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60)
62화. 호남 정사비무 (5)
“크—”
창명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탓, 다음 순간 창명이 땅을 박찼다. 떨어진 검을 재차 주워들며 그대로 이벽을 향해 쇄도했다.
휘리릭, 채앵!
“크하압! 웃기지 마라!!”
기세를 높이며 검을 내뻗는다.
그리고 두어 번 검이 부딪혔다. 그러나 그 이상 길게 이어갈 것도 없이 이벽은 곧 깨달았다. 좀 전과 다를 것 없는 급풍쾌검이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삭월(朔月).
쿡, 챙그랑!
“크윽!”
검 끝이 창명의 손목을 찔렀다.
그리고 검이 다시 땅을 굴렀다.
“…이, 이럴 리가 없어.”
연달아 두 번 검을 떨어뜨렸다.
하물며 남궁환만큼의 접전을 펼치지조차 못했다.
말할 것도 없이 검수에게 있어 이만큼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
반면 이벽은 생각했다.
급풍쾌검은 쾌와 변에 중점을 둔 검식이지만, 창명의 경우에는 그 속도와 현란함을 스스로 통제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휘어짐을 통해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고 약점을 노리는 팔절구궁필법 앞에서는 정확히 상극에 해당한다.
“다를 게 없군. 물러서라.”
“아, 아냐… 아직이야. 나는…….”
창명은 뒷걸음질 쳤다.
이건 사술 따위가 아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길 수 없다.
이기기는커녕, 검을 맞대고 제대로 된 승부를 겨루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우습게도, 이런 놈을 상대로 몇 수나 버텼던 남궁환과 자신의 수준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인정할 수 없다!’
일평생 갈고 닦은 검술이다.
당장은 부족할지라도, 언젠가 점창에는 일섬룡 뿐만이 아니라 또 한 명의 용이 있노라 인정받고자 했다. 헌데.
저따위 사도 놈에게.
“이, 이럴 리가 없다고!!!”
탓, 창명이 몸을 날렸다.
또다시 검을 주우려 했다.
그러나 이벽으로서는 더 이상 같은 짓을 되풀이할 이유는 없다.
터벅.
창명이 주워들기 직전, 이벽의 발이 먼저 뻗어졌다. 창명의 검을 짓밟는다.
“무… 무슨 짓이야, 이 새끼!! 감히 점창의 검을 짓밟아?! 당장 치우지 않으면 그 발을 잘라—”
“물러서라고 했다만.”
빠악!
이벽의 검의 손잡이가 창명의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끄르륵, 창명의 신형이 허물어졌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했다.
“와… 와아아아! 이겼어!! 또 쓰러뜨렸다고!!!”
“비룡대주 만세!!! 사패련 만세!!”
다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호남의 사파인들은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것은 마치 정파 측에 야금야금 갉아 먹히고도 반발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지난 삼 년을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반면 정파 측의 분위기는 급격히 무거워졌다.
마치 어른과 아이의 싸움 같았다.
사술이건 뭐건, 이로써 하나는 명백해졌다.
창천옥룡 남궁환이 쓰러진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기도 하다. 마침내 정파 측에 패배라는 가능성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물론, 설령 그렇다 해도 그들이 당장 잃을 것은 없다. 그저 동정호를 얻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까?
이후 정검문과 숭무관의 기세가 한풀 꺾일 것은 자명한 일이고, 사파 측은 역으로 기세를 드높일 것이다.
호남의 정파들이라고 해봐야 이 땅에 자리한 지 고작 삼 년도 안 된 군소 세력들이다.
점창과 남궁이 이 땅을 포기하고 민심마저 돌아서는 순간, 일거에 뿌리가 뽑혀버릴 수도 있다.
이내 비무대를 지켜보는 정파 측 제자들의 눈빛에 절박함이 어리기 시작했다.
여태껏 그래왔듯 사파 놈들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저 그 호쾌한 순간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 자리의 승부는 유희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금번의 비무 역시 이벽 소협의 승리로 돌아갔소!!”
이내 철면개가 외쳤다.
의식을 잃은 창명이 실려 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 직후, 이번에는 지체없이 다음번의 대표가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 일섬룡!! 일섬룡이다!!!”
“와아아아아!!!”
정파 측에서 악을 내질렀다.
그것은 마지막 희망에 대한 기대감이자 빼앗겨버린 기세를 되찾으려는 절박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사실상의 마지막 승부.
다섯 명씩 후기지수를 내기로 했으나, 네 번째인 일섬룡 창성마저 쓰러지고 나면 더 이상 정파 측에서 나올 만한 이는 없다.
“…….”
비무대에 오른 창성은 그러나 앞선 두 사람처럼 섣불리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저 못 박힌 듯 제자리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이벽을 바라본다.
마치 언제든 공격이 들어와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모양새였다.
이벽 역시 선공에 나서지는 않았다. 굳이 그런 식으로 쓰러뜨릴 필요는 없다.
시선과 시선이 교차한다.
이내 경쟁하듯 쏟아지던 양측의 환호성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장내에 다시 긴장감이 차올랐다.
“왜 베지 않았지?”
문득 창성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지.”
“네가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남궁환도, 내 사형도 굳이 ‘그런 식’으로 쓰러뜨려야만 했나?”
이벽은 말뜻을 이해했다.
상대의 검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검 손잡이로 머리를 쳐서 기절시켰다. 몸에는 검상 하나 남기지 않았다.
물론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약자를 베는 취미는 없다.”
“…….”
창성은 이를 악물었다.
말인즉슨, 이쪽을 대등한 상대로조차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무인에게 있어 자비를 가장한 최대의 모욕이기도 했다.
“오만하기 짝이 없군.”
“어디 너희들만 하겠나?”
“…….”
‘너희’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가. 앞선 상대들? 점창? 혹은 이 자리를 둘러싼 정파인들 전체를 말하는가?
알 수 없다. 다만.
일그러진 창성의 표정 위로 서서히 웃음이 번져갔다. 비틀린 미소였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로군.’
최우선 경계 대상이었던 남궁환이 그리 대단한 위협이라 생각도 안 했던 이자에게 어처구니없이 깨져나가는 걸 두 눈으로 보았다.
사술이니 뭐니 해도, 파훼할 수 없다면 그조차 실력이다. 목숨을 잃은 후, 상대의 부덕함을 탓해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이 무림. 하지만.
덕분에 놈의 검을 어느 정도는 지켜볼 수 있었다. 먼저 나서준 남궁환에게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고요한 흥분이 몸을 일깨운다.
스릉.
“미리 말해두지.”
마침내 창성이 검을 뽑았다.
날카로운 끝이 이벽을 향했다.
“네가 강하다는 것은 이해했다. 허나 무슨 짓을 하건, 이 검만은 결코 내 손에서 떨어뜨릴 수 없을 것이다.”
“…….”
* * *
이후 잠깐의 탐색이 이어졌다.
정확히는 창성 혼자만의 탐색이었다. 고요 속에서 창성의 눈이 상대의 깊이를 가늠하듯 이벽의 위아래를 훑었다.
반면 이벽은 그저 창성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선공하지 않는다.’
상대의 검의 정수를 체험하고, 정면으로 맞부딪혀 무너뜨린다. 그것은 이 비무대 위에 오르며 이벽이 품었던 계획이었다.
타앗, 쐐애액!
이내 창성이 움직였다.
검 끝이 직선으로 찔러 들어온다.
그것은 섬광처럼 빨랐으나, 다소 싱겁게 느껴질 만큼 정직한 찌르기였다.
이벽은 쳐내려 했다.
그러나 수없이 반복된 동작 속에서 완성된 하나의 직선은 결코 가볍지 않다.
채앵!
어깨에 묵직함이 스쳤다.
이벽은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창성의 공격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이내 수많은 직선들이 빗줄기처럼 이벽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채챙, 챙!
“하! 왜 그러지? 고작 이 정도가 아닐 텐데? 이래서야 저번과 다를 게 뭐가 있나?”
말마따나 이벽은 앞서 무적파에서도 잠깐이나마 창성과 검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양호명의 시선으로부터 선우세가의 흔적을 숨겨야 했던 이벽은 막아내기에만 급급했었다.
때마침 나타난 초연서가 승부에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이후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
그러나… 지금의 이벽에겐 바로 그 초연서의 무공이 있다.
채앵!
이벽이 한 발 더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창성이 추적하는 순간, 이벽의 검이 원을 그렸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만월(滿月).
후욱, 달이 검을 빨아들인다.
그 순간 창성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남궁환의 검을 묶어버리고 사형의 검을 앗아가 버린 바로 그 기이한 초식.
“그래! 바로 이거였구나!”
창성은 섬칫함을 느꼈다.
기이한 압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앞선 비무로 미루어, 도망치려 들면 그 틈을 타 검 끝이 오히려 자신을 추적해올 것이다. 그렇다면.
쐐애액!
찰나의 순간, 창성은 선택했다.
오히려 그 한가운데로 파고든다.
과감한 판단이었다. 다음 순간, 창성의 검이 만월의 압력에 의해 미세하게 틀어졌다. 그러나.
그 끝은 여전히 이벽을 향한다.
채앵!
창성의 검이 목전까지 다가선 순간, 이벽은 서둘러 막아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 이상의 충격이 일었다.
턱, 터벅.
이벽이 두 걸음 밀려났다.
찰나의 순간, 창성의 쏘아지는 검이 만월의 흡입력마저 자신의 힘으로 흡수한 것이다.
“하… 재미있는 ‘사술’이군 그래.”
“…….”
이벽은 조금 놀랐다.
창성의 검이 휘어진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 각도는 크지 않았고, 틀어진 검 끝은 오히려 힘을 흡수한 채 여전히 자신에게로 향해 있었다.
채앵, 챙!
“자! 또 뭐가 있나? 어디 한 번 가진 걸 몽땅 풀어보시지?”
기세를 놓치지 않고 창성이 재차 파고들었다.
사정없이 이벽을 몰아붙이며, 창성은 서서히 차오르는 희열을 느꼈다.
놈의 초식을 파훼했다. 남궁환이 해내지 못한 것을 해냈다.
“…….”
이벽은 내심 감탄했다.
만월로 상대하기에 까다롭다.
점창의 사일검법은 다른 모든 검로를 배제한 채 오직 직선의 찌르기 하나만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연마한다고 했다.
사일(射日)이란 말마따나 하늘의 해를 노리고서 일점의 찌르기를 갈고 닦는다면, 달 또한 찌르지 못할 것도 없는 듯하다.
난점을 이해한다. 그렇다면.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삭월(朔月).
후욱.
이벽의 검이 흐릿하게 종적을 감추었다. 그러나 그 순간, 창성이 기다렸다는 듯 자세를 낮추었다.
스윽, 땅을 스치며 물러선다.
그것은 앞서 남궁환이 삭월의 추적을 피해 몸을 빼낸 것과 거의 흡사한 모양새였다.
지켜보고, 이해하고, 따라 한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재능과 과감함이 그 동작을 뒷받침한다.
쿠욱.
“핫, 따끔하군!”
삭월이 한발 늦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창성에게 남긴 것은 자잘한 상처에 불과했다.
채챙, 챙!
그리고 거리를 벌린 창성의 검이 즉시 다시 찌르고 들어온다.
거리와 각도에 구애받지 않는 수많은 직선이 빗발친다.
“오오오오!! 일섬룡!!!”
“하… 하핫!! 그럼 그렇지!! 사파 따위에게 대 점창이 무너질 리가 있나!!”
창성의 선전이 펼쳐지자 재차 정파측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벽이 연신 물러서고 있다.
분명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남궁환이나 창명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에 호응하듯 창성의 검은 더더욱 날카로워졌다.
“…….”
말마따나 이벽은 한계를 느꼈다.
만월로는 상대의 검을 제대로 흔들 수 없고, 흔들리지 않은 상대로는 삭월로써 빈틈을 노리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팔절구궁필법의 한계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숙련의 문제일 것이다.
좌우간 인정해야 했다.
과연, 명문의 절기답다.
남궁환의 제왕검형과 마찬가지로 사일검법 역시 쉬이 파훼할 수는 없는 듯 했다.
고작해야 익힌 지 보름 남짓 된 검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