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7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67)
폭발, 격돌…… 파괴의 굉음은 얼마 동안 이어졌다.
휘말린 바위가 으깨져 나갔고, 돌무더기가 날아다녔다.
어둠에 흩어진 희미한 빛의 여운 속으로 먼지구름이 피어났고, 격한 폭음과 함께 몰아닥친 바람결에 사방으로 휘날리며 흩어졌다. 자욱한 티끌 안개가 여린 빛 속을 채우며 파괴를 피해 달아나는 듯이 보였다.
이윽고…….
한동안 지하 공동을 멀리, 넓게 울리던 파괴와 폭발을 알리는 격렬한 소음이 멎어들었다. 더 이상 부술 게 없어졌든가, 소란의 주역들이 움직임을 멈췄든가! 정적은 잔잔하게 흘러 다니는 메아리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느릿하게 찾아왔다.
하아―.
거뭇하지만 티끌이 가라앉으며 덮은 탓에 색이 바랜 듯한 뿔 아래로 거친 오우거의 숨결이 토해져 나왔다. 살며시 맴돌며 거의 가라앉아가는 먼지 속에서도 오우거의 어깨와 팔, 등과 허리에 덮인 잉크의 소용돌이무늬는 짙고 검었다. 그 검은 바탕 속에서 무늬를 따라 기묘한 불씨가 발갛게 번져 나오는 듯한 모양이었고…….
크륵.
부서진 돌쩌귀처럼, 네 쌍의 다리가 으깨지고 부러진 채로 반쯤 뭉개진 머리로 돌덩이가 꿈틀거렸다. 울퉁불퉁한 돌을 가죽처럼 온몸에 잔뜩 둘렀던 거미의 형상이 이제는 돌무더기 속에 섞여 원래의 모습을 짐작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오우거의 발아래로 번져 가는 시커먼 잉크는 그런 돌거미의 파편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넓게 퍼졌다. 오우거의 목 아래, 가슴 위편으로 작은 핏빛 고리가 점처럼 피어났고 시커먼 잉크가 이에 호응하듯 곧바로 핏빛 점을 머금은 채로 주변을 물들여갔다.
돌거미의 잔해가 움찔거리는 듯했고, 낮고 가냘픈 괴물의 으르렁거림이 흐릿하니 흘러나왔다. 이에 대꾸하듯 오우거의 입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포기할 줄 모르는 거냐? 그건…… 마음에 드네. 나도 포기하는 거 아주 싫어하거든. 잘 지내보자고.”
―그냥 마지막으로 한번 꿈틀해 보는 것 같은데? 포기고 뭐고 생각할 여유가 있어 보이는 상태가 아니잖아!
투덜거리는 드라고니아의 잔소리는 오우거의 입가를 살짝 뒤틀면서 괴상한 웃음을 짓게 했다.
‘원래 이렇게 해 놓고 삼키는 거라고.’
―투란, 굳이 블랙 애쉬를 그런 식으로 유도해서 써야 했나? 폭파 계열의 주문이라면 이래저래 많잖아! 누가 너 이러는 꼴을 보면…… 아무리 시크릿 키퍼라 해도 너에 대해 불안해하다가 경계하고 의심을 품을 수 있다. 이건 보여서는 안 되는 위험한 짓이라고.
여전히 잔소리였지만 이번에는 꽤 심각하고 진지한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적당히 둘러댈 수 있어. 그치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 없을걸. 돌거미 녀석의 성벽 안에서 벌어진 일을 밖에서 마법으로 탐지할 수가 없으니까. 우리 프로브로도 싸우는 동안 제대로 뭘 알아낼 수가 없었잖아.’
―홀시딘은 로열 가든의 징표를 통해 네 상태를 엿볼 수가 있잖아.
‘그것도 그렇게 자세한 상황파악은 아니었어. 몰튼노트 때 확인했잖아. 내가 어디에 있는가, 살아 있는가, 크게 다쳤는가. 대강 상태를 엿보는 정도였다고. 그러니까 지금 홀시딘은 기다리는 중이라고. 저기 저 녀석처럼…….’
―저 녀석?
무쇠뿔 오우거가 무릎을 접으면서 엉덩방아라도 찧듯이 주저앉는다.
돌거미와의 격전 속에 이동해 온 거리는 꽤 되었고, 무너지고 파괴된 흔적이 가득한 주변과 함께 앞쪽으로 넓은 공동(空洞)이 땅속의 평원이라도 이룰 듯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천장 쪽에서 어떻게 흘러드는가 알 수 없는 선명한 빛줄기가 기울어진 기둥처럼 뿜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빛에 밝혀지지 않은 부분은 이상할 정도로 짙은 그림자로 인해 마치 어둠이 도사린 듯했고…….
터어엉.
가라앉는 티끌과 정적 속에서 엉덩방아 소리가 제법 두텁게 울렸다.
그리고 바로 오우거의 손에 잡힌 돌…… 웬만한 사람 몸통만 한 바위가 공동의 한복판, 빛의 기둥 사이에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어두운 곳을 향해 날아갔다. 주변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뭉쳐진 듯, 빛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그곳까지 아무것도 없었지만 바위는 도달하지 못했다.
날아가며 바위가 잘게 부서졌고, 빛줄기 사이로 티끌이 되어 사라질 뿐이었다.
‘툭탁거리는 사이에 온 것 같지? 거미 두목님 기다리는 곳으로 말이야. 그런데 여기 탐지하고 있지 않았어? 저거 정체가 뭔가 파악했잖아?’
―그래. 분명히, 멀리서 우는 소리를 쫓아 이 언저리를 탐지했지. 하지만 지금은 전혀 걸리는 게 없다. 여긴 마치, 그냥 두꺼운 암벽 속이라도 되는 것처럼 뭔가로 잔뜩 채워진 반응만 있어.
‘흠, 확실히 채워져 있기는 하잖아. 바위도 갈아 티끌로 만드는 그물. 전혀 보이지는 않지만…… 효과는 확실하지? 어디, 한번 더 볼까?’
소리 없이 말하면서 동시에 투란은 오우거의 손에 잡힌 돌―바위 하나를 더 내던졌다. 가벼운 손놀림이었지만, 오우거의 손이 발휘하는 괴력은 덩치 작은 사람 크기의 바위를 투석기에서 쏘아 내듯이 날려보내고 있었다.
바위는 다시 어두운 곳에 닿지 못하고 먼지 구름, 티끌 안개처럼 부서져 흩어졌다.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을 타고 사라져 버린 것처럼.
―어쩔 거냐? 저렇게 바로 앞에서 눈을 가리고 소리도 지우고, 마법 탐지도 봉쇄하는 채로 돌을 갈아 버리는 거미그물 속으로 뛰어들래?
‘미쳤어? 한바탕 엎어야지! 이건 예상한 거잖아?’
―그렇군. 그럼, 홀시딘에게 신호를 보내야겠군.
‘어디 보자…… 음, 좌표 지정? 그거 좀 잘 잡히게 해 줘.’
다시 짙은 숨을 토해 내면서, 오우거의 형상을 치우며 바닥에 펼쳐진 시커먼 잉크가 늪처럼 주변의 돌 부스러기를 가라앉히면서 드러난 땅을 투란은 사람의 손으로 짚었다. 낮은 부름이 곧이어 투란의 입에서 새어 나온다.
“테라트, 알려라.”
땅이 살짝 꿈틀했고, 도톰하니 볼록해졌다가 푹 꺼졌다.
그리고 또 다른 뭔가가 이 목소리에 반응한 듯 투란의 주변으로 느릿하니 바람결이 짙게 몰아닥쳐 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 바람결은 투란 몸에 닿지 못했다. 비슷하게 투란의 몸에서 피어난 여린 회오리가 막아선 때문이었다.
“내가 며칠을 너네랑 싸웠는데! 방금 전에도 실컷 겪었거든! 아니, 나도 이제 몸 주변에 은닉 그물 정도는 펼칠 줄 아는 처지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그런 수작은 통하지 않아! 자, 그럼―!”
히히거리는 소리로 떠들던 투란은 푹 꺼졌던 땅의 작은 조각이 불쑥 튀어 올라 조그마한 손 모양으로 변하는 광경을 보고 말을 멈추며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그리고 바로, 엄지를 세운 그 작은 손을 맞잡으며 힘차게 외친다.
“아레나!”
마력(魔力)을 싣고, 약속된 한마디가 포효처럼 터져 울려 퍼졌다.
넓은 공동의 천장을 이루던 지반이 산산조각 났다.
지반 붕괴(地盤崩壞)와 함께, 빛줄기가 흔들렸고 어두운 곳에서 사나운 으르렁거림이 터지는 듯했지만…… 느리게 이어진 굉음(轟音)이 모든 소리를 삼키면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쿠르르, 콰아앙!
땅울림과 함께 퍼진 지진(地震)은 쟈카라 산림의 한구석을 완전히 주저앉히는 듯했다. 잠깐 이어진 지진의 끝을 마무리 짓는 듯, 무너진 지반에 최후의 일격처럼 내리꽂힌 것은 높이 날아 떨어져 내린 원추형의 기둥이었다. 양끝이 모두 원추형이었고, 길쭉한 돌상자 하나가 옆에 매달린 듯한 기둥이 멀리서 날아와 무너져 내리는 지반의 한쪽 끝을 찍어 누른 셈이었다.
그리고 그 반응인 것처럼, 무너진 지반의 윤곽이라도 잡겠다는 듯이 네 개의 기둥이 멀찍이서 치솟았다. 내리꽂힌 원추형의 기둥이 기울어지고, 원형의 기둥 넷이 솟아올라 비스듬히 기울어지며 붕괴된 지형은 분명한 경계선을 지닌 꼴이 되었다. 오각형, 혹은 원형의 거대한 분지가 산림 한복판에 나타난 것처럼!
홀시딘이 원추형에 매달린 작은 상자, 그 상단에 파인 틈새같은 곳에 버티고 선 채로 외치고 있었으니…….
“투란, 아레나가 완성되었다! 괜찮은 거냐!”
더 이상 허공에 뜬 모습이 아닌 채로, 한 손에 쥐고 있는 그릇…… 물이 한잔 정도 채워져 있고, 그 위로 불꽃이 둥실거리며 바람에 받쳐진 것처럼 떠 있는 괴상한 흙의 그릇을 향해 말하는 모습이었다.
―어, 괜찮아요. 곧 올라가요.
먼 곳의 메아리처럼 투란의 목소리가 그릇을 통해 울려 나왔다.
홀시딘은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안도하는 낮은 한숨을 토했고, 눈길을 붕괴된 지반이 만들어 낸 폐허에 둔 채로 말한다.
“그럼, 계속해서…… 부탁한다. 이 아레나에서 끝장을 내줘. 거의 한 달에 걸친 상아탑의 대마법이다. 아깝지 않게 해다오.”
―놓칠 수는 없죠. 아, 다 올라왔다.
다시 투란의 목소리가 아련한 메아리처럼 울렸고, 홀시딘은 폐허 한 곳을 향해 눈길을 보냈다. 희미하게 손목을 울려 주는 시크릿 키퍼의 마법으로 파악한 곳에 아주 쬐그맣게 투란의 모습이 보였다. 흙을 외투처럼, 알처럼 두른 채로 무너져 내리는 지반을 뚫고 올라서 있었다.
홀시딘의 눈길은 곧 옮겨져서 또 다른 곳을 향했다.
투란처럼 지반을 뚫고 온 듯한, 혹은 그냥 헤치고 올라선 듯한 뭔가가 폐허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투란과 한 오십여 미터의 거리를 둔 채로.
“저놈인가…….”
홀시딘은 문득 거미 군단이 처음 출현했던 때가 거의 사백여 년 가깝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거미 군단의 근원인 몬스터를 바라봤다.
멀었지만, 햇살 아래 드러난 그 모습은…….
검은 돌을 조각해 만든 듯한 사자의 머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 머리의 양쪽으로 길게 두 팔을 내밀 듯이 뻗어낸 한 쌍의 다리는 촉각인 듯 움직였고, 두 번째 다리 한 쌍은 거칠게 땅을 찍으면서 큰 꼬챙이 같은 끝을 자랑했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사자의 입에서 새어 나온 이빨은 거미라기보다는 짐승의 송곳니가 길게 돋아난 듯했다.
그 몸통의 앞쪽은 맹수의 형상을, 뒤쪽은 두툼하고 거대한 거미의 형상을 갖췄고 몸 아래를 받쳐 주는 길쭉한 타원형의 방패 같은 껍질이 바닥을 거칠게 내리눌러 다듬고 있었다. 빙글거리며 도는 와중에 어느 틈엔가 편히 배를 깔고 누울 자리라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금자리가 파묻히고, 익숙하지 않은 지상(地上)으로 올라선 것이 몹시 불쾌하다는 듯이 으르렁거림이 이어졌다.
그런 아라크레온을 향해, 투란은 느긋하게 다가갔다.
한 팔을 빙빙 돌리는 시늉을 하며 어깨가 결리는 것을 푼다는 듯이 검게 물든 발을 한 걸음씩 떼면서, 점점이 흐르는 잉크의 발자국을 시커멓게 찍으면서! 그런 투란의 뇌리로 바로 드라고니아의 잔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너무 무방비…….
하지만 말을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다.
잔뜩 성난 듯, 시커멓고 단단한 돌의 조각상처럼 보이던 사자의 머리가 격노한 표정을 또렷하게 품었고 곧바로 이 표정이 이를 가는 것처럼 부드럽게 변해 보였다 싶은 순간이었다.
투란은 검은 사자가 입을 열고 새파란 광휘(光輝)를 격하게 토해 내는 것을 봤고, 뭔가 온몸을 축축하게 적신다 싶은 순간에 끔찍한 화염이 새파랗게 주변을 채우며 스며오는 것을 느껴 알아야 했다.
화아, 콰아아아―!
―새파랗게 물든 자리에서 시커먼 연기가 맺혔고, 회색의 무늬를 띤 채로 구름의 성채처럼 치솟았다.
새파란 광휘가 맴도는 주변에서 나무의 잔해는 한순간에 재가 되어 흩어졌고, 땅이 그대로 벌겋게 변하며 안팎으로 흩어졌던 암석류는 크기에 관계없이 녹아 흘렀다. 격한 광휘에 의해 패여 나간 자리, 닿은 것을 불태우거나 녹이지 않고 그대로 증발(蒸發)시켜 생겨난 구덩이를 향해!
“……투, 투란?”
홀시딘은 당황해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중얼거렸다.
초열(焦熱)의 집중(集中), 마법사로서 불꽃의 주문을 연구하면서 홀시딘이 간혹 본 적이 있었다. 통상적인 용융점(鎔融點)을 무시하고, 곧바로 풍화(風化)시켜 버리는 격렬하면서도 강렬한 불길의 집중이었다.
괴물 혹은 마수인 거미가, 거미 군단이 지금까지 보인 적이 없던 일격(一擊)이었다.
마력(魔力)도, 몬스터가 지닌 존재의 격렬한 뒤틀림도 없는 순수한 불길의 집중이 단숨에 투란을…… 그 주변의 모든 물질(物質)과 현상(現象)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 여파로 인해 주변이 녹아들게 할 정도의 맹렬한 저 불길은 아주 순수한 연소(燃燒)의 결과였다.
홀시딘이 헬플레임의 마법을 사용할 때처럼, 어느 정도 집중된 마력의 낌새를 보인다든가 미리 준비된 뭔가를 통해 전조(前兆)를 보이거나 하지 않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무너진 땅을 뚫고 올라와 어딘가 지친 것처럼, 아직 사람의 모습이 대부분이었던 투란이 저것을 버틸 방법이 있었을까?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미리 갖추고 있었다 해도, 저 불길의 집중은 마그마고 뭐고 상관없이 증발시킬 참이었는데!
홀시딘으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끔찍한 결과가 저절로 눈에 보이는 듯했고, 몸을 가누기는커녕 머리까지 혼미해져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모습이 사라진 투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