, 늑대? 해골처럼 들어본 적 없다고! 그림투아란에게 용의 문장이라니, 그것도 처음 들어! 드래곤 로드라고 하더니, 문장도 특별했어?’
―젠장.
드라고니아는 끊어진 설명을 잇기보다는 짜증을 터뜨리고 말았다.
투란도 멋쩍어서 더 묻기보다는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한데 그러면서 잠시 앉은 채로 내려다보니, 소울테이커의 마크란 것이 조금 두꺼워지는 듯한 느낌이 찾아왔다.
‘이거, 정말 변하는데?’
과연 이대로 이 녀석이 다시 형체를 갖추면 어찌 될 것인가?
투란은 지금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이 녀석의 부활인지 하는 능력이 투란에게는 별로 탐나는 것이 아니란 점이었고…… 카프리곤에 의해 박살난 이 꼴을 보니, 그냥 카프리곤을 쫓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드라고니아는 이 소울테이커가 세계에 위험하다고 없애주기를 바란다.
이럴 때, 키린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투란이 문득 되새겨보니, 키린은 드라고니아에 대해서는 목록에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다. 삼킨 몬스터에 대해서 가능한 한 숨기라는 말과 ‘악마의 심장’은 특별히 더 감춰야 한다는 부분은 있었지만!
과연 키린은 투란이 이렇게 드라고니아에게 이것저것 묻는 상황에 대해서,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이것저것 원하는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생각은 했어도 몽땅 투란에게 맡긴 것일까?
갈팡질팡하는 생각 속에서 투란은 소울테이커의 마크, 무늬가 조금씩 그 중심을 치솟게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굉장히 느리기는 했지만, 달팽이 기어가는 것처럼 느렸지만 분명하게 드라고니아의 말대로 이 녀석은 지금 알을 만들고 있었다.
‘여기다 그냥 플레임 버스터를 뿜어버려?’
드레이크였다면 그렇게 하고 시원하게 날아올랐을 것이다.
혹시 다시 만나는 경우라 생기면, 포톤 거스트를 뿜어 날려버리려 할 테고…….
피식, 돌연 투란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한 가지 생각이 또렷하게 투란의 마음속에 피어오른 탓이었다.
‘대체 뭘 고민하고 있는 거지? 뭘 주저하고 있지?’
드레이크는 낯짝이 돌이 박힌 이상한 동족을 봤다. 물론 드레이크에게는 동족이라고 서로 반가워하면서 인사하는 습성 따위는 없다. 자기 영역을 침범한 약탈자인데, 자기랑 닮았구나 싶은 정도가 동족을 대하는 자세일 뿐이다. 그러므로 가볍게 여기는 내가 주인이다라는 신호로서 플레임 버스터를 날린 것이 인사였을 터였다. 동족에게 그 정도는 거의 통하지 않을 테니 본격적으로 한판 붙을 준비도 하면서…….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소울테이커에게 붙들린 드레이크는 달아났다.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
이곳은 투란의 드레이크가 알을 품고 저 늪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머물던 곳이고, 차지하고 있던 영역과는 거리가 있었다. 소울테이커의 드레이크는 이 언저리를 배회하다가 결국 빈 곳에 들어온 셈이고…….
‘드레이크에게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지. 그럼, 나는 지금 몬스터 로드라서 고민하나? 아니, 그것도 아니지.’
몬스터 로드로서 투란이 생각했다면, 드라고니아의 제안이 나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그러지 뭐.’라고 하며 일단 삼켰을 것이다. 어떤 능력인가는 나중에 보든가 말든가 하더라도, 몬스터를 삼키면 삼킬수록 지우면 지울수록 역량이 증가한다 했으니까.
하지만 투란은 이게 영혼을 삼키는 괴물이라면 유령이나 망령 같은 놈이 아닐까 하는 걱정부터 했다. 어설픈 몬스터 로드, 자신이 몸에 새긴 문장을 잊은 채로 인간으로서만 고민하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생각하라…… 키린이 한 말을 지키고 있었나?’
잠시 투란은 갸웃했다.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조금 전의 고민하는 과정, 이를 깨닫는 과정은 모두 키린이 오러를 통해 각인해놓은 목록을 따르는 듯했다. 이 또한 키린의 기묘한 영향력일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갑자기 조용한 말투로 물어왔다.
‘응? 아,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악마의 심장’이 가슴속에서 뛰는 지금,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들키지 않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오러를 이용해 강화된 감각조차도 드라고니아와 공유하는 중이었지만, 몬스터 엠블럼으로 형성한 몬스터의 감각은 드라고니아에게 여전히 들키지 않는다.
새삼 웃음을 머금으며, 투란은 간단히 결정하기로 했다.
‘몬스터 엠블럼, 내 천칭의 문장은 나의 영혼은 지켜줄 거야. 하지만…… 어쩌면 이 소울테이커가 발작해서 너를 잡아먹으려 할지도 몰라. 드레이크를 잡아먹은 놈이니까, 소울테이커 중에서는 아주 특별한 놈일 수도 있고! 조심해! 하핫.’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리고 한 가지 착각을 했군. 소울테이커는, 하나뿐이다. 유니크 몬스터야, 이 녀석은…….
‘뭐? 드라코눔에서도 피해자가 나왔었다며? 그때 잡지 못했어?’
오직 하나뿐인 몬스터라면, 그때 잡아서 지금 여기 이러고 뒹굴고 있을 일이 없어야 하지 않나? 투란에게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잡기야 잡았지. 하지만 이 녀석은 한곳에서 잡혀 소멸당할 것 같으면, 멀리 떨어진 곳에 놔둔 자신의 여분(餘分)을 향해 옮겨간다. 그것도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
‘그렇다면, 내가 삼키려 해도 이놈이 딴 데 도망갈 수 있나?’
―몬스터 엠블럼에 잡히면, 그걸로 끝이다. 옛날에도 이렇게 여러 곳에 몸을 둔 채로 영체(靈體)을 이용해 전이(轉移)하는 몬스터가 꽤 있었다. 몬스터 로드가 한곳에서 영체를 움켜잡으면, 그 여러 곳의 몸이 모두 쓸모없게 되더군.
‘그래서 권한 거냐? 흐흠…….’
투란은 짙게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바로 투란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먼저 소울테이커의 마크 주변을 싹 비워서, 아예 그 위로 자신이 엎어질 공간을 만들어냈고 주위를 살피면서 고요함을 확인했다. 카프리곤과 거대한 반쪽 드레이크의 석상(石像)이 난리를 피워준 탓에 하루가 지났음에도 이 주변으로는 짐승이나 비비나비 따위가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작은 벌레의 움직임이 살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 벌레들도 딱히 고기를 먹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놈들은 아닌 듯했다.
‘자, 그러면…… 시작해볼까.’
투란은 가슴에 손을 올렸고, 핏빛 톱니고리를 받아냈다.
핏빛의 작은 고리는 곧장 소울테이커의 마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돌가루가 작게 고인 듯한 모양으로 그려진 동그라미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떨어지면 떨어지는 것이고, 스쳐 가면 스쳐 가는 것이라는 듯…….
하지만 천칭이 낳은 핏빛 톱니고리는 왕성하게 돌기 시작했다.
여기 몬스터가 있다고, 몬스터의 정수를 확인한 문장의 힘이 발휘되고 있었다.
투란은 그 위로 엎어지면서 가슴에 드러난 문장을 핏빛 톱니고리에 붙이며 덧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