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8)
“그게 뭔 오우거야! 스톤 트롤이었잖아!”
“무슨! 그건 분명히 오우거였거든!”
기억 저편에서 투란은 몬스터 헌터 둘이 자신들이 만난 몬스터가 오우거인가 트롤인가 말다툼을 벌이던 광경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오우거와 트롤.
이름부터 다르지만, 간혹 둘 사이에는 이종이라도 어떤 혈연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은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겉모습이 닮았다고 해서 몬스터로서의 특성까지 똑같고, 같은 방식으로 사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몬스터 헌터 사이에서 트롤이냐, 오우거냐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는 것은 누구 말에 목숨을 걸 것인가를 결정하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 자신이 믿는 판단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잘못될 경우에 사냥 가서 아주 허무하게 죽을 테니까. 남의 판단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에 자기 목숨을 거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니까.
그런 논쟁을 한쪽에서 듣다 보면 무수하게 거론되는 다양한 품종의 트롤과 오우거에 대해서 엉겁결에 온갖 소문을 머리에 주워 담는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샤오콴 마을에서 자란 투란에게 그런 논쟁은 2, 3년에 한 번은 꼭 보게 되는 마을의 축제 같은 일이었다. 정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몬스터의 특성을 들먹이면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몬스터 헌터가 쏟아 내는 지식은, 간혹 비전이거나 비전에 근접한 귀한 정보일 경우가 많아서 다들 모여 구경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투란이 귀동냥으로 얻은 지식 중에서 ‘샤머닉’이란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트롤이라는 몬스터 앞에 붙는 말들은 늪이라든가 돌이라든가 하는 지형이나 사물에 연관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도대체 ‘샤머닉’이 무슨 뜻일까?
투란에게는 전혀 감이 오지 않는 말이었다.
키린은 눈을 껌벅이며 맹해진 투란의 표정을 보면서 이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바로 그 튀어나온 물음에 대한 답을 꺼내 준다.
“정령을 섬기거나 다루는 말을 하는 트롤, 그런 트롤을 샤머닉 트롤이라고 해.”
“그런 트롤이 있어요?”
입을 벌린 채로 놀라다가 투란이 황당한 눈빛으로 되묻고 있었다.
트롤, 오우거…… 투란에게는 모두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완벽한 몬스터를 부르는 호칭들이니까. 그리고 이는 이성을 갖추고 대화가 가능한 상대가 절대로 아니란 뜻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지금 키린은 투란이 아는 세계의 큰 벽을 통째로 관통해 부수는 말을 꺼낸 셈이었다.
“있어. 그렇게 흔히 볼 수 있는 일족은 아닌데…….”
“트롤이 말을 해요? 정령을 다뤄요? 그런!”
“그래. 다른 트롤보다 훨씬 귀하고, 보기 힘든 일족이라니까.”
“아니, 그런…… 트롤도 그렇게 흔하고 보기 쉬운 몬스터는 아니잖아요!”
“응? 어, 그야…… 일부러 서식지를 찾아가지 않으면 보기 힘들기는 하지.”
키린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투란이 정신 줄 놓은 듯이 던지는 말에 대답부터 하고 말았다. 투란은 정신 줄 바로잡기가 힘든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서식지! 트롤의 서식지에 가서 살아온 사람이 드물잖아요! 그러니까 서식지는 아예 피하고…… 트롤은 원래 서식지 밖으로는 거의 나오지 않으니까, 일부러 찾아가서 싸움 거는 것도 안 하는 거고…… 그게 오우거랑 가장 다른 특징이고…….”
“투란!”
딱!
이름과 함께 키린의 손끝이 투란의 이마를 가볍게 튕겼다.
“켁!”
투란은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면서, 눈앞에 잠깐 어른거리는 별빛에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에 오른팔의 타원형이고 뾰족한 손톱은 사정없이 투란의 이마를 긁으며 핏방울을 맺히게도 했다.
키린은 그 핏방울을 보면서 어이없어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투란, 자기 손톱으로 상처를 입으면 어떻게 해?”
“에? 아, 이거…… 괜찮아요.”
멍하던 투란은 즉시 오른손을 내리면서 왼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가늘어서 사람 눈으로 보기 힘든 미묘한 넝쿨이 핏방울 사이를 누볐고, 손톱에 긁혔던 흔적이 싹 지워졌다.
키린은 이를 똑바로 보면서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뭐야? 아주 가는 지렁이 닮은 몬스터냐?”
“예? 아니에요, 이건…… 어, 이게 그러니까 악마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넝쿨……인데요.”
“뭐?”
이번에는 키린이 확실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투란이 맨 처음 삼킨 몬스터가 악마의 심장이란 소리는 들었다.
‘드라코눔의 아칸’이 그 진정한 정체가 무슨 섀도 하트니 뭐니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법사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악마의 심장, 그것이 순수한 몬스터 로드의 힘만으로 저리 움직일 수가 있을까?
—키린! 정신 차려! 저건 이미 섀도 하트라 하잖았나!
돌연 용신족의 맹렬한 포효가 키린의 마음에 울렸다.
‘아, 그게 이런 얘기였어?’
기묘한 웃음이 바로 키린의 입가에 맴돌았다.
쓱쓱, 키린의 손길이 멋쩍어하는 투란의 머리 위를 스쳐 갔다.
“대단한데! 악마의 심장을 그렇게까지 쓸 줄 알다니!”
—키린? 너, 지금 뭘…….
드라고니아의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면서, 키린은 투란에게 보다 짙은 웃음과 명랑한 소리를 쏟아 낸다.
“그 정도면 진짜 악마가 깃든 심장이라고 해도 믿겠다!”
“에? 어…… 그, 그런가요?”
뭔가 민망해하면서도 투란은 방긋 웃으며 키린의 칭찬을 기뻐했다.
하지만 곧 키린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투란의 웃음을 싹 걷게 하는 물음을 툭 던진다.
“그런데 왜 트롤의 힘으로 재생하지 않고 악마의 심장을 사용한 거야? 게다가 샤머닉 트롤의 팔, 그 가죽에 담긴 힘이라면 손톱에는 상처도 안 날 텐데?”
“에? 어라?”
흠칫한 투란이 눈을 깜박거리면서 자신의 상태를 바로 점검해 들어갔다.
오른팔, 키린이 샤머닉 트롤의 것이라 하는 팔은 분명하게 형성되어 있었고 ‘이상한 심장’도 제대로 자리 잡았다. 이에 호응해서 바로 악마의 심장이 고요함 속에서 왼쪽 가슴속에서 사람의 심장과 융합하며 맥동했다.
“아, 그냥 이게 익숙해서 그런 것 같은데요?”
투란은 자신의 상태를 통해 답을 추측하고 있었다.
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몬스터 로드가 익숙해진 몬스터의 힘을 우선해서 사용하는 것, 버릇이라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흐흠.”
잠시 키린이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으면서 투란을 똑바로 쳐다봤다.
투란은 그 눈길에 잠시 움찔했고, 곧 눈을 깜박이면서 키린을 마주 봤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이 팔, 샤머닉 트롤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대체 뭔가 하는 궁금증이 다시 투란의 뇌리에 푹푹 꽂혀 온다.
“투란, 확실히 대단하기는 해. 몬스터의 알려지지 않은 특성을 습득해서 활용한다는 거는 몬스터 로드에게는 굉장한 일이지. 그런데 더 대단하고 쓸모 있는 몬스터를 손에 넣고서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거는…… 상당한 바보짓이잖아?”
“……네.”
조금 시무룩하니, 투란은 꾸중 듣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키린은 그런 투란의 머리카락을 헝클며 말한다.
“물론 지금 당장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녀석을 굳이 파묻고 안 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게다가, 이해하지 못한 몬스터의 힘을 억지로 끌어내려 하지 않은 거는 아주 잘한 일이기도 해. 어떤 결과를, 어떤 힘을 이끌어 낼지 모르는 것에 의지하는 일은 피하는 게 좋거든.”
“어? 예!”
칭찬은 투란을 힘차게 대꾸하게 했다.
이런 투란의 모습에 다시 빙긋 웃으면서 키린이 이어 말한다.
“그러면, 다시 이 팔의 원래 주인 이야기를 해 보자고. 샤머닉 트롤은 사냥당할 대상도 아니고, 보통은 몬스터 엠블럼에 삼켜질 존재도 아니야. 그런데 넌 당당하게 그 팔을, 보아하니 그 심장의 한쪽도 얻었구나. 어떻게 된 거냐?”
투란은 ‘어?’ 하는 소리부터 냈고, 자신이 키린에게 이야기한 것들을 조각조각 떠올리면서 되살렸다. 가슴에서 맥동하는 악마의 심장은 이런 투란의 회상을 도우며, 어떻게 ‘이상한 심장’의 이야기를 잘라먹었는가를 분명하게 생각해 내도록 했다.
“아! 쫓는 이야기 하면서, 그 웨어울프 이야기를 먼저 하느라고 건너뛰었다! 에, 그러니까 제가 그랑츄 발목을 먼저 주웠거든요. 음, 그래 가지고…….”
더듬거리는 생각을 띄엄띄엄한 말투로 꺼내면서 투란은 어쩌다가 이 팔을 얻게 된 것인가를 늘어놓았다.
번개가 떨어지던 풍경, 물가에 가득했던 악마의 심장 넝쿨 가닥들, 벼락 맞고 타 죽은 듯했던 그랑츄, 딱 그 꼴 날 뻔했던 투란 자신의 상황…….
“그렇게 되었죠.”
뭔가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지친 꼴이 되어서 투란은 겨우 이야기를 매듭지을 수 있었다.
키린은 조금 늘어지고 요령 없이 쏟아져 나오는 투란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끼어들지 않고 묵묵히 모두 들었다. 그리고 투란의 말이 끝난 다음에 가만히 묻는다.
“그 벼락, 번개는 그렇게 떼어 놓고 왔다고?”
“예, 그게…… 갖고 다닐 것도 아니고, 데리고 다닐 것도 아닌 것 같던데요. 삼킬 엄두도 안 났고…….”
약간 주저하는 태도로 투란은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닿는 순간, 번쩍하면서 순식간에 숯덩이가 될 것 같았으니 냅다 도망칠 수밖에 없었잖던가? 혹은 말라 뒈지든가!
키린이 미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드라고니아는 기막혀하는 포효를 질러 대고 있었다.
—야, 이 멍청이는 대체……. 샤머닉 트롤이 계약한 뇌전의 정령을 내팽개치고 튀었다고! 기껏 맹약의 문신이 새겨진 팔을 손에 넣고서, 다시 깃들이려고 하는 정령을 버리고 도망쳐? 도대체가…….
‘타 죽을 뻔했다잖아. 그리고 좋은 판단이었어. 샤머닉 트롤 일족 중에서도 뇌전의 정령과 계약을 시도하다가 타 죽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완전한 것도 아닌 괴물이 된 트롤 몸의 일부를 손에 넣은 것뿐이잖아. 샤머닉의 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투란은 최고의 선택을 한 거라고.’
키린은 마음 깊은 곳을 향해 속삭여서 ‘드라코눔의 아칸’을 침묵하게 했다.
드라고니아에게는 결코 피할 일이 아닌지 몰라도, 타 죽거나 말라 죽을 뻔했던 투란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듯한 침묵이었다.
“저…… 뭐 잘못한 건가요?”
투란이 조심스럽게 키린에게 물었다.
키린은 고개를 저으면서 침착하고 신중하게 대답해 준다.
“아니. 잘한 거야. 그렇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을 했어. 물론 샤머닉 트롤에 대해 좀 더 알고 있었다면 더 좋은 것을 얻었을 수도 있지.”
“더 좋은 거요!”
투란의 표정이 어둑어둑한 분위기로 순식간에 물들었다.
아는 것이 없어서 멍청한 짓을 한다는 것, 이건 그야말로 울컥하고 짜증 나는 일이 아니냐는 듯한 투란의 기분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키린이 풋, 웃음을 흘렸다.
아는 것이 적은 이 소년에게는 분명한 욕심이 있었다.
“투란, 더 좋은 거긴 한데…… 사실 진짜 죽을 뻔했어. 잘 살아남은 거야.”
“아…… 그렇죠.”
투란은 목숨이 오락가락한 상황을 되새김질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키린이 손끝으로 그의 이마를 살짝 밀었다.
“이제 가르쳐 줄 테니까. 다음에 또 그런 일을 겪거든 그 반짝거리는 번개인지 벼락인지 모를 녀석을 향해서 네 이름을 말하고, 이름을 물어봐.”
“에? 예?”
투란은 손끝에 밀려 머리를 젖히면서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뭔데 이름을 말하고, 묻는가?
“투란, 네가 얻은 팔과 가슴, 심장의 한쪽은 샤머닉 트롤의 잔해야. 멀쩡한 샤머닉 트롤이라면 몬스터 로드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정령과 섭리의 조율을 통해서 세상에 당당하게 머물 수 있는 괴물처럼 보이지만 괴물은 아닌 것이 샤머닉 트롤이거든. 하지만 그 잔해는 조율이 망가진 것이고 정령과 섭리의 뒤틀림을 간직한 것이라서 괴물인 트롤처럼 잡아 삼킬 수가 있어. 그리고…… 몬스터 로드가 그 잔해를 통해 샤머닉 트롤의 일부를 형성하면, 원래 그 샤머닉 트롤이 멀쩡한 채로 계약한 정령과도 이어져서…… 정령의 계약을 새로 할 수 있어. 뭐, 네 경우에는 굉장히 난폭한 정령이었던 모양이고…….”
“네엣! 저, 정령이라고요! 계, 계약이라니! 그 반짝대며 미쳐 날뛰는 불벼락 같은 놈이 키린이 다루는 불꽃 같은 정령이라고요! 마, 말도 안 돼! 그런 미친 것이!”
투란은 키린이 하는 말을 멍하니 듣다가 버럭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뭔가 광분에 가깝게 흥분해서 키린의 다음 말을 거의 들을 기색이 아닌 듯한 모습이었고, 이는 바로 키린의 주먹이 벼락처럼 떨어지게 했다.
콰앙!
“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