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59)
# 82장 북쪽에서 온 손님 (1) #
“헉…헉….헉…..”
거친 호흡성에 뿌연 입김이 흘러나올 만큼 차가운 얼음 동굴.
불과 한 시진 전만 하더라도 투명하면서 아름다운 얼음이 사방을 수정(水晶)처럼 수놓던 동굴은 부서진 파편의 잔해들로 가득하다.
-뚝뚝!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바닥을 쳐다 보니, 붉은 핏자국 얼음 바닥에 퍼져나갔다.
얼마나 급하게 도망쳤는지 몰랐는데, 두꺼운 털옷이 붉게 젖어 있었다.
“하아….하아! 끄으으으윽!”
이를 인식하자 베였던 부위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서 치료하지 않으면 추운 날씨로 상처부위가 괴사(壞死)할 지도 몰랐다.
‘서둘러서…..궁(宮)에 알려야만 해.’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워 절뚝거리며 걷는데,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쿠르르르르!
얼음 동굴 전체에 진동이 일어났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동굴이 흔들리자, 그렇지 않아도 부서진 얼음 파편들이 흩날리며 사방이 하얗게 수증기처럼 시야를 메웠다.
“서, 설마?”
불길한 징조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두터운 빙벽마저 뚫으려 한단 말인가.
두려움을 느낀 그는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콰콰콰콰콰쾅!
“크와아아아아아!”
견고하던 얼음 바닥이 부서지면서 검은 괴생물이 포효를 지르며 뚫고 나왔다.
뿌연 수증기로 희미하게 보였지만 노란 안광에 사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 빙벽을 뚫다니?’
놀라하던 그가 아차 싶어 입을 틀어막았다.
“흡!”
입을 틀어막고서 호흡을 들키지 않으려는 순간, 노란 안광을 내뿜던 괴생물이 뱀처럼 길게 휘어지며 그를 향해 흉악한 이를 드러내며 뻗어왔다.
“크와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악!”
-팍!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벌떡 일어났다.
몸을 덮고 있던 모포가 벗겨지며 수풀 틈으로 비치는 햇살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날이 밝은 것이다.
“헉…..헉….”
얼마나 놀랐는지 얼굴이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하 얼음 동굴에서 괴생물이 그를 덮쳐왔는데, 그것은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또…..또 인가.’
얼굴이 흉터로 가득한 청년이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바스락!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하얀 털옷을 입은 중년인이 불씨가 꺼져가는 모닥불에 마른 나뭇가지를 넣으며 되살리고 있었다.
중년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또 그때 일을 꾼 게냐?”
“단 숙부.”
“어지간히 기억 속에 남은 듯하구나. 하긴 그 괴물로부터 살아남은 자는 너밖에 없으니 말이다. 후우….덥구나.”
불씨를 지피던 중년인이 입고 있던 털옷을 벗었다.
얼마나 더웠는지 털옷 안에 있는 내의가 땀으로 젖어있었다.
“오랜만에 오지만 이곳 중원은 정말 덥구나. 중원인들은 이런 더운 곳에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군.”
날씨는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다.
그러나 추운 북쪽에서 내려온 중년인에게 중원의 날씨는 덥게만 느껴졌다.
흉터의 청년 역시도 덥다고 느꼈기에 옛적에 털옷 대신 가벼운 소재의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때의 악몽을 꾸고서 깨어난 청년은 겨우 공포에서 벗어났는지 떨림이 멈췄다.
그런 청년에게 중년인이 말했다.
“사흘을 꼬박 자지 않고 내려왔는데, 좀 더 쉬거라.”
“아닙니다. 숙부. 그 괴물이 언제 빙장석을 뚫고 나올지 모르는데, 쉴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집하고는.”
이곳 하남 북부까지 내려오기까지 보름 동안 전부 합쳐 고작 네 시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눈 밑이 퀭한 것이 그 증거였다.
운기조식으로 내기를 채우지 않았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중년인이 말했다.
“이제 곧 갈래 길이다. 나는 이대로 정도 무림맹의 본단으로 갈 것이다. 정말 너는 개봉으로 갈 참이더냐?”
“……그렇습니다.”
“형님을 닮아서 고집이 보통이 아니구나. 그들이 정말 도울 것 같으냐. 중원 무림인들 중에서 협(俠)을 추구하는 이들은 정파인들 밖에 없다.”
“안하니 만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마(魔)를 추구하는 것들이 퍽이나 네 부탁을 들어줄까.”
중년인이 그의 고집에 혀를 찼다.
그래도 한 번씩 왕래가 있던 정도 무림맹에 부탁을 하는 편이 나은데, 어째서 저런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사마의 무리들이 얼마나 간악하던가.’
그런 자들이 타인의 위기에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불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숙부의 시선에 흉터의 청년이 자신의 품속에 숨겨진 물건을 꾹 쥐었다.
죽을 뻔했던 그를 구해준 그 자가 준 물건이었다.
눈앞에 있는 숙부조차 믿을 수가 없어서 이 물건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것이 있다면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꼭 전해주게.]그 자가 정말 이 물건의 주인이 맞다면 말이다.
* * *
개봉의 마교 지부에서 가까운 풍청 객잔.
객잔 앞의 햇빛을 가리는 차양 밑의 탁자에 앉아, 가볍게 반주(飯酒)를 하면서 오리고기와 국수로 식사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대로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객잔에는 손님들이 없다.
그것은 차양 아래서 식사를 하고 있는 이들 때문이었다.
붉은 색으로 마(魔)라 적힌 상의를 입고 있는 그들은 누가 보아도 마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봉에 마교의 지부가 들어선지, 거의 한 달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개봉 사람들은 마교인들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그들을 두려워했다.
몇 백 년이 넘게 정파의 영역으로 있던 곳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에휴, 그냥 와서 식사하면 되지. 뭘 그렇게 피해 가는지 모르겠네요.”
-벌컥!
가볍게 술잔을 털어 넘기는 자색 두건의 청년은 호위전의 부관인 허봉이다.
툴툴거리는 그의 말처럼 사람들은 신기할 정도로 객잔 가까이로 오다가, 그들을 발견하고는 도망치듯이 객잔 주변을 빙 둘러서 가버렸다.
-탁!
‘몰라서 묻는 게요.’
추가 주문한 음식을 탁자에 내려놓는 점소이가 속으로 혀를 찼다.
점심 때라서 손님이 넘쳐야 할 시간에 저들이 객잔 입구에 자리 잡은 덕분에 오늘 장사는 공친 셈이었다.
‘그게 그렇게 신경 쓰였다면 이 층에서 식사를 하던가!’
라고 말할 용기는 없기에 음식만 내려놓고 조용히 객잔으로 들어갔다.
추가로 나온 음식인 회과육의 고기 한 점을 입에 쑤셔 넣는 허봉에게 거구의 근육질의 청년인 고왕흘이 달래듯이 말했다.
“어차피 시간이 걸릴 일이네. 그래도 처음보다는 낫지 않나.”
처음 개봉에 지부가 들어서고 포교 활동을 할 때, 개봉 사람들은 무슨 귀신이나 괴물을 보는 것처럼 마교인들을 피해 다녔다.
그래도 한 달이 지나면서 그것은 생각보다 많이 완화되었다.
“그렇긴 한데…..에잇 아무튼 아직 한참 먼 것 같아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하핫, 허봉 자네는 뭐든지 의욕이 과다해서 문제일세. 정파에서 수백 년에 걸쳐서 만든 인식을 한 달 새에 완전히 바꾸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나.”
-탁탁!
허봉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마착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정파인들의 영향을 받은 개봉 사람들의 인식을 단 번에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지부 소속의 제사장들이 구휼미를 베푸는 등 여러 방면으로 포교 활동에 힘을 쓰고 있었다.
“게다가 교주님의 명성 덕분에 한 달 동안 새로 입교한 교인이 백 명이면 많이 선전하지 않았나. 너무 걱정하지 말게.”
“전부 무림인이잖아요.”
새로 교에 입교한 자들은 평범한 백성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진성에서 있었던 천여운의 신위를 듣고서, 마교에 입교를 신청한 떠돌이 낭인들이었다.
오대고수가 된 마신 천여운의 명성은 당금 무림에서 하늘을 찌를 듯했다.
대명제국의 국교마저 바꾸고 정도 무림맹이 굴욕을 감수하고서 개봉을 넘긴 사건으로 향후 마교가 무림을 제패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소속의 무림인들이 급격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게 어딘가. 그만큼 최연소 오대고수가 되신 교주님의 산하에 들어오고 싶은 자들이 많다는 증거지.”
“전 사실 그게 좀 불만입니다.”
“응?”
천여운을 광신도처럼 따르는 허봉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이에 허봉이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아니. 이쯤 되면 교주님은 오대고수가 아니라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무림맹주도 상대가 되지 않고, 당금 무림에서 현경의 고수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분은 교주님 밖에 없잖아요.”
“흠, 그건 그렇군.”
고왕흘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신위를 보였는데도 오대고수에서 그친 것을 보면 정도 무림맹이나 사파 연맹에서 수작을 부렸다는 공작을 벌였다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때 가만히 국수를 먹는데 집중하던 호상화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동쪽의 괴물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닐까.”
“동쪽의 괴물?”
의아해하는 허봉의 말에 옆에 있던 사마착이 손바닥을 치면서 말했다.
“아!……투신을 말하는 게요?”
동투신(東鬪神) 악의.
중원 오대고수의 일인이다.
동쪽의 투신이라 불리는 그는 오대고수들 중에서 병장기조차 다루지 않고 오직 두 주먹 하나로 무림의 정점에 오른 사내였다.
천여운 역시도 별호에 신(神)이라는 광오한 글자가 붙게 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오대고수들 중에 유일하게 신이라는 글자가 붙었던 자이다.
“에이, 그래봐야 소문만 무성한 자랑 만인의 앞에서 위용을 떨치신 교주님을 비교하는 게 말이 되나요.”
허봉이 손을 휘저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방금 전까지 웃으면서 말하던 고왕흘이 콧김을 쉭쉭 뿜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허봉! 우리 상화가 한 말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치부하는 것 아닌가.”
“우리 상화? 와아! 또 시작이네요.”
“푸웃!”
-촥!
그 말에 호상화가 먹고 있던 국수를 내뿜고서 얼굴이 빨개졌다.
덕분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마착의 얼굴에 국수가 이리저리 휘감기고 말았다.
‘아……이거 전에도 경험했던 것 같은데.’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계속해서 호감을 보이면서 노력한 끝에 얼마 전부터 사귀기 시작한 고왕흘과 호상화였다.
곰 두 마리가 나란히 붙어있는 것 마냥, 보통 사람들보다 거구인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라 할 만큼 잘 어울렸다.
다만 그것이 누군가의 배알이 뒤틀리게 할 뿐이었다.
“허참, 이거 연인이 없는 사람은 섭섭해서 살 수 있겠나요.”
“크흠!”
“아까부터 얘기할까 말까하다가 참았는데, 두 분이 하도 붙어있어서 그런지 그 여리여리한 의자가 부러지려 하거든요. 그리고…..”
‘……또 시작이다.’
-찌릿!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허봉의 투덜거림에 호상화가 옆에 앉아 있는 고왕흘을 흘겨보았다.
그렇게 남들 앞에서 우리 상화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또 그랬다가 허봉의 불평불만을 식사 내내 듣게 생겼다.
그렇게 어수선하던 찰나에 허봉이 갑자기 투덜거리던 것을 멈췄다.
“응?”
왜 그러나 싶어서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을 쳐다보았는데, 장포를 둘러쓴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한 청년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무림인?’
첫 눈에 그들은 흉터의 청년이 무공을 익혔음을 알아차렸다.
절정 초입에 이른 무공 실력을 지닌 자였다.
느닷없이 그들을 향해서 다가오기에 경계심이 생기려고 하는데, 탁자의 앞까지 다가온 청년이 뜻밖의 행동을 했다.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겨우…..겨우 천마신교의 분들을 만나 뵙게 되는군요.”
“엥?”
일면식도 없는 자가 무릎까지 꿇어가면서 하는 뜬금없는 소리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고왕흘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연유를 물었다.
“누구시기에 갑자기 이렇게 무릎을 꿇는 것인지?”
그 물음에 청년이 간절한 목소리로 청했다.
“귀 교의 교주님을 뵙게 해주십시오!”
“?”
느닷없이 교주님을 뵙게 해달라는 말에 고왕흘이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허름한 행색을 보면 낭인인 듯한데, 아무래도 교에 입교를 원하는 자 같았다.
이에 허봉이 자리에 일어나서 말했다.
“아! 혹시 본교에 입교하시려는 것 같은데, 요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서 지부로 가서 문의하시면…..”
그 말을 끊고서 흉터의 청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러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귀 교의 교주님을 뵙고 도움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허봉이 눈썹이 치켜 올라가서 흉터의 청년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기 이렇게 막무가내로 교주님을 뵙겠다고 하시면, 저희가 친절하게 ‘예’ 하고 바로 안내해드릴 거라고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때 허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흉터의 청년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급히 꺼내들었다.
“!?”
그것은 옥으로 만든 패였는데, 이를 보는 순간 허봉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허봉 대체 왜 그러는 것인….엇!”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그러는가 싶어서, 허봉의 옆으로 고개를 기웃거리던 고왕흘조차 입이 벌어져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옥패에는 일곱 글자의 글씨와 직인이 새겨져 있었다.
[太上敎主 天仁知]태상교주 천인지.
옥패는 다름 아닌 오래 전, 행방불명되었던 전 태상교주 천인지의 신분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