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08)
214화. 악몽과 현실 (2)
“…하하하! 크하, 크하하하핫!”
선우협은 미친듯이 웃었다.
이내 배를 부여잡고는 온몸을 배배꼬며 웃기 시작했다. 마치 웃음을 쥐어짜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핫! 동생이요?! 이 냄새나는 촌놈 나부랭이가?! 으하, 크하하핫! 형님, 정녕 이 아우를 웃겨 죽일 생각이십니까?!”
“…….”
허나 이벽으로선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선우협의 속을 이해하고 헤아리는 것은 이미 선우벽이었던 시절부터 포기했던 일이었다.
이벽은 시선을 돌렸다.
“장석두.”
움찔, 쓰러진 채 힘없이 숨을 몰아쉬고 있던 장석두의 몸이 작게 흔들렸다.
“…미안하구나. 나로 인해 공연히 네가 상처를 입었다. 반드시 구해줄 테니 조금만 참거라.”
부스스 장석두가 고개를 들었다. 핫, 피멍으로 엉망이 된 몰골이 이를 드러내었다.
“…저는 괜찮슴다, 형님. 사나이한테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죠. 저는 정말로 괜찮으니깐…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가십쇼!”
“…….”
미소는 퍽 힘겨웠다.
또한 잘게 떨리고 있었다.
두렵지 않을 리 없다. 하물며 무인도 아닌 아이가 저런 말을 쉬이 입에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벽은.
황망한 감정을 추슬렀다.
서서히 분노가 차가워졌다.
“…하핫!”
그리고 그 순간.
칼로 잘라내듯 선우협의 웃음이 뚝 멈추었다.
“그렇군요.”
일그러진 얼굴이 이벽을 향했다.
“돌이켜보면… 본래부터 하찮은 몸종에게서 태어난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세가를 꿰차려 들던 게 바로 형님이었지요.”
“…….”
“암요. 천한 것들끼리 서로 호형호제 하는 꼴이 아주 그럴듯합니다. 헌데 지금, 잡종 주제에 감히 대 선우세가의 소가주 선우협을 죽이겠노라 하였습니까?”
철컥, 스릉.
선우협이 검을 뽑았다.
“할 테면 해보십시오. 형님.”
“…….”
“그 대신… 형님이 행여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순간, 이 더러운 촌놈의 모가지는 땅을 구르게 될 겁니다.”
이로써.
대화의 여지는 사라졌다.
이벽은 적들을 파악했다.
조금 전 자신과 검을 나눈 두 중년인은 세가의 삼장로와 사장로로이며, 모두 절정의 고수였다.
또한.
방계 중에서도 그 성취를 인정받아 가주직계 비전인 청강유엽검식의 일부나마 전수받은 강자들이기도 했다.
“흥!”
저벅저벅.
그리고 그때, 선우협의 등 뒤에 머무르고 있던 또 한 명의 인영이 콧방귀를 끼며 전면으로 걸어 나왔다.
“비룡대주… 아니, ‘조카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좌우간 일전에는 제법 큰 신세를 졌어!”
사내는 청강일협 선우굉이었다.
그리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으되, 한때나마 ‘숙부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던 사내였으며, 또한.
“설마… 그때의 그 미친 애송이가 ‘이미 죽어버린’ 나의 조카님이라고는 좀처럼 생각지 못했지만 말일세.”
과거, 선우굉은 이벽이 비룡대원들과 함께 성가의방으로 향하던 도중 황보세가의 무인들과 함께 이벽을 가로막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의 이벽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다 중상을 입었으나, 이내 적파심공과 도살지도를 일으켜 황보혁과 선우굉을 동시에 찍어눌렀다.
‘…그렇군.’
선우굉은, 그리고 선우세가는.
그때를 기준으로 자신의 무력을 판단하여 이 정도의 전력이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미안하지만 조카님, 허세는 통하지 않는다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끝일세.”
스윽.
그리고 선우굉과 두 장로가 이내 다가오기 시작했다. 세 자루의 검이 번뜩였다.
“전(前) 소가주, 유감일세.”
“개인적인 감정은 없으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세가의 미래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나?! 허헛!”
“…….”
그것은 얼마 전의 이벽이라면.
열 합도 지나지 않아 모조리 도륙내 버리고도 남는 수준의 적들이었다. 허나.
이벽은 ‘약해졌고’.
내력은 미약했다.
고로 이벽은 고민했다.
목천의 기예는커녕 강기조차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세 명의 절정고수를 쓰러뜨려야 한다면.
‘…정면 충돌은 피해야 한다.’
“조심하시오, 장로님들! 놈의 검이 제법 날카로우니 결단코 방심해서는 아니—”
타앗.
선우굉이 뭐라 말을 했다.
바로 그때, 이벽은 땅을 박찼다.
후욱.
“하앗!”
“소용없다, 이 노옴!”
허나 두 장로는 놓치지 않았다.
그 즉시 강기가 서린 검 두 자루가 이벽을 향해 뻗어졌다. 과연 절정고수다운 반사신경이었다. 허나.
훅.
“허, 허엇?!”
이벽의 몸이 훽 꺾어졌다.
두 자루의 검이 비껴나갔다.
청강유엽신법, 곡의 묘리였다.
“조, 조심하시오, 외당주!”
“노, 놈이 이상한 사술을 쓰오!”
연엽보, 그리고 청강유엽신법은 명백히 선우세가의 무공이었다.
허나 두 가지가 하나로 어우러지자, 선우세가의 장로는 알아보지 못하고 ‘사술’이란 말을 지껄였다.
타앙.
어쨌거나.
두 장로를 지나친 이벽은 선우굉에게로 돌진했다. 한 명씩 차례대로 쓰러뜨릴 수밖에 없다.
후욱.
“핫! 여전히 건방지기 짝이 없구먼!”
허나 그 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선우굉의 검 끝에서 청강유엽검식, 쾌검이 뻗어졌다.
푸른 섬광이 이벽을 관통했다.
“……?!”
허나 그 순간, 이벽의 신형이 잔상처럼 흩어졌다. 청강유엽신법, 변의 묘리였다.
발검식 쾌검과 회검식 변검.
청강유엽검식을 이루는 여섯 개의 묘리 중에서도 선우굉이 그 두 가지에 치중해있음을 이벽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욱.
선우굉의 측면에서 나타난 이벽이 검을 뻗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이식(拔劍第二式).
쾌검(快劍).
“허억!”
선우굉이 대경했다.
부랴부랴 청강검식, 변의 묘리가 펼쳐졌다. 청강유엽검식을 연달아 펼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쐐애액.
허나 물론 선우굉의 변화보다 이벽의 쾌검이 빨랐고, 강기를 피해 이벽의 검이 파고들었다.
타앙, 쐐애액.
“……!”
허나 그 순간.
이벽을 향해 화살이 날아들었다.
서걱, 채앵!
이벽은 검을 거두며 화살을 쳐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선우굉을 무력화하는 데에 실패했다.
그저 작은 상처만을 남겼다.
후우욱.
“크아아악—!! 이 노옴 잘도—!”
그리고 선우굉의 검이 뻗어졌다.
자신이 장기로 삼는 쾌검에 역으로 상처를 입은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다시 쾌검을 뻗어왔다.
이벽은 물러서려 했다. 허나.
후우욱.
“하, 어딜 달아나려 하는가!”
“이만 포기하시오—!!”
그 사이 거리를 좁혀든 두 명의 장로가 등 뒤에서 검을 뻗었다. 삼면에서 이벽을 향해 검이 쏘아졌다.
직검.
쾌검.
강검.
세 검은 시차를 두고 잘 맞물려있었으며, 또한 모두가 푸른빛의 강기를 띄고 있었다.
섣불리 피하려 들다가는 자칫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음을 이벽은 직감했다.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찰나의 순간, 판단을 내렸다.
훅, 채애앵.
* * *
타앗, 후욱.
이벽이 날아올랐다. 허공에서 몸을 비튼 뒤 저만치로 물러섰다. 세 고수와 훌쩍 거리를 벌렸다.
“…….”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선우굉과 두 장로들 중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으며, 또한 세 쌍의 눈이 모두 흔들렸다.
삼면을 압박한 순간, 이벽의 검에서 희미한 강기와 함께 회검제삼식 유검이 펼쳐졌다.
그것은 물론.
세 사람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으며, 심지어 선우굉의 경우 직접 펼칠 수 있는 검이기도 했다. 허나.
스윽.
전방위를 감싸듯 넓게 펼쳐진 유검은 서로 다른 속도와 힘으로 뻗어진 세 자루의 검을 차례대로 모두 감쌌다.
그리고 흩어버렸다.
직검도, 쾌검도, 강검도.
모두가 제힘과 방향을 잃고 엇나가버렸으며, 그와 동시에 이벽은 머리 위로 뛰쳐 올랐다.
그대로 포위를 벗어나 버렸다.
그리고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 묘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최소한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그것은.
청강유엽검식, 그리고 청강유엽공을 비롯한 선우세가의 무공 전반에 대하여.
이벽과 세 사람 사이에 그만큼 ‘압도적인 이해의 차이’가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허나.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선우굉과 두 장로의 눈이 가라앉았다.
이내 표정이 딱딱해졌다.
“…….”
반면, 이벽 또한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위기의 순간, 결국 강기를 꺼내 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미약한 내기의 흐름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했다.
허나 물론.
그 사실을 적들이 알게 해선 안 된다. 이벽은 가능한 한 태연함을 가장했다.
“…핫, 재미있군.”
그때, 마침내 선우굉이 입을 열었다. 삼장로와 사장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내 말하지 않았소, 장로님들? 놈은 이미 사파에 영혼을 팔았다고 말이오. 부디 속지 마시오. 아마 궁지에 몰리면 이것보다도 더 지독한 ‘사술’이 나올 것이니.”
“…사, 사술?”
“암, 그렇고말고! 만일 좀 전의 일검이 정녕 놈의 실력이었다면 저렇게 도망갈 이유가 무에 있겠소?”
“……!”
장로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그렇구려!”
“하! 그래도 한때 본가의 소가주였던 녀석이 사술 따위에 의존하다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군, 그래!”
“…….”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사술로 취급해버린다. 이벽은 문득 적으로 만났었던 정파무인들 몇몇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와 같은 밑바닥은.
선우세가에도 있었다.
물론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다만 이벽은 다음 수를 생각했다.
마주한 세 사람 외에도 주변의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 화살을 쏘아대는 이들이 퍽 성가셨다.
허나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물며 지금의 내력으로는 저 세 사람을 꺾을 수 있을지 어떨지조차 점점 불투명해졌다.
그렇다면.
흘끗, 이벽은 선우협에게 붙들린 장석두를 향했다. 이대로 장석두를 낚아챈 채 도망치는 경우를 점쳐보았다.
‘…가능할까?’
타앙.
“핫! 놈이 또 머릴 굴리는구려!”
“그렇겐 안 되지!”
허나 그 순간, 세 사람이 재차 달려들었다. 분기탱천한 검들이 일제히 쏟아졌다.
허나 그 순간이었다.
훙훙훙.
그 즉시 몸을 빼내던 이벽은 문득, 저만치 하늘에서 거대한 인영 하나가 해를 등진 채 날아드는 것을 발견했다.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서서히 크기가 커졌다. 그리고.
훙훙훙, 콰아아아앙—!!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던 봉이 지면을 내려찍었다. 이벽과 세 고수의 정확히 중간지점이었다.
“크, 크윽!”
“무, 무슨……?!”
땅이 뒤흔들리는 충격과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대경한 세 고수가 몸을 뒤로 빼내었다.
허나.
후우웅.
“전륜패왕창, 극척.”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먼지 속에서 웅혼한 강기가 맺힌 봉의 끄트머리가 뻗어졌다.
“이… 이런 개 같은!”
그 끝은 삼 장로를 향하고 있었다. 물러서던 삼 장로가 기함하며 검을 마주 뻗었다.
“감히… 이 선우진이 우스워 보이더냐!”
청강유엽검식, 강검이 펼쳐졌다.
삼 장로 회심의 초식이기도 했다.
허나.
퍼어어억.
“…커억!”
검과 봉이 부딪힌 순간.
오히려 검이 튕겨 나갔다.
후우욱, 퍼억.
허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세에 밀려난 삼장로의 몸이 끈떨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갔다. 저만치 나뭇기둥에 부딪히고 나서야 땅 위에 널브러졌다.
“컥… 쿨럭!”
한움큼의 피를 토했다.
순식간에 무력화되었다.
훙훙훙훙.
그리고.
마치 수천마리 벌떼의 날갯짓과 같은 우렁찬 소리와 함께, 먼지가 빠르게 걷혀 들었다.
패왕의 창이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뚜렷해지는 시야 너머로 이벽은 익숙한 등을 보았다.
“…혁대웅.”
“조금 늦었다, 벽아. 안 다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