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lter ego is becoming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15)
마계 대전 (2)
“···뭐?”
갑작스러운 소식을 접한 헬라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곳곳에 발생한 전선들이 무너지지 않게 챙기랴, 새로 편입한 영토들을 잡음 없이 수습하랴 한창 정신없던 참이었는데 이게 난데없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가장 먼저 든 것은 의문이었다.
아무리 마룡이 더 강하다고 해도 흑암 공작도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 또한 크루샤이어와 경쟁하며 오랜 시간 마계의 정상에서 군림하던 한 파벌의 수장.
그런데 그런 존재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해버렸다는 건···.
“미쳤군. 아니, 완전히 자포자기한 건가?”
그만큼 마룡 공작의 수작이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마룡 공작의 휘하에 심어두었던 첩자들과의 연락이 모조리 끊어졌어요. 아무래도···.”
[일단 모든 전선에 최대한 누적된 피해를 수습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명해두겠습니다.]“데모니악의 생존자에게서 급보가 도착했습니다!”
흑마법의 기본은 역천(逆天).
세상의 법칙에 순응해 그것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일반적인 마법과는 달리, 흑마법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섭리를 비틀고 변형시키는 건 물론 정면으로 거스르기도 한다.
당연히 그런 게 사용자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리 없었다.
흑마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오염되는 것 또한 그 일환이라 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렇게 부담이 큰 대신 흑마법은 그만큼 기상천외하고 파괴적인 힘을 선사해 준다.
그리고 흑마법사들이 그 막대한 부담을 분산하기 위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대가로 바치는 제물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가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흑마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지.’
약 천 년 전, 한 초월의 흑마법사가 대도시 몇 개분의 어마어마한 산제물은 물론 스스로마저 제물로 사용해 심연에 구멍을 뚫었던 것처럼.
“···자신을 따르는 군단만 제물로 바친 게 아니군.”
“네? 그게 무슨···.”
그 혼잣말에 곁에 있던 시아나가 의아하게 되물었지만, 곧바로 깊은 생각에 잠긴 헬라는 그에 답하지 않았다.
차원 제일의 흑마법 권위자라 자부하는 자신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 그거라면 만만치 않은 상대인 흑암 공작을 단시간에 제압한 것도 이해할 수 있지.’
불사왕 한스가 흑마법을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대가 대부분은 「불사의 심장」이 대신 부담한다.
물론 그 심장을 품고 있다는 것 자체에 어마어마한 위험 요소가 있는 만큼 마냥 공짜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마인드 허브」가 없었다면 진즉에 존재 자체가 집어삼켜지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동안은 마룡 공작도 비슷한 케이스였을 거다.
그놈 정도 되는 고룡이라면 어지간한 대가는 가볍게 이겨내고도 남았을 테니.
그런데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그가 자신을 지키는 것마저 포기했다면···.
자기를 따르는 이들은 물론, 수천 년을 살아온 지고한 고룡이자 마계 유일의 마룡이며 한때 최강이라고까지 불렸던 본인 스스로마저 제물로 바쳤다면?
“···일이 귀찮게 됐네. 흑암 공작이 접촉해 왔을 때만 해도 쉽게 끝날 줄 알았는데.”
짧게 한숨을 내쉰 헬라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혼란.
바야흐로 마계 대전의 서막이었다.
***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마왕의 자리를 두고 각 파벌끼리 각축을 벌이던 세력전에서—.
어디서부턴가 공간을 가르고 튀어나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하얀 괴물들을 상대로 한 섬멸전으로.
“막아라!”
[아무리 죽여도 끝이 없군.]“끄으— 역시 저 괴물들, 마력 내성이 너무 강해!”
한 가지 희소식이라면, 이번 일을 계기로 구심점을 잃고 방황하던 악마족 상당수를 헬헤임에서 거둬들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여러 세력에 속해 있었지만 그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자신을 제물로 사용할 게 뻔한 마룡 공작보다는 헬라 쪽에 붙는 게 훨씬 낫다는 건 굳이 따질 필요도 없는 사실. 덕분에 헬헤임은 사방에서 밀려드는 귀순 요청으로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릴 수 있었다.
이젠 감히 비교할 수 있는 세력 자체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따지면 이 상황도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문제는 저 괴물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룡 공작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곳엔 바글바글할 정도의 괴물들만 남아있을 뿐.
이 모든 일의 원흉이자 대법의 주체인 크루샤이어는 이미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뒤였다.
혹시 몰라 다크 네스트의 본거지에 있던 신전에도 찾아가 봤으나, 지하의 의식장에 있던 입구도 어느새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이미 그 쓸모를 다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어딘가로 옮겨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도 저 물량에도 한계는 있을 테니 계속해서 처치해 나가다 보면 언젠간 끝날 줄 알았건만—.
오래지 않아 그게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가.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던 건가.”
‘불사왕의 심장’과 ‘광기의 씨앗’이 튀어나오고 금방 사라졌던 이전과는 달랐다.
대체 어디에서 생겨나는 건지, 마계 전역에 말 그대로 무한히 쏟아져 나오는 이형의 생명체들.
그 와중에 휩쓸린 희생자들을 먹어 치우며 더욱 강한 존재로 거듭난 괴물들이 세상을 전부 뒤덮어 버릴 기세로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벌써 마계의 10%는 집어삼킨 게 아닐까 싶어질 정도로.
‘크루샤이어, 이게 너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었던 거냐?’
마신이, 마계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어떻게 하더라도 절대로 마왕이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이 땅의 모든 존재를 절멸시켜서라도 세계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말겠노라고—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마왕 자리를 놓고 싸우는 경쟁자가 아닌, 세계의 침략자가 되어버린 마룡을 떠올린 헬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니까 즉, 아예 판을 뒤엎어 버리겠다는 거지?’
사실상 마왕 경쟁은 이미 그녀의 승리로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크루샤이어가 하고 있는 짓은 승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깽판을 치고 있는 것뿐.
그리고 그 말인즉슨···.
“이 자식이 다 차려진 내 밥상에 똥물을 뿌리고 있잖아?”
그녀의 고운 입술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말 그대로였다.
놈이 괜히 쓸데없이 폭주하기 시작하면서, 최대한 온전히 손아귀에 들어와야 할 전리품에 상처가 나고 있지 않은가?
‘내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한 그녀로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처사였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녀의 붉은 눈에서 서늘한 안광이 번뜩였다.
놈이 저렇게 더럽게 나온다면 이쪽도 더는 예의를 차려 상대해 줄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마왕 선출 경쟁인 만큼 최대한 마계 룰에 맞춰서 응해 주려 했는데···.’
저쪽이 먼저 그걸 무시하겠다면 더는 사양하지 않아도 되겠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데이비슨과 헤스페론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 신전과 관련된 모든 게 반칙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무효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그리고 자신이 진지하게 동원할 수 있는 인력들을 생각해 보면 그 정도야 소소한 애교일 뿐이지 않은가?
‘응, 맞아. 난 잘못 없어. 이제부터 일어나는 일은 전부 너 때문임.’
아무런 제약이 없는, 모든 수를 총동원할 수 있는 무제한 승부로 간다면···.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맞설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
“이봐! 넌 뭐 하는 놈이···.”
“잠깐, 이 멍청아! 저 완장 저거 헬라 님의 문양이잖아!”
“엇? 죄, 죄송합니다!”
“이놈은 제가 제대로 교육하겠습니다! 편하게 일 보십쇼!”
틈만 나면 밀어닥치는 괴물들 때문에 한껏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마계의 전장 한복판.
완장을 두른 새카만 로브를 푹 눌러쓴 채, 서서히 녹아내리는 하얀 몸뚱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한 인영이 천천히 자세를 바로 했다.
[흐음, 대충 알겠군. 그럼 어디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그리고 가볍게 발을 내디딘 순간.
그는 어느새 인적 없는 한 공터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체크해 두었던 좌표.
주변에 꼼꼼하게 결계를 두른 그의 몸에서 이글거리는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검은 불길처럼 타오르는 흑마력과 거기에 섞여 나오는 순수한 죽음의 기운이 삽시간에 주변을 뒤덮었다.
[크크큭— 어디 숨을 수 있으면 한번 숨어 보거라.]그 직후.
지저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터질 듯한 기세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자신과 같은 근원을 공유하는 심연의 기운을 추적하기 위해.
***
또 다른 좌표.
품 안에서 작은 병을 꺼내든 오페라 가면의 사내가 그 내용물을 손바닥에 들이부었다.
“···흠, 격에 비해 질이 썩 좋아 보이진 않는군. 이딴 게 용혈이라니.”
그리곤 손가락으로 액체를 비비며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더니···.
할짝—
그것을 가볍게 핥곤 지그시 눈을 감았다.
헬라가 마룡 공작과의 싸움에서 입수했던 혈액.
대체 얼마나 스스로를 마개조했는지 오염도가 지독할 정도였으나, 어차피 내부에 깃든 힘이 목적이 아니었으니 상관없었다.
그는 피를 지배하는 자.
매개체를 통해 그 근원을 추적한 사내의 시선이 한쪽 방향으로 향했다.
***
그런 일들이 일정 거리를 두고 마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마치 영역을 나눠두고 정밀 수사를 하는 것처럼.
하얀 괴물들 사이를 한 생물체가 무인지경으로 움직였다.
“킁킁킁!”
“으적— 으적—!”
“크흥!”
세 개의 머리가 연신 바쁘게 움직였다.
괴물의 살점을 한 입 물어뜯고 냄새 맡기를 반복하며 바람처럼 내달리는 삼두견.
전신을 뒤덮은 털 아래에서 신비로운 문양들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한쪽 눈에 어른거리는 핏빛 광기와 다른 쪽 눈에서 반짝이는 녹색 안광이 연신 주위를 살폈다.
“킁킁!”
그의 몸속에 깃든 「광기의 씨앗」이 심연 너머에서 온 괴물들과 반응하며 그 근원을 빠르게 추적해 나갔다.
—완전히 무너져 내린 데모니악의 본거지.
기존의 악마들을 모조리 몰아낸 괴물들이 차지한 장소였지만, 지금 그곳에 살아있는 놈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화아악—
서서히 녹아내리는 괴물들의 잔해 한가운데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검을 들고 아름다운 빛의 날개를 펼친 채, 눈을 감고 묵묵히 기도를 올리는 사내만이 남아있을 뿐.
마계에 진득하게 고여 있던 음에너지조차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신성한 장막 내부.
사내의 눈이 번쩍 떠지며 태양과도 같은 황금빛 광채가 터져 나왔다.
—지상의 모든 것들이 작게 보이는 드높은 상공.
고오오오—
하부에서 불길을 뿜어대는 전신 슈트를 입은 존재가 지상을 굽어보았다.
이어서 유일하게 금속을 두르지 않은 오른팔을 천천히 앞으로 내밀자, 팔을 감싼 검은 얼룩이 번진 붕대가 스르륵 풀어 헤쳐졌다.
피부에 빼곡하게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과 꿈틀거리는 검은 용.
보는 것만으로도 저주받을 것 같은 그 팔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사내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찾아.”
[끄흐아아아——!]짧은 명령과 함께 그 안에 갇혀있던 암혼이 해방되며, 한때 마왕이었던 존재가 마계의 보랏빛 하늘 아래로 풀려나왔다.
—그리고 설정해 둔 마지막 좌표.
“킁!”
예닐곱 살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금발 꼬마 아이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콧물을 들이켰다.
공기가 영 몸에 맞지 않아 오래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으나, 환경에 예민한 하이 엘프도 아니니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파앗—!
번쩍이는 빛과 함께 중형차 크기의 어린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입에 물고 있는 영롱한 구슬이 광채를 발하며 그 몸이 점점 커져 가기 시작했다.
‘원래 어디 일족 출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래곤끼리는 같은 일족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게 있었다.
세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선 서로 간의 소통이 필수였으니.
물론 상대가 온전한 드래곤이 아니게 된 만큼 완벽하진 않겠지만,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 목표를 추적하는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으니까.
***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던 헬라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풀곤 천천히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헬라 님? 어디 가세요?”
그에 옆에서 분주하게 뭔가를 처리하던 시아나가 황급히 따라붙었다.
한창 밀려드는 괴물들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 아무 말 없이 안에 틀어박혔던 그녀가 갑자기 움직임을 보였으니 당연한 반응일 터.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녀를 돌아본 헬라가 태연하게 답했다.
“애들한테 최대한 버티고 있으라고 해.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네?”
그 뜬금없는 말에 멍하니 눈만 깜박거리는 시아나를 보며 헬라가 상쾌한 미소를 머금었다.
“놈이 어디 있는지 찾았거든.”
사실 작정하고 몸을 숨긴 크루샤이어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알아낼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으니.
하지만 마계 전역에 흩어져 각자의 방식으로 추적에 나선 이들의 연계 앞에서는 무의미한 발버둥일 뿐이었다.
머릿속에 마계의 지도가 떠올랐다.
그리고 여섯이나 되는··· 아니, 그녀까지 포함해 총 일곱 개의 추적 결과가 하나로 조합되었다.
겹치는 부분을 선별하고 부족했던 부분이 서로 보완되며, 일곱 지점에서 시작된 조사가 한 점으로 수렴되었다.
그렇게 해서 산출된 단 하나의 교점 좌표.
‘어디 어떤 꼬락서니를 하고 있는지 얼굴이나 한번 볼까?’
명상에 들어간 헬라가 「개체 집결」을 사용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