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06)
314화. 화영변검
사아아아아.
혈마의 뱀이 아가리를 벌린 채 짓쳐들었다. 이벽의 잇따른 공격에도 ‘전혀’ 충격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노오오옴―!!”
또한 뱀의 아가리를 향해.
당평세가 마주 달려들었다.
“잠깐… 노야!”
이벽이 다급히 외쳤다.
혈마의 뱀은 줄곧 당평세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때문에 당평세는 스스로 미끼가 될 것을 자처했다.
그렇게 아가리가 벌어져 있는 틈을 타, 이벽으로 하여금 ‘절기를 때려 박으라’는 말을 남겼다.
허나 그 말인즉슨.
뱀에게 먹히건, 혹은 이벽의 검에 베어지건… 결국 당평세는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것이다.
타앙.
“크……!”
이벽 또한 땅을 박찼다.
당평세의 등 뒤를 쫓았다.
허나 뱀의 머리와 독왕은 이미 서로의 지척에 이르러 있었고, 이벽은 당평세를 막기에는 늦어버렸음을 직감했다.
다음 순간, 온 힘을 다해 스스로를 집어던진 당평세는 마침내 뱀의 아가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파아아앙.
“하아아압―!!”
그리고 그와 동시에.
노인은 힘껏 온몸을 펼쳤다.
동시에 온몸 곳곳에 감추어져 있던 남은 암기와 비수들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만천화우의 묘리가.
뱀의 입안에서 펼쳐졌다.
콰아아앙, 콰아앙.
허나 물론, 그 꽃은 피지 못했다.
뻗어진 암기들은 뱀의 아가리 안쪽을 두드리며 산산조각이 났고, 하물며 제대로 된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그저 아주 잠깐.
아가리가 다물어지는 시간을 늦추었을 뿐이었다. 허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찌 되었건 당평세에게는 더는 뱀의 어금니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켜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자, 지금일세, 소협!”
당평세가 외쳤다.
“…크으!”
이벽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찰나의 순간, 터무니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말았다. 허나 지금 검을 뻗건 뻗지 않건, 어차피 당평세는 죽는다.
그리고.
이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노인의 희생은 ‘헛죽음’이 된다.
으드득,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허나 이내 당평세의 등을 향해, 그리고 그 너머로 벌어진 뱀의 아가리를 향해 창공비검을 펼치려던 찰나였다.
사아아아아아아.
돌연, 뱀의 눈과 마주쳤다. 놈의 존재는… 순수한 혈기의 결정체임과 동시에 그 근원과 같았다.
“……!”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벼락처럼 이벽의 뇌리를 스쳤다. 아니, 생각이라기보다는 그것은 기억 속에 새겨진 ‘소리’였다.
휘이이이.
돌이켜보면.
이벽이 처음, 월향에 의해 화영지정의 곡조를 전수 받은 것은 적파심공의 ‘혈기’를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고 노야는 말했다.
―…적파심공은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혈교의 무공에 그 맥을 두고 있다.
즉.
화영지정은 ‘혈마에게서 비롯된’ 적파심공을 억제할 수 있었고, 나아가 화영검무는 적의 힘마저도 꽃잎으로 승화시켰다.
그렇다면.
청강유엽검식의 일부가 되어.
독왕의 무형지독조차 흘려내 버린 ‘화영변검’의 기예라면… 어쩌면 이 거대한 ‘혈기 덩어리’에 뿌리를 박고서 꽃을 피워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훅.
다음 순간, 이벽은 검을 뻗었다.
갓 얻은 깨달음이 천하의 재앙을 상대로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을지, 이벽은 확신할 수 없었다.
허나 물론, 뱀의 아가리는 닫히고 있었으므로 그 이상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어찌 되었건 이벽은.
당평세의 확실한 죽음보다는… 그를 해치지 않고서 혈마에게 충격을 입힐 수 있는 가능성을 택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화영변검(花影變劍).
우웅.
그리고 다음 순간.
당평세의 등을 향해 쏘아지는 이벽의 검이 잘게 흔들렸다. 검신을 두른 나뭇잎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저 검의 형태를 빌릴 뿐.
꽃잎은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후욱.
“…허헛.”
한편, 등 뒤에서 뻗어지는 검의 기척을 느낀 노인은 작게 웃었다. 다행히도 비룡대주는 판단을 그르치지 않았다.
행여 위력이 반감되지 않도록.
당평세는 모든 방어를 거두었다.
이내 늙은이의 육신 따위는 썩은 나무토막처럼 베일 것이고, 이벽의 절기는 그대로 뱀의 입 안을 뚫고 혈마를 베어낼 것이었다.
천하의 재앙을 상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했다. 이내 노인은 뿌듯한 마음으로 다가올 죽음을 기다렸다.
후욱.
허나 어둠은 찾아오지 않았다.
“비룡대주, 자네 대체……?”
당평세는 당황했다.
뻗어지던 검이… 자신의 등을 파고들지 않은 채 그저 지척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훅.
허나 그때였다.
들끓는 피와 썩은 내가 뒤엉킨 뱀의 아가리 속에서, 돌연 당평세는 은은한 꽃향기를 맡았다.
‘매화 향기?’
화아아악.
다음 순간.
당평세의 온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즉, 다시 말해 뱀의 머리가 사라진 것이다.
“…무, 무슨?”
당평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뱀의 머리는 온데간데없이, 다만 그 모든 붉은 비늘들이 산산이 흩어진 채 꽃잎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 * *
화아악.
뱀의 머리가 꽃이 되었다.
허나 그마저도 시작에 불과했다. 이내 머리에서 몸통, 그리고 꼬리에 이르기까지, 뱀의 전신이 산산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라락.
흉물은 꽃잎이 되었다.
그리고 허공을 수놓았다.
“…….”
자신이 이뤄낸 것과는 결을 달리하는 ‘또 하나의 만천화우’ 속에서, 당평세는 넋을 잃었다.
심지어는.
그 검을 펼쳐낸 이벽 본인조차 일순 당황에 빠졌다.
어린 기녀 월향이 평생을 갈고닦아온 음공의 기예는 이벽의 검이 되었고, 그 검은 한순간 천하의 재앙을 지워버렸다.
“아아… 크아아아아아―!!”
다음 순간.
뱀의 거체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혈마가 괴성을 내질렀다. 머리를 감싼 채 몸을 웅크렸다.
그것은 분명.
적잖은 충격을 입은 모양새였다.
훅.
이벽은 그대로 땅을 박찼다.
당평세의 곁을 지나친 뒤 발밑에 형성된 나뭇잎을 밟고서 몸을 밀쳐내었다. 쾌보의 기예였다.
후욱.
삽시간에 혈마의 지척까지 이르렀다. 그대로 웅크린 혈마의 목을 쳐내려 했다.
우득, 우드득.
허나 그 순간.
혈마의 몸이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의 몸이 아닌 듯한 괴성이 들렸다.
“……!”
스윽.
이내 이벽의 검이 파고들었다.
허나 그 검이 꿰뚫은 것은 혈마의 목이 아닌 허리 부근이었다. 목을 노리는 걸 ‘예측’ 당했기에, 직전에 검로를 튼 것이다.
흠칫.
허나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검은 분명 혈마의 허리를 꿰뚫었고, 그대로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중상을 입혔다.
허나 손에 전해지는 감각은 지나치게 가벼웠으며, 심지어는 출혈조차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스륵, 트트특.
다음 순간.
혈마의 몸이 흔들렸다.
그대로 검을 몸에서 빼내었다. 꿰뚫린 부위의 피부를 스스로 ‘갈라버림’으로써 운신의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키킥!”
허나 그 흉측한 얼굴에는 고통이 아닌 미소가 감돌았다. 이벽은 자신이 벤 것이 기껏해야 ‘껍데기’에 불과함을 이해했다.
훅, 타앙.
다음 순간, 혈마가 땅을 박찼다.
뒤를 향해 잽싸게 몸을 빼내었다.
타아앙.
물론 이벽 또한 재차 쾌보를 펼쳤다. 말할 것도 없이, 달아날 틈을 줄 생각은 없었다.
타아앙.
“카아아아아―!!”
허나 다음 순간, 혈마가 괴성과 함께 ‘네 발’로 다시 땅을 박찼다. 그리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흠칫.
이벽이 표정이 흔들렸다.
이내 마찬가지로 방향을 틀었다.
쐐애애액.
허나 달아나는 혈마의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쾌속했다. 쾌보를 사용해 쫓고 있음에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즉, 다시 말해서.
‘쾌보에 필적하는 속도’였다.
우우웅.
심지어는.
이내 이벽이 우려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달아나는 와중에, 혈마의 주변으로 다시 붉은 비늘이 어른거렸다.
다만 그 모양새는.
조금 전과 같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지는 않았다. 그저 호신강기처럼 혈마의 육체를 촘촘히 뒤덮기 시작했다.
상처를 메꾸고.
육신을 보호한다.
“…….”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허나 이벽은 생각을 달리했다. 눈앞의 원수는 스승의 일검을 맞고도 기어코 목숨을 건져 달아난 ‘재앙’이었다.
천하의 해묵은 재앙을 그리 쉽게 죽일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고로 싸움 또한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타아앙.
“…큭, 키키킥!”
그리고 이내 혈마의 작은 체구 위로 네 개의 발과 꼬리가 달린 ‘날렵한 뱀’의 형상이 겹쳐졌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도마뱀인가.’
“키키키킥!”
다시, 혈마가 웃었다.
타아아앙.
그리고 재차 땅을 디뎠다.
“…!”
허나 그 움직임은 더는 달아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벽을 향해 직선으로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이벽은 즉시 검을 뻗었다.
발톱이 자라난 도마뱀의 앞발을 막아내었다. 충격으로 몸이 흔들렸으나, 조금 전처럼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혈마 역시 화영변검에 당해 엄청난 힘을 소모당했기에, 조금 전과 같이 일대를 뒤덮는 수준의 영역을 끌어낼 수는 없는 듯했다.
타아앙, 후욱.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허나 일격을 펼친 혈마는 미련 없이 물러섰고, 다시금 극쾌의 속도로 일대를 활보하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그렇게 한 순간.
전투의 양상은 전혀 달라졌다.
더는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누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혈마는 최소한의 영역만을 두른 채 극쾌의 속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뱀이 허물을 벗듯.
싸움의 방식을 바꾼다. 허나 그 수준은 결코 ‘궁여지책’ 따위가 아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크!”
이벽의 미간이 흔들렸다.
앞서 이벽은 아미에서 청성제일검, 천풍쾌검 공능자와 ‘극쾌의 검’을 겨룬 적이 있었다.
허나 당금 혈마의 속도는 그마저도 상회하고 있었다. 물론, 이벽 또한 쾌보로써 어떻게든 동수를 이루었다. 허나.
타아아아앙.
이처럼 치고 빠지는 접전이 반복된다면… 다시금 화영변검의 기예를 통해 적의 힘을 소모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또한 접전 속에서 이벽은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것은 땅을 박차며 속도를 끌어내는 혈마의 움직임이 자신이 지닌 쾌보의 묘리와 너무도 흡사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우우웅.
발끝에 힘을 압축하고.
일거에 해방하여 속도를 얻는다.
타아앙, 서걱.
“……!”
다음 순간, 이벽의 어깨 위로 핏줄기가 솟구쳤다. 이벽의 미간이 작게 찌푸려졌다.
“키킥, 키키킥!”
저만치에서 혈마가 발톱을 핥았다. 이내 이벽은 미세하게나마 다시 열세에 놓였음을 이해했다.
속도는 동등한 수준이지만.
고작해야 두 발로 보법을 펼치는 자신과는 달리, 인간의 형상을 벗어던진 혈마는 네 개의 발이 모두 힘을 압축시키는 ‘일점’이 될 수 있다.
그 변칙적인 움직임은.
결코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
타앙, 쐐애애애애액.
재차 혈마가 땅을 박찼다.
범인에게는 보이지조차 않는 속도로, 허공에서 수도 없이 방향을 틀며 이벽에게로 쇄도했다.
슥.
허나 이벽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운신의 자유로움에서 상대와의 격차가 있다면… 상대에게 그만한 ‘장애물’을 안겨주면 그만이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만월무변곡검(滿月無變曲劍).
사라락.
다음 순간, 이벽의 몸에서 나뭇잎 몇 장이 주변으로 떨어져 나가며 원을 그렸다.
흠칫.
일순 혈마의 움직임이 흔들렸다.
이벽의 주변에 산재한 원들이 ‘흡입력’을 일으키며 진로를 방해하고 방향을 왜곡했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이벽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벽의 검이 직의 묘리로 뻗어지며 혈마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사아아아아.
혈마의 피가 흩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