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65)
65화
가슴에 그려진 엑스자 모양의 검상.
조무건은 그대로 무대 아래로 떨어졌다.
나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말도 안 돼!”
장내 분위기는 경악 그 자체였다.
이런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건 솔직히 나도 마찬가지.
승리를 확신하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일방적이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강해졌다.’
확실히 나는 이번 무대를 계기로 각성한 느낌이었다.
무명보와 무영추혼검의 조합은 그 어느 때보다 조화로웠으며, 그동안 막혀 있던 벽이 확 뚫린 기분이었다.
서고에서 무명보를 얻은 것, 그 이후 좌호법 진천을 만나 훈수를 받은 것, 무명보를 펼치기에 최적의 무대를 만나 각성한 것. 여러 기연들이 이어지며 나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둘 수 있었다.
손서연의 성장에 내심 불안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녀와 보조를 맞추며 나 역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서.
피의 날이 될 수 있었던 이번 10층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안겨 주었다.
“들것!!”
“어서 의무실로!”
쓰러진 조무건으로 인해 연무장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해독 시험에 이어 이번에도 조무건은 중환자가 되어 버렸다.
녀석은 이제부터는 그냥 편히 쉬면 된다.
나를 보는 생도들의 눈빛도 바로 달라졌다.
지난 해독 시험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음에도, 나에 대한 물음표가 존재했던 것이 사실.
하지만 이번 대결에서 조무건을 압도하면서, 지난 시험의 활약이 재조명받게 된 것이다.
“정말 내공으로 독을 그렇게 빨리 몰아낸 거였어?”
“난 당연히 저 녀석이 항독지체일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내공으로 독을 몰아낸 거라면 이미 생도 수준이 아니잖아!”
오해는 깊어지고 있었다.
왜 다들 만독불침의 가능성은 아예 배제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 * *
채이설은 아쉽게도 세 번째 관문에서 탈락을 하고 말았다.
하필 상대가 너무 강자였다.
도종 출신의 적장자 천호연은 채이설을 지목한 후 도(刀)의 정수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이변이 없다면 천마지로의 마지막 단계까지 갈 수 있는 최고의 실력자. 그런 인물을 상대로 채이설은 탈락하기 직전까지 꽤 선전을 해 주었다.
“잘했어요. 이설 씨. 작전 자체는 아주 현명했어요.”
“잔머리를 써 봤는데 실력이 안 되는 건 역시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에요.”
채이설은 무림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인 치유 스킬을 영리하게 사용했다.
치명상을 입어 상대를 방심하게 만든 후, 회심의 반격을 준비했던 것.
작전도 성공적으로 실행했으니 그녀로서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그냥 상대가 너무 강했다.
“여기 무림이 너무 사기적인 곳이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린 평범한 직장인이었잖아요?”
“그건 그렇죠. 히히.”
“이제는 시험의 압박도 없으니 편히 쉬도록 해요. 탑에 들어온 이후 너무 숨 막혔으니까요.”
이번 10층은 피의 날을 피하면서 지금까지는 매우 안전한 곳이었다.
유일한 클리어 조건은 일정 기간의 생존이었을 뿐이고.
“이번엔 호영 씨 말 안 들으려고요. 시간이 있을 때 충분히 수련해 둘 겁니다. 언제까지 호영 씨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으니.”
역시 채이설다운 생각이었다.
천마지로를 계속 함께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녀는 혼자서도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낼 것이다.
“그리고, 생도 신분에서 졸업한 거 축하해요. 이설 씨.”
“치. 혹시 놀리는 거 아니죠?”
“그럴 리가요. 그동안의 이설 씨 활약이 인상적이었으니 분명 나쁘지 않은 보직을 받을 겁니다.”
“고마워요. 그런데 지금 너무 몰입해 계신 거 아니에요? 어차피 우린 탑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인데.”
“매 순간 몰입해야죠.”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닌 천마신교니까.
채이설의 말처럼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운명이지만, 난 엄연히 천마의 후계자.
조금 유치한 일이긴 하지만, 그 사명만큼은 항상 간직하고 싶었다.
천마지로의 세 번째 시험이 모두 종료된 것은 다음 날이었다.
총 서른여덟 번의 대결이 밀도 있게 펼쳐지며, 정확히 절반의 인원만이 남게 되었다.
역시 예상대로 적지 않은 이변들이 일어났다.
장외패라는 변칙적인 조건하에 대결이 이루어지다 보니 언더독의 반란이 심심치 않게 속출했던 것.
하지만 실전은 훨씬 더 변칙적이며 가혹한 곳이란 걸 모르는 생도는 없다.
더욱이 이곳은 적자생존의 원칙이 지배하는 천마신교.
남은 자가 강한 것이며, 패자는 말이 없어야 하는 곳이다.
“이제부터 모든 생도들의 마신서고의 출입을 금하겠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결국 태무정의 선언이 있었다.
아쉬웠다.
출입이 허용된 곳은 비록 3층뿐이었지만, 천마신교의 수많은 보법서를 열람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었으니까.
게다가 아직 무명보 하권은 이론적으로도 완전하게 익히지 못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어쩌면 이제 무명보는 3층에서 비급관으로 옮겨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 *
곧바로 천마지로의 다음 시험 내용이 공개되었다.
먼저, 인명부에서 표적을 정할 것.
그리고 보름간 철저히 준비할 것.
마지막으로는 암살에 성공할 것.
천마지로의 네 번째 시험은 암살이었다.
암살 대상자는 정파와 사파의 인물.
당연히 거물급은 아니었다.
암살 대상자마다 수준 차이는 있지만, 생도 수준에서 해 볼 만하다는 대상을 추린 것이다.
물론 정공법으로는 하나같이 승산이 없는 인물들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암살.
상대의 실력이 아무리 높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이기만 하면 된다.
“이번 시험이 끝나면 성과에 따라 특별 보상이 있을 것이다!”
물론 표적의 난도가 높을수록 그 보상은 더욱더 커질 것이 자명한 일.
욕심을 내 볼 만한 상황이지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선인이나 의인은 표적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이미 탑의 10층을 경험하고 있지만, 살인은 아직도 꺼려지니까.
“이호영!”
생도들은 한 명씩 불려가 인명부에서 표적을 정하게 되었다.
내 차례는 천호연에 이은 두 번째.
이번에도 역시 상위지명이다.
천마지로를 거치며 내 위상은 갈수록 높아진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
집무실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태무정의 표정이 묘했다.
그로선 알쏭달쏭할 것이다.
내가 정말로 천마의 제자인지 아닌지.
“여전히 못 믿으시겠습니까?”
“으흠!”
대답을 피하는 것을 보니 나에 대한 믿음이 조금은 올라간 모양이다.
그는 내게 인명부를 건네며 말했다.
“신중히 고르도록 해라.”
너무 무난한 표적을 고르는 것도 문제지만, 괜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의미였다.
인명부에는 간단한 정보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소속 문파, 무공 수위, 나이, 특기, 가족 관계…….
일단은 사파 쪽 인물부터 훑었다.
이번 시험을 대하는 나의 최우선 신조는 악인을 제거하는 것이니까.
때마침 현자의 상태창은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인명부에 등록된 인물의 정보와 당신의 능력치를 종합하여 암살 성공 확률을 계산하겠습니다.]아주 바람직한 정보였다.
암살은 천마지로가 시작된 이후 가장 위험한 미션이었다.
적진으로 홀로 쳐들어가 은밀히 목숨줄을 끊고 나오는 것.
제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한다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암살에 실패한다면 십중팔구 내가 살아서 돌아오긴 어려우며, 심지어 암살에 성공하더라도 내 안위가 무사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인명부에는 나만 볼 수 있는 정보가 하나 추가되었다.
나의 암살 성공 확률.
쭈욱 훑어보니 스펙트럼은 아주 넓었다.
5퍼센트부터 89퍼센트까지.
정파 쪽까지 범위를 넓혀 보니 최하 확률은 3%까지 떨어진다.
[10퍼센트 이하 확률의 인물을 표적으로 삼아 성공할 경우, 시스템 자체에서도 보상을 제공할 예정입니다.]10퍼센트.
작은 확률이지만,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이 확률은 오롯이 나의 능력치만 고려된 결과이니 내가 가진 아이템에 펫까지 더한다면 확률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사실 나는 일신의 능력보다는 덕지덕지 붙은 옵션이 훨씬 더 사기적인 케이스.
현자의 상태창이 주는 정보에, 니케의 행운 보정, 공격과 방어 아이템 모두 훌륭한 데다가 펫 소환까지 감안한다면…….
게다가 여차하면 캥수를 타고 도망가면 된다.
“앞서 다녀간 천호연은 누굴 선택했습니까?”
“미안하지만 말해 줄 수 없다네. 정보가 새어 나간다면 해당 생도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으니까.”
“역시 그렇군요.”
천호연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10퍼센트 안쪽에서만 고르더라도 가장 빅네임일 것이다.
“사파 적사문의 매호평을 표적으로 하겠습니다.”
암살 성공 확률 9.87 퍼센트.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했다.
당연히 태무정의 판단은 많이 달랐지만.
“……너, 제정신인 것이냐?”
“인명부는 장로님께서 직접 작성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적힌 인물 중 하나를 고르면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설마 적사문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닐 테고. 인명부에 나온 대로 매호평은 적사문 문주의 적장자이다. 네 선택이 터무니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느냐?”
더 어이없는 건 내 쪽이었다.
그럴 거면 인명부에 그 이름 자체를 넣질 말던가.
“쉬운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분의 제자라고.”
내 말에 태무정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역시 천마신교 내에서 사부는 거의 신적 존재나 다름없다.
“진실은 지존께서 폐관을 마치시면 밝혀질 것! 더는 그분에 대해 거론하지 말라!”
역시 태부정은 예전보다 한발 물러선 입장이었다.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 내 목줄을 쥔 걸 생각한다면, 이젠 내 말에 어느 정도 신빙성을 두는 모양이다.
어쨌든 내가 천호연보다는 훨씬 더 대어를 찍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
앞으로의 보름이 중요할 것 같다.
* * *
“호송대?”
조금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다.
천마지로의 세 번째 시험에서 떨어진 조무건의 거취가 정해진 것.
출신 가문이 신교 내에서 워낙 명문이다 보니, 다른 탈락자들보다는 좋은 보직을 받을 거라 예상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가 받은 첫 보직은 호송대.
임시직이긴 하지만 암살 임무를 떠나는 다른 생도의 호송대 역할이었다.
“조무건이 짐꾼이라니 이게 말이 돼?”
“그 금수저가?”
말이 좋아서 호송대지 사실상 짐꾼이나 다름없는 역할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배경으로는 조무건이 조기 탈락을 하면서 가문의 분노를 크게 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보직 배정 또한 그의 가문 쪽에서 손을 썼다는 후문.
일종의 징벌인 셈이다.
“그런데 누구의 호송대가 될 거라는 얘기도 있어?”
“그건 아직 모르지만 조무건이 짐꾼으로 붙으면 오히려 더 불편할 듯.”
“맞아! 짐꾼이 아니라 거의 상관일 거 같은데?”
생도들의 관심은 조무건이 과연 누구와 함께할지였다.
조무건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가 순순히 짐꾼 역할을 할 리도 만무한 일.
도리어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며 괴롭힐 거라고들 예상했다.
‘어쩔 수 없이 자원봉사 좀 해야겠군.’
다들 그렇게 불편해하니 내가 기꺼이 희생을 좀 해 볼 생각이었다.
– 66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