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 Practice Disciple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 [제59장] 무명검법 2
“으으······.”
“정신이 드세요?”
“여기가 어딥니까? 저를 아십니까?”
백리사초가 방에서 일어나 눈앞에 앉아 있는 소녀를 쳐다봤다.
백의를 입은 소녀는 비록 옷이 남루하긴 하나 빼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시적인 현상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도 가족도 직업도 개인 신상에 관해서 기억나는 것이 전혀 없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각 지역의 명칭과 개인 신상과는 관계없는 일반적인 상식들뿐이었다.
이는 그의 머릿속에 안개 같은 것이 잔뜩 끼었기 때문으로, 백리사초는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소녀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안색을 굳혔다.
하지만 침착하게 설명을 했다.
“여기는 저의 집이에요. 오늘 아침 제가 길을 가다가 나쁜 놈에게 납치되어 큰일 날 뻔한 것을 은공께서 구출해주셨답니다. 제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 곧바로 쓰러져 정신을 잃으셨어요. 그래서 저 역시 매우 당황했는데 마침 마을 분들이 저를 찾아내 집으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마을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선비촌이라고 해요. 낙양 인근에 있는 작은 마을이지요. 낙양은 아시지요?”
“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밝혔습니까?”
“아니요. 저, 혹시 기억이 나지 않으시는 건가요?”
“네. 제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 아무래도 절 구하시느라 무리를 하신 것 같네요. 죄송해요. 사실 처음 뵈었을 때부터 안색이 좋지 않으셨어요. 그 몸으로 저를 구하느라 무리를 하셔서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으신 것 같아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진맥을 해도 될까요?”
“의술을 아십니까?”
“네. 선친께서 의원이셨습니다. 이곳 선비촌은 선친의 고향인데 삼 년 전에 저와 함께 귀향해서 지내고 있었지요. 어머님은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요.”
소녀가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백리사초가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기억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심리적인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백리사초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손을 내밀었다.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백리사초의 맥을 짚었다.
“맥은 괜찮은 것 같아요. 스스로 느끼기에 몸 상태는 어떤가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만 기억을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군요.”
“제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명의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잠을 자면서 스스로 내상을 치유하신 것 같아요. 다만 그 과정이 비정상적이라 기억 회복이 늦어지는 것 같네요. 몸 상태가 정상이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저의 집에서 지내도록 하세요.”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저를 구해주셨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푹 쉬도록 하세요. 죽이라도 끓여올게요.”
“감사합니다. 한데 소저의 방명은?”
“아참, 제 소개도 하지 않았네요. 저는 동방옥매(東方玉梅)라고 해요.”
“동방 소저였군요. 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아 가르쳐 드릴 수 없는 게 유감이군요.”
“호호.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까 이제 여유를 찾으신 것 같군요. 원래 기억이란 게 충격을 받으면 일시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다만 은공께서 검을 차고 있고 무공을 아는 것으로 봐서 무림인인 것 같아요. 색마를 제거한 후 저의 혈도도 직접 풀어주셨으니 거의 확실할 거예요. 그러니 무공을 떠올리면 기억 회복에도 도움이 되실 듯해요.”
동방옥매가 미소를 지은 후 방에서 나갔다.
혼자 남은 백리사초는 가부좌를 한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동방옥매의 조언에 따라 무공을 떠올려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익힌 무공이 워낙 많아서인지 오히려 단 한 가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운공을 시도하자 몸속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꿈틀거렸다.
‘무림인이라. 내가 무림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백리사초가 무림에 대해 생각했다.
다행히 무림의 일반적인 상식에 대해서는 기억이 났다.
예를 들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위치와 그 무공들의 특색 같은 것은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무림 동향이라든지 영웅맹이나 신선계 등 그가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백리사초가 안색을 굳혔다.
‘기억 회복이 쉽지 않을 것 같구나. 동방 소저 말대로 정신을 잃을 정도로 내상이 심했고, 곧바로 운공요상을 통해 치료를 해야 했으나 그렇지 못하다가 내 몸이 스스로 치유에 들어간 것 같다. 하지만 완벽하지 못해 기억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지금은 억지로 기억을 떠올리려 할 때가 아니라 마음을 편히 할 때다. 그러면 며칠 내로 기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백리사초가 심호흡을 한 후 깊은 묵상에 잠겼다.
* * *
다음날 새벽.
백리사초는 일찍 일어나 동방옥매의 집 마당을 거닐었다.
어제저녁 그는 동방옥매가 끓여온 죽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후 다시 잠이든 그는 새벽에 깨어났다. 어제보다 몸이 더욱더 가벼워지고 머리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것 외에 비교적 맑아지자 마당으로 나온 것이었다.
한편 동방옥매의 집에는 그녀 외에 따로 사는 사람이 없었다.
어젯밤 그녀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했는데, 그녀 부친의 사인은 병이 아니라 북해빙궁 무사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쯤 일로 당시 선비촌에 낙양에 있던 정파 무사들이 피신 온 적이 있었다.
낙양 무림을 점령한 북해빙궁 무사들이 성 밖까지 나와 저항 세력을 소탕하자, 쫓기던 정파 무사들 일부가 선비촌으로 몸을 숨긴 것이었다.
마을 의원이었던 그녀의 부친은 피신 온 무사들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그 일을 빌미로 얼마 후 들이닥친 북해빙궁 무사들에게 화를 당한 것이었다.
당시 동방옥매는 부친의 명으로 약초를 캐러 며칠 마을을 떠나있었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보니 이미 부친은 돌아가신 후였다.
장례를 치른 그녀는 며칠 동안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하지만 북해빙궁에 이은 마교 무사들의 낙양성 진입으로 더욱더 성안으로 들어가기 힘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그녀의 의술이 비록 선친보다는 못하나 그래도 웬만한 의원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기뻐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가 약재가 떨어지자 위험을 무릅쓰고 낙양성 안으로 들어가 약재를 구한 후 돌아오다가 녹림도를 만나 변을 당할뻔했던 것이다.
‘동방 소저 말대로 무공을 연마하다 보면 기억이 회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생각나는 무공은 없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직접 새로운 무공을 창안할 수 있을 듯하구나.’
백리사초가 무명검을 수직으로 세운 채 눈을 빛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하나의 검초로 이전 기억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 창안한 초식이었다.
그것도 조금 전에 말이다.
‘신기한 일이군. 이전에 배웠던 무공을 내가 착각한 것인가. 일단 초식을 펼쳐보자. 어제 동방 소저 이야기를 들어보니 현 무림 상황이 심각하던데,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무공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백리사초가 걸음을 앞으로 세 걸음 더 걸은 후 가볍게 마당에 있는 여러 개의 바위 중 하나를 내리쳤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아!”
백리사초가 탄성과 함께 깜짝 놀랐다.
그가 펼친 초식은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직접 창안한 구결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기대감이 있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백리사초가 기뻐하며 다음 초식을 연이어 펼쳤다.
이 또한 직접 창안한 초식으로 첫 번째 초식과 관련이 있었다.
휘익.
무명검이 가볍게 수평을 가르며 다시 바위가 갈라졌다.
이후 마지막으로 비스듬히 내리치자 이번에는 바위가 아예 가루가 되어 버렸다.
이는 그가 처음으로 내공을 실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초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검이 보검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마지막 세 번째 초식은 내공이 성공적으로 실렸으니 역시 내가 이전에 무림인이었던 것은 틀림없구나. 이번에 창안한 세 가지 초식은 아직 이름이 없으니 무명검법(無名劍法)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군.’
백리사초가 삼초로 이루어진 검법을 무명검법으로 이름 지었다.
이후 그가 연마한 것은 변초들이었다.
모든 초식은 변초가 있게 마련이었다. 이를 연마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백리사초는 변초 연마를 마음 가는 대로 했다. 그 결과 해가 뜰 때까지 초식마다 열 개씩의 변초를 만들어냈다.
원래 초식과 합치면 모두 서른세 개의 초식을 창안한 셈이었다.
그렇게 무명검법을 모두 연마했을 때 동방옥매가 마당으로 나왔다.
“어머! 벌써 일어나셨어요?”
“네. 바람을 좀 쐬고 있었습니다.”
“몸은 어떠세요?”
“내상은 완쾌된 것 같습니다. 기억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나 머리가 맑은 편입니다.”
“머리가 맑은 것은 좋은 현상이에요. 아마 곧 기억이 돌아올 거예요.”
“감사합니다.”
백리사초가 미소를 지었다.
동방옥매가 말했다.
“은공께서는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계속 이곳에서 요양하도록 하세요. 다만 마을이 조금 시끄러우니 될 수 있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마을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네. 사실 어젯밤 무사 한 분이 마을에 오셨어요. 상처를 입어 잠시 몸을 피신한 것인데, 지금 촌장님 댁에 계셔요.”
“아, 그래서 어제 밤늦게 돌아오신 겁니까?”
“네.”
“혹시 그 무사분이 어제 말씀해주신 영웅맹 소속입니까?”
“네. 영웅맹 소속 정탐 무사로 첩보를 수집하러 인근 낙양벌까지 왔다가 북해빙궁 놈들에게 들켜 이곳까지 왔나 봐요. 원래는 저의 집에 모셔야 하나 그렇게 되면 돌아가신 제 부친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까 봐 촌장님 댁 밀실에 숨겨드렸어요.”
“그랬었군요. 그 무사분의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큰 상처는 아니라 하루 이틀 정도만 더 지나면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은공께서도 그때가 되면 제가 없어도 될 거예요. 촌장님께 말씀드려놓았으니 제가 없어도 여기서 몇 달이고 지내도록 하세요.”
“어딜 가시는 겁니까?”
“네. 어젯밤 영웅맹 무사분께 부탁을 드렸어요.”
“무슨 부탁을 말입니까?”
“부상 때문에 소림사로 복귀하신다기에 저도 데려다 달라고 했지요.”
“소림사로? 그곳에 영웅맹 무사들이 있다고 했던가요?”
“네. 방랑객이란 분이 지금 임시맹주로 계신데 그 무공이 천하제일이라고 해요. 그리고 이건 영웅맹 무사분께 들은 이야기인데, 어제 낙양벌에서 북해빙궁 정예무사 만여 명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해요.”
“영웅맹 무사분이 그 일을 조사하러 낙양벌까지 온 것이군요.”
“낙양벌이 어딘지는 아세요?”
“네. 어떻게 된 것인지 지리는 대부분 기억이 납니다. 그분을 따라 소림사로 가서 영웅맹에 가입하시려는 것이군요.”
“네.”
“혹시 선친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입니까?”
“네. 제가 가지고 있는 보잘것없는 의술이라도 영웅맹 무사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사실 그게 아니라도 어려서부터 무공을 배우는 것이 꿈이기도 했고요. 마음 같아서는 방랑객님의 제자가 되어 무공을 배우고 싶지만, 아무튼 제가 없더라도 몸조리 잘하세요. 아니지. 혹시 은공께서도 영웅맹 소속 무사가 아니었을까요?”
“제가 말입니까?”
“네. 정탐 무사들은 복장으로 그 소속을 알 수 없다고 들었어요. 혹시 저를 따라 촌장님 댁으로 가서 영웅맹 무사분을 만나보실 생각이 없으세요?”
“은신해 계신 분을 만나는 게 그분께 도움이 안 될 것 같군요. 나중에 그분이 완쾌되어 떠나실 때 한번 만나보도록 하지요. 동방 소저 배웅도 할 겸 말입니다.”
“좋아요. 제가 미리 말씀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