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8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81)
Chapter 117. 엘데인의 어느 날
‘으하, 잠이 모자라! 더 자야 하는데…….’
징징거리는 하품과 함께 투란이 소리 없이 웅얼거렸다.
―하루도 되지 않아 다시 문장을 전환해서 그렇잖아. 그 정도 잤으면 꽤 회복된 상태여야 하는데…… 회복한 만큼 소모한 꼴이 되어서 그렇지. 뭐 하러 그리 서둘렀냐고.
‘불안하잖아. 민감한 헌터들 잔뜩 있다고. 마법의 기척이라든가 분위기가 조금만 이상해도 사람으로 위장한 몬스터 아닌가 의심할 테니까.
투덜거리듯이 변명하면서 투란은 경계도시 엘데인을 바라봤다.
라비엔보다는 안전하다고 하지만, 요즘 며칠 동안은 라비엔보다 더 불안했던 성채가 몇 걸음 앞이었다. 햇살의 파편이 저 멀리서 서서히 지상을 굽어보기 위해 치솟을 때이기도 했다.
덕분에 성채는 마치 어둠이 그대로 벽을 쌓고 서 있는 듯한 광경을 새벽의 여명(黎明) 속에 드러낸 채였다. 해가 뜬다 해도 이 어둠은 우뚝 선 채로 당당하게 빛의 세계를 무시하고 버틸 듯이 보였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장막 주문이야.
드라고니아는 마법의 위용에 새삼 감탄했다.
‘그래? 보고 흉내는 못 낸다는 소리구나.’
―그래, 상아탑 그랜드 마스터가 가볍게 만들었다는 말이 있었지만 역시 바로 간파해서 모방할 정도로 쉽지는 않다.
‘뭐, 나중에 마스터 홀시딘을 살살 달래서 물어보면 모방할 정도의 얘기는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건 나중이고…….’
투란은 그 어둠 앞에 바싹 붙어서 손을 내밀었다.
표정은 졸음을 피로로 꾸미고, 지친 기색을 띠듯이 혀를 살짝 내민 채로.
로열 가든의 징표가 투란의 손에서 반짝였다.
마법 배낭, 블랙레온이 어둠 속에서 금빛을 띤 채로 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열을 세며 기다렸지만 어둠은 그저 어둠일 뿐이었다.
내민 혀를 날름하면서 투란은 일단 옷과 장비를 다시 챙겨 두르기 시작했다.
잠든 모습으로 두고 왔던 더미(Dummy)와 같은 차림새로 맞추는 사이, 어둠 속에서 새로운 금빛이 찰랑이며 피어났다. 이번 금빛은 안개처럼 엉기며 맴돌다가 홀시딘의 모습을 갖췄다. 금빛 안개가 바로 말을 토해 낸다.
“조금 늦었다. 이쪽 일이 좀 있어서…… 그래, 어떻게 되었지?”
“정리했어요. 뒤탈은 없을 거예요.”
투란이 목덜미를 잡고 고개를 돌리면서 피곤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면서 대답했다. 이에 홀시딘이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뒤탈이 없다면……? 계승도 제대로 막았어?”
몸짓으로는 투란의 말을 긍정하면서도 한번 더 신중하게 확인하는 물음이었다.
조금 심드렁하니 투란이 고개를 끄덕하면서 대답한다.
“네, 계승할 녀석 따위는 아예 남겨 두질 않았으니까…… 상속이니 뭐니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뭐, 여기 없는 녀석이 아주 먼 곳에서 따로 상속이니 계승이니 하면 몰라도 말이죠.”
나름대로 자세히 설명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홀시딘은 자세히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아예 남겨 두질 않아?”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놀란 기분을 억지로 누른 듯한 목소리로 홀시딘이 다시 묻고 있었다. 투란은 그 모습을 의아해하며 다시 대답한다.
“남은 게 없으면 안 생길 거 아녜요? 간단하잖아요?”
홀시딘은 투란이 자신이 뭘 묻는가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간단하긴 하지…… 그런데 로드 오브 몬스터가 거느린 몬스터 떼…… 그거 최소한 몇 킬로미터는 가득 메울 정도였잖냐? 그런데 그걸……?”
드라고니아가 상세해지는 이 물음에 대해 투란의 뇌리에 재빠르게 보태는 말을 한다. 어째서 마법사가 의아해하는가를 설명하듯.
―네가 로드 오브 몬스터를 제거한 거는 당연하지만 흩어지는 몬스터 떼를 하나씩 쫓아가 사냥할 수 있었냐고 묻는 거다. 너무 많으니까, 자잘한 녀석들 중에 도망친 것이 있지 않냔 말이지! 로드 오브 몬스터를 제거하는 순간, 그 몬스터 군단은 원래 흩어져서 도망친다고. 다시 그 능력을 계승받은 상속자가 나타날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도 걸리고…….
‘음? 이런, 그런 얘기라면…….’
투란은 금빛 안개로 맺힌 홀시딘을 바라보면서 한쪽 눈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 순간 투란의 눈가에 불티를 휘날릴 듯한 숯덩이 같은 살갗이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몇 킬로고 몇 마리고…… 로드 오브 몬스터를 쥐고 흔드니까 다 덤비더라고요. 그래서 몽땅 밟아 버렸어요. 더 기간틱, 쓸 만하던데요?”
“그건…… 그렇다면 그 흔적이!”
홀시딘의 금빛 얼굴이 구겨졌다.
아무래도 투란이 ‘몰튼노트 더 기간틱’을 사냥해서 걸어오던 광경이 다시 기억난 듯한데…… 그다음에는 뒤처리에 대해서 바로 걱정하는 소리가 이어지는 것이 꽤 냉정하게 상황을 보려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이를 단칼에 자르듯이 말한다.
“애들 시켜서 정리했어요. 무지 고생했죠. 파이로도, 에어로도, 테트라도!”
스피릿 아티팩트의 이름을 줄줄이 읊는 투란을 보며 홀시딘이 ‘아!’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안도하는 듯했다. 투란은 그 모습에 살짝 심술궂은 소리를 몇 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그래도 무슨 이상한 것이 남았을 수도 있죠, 뭐…… 그건 상아탑의 마스터가 어떻게 하면 되잖겠어요? 아, 그리고 잠자는 것처럼 꾸미고 나왔는데 이거 걷어 버리기 전에 엘데인 안에, 내 잠자리에 데려다줄 수 있죠?”
“응? 그렇게 하지. 어쨌든 로드 오브 몬스터는 정리된 거라 봐야겠군. 나중에 뭐가 나오는가는 나중에 생각하자. 피곤할 테니 일단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앗, 잠깐만요! 보상금! 보상금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한참 피곤한 척하다가 투란이 돌연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갑자기 생각해 낸 듯한 꼴이 아주 역력했다.
홀시딘이 ‘에? 어…….’ 하더니 한숨과 함께 대답한다.
“제대로 적립을 해 놓지 않았다고 다들 발뺌하는데, 기어코 다 받아 낼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
“아니, 그거 말고! 로드 오브 몬스터 보상금요! 엄청 밟고 뭉개서 꽤 잡았잖아요. 이 정도면 토벌했다고 해도 좋은데, 그 보상금은 얼마나……?”
투란이 싹싹하고 재빠르게 묻는 소리는 홀시딘의 금빛 눈이 깜박거리게 했다.
투란은 홀시딘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모르겠다는 표정인 것을 보며 다시 더 물으려 했고, 그 낌새를 가로채듯 홀시딘이 먼저 말한다.
“투란, 몬스터 떼를 밟고 흔적 남기지 않았다면서?”
“에? 에엥! 아니, 흔적을 지운 흔적은 있을 테니까 계산을…….”
거의 뒤통수 맞은 표정으로 투란이 어떻게든 뭐라든 말하려 할 때, 금빛 안개가 풍성해진 듯한 표정으로 홀시딘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빠르게 말한다.
“흔적은 중요하지 않아. 투란, 이번 로드 오브 몬스터는…… 아직 보상금이 붙기 전에 토벌한 거잖아. 아무도 보상금을 걸지 않았다고. 아, 피곤하다 했지? 그럼, 일단 가서 쉬어. 더미 위치는…… 응, 알아냈다. 그럼, 쉬어!”
“자, 잠깐! 자암까아안!”
손을 내밀어 홀시딘을 잡으려던 투란은 어둠이 짙게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꼈고, 내뱉어진 목소리가 어둠 속에 메아리조차 없이 사라지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몸이 눕혀지면서 자세도 바뀌어 잠든 시늉이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왔군, 더미랑 완벽하게 겹쳐 놨어. 이제 그대로 해 뜰 때까지 자면 되겠네.
드라고니아가 상황 끝났다고 선언하듯 중얼거렸다.
어딘가 유쾌한 그 말투, 나름대로 웃음을 참는 낌새가 역력하잖은가!
투란은 입술을 꽉 깨무는 표정으로 마음 깊이 외칠 수밖에 없었다.
‘제에에엔자아아앙!’
―포기해라, 홀시딘 말이 맞긴 하잖아? 그리고 역병의 수해 너머에서 가져온 황금만 해도 부족함이 없잖아! 뭘 그리…….
‘공짜로 부려먹힌 거라고! 내가 뭘 가졌든 상관없어!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위험을 겪으면서 싸웠는데 강한 분이니까 당연하잖아요 따위 소리를 하게 두면 안 된다고! 그게 바로 몬스터 헌터를 공짜로 부려먹으려는 쓰레기들이 하는 소리얏!’
―흐흠, 원칙의 문제라는 건가. 그럼 뭐…… 일단 나중에 따져야 하잖아? 지금은 어떻게 할 일이 아니지.
‘어흐윽! 나가기 전에 미리 협상을 하고 갔어야 했는데! 어흐으! 이게 뭐냐고!’
―헛소리 그만하고 자라. 대암막이 해제되고 있다. 대암막 덕분에 가만히 있던 성채 안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괜히 징징대는 표정으로 눈에 띄지 말고, 푹 자고 일어나. 주변 상황이 정리될 때 즈음에 일어나면 깨끗하게 시침 뗄 수 있잖아.
‘크으으! 억울해! 졸리니까 더 억울해! 악몽을 꿀 것 같아.’
찌푸린 표정으로 눈을 꼭 감은 채로, 누가 얼굴 보지 못하게 잠을 설치듯이 몸을 돌려 바닥에 파묻듯이 대면서 투란은 징징거림을 소리 없이 흘렸다.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는 시늉을 했지만 더 잔소리하기는 귀찮다는 듯이 침묵하려 했다. 그래서 투란도 억울해하는 소리를 접고 말한다.
‘시침 떼기 위해 푹 잘 테니까, 쟌이랑 그 파티…… 루비 아줌마랑 일행이 이쪽으로 오나 지켜보고 있어 줘. 괜히 얼굴 마주치지 않게 미리 조심해야 한다고. 그럼, 맡긴다.’
―그러지.
드라고니아는 두말없이 승낙했다.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프로브를 여럿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쟌 일행이 아니라 엘데인의 전체를 둘러보면서 구경하려는 듯한 생각을 품은 행동이었다. 딱히 말릴 일도 아니었고 미리 정보를 수집한다는 면에서는 투란이 말해 뒀어야 할 일이기는 했다.
그래서 투란은 그냥 더 뭐라 하지 않고 잠들었고…….
높은 성벽 위에 선 사내는 키득거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꼴을 보면서 쟌이 조심스럽게 벨라딘에게 말한다.
“벨, 저 아저씨…… 역시 미친 거 아냐? 이자닌에게 말해 봐. 시커먼 벽을 보고…… 그 벽 생겼을 때부터 계속 실실대고 있었잖아. 이대로 계속 같이 가기 좀 그렇잖아. 이자닌에게 새 호위를 구해 보라고 해 봐.”
벨라딘은 쟌이 소곤거리는 말에 쓴웃음부터 지어야 했다.
엘데인의 성채를 감싸는 괴이한 어둠, 어둠 속에서 먼저 이것은 상아탑의 마법이니 괜찮다는 말이 쩌렁쩌렁 울려 나오며 얌전히 있으라 했기에 얌전히 있기는 했지만…… 성채를 에워싸면서 성채 안으로도 몇 미터 앞을 겨우 볼 정도로 뒤덮은 이 어둠은 얌전히 있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얌전히 있게 만들겠다는 위압적인 분위기도 잔뜩 띠고 있었다.
그만큼 이해할 수 없고,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험상궂은 분위기를 띤 마법이었는데…… 이자닌이 따로 고용한 믿을 만한 호위, 한 가지 주문만을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스펠 캐스터라 소개한 사내―쿨란이란 이름을 들이대는데 왠지 이건 투란이라든가 카엘이라 하는 게 지겨워서 살짝 바꾼 가명이란 느낌을 팍팍 뿌리는―는 저 마법의 어둠을 보자마자 처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제 서서히 어둠이 사라져 가는 와중에도 저 웃음은 나직하고 깊게 그 입가와 낯짝에서 사라지질 않고 있었다. 그러니 쟌이 뭐라 하지 않아도, 누가 봐도 수상하고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 수밖에 없는 모습이 맞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자닌에게 바로 ‘네가 불러왔잖아! 네가 어떻게 해 봐.’란 말을 바로 하기도 곤란한 부분이 있었으니…… 저 쿨란이란 사내가 저러기 시작하면서 이자닌은 한구석에서 ‘어머나? 저게 왜 저래?’란 표정을 한 채로, 한 손에는 단검 자루를 만지작거리면서 진짜 미쳐서 날뛰면 바로 머리통에 단검을 박아 주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벨라딘은 그런 이자닌의 모습에서 누가 뭐라 하면 그 핑계로 쿨란 멱을 따려 드는 듯한 분위기를 짙게 느꼈기에 일단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어둠이 사라지는 마당에 저런 이상한 몰골을 한 작자가 일행 중에 섞여 있다는 것은…….
“벨, 나도 쟌의 말에 동감한다. 이제 좀 말릴 때인 것 같거든?”
루비가 큰 얼굴을 슬쩍 벨라딘과 쟌 앞에 들이대면서 보태 말하고 있었다.
벨라딘이 루비를 보니, 그 좌우로 테리와 테루도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친 아저씨랑 같이 가기 싫어!’란 표정을 노골적으로 짓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다고요!”
어쩔 수 없이 벨라딘은 슬쩍 옹기종기 자신의 주변으로 둘러앉은 일행을 둘러보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다음에 쿨란을 바라보는 이자닌에게 헛기침하는 시늉을 하면서 다가갔고,
“이자닌, 들었지?”
살짝 묻는 벨라딘이었다.
이자닌은 씁쓸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곧 이자닌의 표정에는 미묘하게 비장한 각오가 떠올랐고…….
“벨, 여차하면 엄호해 줘.”
벨라딘의 낯을 구기게 만드는 소리를 바로 뱉잖는가!
그러니까 지금 저 쿨란의 상태는 정말로 위험하게 미쳤을 수 있다는 말!
“알았어…….”
어쩔 수 없이 벨라딘도 대비해야 했다.
이자닌은 슬쩍 단검을 쥔 손을 허리 뒤에 감추고는 쿨란에게 다가갔다.
벨라딘이 보기에는 아예 대놓고 일단 찌르고 보자는 자세였다.
어이없어하면서도 벨라딘은 이자닌이 저러고 어쩌려나 긴장하며 보는데…….
“……란, 파아아앗! 쿠우우울란! 아저씨, 제정신이에요?”
귓가에 들어온 말에서 이름이 조금 이상하잖은가.
그래도 저 사내 쿨란에게는 제대로 전해진 듯, 얼굴을 돌려 대답하게는 했다.
“제정신이다…… 아주 기분 좋게, 제정신이지. 흐흐흣, 으흐흐흣!”
“웃지 마요! 아주 제대로 미친 꼴이라는 거, 알기는 해요?”
이자닌이 단검을 다시 칼집 안에 밀어 넣으면서 성질냈다.
이는 쿨란에게 주변을 돌아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