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04
#703화
콰아아아……!
숨이 막혔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지금도 끝없는 울림과 함께 계속되는 굉음이 아득하게만 들려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알림만큼은 또렷하게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삑! 삐비빅!
– 상태 이상, [심각한 내상]이 부여됩니다!
– 상태 이상, [심각한 탈진]이 부여됩니다!
– 상태 이상, [심각한 근육 파열]이 부여됩니다!
– 상태 이상…….
.
.
끊임없이 들려오는 시스템 알림. 아니, 경고음은 내 몸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조목조목 짚어 준다.
아마 시스템이 의사였다면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환자분. 이런 말씀 드리기 뭐 하지만…… 이번엔 진짜 좆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왜 자꾸 일섬을 쓰고 지랄이세요. 혹시 단명하는 게 버킷리스트입니까?’
거 참, 친절하기도 하지.
상상만으로 기분이 거지 같아질 것 같지만, 희한할 정도로 지금의 나는 별다른 심경의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상상보다 더 거지 같은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쿨럭.”
주륵. 투두둑.
기침과 함께 터져 나온 핏물이 지면에 흩뿌려진다.
잠깐 건더기도 씹힌 걸 보니 내장 조각이 틀림없는데,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일섬이 혜자……는 씨발. 무슨 편의점 도시락도 아니고.
‘빌어먹을.’
시야가 아득하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병이기 부럽지 않게 날카롭던 감각은 버려진 오두막의 도끼처럼 무뎌졌고, 언제나 팔랑개비처럼 휘둘렀던 백염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그나마 멀쩡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팔뚝에서 느껴지는 통증이었다.
으적. 으적.
나는 흐릿한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짐승처럼 삐죽 솟은 이빨로 끊임없이 살점을 씹어 대고, 핏물을 삼키는 그것의 눈에는 탐욕과 광기만이 가득했다.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맛있냐?”
으적.
“그래, 맛있나 보네.”
나도 모르겠다.
더 이상 알아듣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도 왜 이런 말을 건네는지. 내 팔목으로 실시간 먹방 스트리밍을 찍고 있는 이 괘씸한 놈을 왜 가만히 내버려 두는지.
그건 어쩌면…… 다른 누군가의 손을 빌리고자 하는 이기심과 한때 인간이었을 존재에 대한 마지막 동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슈화악! 서걱!
으적…….
어디선가 들려온 파공성과 함께, 맹렬하게 살점을 씹어 대던 이빨이 축 늘어진다.
내가 붉은 눈동자를 부릅뜬 채 굳어 버린 청년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된 은빛 갈기가 눈앞을 스쳤다.
– 인간. 안 괜찮아 보이는군.
수호령. 녀석의 존재를 인식하기 무섭게 다리에 힘이 풀린다. 나는 갈기를 붙잡으며 힘없이 대꾸했다.
“보통은 처음에 괜찮냐고 묻지 않나?”
– 난 인간과 다르다. 안 괜찮아 보이기에 굳이 묻지 않았다.
“거 마음에 드네. 그 새카만 놈은?”
– 죽였다. 이번이 네 번째였지.
“뭐?”
– 계속해서 일어나더군. 시간이 흐를수록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놈 역시 강해졌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르지.
균열. 정확히는 균열로부터 흘러나온 마기의 영향이다.
그리고 마기에 의해 복면인이 강해지는 만큼, 수호령은 서서히 약해졌을 것이다.
처음처럼 커다란 빛을 뿜어내지 못하는 입 안의 신석처럼.
‘수호령은 신석(神石)과 힘을 공유하니까.’
이제야 수호령의 몸 곳곳에 깊숙한 상처가 보인다. 지친 듯 들썩이는 어깨와 가파른 숨결도.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녀석이 거대한 동체를 상처가 보이지 않게 돌렸다.
“미안하다.”
흐릿한 목소리로 건넨 한 마디. 청백색의 눈동자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호령이 고개를 저었다.
– 넌 할 만큼 했다.
“마지막에…….”
– 안다, 저것들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성공했겠지.
나는 힘없는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갈가리 찢겨 나간 시신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일섬을 쏘아 보내려던 마지막 순간, 수호령의 경고와 함께 가장 먼저 변화를 끝마치고 내게 달려든 변이체(變異體)들의 흔적이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어.’
아니,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고 해야 옳다.
그리고 지금과는 달리 주위를 둘러보지 못할 만큼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던 내게, 변이체들은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죽었지.’
어림잡아 일백에 달하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섬이 불러온 강대한 와류였다.
하지만 찰나를 쪼개고 쪼갠 그 짧은 시간 속, 변이체들은 본능적으로 나를 저지하여 자신들의 임무를 다했다.
팔뚝을 물어뜯어 방향을 틀고, 눈앞의 시야를 가로막고, 막을 수 없는 거대한 기운 앞에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그렇게…… 한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남천마후.”
침음성과도 같은 내 목소리에, 흐릿한 먼지구름 사이로 우뚝 서 있던 인영이 걸음을 내디딘다.
사박.
일섬의 여파에 휘말려 모든 것이 소멸해 버린 일각(一角). 그 모든 것의 중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괴물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 * *
붉다. 모든 것이 붉었다.
하늘도. 땅도.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와 동시에 보여서는 안 될 것들이 보였다.
‘아.’
남천마후는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수 갑자에 달하는 공력과 숱한 정혈(精血)을 취하며 얻어 낸, 새하얗고 매끄러운 손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검버섯으로 가득한, 죽어 가는 고목의 가지처럼 비쩍 마른 손이 그곳에 있었다.
“아. 아아…….”
터져 나간 실핏줄로 붉게 물든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다.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자신이었다. 아름다워야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익혀 온 대공(大功)은 깨졌고, 남천마후는 늙고 추한 본래의 모습을 저주처럼 되찾았다.
그리고 아득한 충격과 분노에 몸을 떨던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저주가 억눌렀던 노화(老化)뿐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파.’
문득 엄습하는 격통에 몸을 살핀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짐승에게 베어 먹힌 것처럼 뜯겨 나간 옆구리의 살점과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한쪽 팔.
그리고 엄청난 열기에 의해 녹아 버린 얼굴 반쪽을.
“……!”
남천마후는 눈을 부릅떴다. 그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옆구리의 상처는 회복할 수 있다. 한쪽 팔도 솜씨 좋은 술사(術士)라면 흉터 없이 붙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굴은 아니다. 그녀가 그토록 멸시하는 혈주(血主)와 같은 길을 걷지 않는 한, 끔찍한 화상을 입은 얼굴에는 흔적이 남고 말 것이다.
“안 돼. 이건, 이건 말도 안…….”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던 남천마후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어느새 눈물에 젖은 핏빛 눈동자에 비친 한 사람 때문이었다.
진태경.
보인다. 그리고 느껴진다.
모든 것을 지워 버린 눈부신 섬광 뒤, 힘을 잃고 껍데기만 남아 버린 녀석의 모습이.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빼앗아 버린 하찮은 존재가.
동시에 찾아온 일념(一念)이 남천마후의 전신을 사로잡았다.
‘죽인다.’
그 순간. 수많은 감정으로 혼란하던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아득한 세월을 살아온 괴물은 망설임 없이 어둠을 두른 채 걸음을 옮겼다.
사박. 사박.
콰드득.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남천마후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주위를 짓눌렀다.
비록 젊음을 잃었지만, 아직 놈을 죽일 만한 힘은 남아 있다.
옆구리와 팔에서 흐르던 피는 어느덧 멎어 있었고 진탕되었던 내부는 느리지만 조금씩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돌아온 노화가 저주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짙어지고 있는 균열의 마기(魔氣)는 남천마후에게 있어 축복이었다.
제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든 진태경과, 그 앞을 가로막은 어느 노린내 나는 짐승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수 있게 해 주는 축복.
– 멈춰라.
스아아아.
울려 퍼지는 의념과 함께 수호령의 중심으로 번져 나가는 빛무리.
어느새 그 주위를 빼곡하게 둘러싼 일천의 변이체들이 바짝 몸을 움츠렸지만, 남천마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파앙!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쏘아진 장력, 핏빛 강기와 뒤섞인 어둠이 신석의 빛을 짓누르며 진태경을 덮쳤다.
쾅!
굉음과 함께 지면이 터져 나간다. 찰나의 순간, 진태경의 목덜미를 입에 물고 번개처럼 몸을 날린 수호령이 낮은 울음소리를 흘렸다.
– 신석이…….
뒷말은 삼켰지만, 수호령이 깨달은 현실은 잔인할 정도로 명확했다.
우우우웅.
입안에서 잘게 떨리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마치 한창때의 젊은이를 상대하는 노인처럼, 신석이 지닌 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줄어들고 있었다.
더불어 오랜 세월 신석을 지켜 온 어느 백호의 힘도 함께.
‘이무기가 남긴 영기(靈氣)로도 부족했나.’
그 정도로 본래의 힘을 모두 온전히 회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수신룡은 한 차례 변이되었던 영향으로 그리 많은 기운을 남기지 못했으니까.
‘마기가 너무 강하다. 신석의 힘조차 억누를 정도로.’
균열로부터 흘러나오는 마기는 이미 내궁을 넘어 외궁으로 잠식해 나가는 상황.
수호령이 이끌고 온 성지의 맹수들이 있었지만, 신석마저 약해진 마당에 맹수들마저 마기의 영향에 놓인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아니, 이미 최악이다.
완전히 마기의 영향에 놓인 일천에 달하는 변이체가 사방을 빈틈없이 에워싸고, 남천마후라는 강자마저 끝끝내 살아남아 그들을 노리고 있으니까.
‘이대로라면…….’
피할 수 없는 생각에 수호령의 낯빛이 어두워진 그때. 진태경이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라.”
– 뭐?
“고생했어. 그동안 욕봤다.”
– ……!
자신을 향해 크게 뜨인 청백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진태경은 백염을 지팡이 삼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이만하면 됐어. 넌 빠져나가서 사람들을 구해. 이 좆 같은 땅에서 최대한 빨리, 멀리 벗어나라고.”
– 그걸 지금 말이라고…….
“장담하는데, 네가 아무리 빨라도 나 데리고 가면 얼마 못 버텨. 아마 반 시진도 안 돼서 내가 먼저 내려 달라고 징징댈걸. 운기조식 안 하면 뒈질 테니까.”
장난스럽지만 냉정한 한 마디에 수호령이 입을 다문 그때, 진태경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가. 더 늦기 전에.”
말을 끝마친 진태경이 고개를 돌려 남천마후를 응시한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청년의 눈빛과 분노로 타오르는 혈광이 허공에서 맞닥트렸다.
“자, 순순히 따라갈 테니까 이제 그만하자. 천주인지 개잡주인지, 어디 한 번 보러 가자고.”
남천마후가 대답 대신 손을 들었다.
쉭, 피핏!
빛살처럼 날아든 지풍(指風)이 목덜미를 찢었다. 진태경이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화났으면 말로 하지 그러냐. 가뜩이나 피 많이 흘렸는데. 가다가 죽으면 어쩌시려고?”
남천마후가 서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곤란한데.”
“이제 좀 말이 통하…….”
“이 정도로 죽으면 안 돼. 내 손으로 천천히 찢어 죽일 테니까.”
“……지는 않네. 뒷감당은 어찌하시려고?”
“괜찮아. 신물을 가져가면 천주께서도 기뻐하실 테니. 백호의 가죽은 덤이고.”
그리고 환하게 웃은 남천마후가 손을 펼친 그 순간.
구웅-!
거대한 울림이, 남만야수궁을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