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레나는 의리를 아는 마탑주였다.
그녀에게 있어 최정혁은 제1대 창립 멤버나 다름없었다.
맨땅이나 다름없던 신생 마탑에 들어와 홀로 필드에서 뛰어 준 참 고마운 용병.
능력도 발군이라, 의뢰하는 일들은 무엇이 되었든 척척 해결해 주었다.
힘들었던 시절 최정혁이 아니었다면, 레나는 아마 극심한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호기롭게 마탑을 설립하고 나서도 그녀는 꽤 오랫동안 혼자였으니까.
레나는 항상 최정혁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의 마음속에서 마탑의 대표 용병은 최정혁.
다만, 황금이 의리보다는 살짝 강했을 뿐이다.
아주 살짝.
“레나의 마탑에서 대표 용병으로 참석한 이호영입니다.”
그런 이유로 23구역 마탑 연합 미팅에 참석했던 것은 바로 나였다.
레나의 변절을 손가락질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표 용병으로 미팅에 참석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라고.
최정혁의 기분을 살짝 상하게 하는 것으로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런데 그쪽 마탑에서는 대표 용병이랄 게 있나? 어차피 용병도 둘밖에 없으면서.”
“맞아! 마탑이 무슨 구멍가게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도 운영이 되는 건가?”
신입 기죽이기를 시도하는 이 두 녀석들 모두 나처럼 용병이었다.
하나는 검은별 마탑 소속의 모어핀.
또 다른 한 녀석은 붉은사막 마탑의 로이라는 놈이다.
마탑주라면 모를까. 용병 주제에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게 우습긴 한데, 이게 다 본인이 소속된 마탑주의 묵인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기 싸움 같은 것이겠지. 그리고 결국에는…….’
이들이 레나를 괜히 연합에 끼워 줬을 리가 없다.
최근 우리 마탑의 행보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을 터.
가까이서 직접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레나의 마탑은 최정혁이 영입된 이후 조금씩 기틀을 잡아 가기 시작했다.
최정혁은 필드에서, 레나는 마탑의 연구실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거기에 나의 가세가 결정적이었다.
우리 마탑에 거액의 투자금이 유치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곧이어 웬 미친놈이 빠루로 중급 마굴을 박살 냈다는 이야기가 퍼져 나갔다.
이들은 그런 우리의 전력을 탐색하고 견제하고자 연합에 잠시 끼워 준 것일지도 모른다.
여차하면 적당히 간 보다가 빼 버릴 가능성도 생각해 두어야 한다.
물론 레나도 이 사실을 알고는 있는 것 같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그녀의 마음.
어리숙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어른스럽다.
“로이! 신입 마탑의 용병 말이야, 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던데, 들어는 봤지? 마굴에서 빠루를 들고 설쳤다던데.”
“어, 들어 봤어. 그 정도면 완전 마법계의 퇴보 아니냐?!”
또다시 이 두 녀석.
둘이서 떠드는 것이지만, 다 들린다.
어차피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겠지만.
레나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금발을 빙빙 감아 돌리며 짜증을 냈다.
“거 더럽게 시끄럽네! 떠들 때마다 어떻게 침이 여기까지 튀지? 좀 닥쳐 주면 좋을 텐데.”
“뭐라고요?”
“다 들리니까 닥치라고. 아니면 귓속말로 하든가.”
레나에게 이런 거친 면이 있는 줄은 몰랐다.
비록 신생이기는 하나 그녀도 엄연한 마탑주.
용병들과는 급이 달랐기에, 로이와 모어핀은 레나의 짜증에 표정만 찌푸릴 뿐이었다.
당연히 저쪽에서도 마탑주가 나서야 격이 맞다.
“레나 마탑주! 아직 어려서 그런지 말하는 수준이 참 볼만하군요?”
역시 저쪽에서도 마탑주가 참전했다.
붉은사막 마탑주 게르헨. 흰 수염이 인상적이며, 레나보다는 한참 선배다.
하지만 레나는 지지 않고 바로 맞섰다.
“정작 수준이 낮은 건 붉은사막의 용병인 거 같습니다만?”
나는 이 상황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유치해질 줄은 몰랐으니까.
‘이런 설정. 진짜 별로야.’
나는 미팅에 참석하기 직전에 받은 공략집을 다시금 되뇌어 보았다.
[23구역의 마탑 연합은 오래된 전통 한 가지를 갖고 있습니다. 신입 마탑이 연합에 들어오면 반드시 신고식을 치른다는 것입니다. 그 타깃은 대표로 참석한 용병이며, 따라서 당신은 회의가 시작되기 전 어떻게 해서든 무대 위로 올라가 선배 용병과 한바탕 데뷔전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마탑주 체면에 전면에 나설 수는 없고, 결국 희생양은 함께 참석한 용병이라는 것이다.
싫다.
이렇게 유치한 설정이 존재하는 줄 미리 알았으면 최정혁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무대 위에 올라가게 될 운명.
레나가 방금 전 까칠하게 나온 것도,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과정이며 피해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로 보아선 모어핀과 로이라는 두 용병이 계속 나에게 시비를 걸 공산이 컸다.
기왕 맞을 매라면 빨리 맞자.
“굳이 이런 식의 빌드업이 필요합니까? 바로 무대로 올라가죠. 누굽니까, 내 상대?”
나는 인벤토리에서 빠루를 꺼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맞아야 할 매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레나는 날 보고는 기특한 표정을 지으며 목을 긋는 시늉을 한다.
누가 올라오든 반 죽여 놓으라는 의미였다.
뜬금없이 생성된 퀘스트.
역시 14층의 퀘스트는 내 소속 마탑주의 의지에 달려 있다.
[신고식에서 상대 용병을 처절하게 쓰러뜨리십시오.]처절하게라니.
레나가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어쨌든 퀘스트는 퀘스트.
내 진행률이 또 올라가면 최정혁은 더 초조해하겠지?
* * *
아무런 의미도, 유익도 없는 쓰잘데기없는 전통.
이젠 깨질 때도 됐다.
이 고귀한 마법의 대륙에서 이런 유치한 일이 계속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러니까 23구역이 촌구석이라는 소리를 듣지.
나는 빠루를 치켜들고는 무대 위로 올라온 로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붉은사막 마탑 소속의 잔뼈 굵은 용병.
신고식에 출전시킬 정도면 보통은 넘을 것이다.
우리의 대치 상황을 보고는 다들 한마디씩 웅성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쓰면 빠루를 들고 다니는 거지?”
“완드도 아니고, 저런 흉측한 것을!”
당연히 관심사는 로이가 아닌 내 쪽이다.
중급 마굴 이후 나는 나름 유명세를 탔으니까.
그렇다고 이 신고식에서 반전을 기대하는 이도 없었다.
“로이가 단단히 벼르던데, 아마 이 신고식은 역대로 호될 거야.”
“그동안 신규 마탑이 없어서 심심했는데 이런 게 꿀잼이지.”
나의 신고식 파트너로 낙점된 로이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물었다.
“시작할까?”
“좋을 대로.”
“힐러의 치료를 받겠지만, 당분간 걷기 힘들 거야. 특히 단전 쪽이 많이 쑤실 거고.”
소원이라면, 그렇게 만들어 줘야 할 거 같다.
로이는 시작하자마자 뒷걸음질을 치며 거리를 벌렸다.
마법사들 간의 싸움에선 거리를 벌리는 것이 일반적.
게다가 나에 대한 소문도 들었으니 가까이 붙는 건 최대한 피할 것이다.
“신참! 그럼 솜씨 한번 볼까?”
슝!
슝!
윈드 미사일이 날아온다.
저 녀석의 마법 속성은 바람.
그리 대단한 공격은 아니었다.
간을 보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기 위해서.
타악!
타악!
나는 빠루를 휘둘러 녀석의 공격을 모두 쳐냈다.
마력을 머금은 바람이 스르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려왔다.
이런 건 처음 봤을 것이다.
지금은 오롯이 마법의 시대, 더 이상 냉병기를 쓰는 전사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아참!
마교라는 이름으로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검투사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나는 로이를 향해 두 걸음 다가갔다.
이 녀석. 조금 당황은 했지만,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았다.
– 이놈 봐라?
방금 전의 공격이 파훼당한 건, 충분히 마력을 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슝!
슝!
또다시 같은 공격.
강도만 조금 더 세졌을 뿐이다.
타악!
타악!
컨트롤 C, 컨트롤 V로 만든 것 같은 장면이 다시 한번 펼쳐졌다.
규모가 큰 마탑의 대표 용병이라 해서 별 볼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준은 최정혁 쪽이 훨씬 높다.
녀석이었다면 똑같은 공격을 반복하는 멍청이 짓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저벅. 저벅.
나는 다시 두 걸음을 걸어갔다.
체감적으로도 확연하게 좁혀진 거리.
이제야 슬슬 위기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 뭐야! 이 새끼!
슝! 슝! 슝! 슝!
이제 제법 강도가 강해졌다.
윈드 미사일이 정신없이 날아온다.
저런 식으로 마력을 퍼부었다가는 금세 바닥날 텐데.
위기 대응 능력도 그닥.
마법이 아니라 검술을 배웠어도 둔재였을 녀석이다.
타악! 타악!
나는 빠루를 휘두르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상당히 가까워진 거리.
점점 더 좁혀지는 거리만큼 녀석의 공격도 점점 더 빨라진다.
녀석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신고식이라…….’
마음에 드는 방식은 아니지만, 기왕 신고를 할 거면 어설프게 하고 싶지 않다.
드디어 사정거리.
나는 빠루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퍼어억!
나는 빠루를 휘둘렀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로이가 바닥에 무릎을 대며 쓰러졌다.
이미 녀석의 표정엔 얼이 다 빠져 있었다.
“당분간 걷기 힘들 거야. 특히 단전 쪽이 많이 쑤실 거고.”
어차피 여기엔 힐러들도 있으니 부담 없이 팰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전통.
없어질 때도 됐다.
퍼어어억!
퍼어어어억!
* * *
불새 마탑의 주인 가가야로.
이번 모임의 주최자이자 칼리아 23구역 마탑주들의 실질적인 수장.
그가 드디어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내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었기에.”
장내에 울리는 중후한 음성.
모두들 그의 입에 시선을 주목했다.
‘급한 일일 리가 없지.’
외양과 목소리에서 기품과 근엄함을 내비치지만, 이 노인네도 결국 다른 마탑주들과 한통속.
나의 신고식을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 저놈이군.
가가야로는 오자마자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역시 내 신고식을 본 것이 틀림없다.
또한 이런 말도 안 되는 전통을 오랜 세월 조장해 왔겠지.
괴팍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그의 등장으로 마탑 연합 회의는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안건 대부분이 마탑주들의 이권과 관련된 내용들.
레나는 하품을 하며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녀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들만 오고 갔었기에.
‘졸지 않은 게 용하네.’
우리 마탑은 완전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발언권을 주지도 않았을뿐더러, 딱히 할 이야기도 없었다.
한껏 치장하고 온 레나의 짧은 드레스만 무색해졌다.
“호영아, 그냥 갈까?”
레나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루하기는 나도 마찬가지긴 한데 이건 좀 아니지.
“마탑주님, 체통 좀.”
“좀 그런가?”
“당연하죠.”
“알겠어. 너의 빠루질을 직접 본 게 오늘의 유일한 소득이네.”
레나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 순간 가가야로도 나를 바라본다.
우리의 잡담이 거슬렸는지 그의 인상이 살짝 험악해졌다.
“그럼 마지막 안건은…….”
이번 가가야로의 발언에는 내 귀가 쫑긋 세워졌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으니까.
“마교 잔당 토벌에 관한 것이오.”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장내 전체의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
마교 이야기에 긴장과 적막이 잠시 감돈다.
– 마교?
– 그 때려죽일 놈들!
– 그런데 마교라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
마음의 목소리들이 봇물처럼 터져 들려왔다.
이들의 마음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증오. 그리고 공포.
“의장님! 마교 토벌은 찬성합니다만, 그들은 한동안 자취를 감춘 것으로…….”
“소재가 파악됐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소. 그리고 오늘 안건이 더 중요해진 이유는 바로 우리 23구역에서 그곳으로 원정을 가기로 결정됐기 때문이오.”
가가야로의 발표에 순간 장내가 술렁였다.
칼리아의 23구역.
중심부로부터 많이 떨어진 변방이었기에, 마법의 수준은 다소 낙후되어있지만 그래도 평화로웠던 곳.
당연히 마교는 소문으로만 들어 봤었다.
“본 의장의 생각으로는, 선발대로 출전할 마탑 하나를 이 자리에서 뽑는 것이 어떨까 싶소만.”
가가야로의 말에 다들 숨을 죽이고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 111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