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Advent (Descent of the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44)
불과 20여분 전.
어둡고 차가운 동굴.
미리 준비해둔 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앞으로 가고 있다.
이곳은 숨겨진 열 번째 봉우리인 보천봉이다.
특이하게도 보천봉은 천선봉을 통해서 그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하백령은 이상하게 몸에 오한이 오는 느낌을 받았다.
-부르르!
복부에서부터 느껴지는 떨림.
그것이 어째서인지 알 수 없었다.
[부인 괜찮소?] […..괜찮아요.]괜찮냐고 묻는 것치고 얼굴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흥분으로 고조된 얼굴.
맥위강은 안에 있을 보물을 기대하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그들은 봉우리의 가장 내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방님. 잠깐만 기다려요!] [왜 그러시오?]앞으로 발을 내딛은 맥위강을 그녀가 막았다.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는데, 그녀가 바닥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들어서 앞으로 던졌다.
-파칙!
그 순간 돌이 허공에서 산화되어 먼지가 되었다.
허공에 붉은색 빛으로 된 선이 수많은 글씨를 만들어냈다.
[이건…..진법?]앞을 막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진법이었다.
맥위강이 식은땀을 흘렸다.
선인의 진법은 이런 것이 무서웠다.
전조도 없이 설치된 진법에 자칫 잘못 걸려들면 큰 부상을 입기 십상이었다.
[풀 수 있겠소?]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선인의 피를 이은 선법가인 그녀는 이런 강력한 진법 역시 풀 수 있었다.
[다만 완전히 해제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아버지께서 오셔야 아마도 가능할 거에요.]수십 년 동안 기문과 오행, 진법을 배운 그녀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
선법이라는 것은 단기간에 마스터할 수 있는 그런 학문이 아니었다.
-우웅!
그녀가 진법 앞에서 무언가를 잠깐 만지자, 얼마 있지 않아 허공에 떠있던 붉은 글씨들이 벌어지며 입구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맥위강이 흡족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녀를 어떻게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제 가도 되요. 서방님.]베시시 웃는 그녀를 쓰다듬으며 맥위강은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걸어 들어가지 않자 최종 장소로 보이는 동굴의 입구가 드러났다.
입구는 돌벽으로 막혀 있었다.
-파르르르!
하백령이 아까보다도 더 큰 떨림을 느꼈다.
막 동굴을 들어왔을 때는 이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젠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선법을 익힌 그녀는 맑은 선천진기를 쌓았다.
이를 선기라고 하는데, 그것이 요동치듯이 떨렸다.
[서방님…..왠지 불안해요.] [여기까지 와서 그게 무슨 말이오?] [안에…..굉장히 위험한 게 있는 것 같아요.]선기와는 정 반대되는 기운.
그것이 안에서 도사리고 있는 듯 했다.
그런 하백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맥위강은 닫혀 있는 돌문을 열라고 종용했다.
두 번 정도 만류하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돌문에 쳐져 있던 진을 열 수밖에 없었다.
-쿠르르르!
돌문은 자동문이라도 된 것처럼 양쪽으로 열렸다.
그렇게 돌문이 열리자 신기하게도 안쪽의 벽면에 걸려있던 횃불이 저절로 켜졌다.
-화르륵!
입구 안에는 커다란 공동이 있었다.
보천봉 봉우리의 10분지의 1만큼을 차지할 정도의 크기였다.
내부로 들어가자 두 사람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벽면에 가득 붙여져 있는 수많은 부적(符籍)들이었다.
‘세…..상에!’
이를 본 하백령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적은 하나 같이 요기를 누르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것이 동굴 내부에 가득 붙여져 있다는 것은 대체 얼마나 위험한 것을 봉하고 있기에 이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위험해. 너무 위험해.’
그녀는 당장에라도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무언가를 발견한 맥위강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달려갔다.
[하하하하하하핫! 드디어 찾았구나.]그가 달려가는 곳은 동굴의 정중앙이었다.
그곳에는 바위로 된 단석이 기묘한 형태로 되어 있었고, 가운데에는 말라비틀어진 10미터 정도 크기의 커다란 짐승처럼 보이는 검은 석상이 있었다.
“마봉편!”
맥위강이 보는 것은 이 석상을 둘둘 말고 있는 윤기나는 흑색 빛의 줄이었다.
특이하게도 줄은 이 거대한 석상 전체를 통통 감을 만큼 굉장히 길었다.
맥위강은 이를 편(鞭)이라고 불렀다.
편은 채찍인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길었다.
[서, 서방님! 잠깐만요.]이미 편에 마음을 빼앗긴 맥위강의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바라왔던 것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지만 이상할 만큼 맥위강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탁!
맥위강이 편의 손잡이로 추정되는 부분을 붙잡았다.
그리고서 그것을 잡아당겼는데,
-츄르르르르!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커다란 짐승의 석상을 감고 있던 줄이 줄어들면서 가장 끝부분이었던 짐승의 얼굴을 칭칭감고 있던 부분이 풀려나갔다.
-쿠스스스스!
그러면서 드러난 짐승의 얼굴은,
‘여우?’
석상 바로 밑에 있는 맥위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뚜렷하게 보였다.
짐승은 바로 여우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 석상이던 여우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움직였다.
[서, 서방님! 멈춰요!]그녀가 달려가서 편을 계속 잡아당기는 맥위강을 강제로 말렸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절반 정도의 편이 벗겨진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은 여전히 네 다리 부분이 묶여 있는 것이었는데,
-고오오오오!
[…….안 돼.]위에서부터 요동치는 엄청난 요기에 하백령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선법을 운용하여 선기를 활성화하고 있었는데도 그것마저 억누르는 말도 안 되는 요기에 그녀는 기겁을 했다.
그녀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이를 딱딱거리며 맥위강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서방님…서방님! 도망가야 해요! 제발! 제발요!]그런데 맥위강은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한 그녀가 맥위강을 쳐다보았는데,
[아?]맥위강의 두 눈동자가 황금빛 요사스러운 기운에 물들어 있었다.
요기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황금빛?’
금빛 요기를 보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 눈앞의 짐승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것이었다.
‘금모….’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가증스러운 선기.
머릿속을 울리는 오싹한 목소리와 함께,
-팡!
[아악!]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그녀를 쳐냈다.
갑작스럽게 이에 맞은 하백령이 부웅 떠서는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순식간에 피멍 투성이 되었다.
바닥을 뒹군 그녀가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았다.
황금빛으로 가득한 털이 곤두선 거대한 존재의 상체가 보였다.
[아으으으.]그 상체의 머리 뒤로 꼬리로 보이는 것이 아홉 개가 선명했다.
이를 본 그녀는 기겁을 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동 바깥으로 달려 나가, 돌문의 진을 닫아버렸다.
* * *
“꼬리가 아홉 개?”
“여우?”
그녀에게서 봉우리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듣던 장로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존재.
그것은 전설 속에서 내려오는 요괴 구미호(九尾狐)였다.
설마 그런 요사스러운 존재가 봉우리 안에 갇혀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때 경천극이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씨. 혹시 황금빛 털이라고 하셨소?”
“그, 그래요. 그것의 털은 찬란한 황금빛을 띄고 있었어요.”
“이런…..”
경천극이 떨리는 눈으로 굉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보천봉을 쳐다보았다.
다른 장로들은 그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경 장로.”
악영의 물음에 경천극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냥 구미호가 아니네.”
“네? 그냥 구미호가 아니라뇨?”
“……고서 산해경에서 이르길 은나라 시절부터 존재해온 대요괴가 있네.”
“은나라?”
은나라라면 고대 왕조였다.
그것도 굉장히 오래 된.
“이 대요괴는 수많은 아시아 전역의 국가들을 떠돌면서 수많은 이름으로 불렸네. 달기, 불여시, 타마모노마에, 백면서생…..”
요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수많은 역사에 거론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대요괴에 대한 전설이나 소문은 사라졌다.
마지막 족적이 일본에서 아베노 세이메이라는 최고의 음양사가 이 대요괴를 퇴치했다고 전해졌지만, 그것은 실제와는 달랐다.
“우리 경가는 먼 조상대대로 선인의 맥을 이은 하가를 모셔왔네. 그래서 선친께 옛 선인께서 행하신 도행들을 들었소이다.”
“그 말씀은….”
“선인께서 이 대요괴가 다시 나라를 뒤흔들려고 하기에 직접 퇴치에 나섰다고 하오. 하나, 이 대요괴의 힘은 국가의 필적하는 수준이기에 그분께서도 어찌할 수 없어서 신기로 봉해뒀다고 들었소. 하…..그게 설마 이곳 곤륜산이었을 줄이야.”
경천극이 놀란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설마 성지라 불리는 설선이 그 대요괴를 봉한 장소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생각해보면 이곳에 근거지를 두었던 것은 대대로 이 보천봉을 감시하기 위함일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위험한 요괴입니까?”
“위험한 정도가 아니야. 산해경에서 말하는 삼요(三擾) 중 하나가 바로 이 금모 구미호네.”
고서 산해경에 적힌 인외의 여덟 존재.
그것은 오령과 삼요였다.
오령은 대자연의 성스러운 영기가 모여서 태어난 존재라고 하지만, 이 삼요는 달랐다.
온갖 나쁜 것들이 모여서 태어난 사악한 존재다.
“허어…..”
‘혹시 림주께서 말씀하신 그 하늘도 두려워하는 마가 나타난다는 것이 바로 이를 뜻한 게 아닐까?’
모두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비슷한 생각들을 했다.
그때 하백령이 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가요? 제 부군이 죽게 내버려둘 참인가요?”
그런 그녀의 말에 장로들은 뭔가 대처를 해야 한다고 여겼다.
맥위강을 구하러 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 위험한 존재가 설선 밖으로 나가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장로 성진규가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악 장로는 림주가 치료 중이니, 이곳에서 아가씨를 지키고 있게나. 나머지 장로들은 봉우리로 가봅시다.”
둘로 인원을 나누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하백령이 이를 반대하고서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우겼다.
그녀의 안위를 걱정해 이곳에 두고 싶었지만,
“진을 열 수 있는 것은 저뿐인데, 장로들이 무슨 수로 저 안에 들어간단 말인가요?”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장로들 중에 가장 무력이 뒤떨어지는 악영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보천봉으로 향했다.
* * *
보천봉 내 봉인된 장소의 입구.
장로들이 긴장한 얼굴로 각자의 병장기를 들고서 돌문을 바라보았다.
-콰앙! 콰앙!
바깥에서보다도 커다란 굉음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이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는데, 은거기인들인 그들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정말 요사스러운 기운이다.’
돌문이 닫혀 있었는데도 풍겨져 나오는 기운을 굉장한 위압감으로 작용했다.
장로들이 서로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의를 가다듬은 경천극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문을 열어주십시오. 아가씨.”
“알겠어요.”
하백령이 돌문의 어딘가로 손을 갖다 대자, 돌문에 붉은 빛의 글씨가 새겨지며 이내 그것이 양쪽으로 열렸다.
-쿠르르르르!
문이 열리자 동굴의 내부가 드러났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그렇게 흔들리던 봉우리가 고요했다.
“흔들림이 멈췄소이다.”
“응?”
안에서 뭔가 탄 것 같은 매캐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장로들의 뒤편에 있던 하백령이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부적들이…..’
벽면을 가득 매우고 있던 부적들이 전부 새까맣게 타서 잿가루가 동굴 여기저기 날리고 있었다.
그 광경은 너무도 소름이 끼쳤다.
-휙!
경천극이 심후한 진기로 손을 휘젓자, 앞을 날리던 잿가루들이 밀려나며 시야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굴의 한가운데 무언가 보였다.
맥위강으로 짐작되는 뒷모습의 사내가 뭔가를 쥐고서 서있었고, 그 앞에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아름다운 나신의 여인이 보였다.
여인은 정신을 잃었는지 단석 위에 기대 앉아 있었는데, 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단 맥…..장로부터 떼어냅시다.”
그의 이름을 부르려던 장로 성진규가 뒤에 있는 하백령을 의식했는지, 그를 장로로 불렀다.
장로들이 다 같이 단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분명 하백령의 말대로라면 이곳에 금모 구미호가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나신의 여인과 맥위강만 덩그러니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맥 장로?”
향 장로가 그를 불렀다.
서있는 것을 보면 아직 무사한 것 같은데 이상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향 장로가 의아해하며 그의 어깨에 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
“맥 장로 괜찮으…”
바로 그 순간이었다.
-푹!
“컥!”
향 장로의 등 뒤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햐, 향 장로!”
놀란 장로 성진규가 소리쳤다.
그의 등을 관통해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맥위강의 손과 그에 잡혀 있는 심장이었다.
“컥….컥…맥…맥위…”
기습적으로 당한 향 장로가 고통스러워하더니, 이내 몸이 축 늘어졌다.
죽은 향 장로의 뜨거운 피가 바닥으로 흘러들자,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고오오오!
바닥에 팔괘 형태의 진과 함께 붉은 빛의 글씨가 반짝이더니, 이내 그 빛을 잃고서 금이 가버렸다.
-쩌저저적!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맥위강이 뽑아낸 심장을 공손히 무릎을 꿇고서 단석 위에 누워있는 여인에게 갖다 바쳤다.
“대, 대체 이게 무슨?”
누워있던 여인이 눈을 떴다.
선명한 금안의 여인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심장을 받았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경천극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뿔싸! 이 년이 금모 구미호구나!”
-우웅!
경천극이 다급히 그녀를 향해 무형검을 만들어서 찌르려고 했으나, 무언가가 앞을 가리며 이를 막아냈다.
-파팍!
그것은 거대한 금빛 꼬리였다.
‘무형검을 막다니?’
대요괴라 불리는 존재답게 요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경천극이 놀라하고 있는데, 뒤에서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쿠르르르!
뒤에 있던 이곳 봉인된 장소의 돌문이 닫히고 있는 것이다.
장로 성진규가 다급히 그곳을 향해 신형을 날리려고 했지만 또 다른 금빛 꼬리가 날아와 그를 옆으로 패대기를 쳐버렸다.
“으헉!”
-쾅!
동굴의 벽면까지 날아가 박힌 그의 입에서 선혈이 터져 나왔다.
문이 닫히는 벽면 사이에서 하백령이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약속대로 제 남편은 살려주세요.”
그녀의 그 말에 황금빛 머리카락의 여인, 아니 금모 구미호가 화사하게 입 꼬리를 올렸다.
“뭐?”
이를 들은 경천극은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들에게 사실만을 말했다고 여겼는데, 숨겨진 거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가씨이이이이이!”
하백령을 쳐다보며 소리쳤으나,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서 외면했다.
-쿵!
돌문이 완전히 닫혔다.
그 안에서는 멈춰졌던 굉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백령이 눈물을 흘리면서 독기어린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난 잘못하지 않았어. 그 이를 살려야 해. 그 이만 살릴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경천극의 짐작이 맞았다.
그녀는 맥위강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 금모 구미호와 거래를 했다.
-오랫동안 갇혀서 신선한 피와 심장이 필요하다. 대가를 치른다면 이 자와 네 목숨은 살려주도록 하지.
원래 금모 구미호는 그녀 역시도 요사스러운 기운으로 조정하려 했다.
하지만 선인의 후예이자 선법을 익힌 그녀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기에 이런 거래를 한 것이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위안했다.
오직 부군을 위한 길이라고 말이다.
‘그 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야.’
스스로를 자기 위안하고 있던 차였다.
그때 그녀의 귓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굉음 소리 때문에 미처 사람이 다가온 줄도 몰랐던 그녀였다.
하백령이 화들짝 놀라서 그곳을 바라보았다.
“누구?”
처음 보는 자였다.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하얀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사내.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도움을 요청하러 왔을 때, 림주의 거처 안을 들어가지 않았던 그녀는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천여운이 다시 물었다.
“왜 돌문을 닫은 거지?”
순간 당황한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얼버무렸다.
“위, 위험하다고 장로 분들이 닫고 있으라고 그랬어요.”
굳이 모르는 사람이라 변명을 할 필요도 없었지만, 스스로 계속 문을 닫은 것에 대한 가책 역시 받고 있었기에 나온 말이었다.
이에 천여운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아까 전에 그 외침은 뭐고 약속대로 남편을 살려달라는 것은 무슨 소리지?”
‘!?’
하백령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그 소리들을 전부 들었을 줄은 몰랐다.
“그, 그건….”
천여운이 붉은 빛의 글씨가 새겨진 돌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열어.”
명령을 하는 듯한 말투에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천여운을 노려보았다.
아직까지 안에서 굉음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장로들이 죽지 않고 금모 구미호와 싸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거래를 마치려면 그들이 전부 죽어야 했다.
“……그럴 수 없어요.”
“뭐?”
천여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것에 위압감을 느낀 그녀였지만 지지 않고서 앙칼지게 말했다.
“이 문을 열면 내 남편이 죽어요.”
그녀는 절대로 문을 열 생각이 없었다.
천여운이 낮게 깔린 어조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열어라.”
‘이게!’
평소부터 은자림의 후계자로서 기인들에게 극진한 대우를 받아왔던 그녀는 천여운의 이런 말투가 거슬렸다.
이에 그녀가 표독스럽게 말했다.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이곳 은자림의 하나뿐인 후…”
-꽉!
그 순간 그녀의 입을 천여운이 움켜잡았다.
“웁!”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당장이라도 이빨과 턱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녀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데 천여운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년이 누군지 내가 왜 알아야 하지? 그리고 내가 분명히 경고했지. 열라고.”
‘이, 이놈 대체 뭐야?’
그제야 그녀는 이 자가 안하무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배경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두려움을 느낀 그녀가 다급히 말했다.
“눠…눠게 해룰….궈하머….무느….욜 수….옵소요.”
[내게 해를 가하면 문을 열 수 없어요.]진으로 막혀 있는 문을 열 수 있는 자는 오직 림주와 자신뿐이었다.
이것을 빌미로 자신에게 해코지를 가할 수 없게 하려 했다.
그런데 천여운에게 나온 말은,
“계집. 내가 문을 못 열어서 네년에게 열라고 한 줄 아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백령은 천여운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선법으로 만든 진법은 무공을 익힌 자라고 해서 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슨 말인가 싶어 의아해 하는데,
-촥!
천여운이 검결지로 돌문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붉은 빛의 글씨가 새겨져 있던 돌문에 검은 선이 생겨나더니, 이내 돌문이 갈라져버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당혹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천여운이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악영이 딱 한 번 네년을 살려달라고 하더군.”
‘!?’
그녀의 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굉장한 불길함이 그녀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데 그 기회를 쉽게 버리는군.”
-오싹!
당황한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애원하려 했다.
“조, 좀껀먼!”
-콰드득!
천여운이 잡고 있던 그녀의 입에서 아래턱을 잡고서 그대로 밑으로 뜯어내버렸다.
턱이 뜯겨나간 그녀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카그그그그그극!”
“시끄럽다.”
-촥!
발광을 하는 하백령을 향해 천여운이 검결지를 그었다.
그러자 비틀거리던 그녀의 목이 갈라지며 머리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