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66)
166 역사는 반복된다
자알 왕국에서 호위라는 명목으로 보내준 병사는 이백여 명.
생각보다는 적었다.
아마 매년 아레논 왕국에 데려간 병사의 수를 고려했을 것이다.
‘의심받지 않도록 얼추 맞춘 거겠지.’
하지만 이런 적은 수의 병사로 대체 뭘 하려는 걸까.
항구에서 뭔가 할 생각이라는 것 정도는 사라문즈 공왕도 짐작하고 있지만, 이 정도의 병사로는 항구를 장악하기는커녕 난동조차 부리기 어렵다.
자알 왕국의 병사들은 작은 힌트 하나 주지 않은 채 호위로서 배에 올라, 또 그 상태로 아레논 왕국의 항구에 도착했다.
선실에서 창문을 내다보자, 선원과 짐꾼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아레논 왕국의 관리들도 있다.
사라문즈의 관리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뒤에는 귀빈용 마차가 여러 대 서 있다.
마차의 수를 보면 오늘 도착하는 귀빈이 더 있는 모양이다.
어느 정도 밖의 준비가 되면 공왕 차례가 된다.
슬슬 배에서 내릴 시간이 되면서 사라문즈 공왕은 점점 초조해졌다.
자알 왕국은 대체 여기에서 뭘 하려는 건지, 이대로 아레논 왕궁으로 출발해도 되는 건지, 뭐 하나 속 시원히 알고 있는 게 없다.
공왕은 창밖에서 시선을 떼고 자알 병사의 대장을 보았다.
“그대들은 어떻게 하는 건가. 이대로 항구에서 왕도로 갈 생각인가? 아니면 항구에 남을 것인지.”
공왕은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도 물었던 질문을 다시 했다.
자알 대장이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일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공왕 전하께서는 평소처럼 아레논 왕국의 접대를 받으시면 됩니다. 저희가 일을 도모하게 되면 저와 몇몇이 공왕 전하를 보호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그대들이 뭔가 한다면 나도….”
그렇게 말하던 공왕은 문득 항상 곁에 머물던 병사 몇 명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물론 진짜 그들의 속셈은 감시겠지만, 공왕의 주변에는 자알 병사들이 머문다.
특히 그중 열 명은 잠잘 때나 화장실 갈 때조차 항상 옆에 따라붙어 있었다.
한데 그중 두 명이 없다.
‘드, 드디어 시작됐구나.’
뭔지 모르지만 이미 시작되었다.
공왕은 하던 말을 멈추고 자알 대장을 보았다.
자알 대장은 공왕의 시선을 모르는 것처럼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큰 소리가 터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엄청난 굉음이 울리면서 귀가 먹먹해졌다.
“뭐, 뭐야!”
설마 습격인가.
누군가가 배를 습격했나.
어쩌면 아레논 왕국에서 이미 정보를 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종잡을 수 없는 공포 속에 혼란스러워하는데 펑, 펑, 엄청난 굉음이 계속 이어졌다.
창밖을 보니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고 있다.
방 안에 있던 시종과 사라문즈의 호위 두 명이 공왕 곁으로 바짝 붙었다.
시종 한 명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때 길게 꼬리를 잇는 것 같은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피유융.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시종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확인한 뒤 외쳤다.
“하늘로 뭔가가 올라가 불을 뿜고 있습니다. 붉은색의 불꽃이 터지고 있습니다. 뭔가의 신호인 것 같습니다.”
문득 자알 대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히죽, 입술 끝이 올라가 있었다.
‘이건 자알의 짓이구나.’
뭔지 모르지만 성공한 것 같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공왕이 말을 꺼내는데 자알 대장이 차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잠시 나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공왕 전하께서는 아무 걱정 마시고 이곳에 계십시오.”
“뭐.”
공왕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자알 대장이 밖으로 나간다.
함께 있던 자알 왕국의 병사도 모두 그를 따랐다.
“잠깐 멈춰라!”
사라문즈의 호위가 당황해서 자알 대장을 부른다.
“이대로 가버리면 어쩌라는 건가. 우리는 당신들 때문에 호위의 수가 모자라. 전하를 모시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적어도 대장 당신과 한두 명이라도 이곳에 남아서….”
“그대의 말은 알겠지만 무슨 일인지 알아보는 것이 더 급할 것이요. 잠시 확인하고 올 테니 기다려요.”
자알 대장은 더 이상 말을 붙일 여지도 없이 냉정한 모습으로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공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당했다.’
자알 왕국에서는 처음부터 이쪽을 버릴 작정이었다.
당연히 딸을 되찾는 데 힘을 빌려주겠다는 말도 거짓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분노할 틈도 없다.
밖으로 뛰어나갔던 시종이 헐떡이며 돌아와 말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배가 아니라 항구 안쪽 어딘가에서 폭발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호위가 급히 입을 열었다.
“일단은 여기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아직은 폭발의 원인이나 그게 누구의 짓인지 아무도 모를 테니, 지금이라면 아레논 왕국에서 준비한 마차를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호위의 말에 시종이 급히 물건을 챙긴다.
“전하, 서둘러 주십시오.”
호위의 재촉을 받으며 선실을 나가자,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한 채 당황해 밖으로 달려간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알 왕국의 병사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항구에 도착할 무렵부터 그들은 가장 먼저 배에서 내릴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서둘러야 합니다, 전하.”
그렇게 말하는 호위의 얼굴은 잔뜩 긴장되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자알 왕국의 병사는 우리 공국의 옷을 입고 있었다.
호위는 아마 그들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보였을 가능성을 생각해 서두르는 중일 거다.
‘맙소사….’
이제 와서야 이 일의 크기가 현실로 닥쳐왔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공주를 데려오기는커녕 이 나라에서 제대로 출국할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해졌다.
잘못해서 잡히기라도 하면.
그런 생각을 하자 발이 멈췄다.
누군가가 폭발 현장에서 자알 병사를 봤다면 분명 사라문즈 공국이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올라간다.
나가자마자 병사에게 잡힐지도 모른다.
“전하, 아직은 괜찮습니다.”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처럼 호위가 말을 걸었다.
“지금처럼 혼란스러울 때 아무 마차라도 잡아야 합니다.”
초조한 듯한 호위의 목소리에, 공왕은 허우적거리며 다시 발을 놀렸다.
대체 자알 왕국의 병사들은 무슨 짓을 한 걸까.
의문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여기에서 도망치는 것이 우선이다.
소란스러운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아레논 왕국의 관리에게 달려가자, 그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공왕의 일행이 마차에 타도 아무 제지가 없었다.
오히려 서둘러 위험한 장소에서 벗어나게끔 돕는다.
아레논 왕국의 병사들이 마차 주위를 굳히고 이윽고 마차가 막 달리기 시작할 무렵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배다! 먼 해상에 배가 보인다!”
“자알 왕국의 깃발이다!”
“자알 왕국이 쳐들어왔다!”
배가 해상에 보이는데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고?
‘맙소사.’
공왕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자알 왕국의 병사가 무엇을 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아레논은 이제 끝이야.’
앞으로 아레논 왕국의 사정은 한없이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뿐이다.
이 혼란을 틈타 공주를 데리러 가야 한다.
아름다운 그의 딸이 곤란하기 전에, 위험에 빠지기 전에, 서둘러 그녀를 구해야 한다.
더러운 남자들이 딸을 더럽히기 전에.
‘내가… 내가 공주를 구해야 해.’
절망 속에서 아주 작은 불꽃이 살짝 켜진 느낌이 들었다.
공주, 내 귀여운 공주야. 아버지가 너를 구하러 간다, 가고 있어, 내 귀여운 아가.
*
“폐하, 에크빌 왕국이 자알과 결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발테르 공작의 목소리가 접견실 안으로 무겁게 퍼진다.
아레논 왕은 눈을 감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테르 공작이 급한 용무로 면회를 청한 것이 며칠 전의 일이다.
그때 공작이 들고 온 것이 슈테인 후작가의 모반이었다.
옆 나라를 억제하라고 나라에서 보조금까지 지급하는데 에크빌 왕국과 내통했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었지만 공작은 내부자의 밀고와 에크빌이 전쟁 준비를 한다는 정황까지 내밀었다.
증거가 너무 확실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사실 진위가 불분명했다면 공작은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공작은 신중한 사람이다.
… 기가 막히는 일이다.
자국의 귀족, 그것도 변방을 지키라고 높은 자리에 올려둔 귀족이 왕을 배반하다니.
공작이 먼저 눈치챈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공작은 솔선수범하여 후작가와 에크빌의 침략을 막겠다고 나섰지만, 공을 독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가 이 일을 알아낸 것을 숨기고 어디까지나 왕의 명령에 따라 공작가가 움직였다는 형식을 취하려고 했다.
클라우스 일로 오랫동안 불화가 있었지만 그래도 공작은 사사로운 일보다 나라를 위해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왕가의 수치가 지워지는 건 아니지만, 공작이 아니었다면 왕가를 중심으로 하는 구심력은 약해지고, 훗날 무사히 적을 막더라도 왕가의 힘은 약해졌을 것이다.
비웃음 당하는 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자는 없다.
남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는 위엄과 존경이 필요한 법이다.
어쨌든 후작가의 배반을 알자마자 아레논 왕은 각 가문에 그 사실을 통지하고 동원령을 내렸다.
후작가와 에크빌 왕국에서는 우리가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
전쟁이 벌어지기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이번에는 에크빌과 자알 왕국이 손을 잡았다는 증거까지 나왔다고 한다.
마치 굴러떨어지는 왕가 뒤에 거대한 바위가 뒤따라오는 것 같다.
아레논 왕은 입을 꽉 다물었다.
자알은 해군이 강한 곳이다.
반명 아레논 왕국은 예전부터 해전이 약하다.
“자알에서 항구를 봉쇄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잡았습니다. 필시 안톤을 말하는 거겠지요.”
안톤은 아레논 왕국 최대의 항구 도시다.
이 나라의 무역 대부분은 그곳 항구를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물건, 이곳에서 수출하는 곡물과 특산품, 사람들의 이동.
그곳이 막히면 이 나라의 물류는 순식간에 끊기고 만다.
다행히 항구에는 큰돈을 들여 마련한 마도구가 있었다.
그 마도구는 이 세상 전체를 통틀어도 한 대밖에 없는 물건으로, 만든 이는 철갑기사단 때문에 완전히 몰락하다시피 한 다뷔토 백작가의 마도구사였다.
배가 사거리에 들어오면 몇 번의 포격만으로 침몰시킬 수 있다.
자알 왕국이 지금까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면서도 쳐들어오지 못한 건 그 마도구 덕분이다.
유지비는 엄청나지만 돈을 쏟아부을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뭔가 새로운 마도구가 발명되었나.
자국의 마도구는 다뷔토 백작가의 천재에 의해 발전해 왔다.
어쩌면 자알에서도 천재 마도구사가 나타나 새로운 것을 발명했는지도 모른다.
가슴이 불길하게 술렁거렸다.
그런 아레논 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작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자알 왕국에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려는 건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뭔가 있어요. 당장 안톤의 항구를 폐쇄하고 대응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하면 손해가 막심해질 걸세. 무역에 손대고 있는 가문에서도 엄청난 항의가 들어올 테고, 게다가 지금은 여름 축제 때문에 외국의 초청객이 들어오는 중이야. 그렇게 갑자기는….”
말을 하면서 점점 현 상황의 어려움이 피부에 스민다.
어쨌든 안톤에 병력을 추가로 보내고 해군이 즉각 대응해야 한다.
이 일은 다른 가문에도 알려야 할 것이다.
막 사람을 부르려고 했을 때였다.
새파란 얼굴로 시종장이 뛰어 들어왔다.
“안톤 항구에 폭발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뭐, 뭐라고! 설마 자알의 침략인가! 마도구는! 마도구는 어떻게 된 거야! 항구는 마도구로 지키고 있을 것이다.”
아레논 왕이 다그쳤지만 시종장도 더 이상의 정보는 갖고 있지 않았다.
단순히 항구에서 폭발이 있었다는 소식만 일차로 들어온 모양이다.
공작도 이런 사태는 상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평소에는 신중한 빛을 품는 눈동자가 크게 펼쳐져 있었다.
잠시 뒤 구르는 것처럼 시종이 달려왔다.
한발 늦게 다른 소식이 온 모양이다.
“안톤의 항구에 설치된 마도구가 폭파되었다는 소식입니다.”
“!”
맙소사.
아레논 왕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데, 공작의 작은 목소리가 근처에서 들렸다.
“라파를 불러라.”
속삭임 같은 작은 중얼거림에, 시종장 바로 뒤에 서 있던 공작가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즉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공작가 사람이 달려가고, 엇갈리는 것처럼 무관이 접견실에 도착했다.
“안톤 해상에 자알 왕국의 배가 접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
아레논 왕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다리에서 힘이 빠져 서 있을 수 없었다.
시종장이 황급히 그를 부축한다.
공작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그 말이 자알 왕국의 침략을 뜻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걸 말하는 것인지.
공작의 목소리는 안톤의 상황을 전달하는 무관의 말에 묻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