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76
376화
창문이 하나도 없는 폐쇄된 공간.
불빛이 들어올 수 없기에 어둠에 잠겨야 할 공간이었지만, 사방에 매달린 값비싼 야명주들이 어둠을 몰아내며 안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거의 대전(大殿)에 가까울 만큼 큰 방은 화려하고, 기이한 모습이었다.
주변에는 대상단의 상인이라 하여도 평생 보기 힘들 고급의 장식품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색은 둘로 통일되어 있었다.
금색(金色)과 홍색(紅色).
오로지 단 두 색밖에 없는 장식품들은 야명주에 그 색을 반사해 방 안에 두 색채를 퍼트리며 물들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기묘하고도, 신비로운 모습.
마치 현실 세상과 동떨어진 곳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 속 유난히 이질적이면서, 특이한 것이 존재했다.
붉은색의 고급 비단이 깔린 화려한 계단 위 온통 새까맣게 칠해진 거대한 옥좌가 그것이었다.
이질감이 상당했다.
금색과 홍색으로 가득한 공간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한 검은 옥좌라니.
하지만 옥좌의 존재감에 이질감을 느끼던 이들도 그 위에 앉은 여인을 발견하는 순간, 하던 생각을 모두 잊었다.
그녀는 이십 대 중반의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높은 콧대와 피를 머금은 듯 고혹적인 입술, 그리고 날카로운 턱선.
흑백이 선명한 눈동자는 별을 담은 듯 반짝였고, 백옥과도 같은 피부는 눈처럼 새하얗게 빛을 냈다.
보는 순간 누구나 경국지색(傾國之色), 폐월수화(閉月羞花), 침어낙안(浸魚落雁)이라는 말을 떠올릴 만큼 굉장한 미인이었다.
가히 천하제일의 미녀라고 칭해도 이견이 없을 외모였다.
남자뿐 아니라 여인이라도 홀릴 법한 외모였지만,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모두가 공포에 떨었다.
그녀가 바로 고금제일의 살수라고 불리는 살막의 주인, 암제였기 때문이다.
“오색살수가 죽었군.”
다섯의 혼백에 심어 두었던 금제가 끊긴 것을 느낀 암제는 팔걸이에 턱을 괴면서, 지나가는 어투로 말했다.
그녀는 마치 큰일이 아닌 양, 말을 했지만.
“……!”
계단 밑,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노인은 순간 흠칫했다.
‘벌써?’
살막의 우호법, 만살옹(萬殺翁) 영공(影供)의 이맛살에 길게 잡혀 있었던 주름이 더욱더 깊어져 갔다.
오색살수는 살막의 최정예였다.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순서대로 급이 올라가는 살막에서 수급에 오른 살수들이었으니까.
‘그들이 살막을 나선 지 하루도 되지 않았거늘…….’
그의 새하얀 눈썹이 꿈틀거렸다.
목표인 매화신협에 대해서라면 귀가 따갑도록 들어 왔고, 정보를 모아 왔기에, 패배는 예상하던 바였다.
하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나와 좌호법이 같이 움직여야만…….’
만살옹이 매화신협을 처리할 방법을 떠올리던 그때였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구나.”
콧노래와 함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방 안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그에 만살옹이 고개를 들었다.
암제가 즐거운 듯이 웃고 있었다.
입가에 머문 희미한 미소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어우러져 더욱 환하게 빛났다.
‘아아.’
그런 그녀를 본 만살옹은 순간적으로 찌푸려졌던 인상을 활짝 펼쳤다.
그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진정 돌아오셨구나.’
그는 눈을 반짝이며, 암제를 바라봤다.
수십 년 전 암제는 아무런 말도 없이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었다.
은밀히 천하의 정보를 통제하던 살막의 힘으로도 알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얼마 전.
천하가 무림맹과 사흑련의 전쟁으로 들끓을 때, 돌연 복귀한 것이다.
거의 반백 년만이었다.
‘너무 갑자기 오셔서 처음에는 막주님이란 걸 믿을 수 없었지만…….’
처음 암제가 복귀했을 당시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의심했었다.
물론 과거 암제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녀, 천하제일미라고 불렸지만 지금 모습은 그 때에 비해 오히려 어려진 상태였으니.
거기에다가 세밀하게 살펴보면 외모도 예전의 암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품었던 의심은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걷혔다.
일각도 안 돼, 자신을 비롯한 살막의 살수들을 모조리 제압했기 때문이다.
오직 암제만이 익힌 지고의 신공절학 암야군림결(暗夜君臨結)을 펼치면서였다.
그때를 떠올리던 만살공은 몸을 부르르 떨며, 경외의 눈빛을 흘렸다.
경이로운 무위, 압도적인 존재감.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당시 암제의 재림이 분명했다.
‘더욱이 반로환동(返老還童)까지 이루셨다 하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암제가 직접 밝힌 젊어진 이유를 회상하던 만살옹은 작게 웃었다.
물론 지금도 암제가 왜 돌연 모습을 감추었던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암제가 다시 살막에 돌아와, 세상에 나서려는 것이었다.
그 의미는 아주 컸다.
팔무신 모두가 모습을 감춘 시대에 암제만이 강호에 돌아온 것이니.
‘이제 살막의 시대가 도래했도다.’
만살옹의 마음이 들떴다.
암제가 사라지고, 구주삼패세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살막은 예전보다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마음껏 날뛸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릴 첫 희생양으로 암제와 살막이 노리는 자는 지금 강호를 뒤흔드는 매화신협이었다.
“막주님.”
만살옹이 나직이 암제를 불렀다.
“소인과 좌호법이 같이 나서…….”
“아니.”
암제는 자신이 나서겠다고 자처하는 만살옹의 말을 자르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천천히 옥좌에서 일어났다.
일어섬에 따라 그녀가 걸치고 있던 새까만 장포가 물결치며 흔들렸다.
돌연 그녀의 주변이 어두워졌다.
방을 환히 비추는 야명주의 빛이 그녀의 장포에 삼켜지기라도 한 것처럼.
“대계가 눈앞에 있거늘, 호법들이 죽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순 없지.”
“…….”
만살옹은 그 말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막주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우호법.”
“네, 방주님.”
부름에 만살옹이 거의 땅에 닿을 것처럼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암제는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가서, 그를 안내해.”
말과 함께 그녀가 피처럼 붉은 입술을 천천히 비틀어 올렸다.
“이 살막으로.”
* * *
탁, 탁.
천휘는 손을 털며, 뒤를 봤다.
처참하게 짓이겨진 시체 다섯 구가 쓰러져 있었고, 그들이 흘린 핏물이 계곡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꽤 재밌는 무공들이었어.”
그들이 펼쳐 보인 무공을 떠올리던 천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졸졸 흐르는 계곡물 위로 발을 내디뎠다.
가죽신이 물 위를 밟았다.
고절한 신위의 보신경 수상비(水上飛)를 자연스럽게 선보인 천휘는 남은 시체들을 뒤로 하고, 발을 뗐다.
탓.
순식간에 천휘의 몸이 쏘아지면서 뒤늦게 계곡물이 솟구치며 흩어졌다.
살수들을 처리하고 다시 움직인 지 한나절이 흘렀다.
천휘는 목적지였던 북경에 도착했다.
오색살수들을 처리하고, 나왔을 때만 해도 중천에 떠 있던 해는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고 하늘엔 어둠이 드리워져 갔다.
하지만 북경의 내부는 달랐다.
마치 낮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늘에 떠 있는 만월과 별빛보다 더 밝은 불빛들이 거리를 밝혀 왔다.
“북경은 다르긴 하네.”
천휘는 거리의 사람들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혼잡한 인파였다.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이들을 보았지만, 북경은 그중에서도 더욱 혼란했다.
인파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전각과 기루에서 달콤한 음식 냄새와 자극적인 분향이 섞여, 거리를 걷는 이들의 머리를 어지럽힐 정도였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천휘는 현혹되는 것 없이 무심한 얼굴로 거리를 걸어갔다.
허리춤에 맨 두 자루의 검이 흔들림에 따라, 사람들이 그를 보고 반응을 보였다.
“어?”
“크흠.”
헛기침을 하며, 거리를 벌렸다.
아무리 자금성이 가깝고 관군이 있다지만, 무인과 시비가 붙는 건 피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법은 멀고, 칼은 가까웠다.
강호의 법칙이 그랬고, 그런 것이 통하는 게 천하였다.
천휘는 자신을 피하며 제 갈 길을 가는 이들을 지나치며 움직이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
‘살막에 가려면 일단…….’
천휘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저 멀리 보이는 높은 기루를 시야에 담은 천휘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곤 이내 고개를 내리며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눈을 가늘게 떴다.
‘보는 눈과 귀가 많은걸.’
도처에 눈과 귀가 깔려 있었다.
다름 아닌, 북경이기 때문이다.
자금성이 위치한 곳에 딱 봐도 ‘나 무인이오’하는 행색의 천휘가 등장했으니 관군과 근방 무인들이 경계하는 것이었다.
누구인지 파악하려는 몸짓이었다.
‘저 중에 살막도 있겠지.’
그렇게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그들의 시선을 대충 흘리면서 나아가기를 잠시.
탁.
그의 발이 완전히 멈췄다.
앞서 봤던 기루의 앞이었다.
‘환혼루(還魂樓)’라고 적힌 간판을 쳐다보던 천휘가 앞으로 걸어갔다.
“오늘 먹고, 죽자고!”
“흐흐, 오늘 돈도 두둑이 챙겼네.”
줄을 선 이들은 꽤나 시끄러웠다.
번화한 북경에서도 화려하고 눈에 띄는 만큼 유명한 기루인지, 줄을 선 사람들이 끝없이 늘어져 있었다.
사실 환혼루는 북경에서 살막이 받는 살행 의뢰 장소 중 한 곳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장사가 잘됐기 때문이다.
살행 의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의뢰자의 신상 보호였다.
그렇기에 살막은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환혼루의 기녀에게 의뢰 내용과 돈을 건네주는 방식으로 의뢰를 받았다.
즉 환혼루는 거래소란 말이었다.
‘아는 사람은 극소수겠지만.’
천휘는 하오문의 정보를 되새겼다.
살막은 휘하의 다른 살문들과 달리 소수의 인원에게만 의뢰를 받았다.
그야 당연했다.
살막의 살수는 값이 비쌌다.
어지간한 부호라고 해도 거의 전재산을 쏟아부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거래를 한다는 것 치고는 살수가 너무 많은데?’
천휘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주변을 보는 그의 시선이 현 살막의 살수들을 빠르게 판별해 냈다.
반절 이상의 인원에게서 살수 특유의 살기와 혈향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럼 저놈들 중 한 놈을 족치면 되려나.’
누구를 족치는 게 좋을까 생각하던 천휘는 뒤에서 다가오는 무거운 기척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백발의 노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드러운 인상의 노인이 자신을 향해서 손짓하며, 입을 달싹였다.
“얼른 오게나. 계속 기다렸다네.”
그와 동시에 전음이 들려왔다.
『막주님께서 기다리신다.』
『응? 공격은 안 하고?』
『막주님께서 너를 안까지 안내하라고 하셨다.』
천휘가 흥미롭다는 듯이 노인을 바라봤다.
『오호, 그래? 그때 왔던 놈이 내 말을 잘 전해 줬나 보네.』
천휘는 씩 웃으면서 ‘홱’하고 몸을 돌리는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둘은 기루의 뒤쪽으로 움직였다.
이윽고 기루의 뒷문에 도착한 그는 천휘를 노려보면서, 입을 뗐다.
“잘 따라와라.”
싸늘한 어조였다.
부드러운 인상은 어느새 사라지고, 차가운 표정을 내비치면서였다.
곧 그는 뒷문으로 들어갔다.
주변에는 곳곳에 숨어 있는 살수들이 살기를 흘리면서, 경계 중이었다.
“응? 기루도 살막이었어?”
“…….”
천휘의 물음에 노인, 만살옹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가야 할 곳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재미없기는.”
천휘가 흥미를 잃었다는 듯 말하고는 이후로 조용하게 만살옹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곧 그들은 어느 문에 도착했고, 문 뒤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내려가면 된다.”
노인은 말과 함께 물러났다.
“같이 안 내려가고?”
“너만 내려오라 하셨다.”
“흐음, 그래?”
천휘는 피식 웃으며, 더 묻지 않고 곧장 발을 옮겨 내려갔다.
함정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내심 그러기를 바라고 있기도 했다.
천휘는 그렇게 기대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고 곧 화려하기 짝이 없는 문을 발견했다.
온통 금칠이 된 문이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서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그를 자극해 왔다.
‘이것 봐라, 짜릿짜릿한데?’
살갗을 따갑게 하는 기운의 파동에 천휘의 눈이 휘어지던 그때였다.
“들어오도록.”
육합전성이 귀를 두드렸다.
문 앞을 지배하고 있던 침묵을 짓누르는 압도적인 공력이 실린 목소리였다.
‘그래, 이거지. 이걸 원했어.’
절로 투기를 일으키는 육합전성에 함박웃음을 지은 천휘는 그대로 문을 열어젖히고,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꽉꽉 막힌 방 안은 화려한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천휘는 그러한 것들엔 조금도 시선을 주지 않고 맞은편에 있는 옥좌만 지그시 응시했다.
하오문에서 읽은 서책엔 이런 말이 있었다.
과거 북경에는 두 명의 황제가 존재했다고.
하나는 자금성에 기거하는 황제.
다른 하나는 그런 황제의 이목이 닿지 않는 어둠을 지배하던 자였다.
그리고 지금 그가 앞에 있었다.
약 반백 년간 모습을 감췄던 어둠을 지배하는 황제, 암제가!
천휘는 옥좌에 앉은 아름다운 여인, 암제를 가만히 응시하다 한쪽 입매를 와락 비틀었다.
“목은 잘 닦고, 기다리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