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82)
187화. 비룡대 탈출 (2)
언가권, 골타.
그것은 병장기의 일종인 철퇴를 권법의 묘리로 해석하여 맨몸으로 재현해낸 초식이었다.
위력 또한 다르지 않았으며.
일찍이 절정에 이른 녹림의 고수 혈괴의 낫에 서린 강기를 처부순 것도 모자라 그 가슴팍에 바람구멍까지 뚫어놓았다.
허나.
콰아아앙—!!
오늘의 결과는 사뭇 달랐다.
언미희의 몸이 다시 한번 뒤로 튕겨 나갔다.
고 노야의 도는 강맹했고 언미희의 권에 담긴 기세는 두 쪽으로 갈라졌다.
“…크윽!”
언미희는 침음했다.
보다 강한 힘에 의해 이쪽의 강기가 파훼되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오는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것은 이제 막 강기를 다루기 시작한 언미희에게 있어 견디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허나.
타앗.
고 노야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노인의 발걸음은 또다시 언미희를 추적했고 무자비한 도가 재차 휘둘러졌다.
카아앙.
언미희는 가까스로 막아내었다.
카아앙.
또다시 두 번의 충격이 일었다.
허나 그마저도 시작에 불과했다.
캉, 카아앙, 캉!
도살지도 일초식 난은 살을 다지며, 이초식 륙은 깎아낸다. 두 초식은 서로의 꼬리를 물며 연계공격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것은.
눈앞의 적을 적이 아닌 한낱 고깃덩어리로 만들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카앙, 카앙, 카앙.
정신없이 막아내는 한편, 언미희의 시선에 문득 고 노야의 얼굴이 스쳤다. 그리고.
흠칫.
무감정한 눈빛을 마주했다.
짐승을 도축하는 자의 눈이었다.
으스스.
언미희의 등에 오한이 스쳤다.
그것은 과거, 천향루에 머물던 시절 고 노야의 곁을 스칠 때마다 느끼곤 하던 감각이었다.
캉, 카아앙!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으나.
아주 잠깐이라도 방어가 비는 순간, 살점이 난자되고 뼈가 짓이겨질 것이다.
“…크!”
언미희는 죽음을 상상했다.
그것은 언미희의 움직임을 소극적으로 만들었으며, 이내 마음속에서 공포가 눈을 떴다.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졌고,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공격조차 미묘하게 한 박자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몸의 유연함이 사라지고.
두 팔이 서로 엉켜 들었다.
카앙!
그리고.
누적된 시간의 차이가 한 초식만큼 벌어진 순간, 다시 한번 무자비한 강기가 내려찍어졌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삼초식, 참(斬).
“…아.”
도신은 태산처럼 거대했다.
그 순간, 언미희는 죽음으로 가득 찼던 그 지하공간에서 자신을 향해 뻗어지던 ‘아버지’의 주먹을 떠올렸다.
“어, 언니이이—!!”
허나 그때였다.
“정신 차려요! 죽으면 확 그냥 오라버니랑 언니 동생까지 둘 다 내가 꼬셔서 양옆에 거느려버릴 거니까!”
“…….”
타앙!
“하아압—!”
언미희는 진각을 밟으며 기합을 내질렀다. 심혼을 일깨운 뒤, 두 눈을 크게 뜨고 떨어지는 공포를 마주했다.
태산이 아니다.
고작 한 자루의 도일 뿐이다.
우우웅.
언미희의 권갑이 울었다.
두 팔이 교차하며 위를 막았다.
콰아아아앙—!!
“크……!”
그 위로 도가 내려찍어졌다.
언미희의 온몸이 흔들렸다. 허나.
쿠우웅.
쓰러지지 않았다.
충격을 온전히 받아내었으며, 이내 언미희의 온몸을 타고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외강내유(外强內柔).
강하되 속이 부드러운 것은 오히려 부러지지 않는다. 쿠웅, 충격이 발아래의 지면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후욱, 퍼어억.
“……!”
언미희의 무릎이 고 노야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고 노야의 몸이 붕 떠올랐다.
처음으로 고 노야가 밀려났다.
“…….”
허나 언미희는 직감했다.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무릎이 닿기 직전, 고 노야가 먼저 땅을 박차고 몸을 빼내서 충격을 최소화한 것이다.
탓, 저만치에 고 노야가 착지했다. 그리고.
“…제법이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허나 시선은 언미희를 향하지 않았다. 고 노야가 뒤를 돌아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루주, 어쩌면 당신의 제자를 정말로 죽이게 될 것 같소만. 계속해도 괜찮겠소?”
“…….”
지소약의 표정이 흔들렸다.
“…미희야. 정말 대단하구나. 그 짧은 사이에 그런 성취를 이루다니. 그래서 나는 더욱 안타까워. 부탁이니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보면—”
타앙.
허나 채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다시 언미희가 땅을 박차며 고 노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겨우 이쪽으로 끌어온 기세를 흐지부지 놓쳐선 안 된다.
후욱.
다시 고 노야의 도가 뻗어졌다.
타앙.
허나 그때, 충돌 직전 언미희의 몸이 뚝 멈추었다. 제자리에서 뛰어오른 뒤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발꿈치가 내려찍어졌다.
언가권(彦家拳), 유성추(流星錘).
콰아아앙—!!
고 노야의 도가 막아섰다.
“……!”
고 노야의 눈썹이 흔들렸다.
권갑도 아닌 맨발과 도가 부딪혔음에도 마치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극한으로 단련된 권법가의 신체는 그 자체로 병장기가 되며, 이내 강기마저도 담아낼 그릇이 된다.
쾅, 콰앙, 콰앙—!!
언미희의 공격이 계속 몰아쳤다.
발과 무릎, 주먹, 어깨, 온몸에서 온갖 종류의 병장기를 본뜬 움직임들이 가차 없이 이어졌다.
그녀의 몸은 더 이상 뼈와 살이 아닌 하나의 병기였으며, 고로 베어질 것을 염려하지 않았다.
카가가강!
“으아아아아아—!!”
* * *
캉, 카앙!
언미희는 강했다.
한결같은 우직함으로 쌓아 올린 신체와 기술이 이벽이라는 기연, 그리고 깨달음을 만나 활짝 꽃을 피웠다.
강기의 발현과 진퇴는 숨 쉬듯 완숙했으며, 그것은 ‘갓 절정에 이른’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카앙, 카앙, 카앙.
“…크읏!”
고 노야의 수비를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경험과 내력의 절대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연신 수세에 밀리면서도 고 노야의 눈은 건조했다. 웅크린 맹수처럼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기에, 언미희는 더욱 공세를 늦출 수 없었다.
허나… 시간문제다.
제아무리 강기의 사용을 조절한다 해도, 당연히 내력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
이내 언미희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
또한.
공손수와 파진성 역시 그러한 사실을 눈치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힘이 없어 그저 지켜보는 것은 퍽 지긋지긋했으며, 언미희에게 뒤처져버린 것 역시 유쾌하지는 않았다.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했다.
“파 소협. 도박 한번 안 할래요?”
그리고 공손수가 말했다.
“…뭐 어떡하자는 건데?”
공손수가 침착하게 설명을 이었다. 이내 파진성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나보고 달려들라고?”
“네. 제 생각에는요. 언니가 이곳을 빠져나가 오라버니의 힘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요.”
“…….”
파진성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강기와 강기가 난무하며 충격파를 발산하는 언미희와 고 노야의 접전을 힐끔 지켜보았다.
“케헤, 어째 자살행위 같은데…….”
“…뭐, 부정은 안 할게요. 그래도 우리가 정말로 인질로서 가치가 있다면… 가급적 죽이진 않지 않을까요?”
공손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의 파 소협이라면 일합 정돈 받아낼 수 있겠죠. 뭐, 재수 없으면 팔다리 하나쯤은 날아갈 수도 있겠지만요.”
“…시바. 너무한 거 아니냐?”
“강요는 안 할게요. 솔직히 미친 짓이란 생각은 저도 들거든요. 그래도…….”
피식, 공손수가 웃었다.
“다친다면 그 값은 나중에 암영각에서 섭섭지 않게 쳐 드릴게요. 낭인 파 소협.”
“…케헤.”
파진성이 마주 웃었다.
철컹, 좌수로 검을 쥐었다.
“그래, 감히 날 돈으로 사겠다고? 나중에 가서 딴소리 마라. 전(前) 해남제일 후기지수의 몸값은 결코 싸지 않을 거다. 케헤헤!”
“아무렴요~”
케헤, 파진성이 웃었다. 그리고.
타다닷.
“끼에에에에엑—!!”
그 즉시 파진성이 땅을 박찼다.
무시무시한 격전의 한가운데로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탓, 날아오른 몸이 이내 그물을 그렸다.
청해십이검(靑海十二劍), 파랑격쇄(派浪擊碎).
“……!”
“파, 파 소협……?!”
일순 언미희와 고 노야가 일제히 멈추었다. 그리고 고 노야의 반응이 좀 더 빨랐다.
훅.
고 노야는 우선 언미희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달려드는 파진성을 향해 마주 도를 뻗었다.
서걱.
일도에 그물이 찢어졌다.
제아무리 촘촘하게 검기를 맺은들, 도신에 맺힌 강기 앞에서는 모든 것이 알량했다.
그리고 그대로 고 노야의 도가 파진성에게로 파고들었다.
“아, 안 돼—!!”
언미희가 질겁하며 외쳤다.
대신 막아서기엔 이미 늦었다.
“…케헤헤.”
허나 그 순간, 정작 파진성의 마음은 고요했다. 자신의 몸을 두 쪽 낼 기세로 날아드는 도를 바라보았다.
‘밀물, 그리고 썰물.’
모든 것은 흐름이다.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안다면.
설령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풍우와 마주친다 해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채애앵.
“……!”
도와 검이 부딪혔다.
그 순간, 검이 ‘밀려났다’.
울컥, 파진성의 입에서 대번에 피가 터져 나왔으며, 훅 날아간 몸이 땅으로 추락했다.
“케헥, 케헤헥!”
파진성이 정신없이 땅을 굴렀다. 콰직, 그리고 파진성의 검이 형편없이 반 토막 났다.
“케헥, 안 돼 내 검… 케흐흑!”
“…….”
고 노야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강기를 썼음에도 파진성의 검은 단칼에 부러지지 않았으며, ‘일초’를 버텨내고 나서 한 박자 늦게 부러졌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후두둑.
그때였다.
고 노야를 향해 암기가 쏘아졌다.
“……!”
탓.
고 노야가 다시 일보 물러섰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시선을 향했다. 마찬가지로 공손수가 고 노야를 향해 짓쳐 들고 있었다.
“오… 오지 마! 무슨 짓들이야!”
언미희가 다급하게 외쳤다.
허나 그 순간, 공손수와 언미희의 눈이 마주쳤고 공손수의 입술이 무언가를 속삭였다.
언미희의 눈이 흔들렸다.
훅.
“으아아아아아—!!”
그리고 고 노야의 지척까지 이른 공손수가 기함을 내지르며 비수를 꺼내 들었다.
다시 고 노야의 도가 휘둘러졌다.
슥.
허나 도가 닿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한순간, 공손수의 몸이 귀신처럼 방향을 틀며 고 노야가 아닌 언미희에게로 쇄도한 것이다.
쐐애액.
“얼른요, 언니!”
“…이게 진짜! 미쳤어?!”
훅, 퍼어억.
언미희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다음 순간, 언미희가 어깨와 등을 앞세워 날아드는 공손수의 몸을 힘껏 밀쳐내었다.
“커…억!”
답답한 신음과 함께 공손수의 몸이 대변에 언미희의 정면으로 튕겨 나갔다.
“……?!”
일순 고 노야의 눈썹이 흔들렸다. 저들끼리 서로 공격하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후우욱.
허나 다음 순간, 공손수의 신형이 고 노야의 옆을 쏜살처럼 스쳐 지나갔고.
공손수의 입에 걸린 미소를 확인한 순간, 고 노야가 외쳤다.
“…루주! 조심하시오!”
“…어머?”
타앙.
고 노야가 즉시 튀어 올랐다.
공손수의 뒤를 추격하려 했다.
잠깐의 머뭇거림은 거리를 상당히 벌려놓았으나,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허나 그 순간.
카아앙.
“크—!”
언미희가 다시 달려들었다.
고 노야의 발이 묶였다. 그리고.
털썩.
“아이고, 아파 죽겠네… 남동생 얘기 좀 했다고 엄청나게 감정이 실리는구나. 끙차!”
쏜살처럼 날아간 공손수의 몸이 저만치 땅에 처박힘과 동시에 다시 튀어 올랐다. 그리고.
타앗, 덥석.
“아까 못한 실례 좀 할게요!”
지소약의 배후를 점했다.
바로 다음 순간, 지소약의 목덜미에는 이미 공손수의 비수가 겨누어져 있었다.
“…어머나. 당해버렸네.”
지소약이 두 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