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이건 또 천우신조라고 할 수 있겠지.’
이제 놈들은 길을 기억하고 급조한 부락 쪽으로 직행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놈들이 도중 길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길을 틀어서 온다면 내 본진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유한 전사들을 반으로 나눌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놈들은 머리꼭대기까지 화가 나서 미친 듯이 나를 쫓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놈들을 도발하고 유인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하늘 부족에서 몇 없다.
그 말은 결국 내가 미끼가 되어야 했다.
‘유인과 매복, 그리고 몰살!’
전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전술이다.
‘몰아넣고 몰살시키자마자 바로 치고 들어가면…….’
몰살까지는 가능할 것 같지만, 기습으로 이빨호랑이 부족 전체를 몰살시키는 것이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하지만 해낸다면 이탈투드워프들의 짝짓기 미션은 클리어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이빨호랑이 부족과 싸워서 승리한다면 산맥에 있는 작은 씨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는 충분히 넓으니까.’
이빨호랑이 부족의 지배를 받는 씨족들을 이곳으로 다 모아놓으면 악어머리 부족이 다시 온다고 해도 당당해질 수 있다.
* * *
악어머리 부족이 강의 모래사장을 따라 부족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괜히 걱정한 것 같습니다.”
악어머리 부족 전사 하나가 표정이 어두운 이빨에게 말했다.
“으음…….”
하지만 이빨은 왠지 기분이 묘했다. 처음 대나무 울타리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소름이 돋았던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연꽃 님이 가엽습니다. 고기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물소를 가져다줬으니까…….”
“예, 맞습니다. 당분간은 굶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소를 다 먹으면 그다음에는 다시 고기를 못 먹을 겁니다. 저는 연꽃 님이 이빨 님께 말라비틀어진 과일을 드릴 때 울 뻔했습니다.”
전사가 이빨의 눈치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기껏 데려가더니 이딴 것이나 먹이고 산단 말이지.”
이빨은 마지못해 들고 온 대나무 통에서 말린 무화과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린 무화과 하나를 입에 넣고 씹었고, 표정이 굳어졌다.
“왜 그러십니까? 못 먹을 정도로 맛없습니까?”
“아니다.”
“예?”
“이건 땅속에서일어서 족장이 일부러 말린 거다.”
이빨은 말린 무화과를 입에 털어 넣자마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돌아온 길을 뚫어지게 봤다.
“싱싱한 과일을 일부러 말렸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과일이 말라비틀어지면 못 먹습니다. 벌레가 생깁니다.”
전사머리가 이빨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한번 먹어 봐라.”
이빨이 말린 무화과를 내밀었다.
“저, 저는 별로 배가 안 고픕니다. 괜찮습…….”
“먹어라.”
“……주시니 먹겠습니다.”
말라비틀어진 무화과의 모습은 그가 좋아하는 고기와는 달리 끔찍하게 맛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빨의 강요에 그는 마지못해 말린 무화과를 받았고, 단번에 삼키겠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고 입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한 번 무화과를 씹고, 맛을 보자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
“어……어떻게 과일이 이렇게 달 수 있습니까?”
“꿀이다, 꿀!”
“예, 맞습니다. 꿀입니다, 꿀! 그런데 무엇을 말린 걸까요?”
전사머리의 말에 이빨이 대나무 통에서 말린 무화과 하나를 꺼내 반쪽으로 쪼갰다.
“이건…….”
이빨이 유심히 손에 들고 있는 과일을 살폈다.
“씨많다다.”
악어머리 부족은 무화과를 ‘씨많다’로 불렀다.
사과는 ‘빨개’로 부르고, 포도는 ‘송이송이’로 불렀다.
그리고 씨많다는 먹을 수 있기는 하지만 애써 따서 먹을 정도로 맛있는 과일은 결코 아니었다. 지천에 깔렸으니 잘 익은 것이 떨어지면 입이 심심할 때나 주워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무화과를 말릴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악어머리 부족 중에서도 지배계층인 악어머리 족장의 혈족들은 겨울에는 사과를 보관해서 먹었기에 사과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무화과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말리니까 더 맛있습니다!”
“그러게, 왜 우린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땅속에서일어서는 생각하는 자체가 우리와 다르다. 확실히 대단한 놈이야.”
이빨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하늘 부족 전사의 수가 늘어나면…….’
땅속에서일어서는 반드시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 이빨이었다.
“이빨 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직 시간은 많다.”
아이들은 어릴 때 부쩍부쩍 자란다는 것을 알지만 이빨은 땅속에서일어서가 데리고 간 아이들이 훌륭한 전사가 될 정도로 자랄 때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위협이 되진 않을 것이다.
“예?”
“가자! 우리도 빨리 가서 씨많다를 따서 말려야겠다. 겨우내 이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겠어. 이렇게 단것은 처음 먹어 본다.”
본의 아니게 악어머리 부족은 땅속에서일어서에게 또 하나를 얻어가게 되었다.
물론 어떤 면에서 연꽃이 악어머리 부족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라는 것을 이빨은 알 턱이 없었다.
‘아직은 땅속에서일어서는 위협이 된다기보다는 이용할 것이 더 많다.’
“그럼 돌아가서 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선 도망친 검은 고래 부족 새끼들도 다 찾아서 죽여야 하니까요.”
“그렇지.”
전사머리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는 이빨이었다. 지금 이빨은 온통 땅속에서일어서와 큰눈을 머릿속으로 비교하고 있었다.
‘큰눈이 조금만 입이 크다면 땅속에서일어서를 충분히 발아래에 두고 부릴 수 있을 텐데…….’
또 한 번 이빨은 큰눈과 땅속에서일어서를 비교했다.
‘제비꽃의 진짜 아들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악어머리 족장은 큰눈을 악어머리 부족의 차기 족장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빨은 악어머리 족장과 생각이 달랐다.
그에게는 큰눈 말고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큰눈을 지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땅속에서일어서가 진짜 제비꽃의 아들이었다면 차기 족장으로 큰눈이든 땅속에서일어서든 누가 족장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큰눈은 땅속에서일어서가 제비꽃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자! 돌아갈 길이 바쁘다. 씨많다를 주워서 모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예, 이빨 님!”
* * *
‘준비를 마치면 바로 몰려올 테지.’
지금 거북 씨족 족장은 이빨호랑이 부족 전사들이 이곳으로 몰려올 거라는 내 말을 듣고 겁먹은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물론 늑대발톱도 그 심각성을 알고 표정이 어두운 것은 마찬가지다.
“일단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심각한 표정인 상태에서 거북 씨족 족장이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싸우는 것보다 도망치려는 생각부터 먼저 하는 나약한 존재가 분명했다.
“도망친다고? 어디로 도망칠 건데?”
“하늘 부족 족장님께서 악어머리 부족과 친하시다면 그곳으로 가서…….”
악어머리 부족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눈치챈 모양이다.
“안 친해.”
동굴 침실에서 쉬고 있는 연꽃이 들었다면 서운할 말이지만 그게 현실이다.
악어머리 부족에게 의탁한다면 처음에는 환대받겠지만 결국 나중에는 토사구팽을 당할 수밖에 없다.
‘큰눈이 나를 싫어하니까.’
사람이 싫은 것에는 이유가 없고 한 번 싫은 놈은 끝까지 싫은 법이다. 그러니 나와 큰눈은 물과 기름일 수밖에 없다.
‘평생 편히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돼지처럼 이용만 당할 것이다.’
내가 부족민을 이끌고 악어머리 부족에 의탁한다면 나를 죽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죽일 수 있게 된다.
“도망칠 생각만 하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이나 잘해.”
싸우기 위해서 작전회의를 하려는 건데 거북 씨족 족장은 도망치자는 이야기만 하고 있기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배를 당하다 보면 저렇게 변하지.’
항상 저렇게 도망만 치고 살았기 때문에 강해질 수 없었고, 조건반사처럼 이빨호랑이 부족이라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떨게 되는 것이다.
“예, 예.”
“이빨호랑이 부족 전사들은 몇 명이나 되지?”
“200명이 넘습니다.”
거북 씨족 족장의 말에 늑대발톱이 인상을 찡그렸다.
“200명이 넘는다고?”
그 전사들 중에서 적어도 100명은 몰려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랐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것은 몰랐습니다. 좀처럼 산에서 내려오는 적이 없었습니다.”
산맥에서 다른 씨족들 위에서 군림하는 부족이다. 부족함 없이 항상 풍족하게 지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강으로 내려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저도 물물교환을 하다가 들은 이야기가 전부라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늑대발톱이 내게 말했다. 원시시대에 200명 이상의 전사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아이들과 여자들까지 더한다면 최소 700명 이상의 대부족이라는 의미니까.
“놈들은 이빨호랑이만큼 잔인합니다.”
거북 씨족 족장이 다시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건 알고 있다.”
“그러니까…….”
사실 거북 씨족 족장과 씨족민들은 하늘 부족으로 온 후에 놀라고 실망을 거듭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하늘 부족의 규모가 작다는 것에 실망한 것 같다.
“도망칠 생각은 없다고! 도망칠 곳도 없고!”
용기의 미션 때 농노들과 작전회의를 할 때 딱 이런 꼴이었다.
사악한 용병들을 상대로는 절대 이길 수 없으니 도망치거나 다시 노예처럼 살더라도 항복해서 목숨이라도 구하자고 했던 농노들이 대부분이었다.
“……예.”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
“이틀이면 도착할 겁니다. 놈들이 몰려오면 끝장입니다. 다 죽이려고 할 겁니다.”
가는데 이틀이라면 적어도 내게 사흘의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빨호랑이보다 닥쳐올 겨울이 더 무서우니까 그딴 놈들이 무섭다는 소리는 이제 그만 좀 해.”
지금 도망친다면 겨울나기 준비를 할 수 없다. 그럼 굶어 죽는 부족민들의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도 갑자기 불어난 부족민 때문에 지금도 식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부족하면 빼앗을 수밖에 없지.’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이라도 하게 된다. 이번 전쟁을 회피한다면 나와 하늘 부족은 어쩔 수 없이 약탈 부족이 되어야 하고, 나보다 더 약한 존재들에게 잔인해져야 했다. 그건 내가 원치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놈들이 공격해 오면 이번 겨울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철저하게 패배의식에 찌든 거북 씨족 족장이다.
하지만 거북 씨족 족장의 말이 도움이 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놈들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 상기시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틀 안에 온다고 했지? 싸울 방법을 알려줄 테니 잘 들어.”
“싸우겠다는 말씀입니까?”
늑대발톱이 내게 물었다.
“싸워야 한다.”
“그러지 말고 돌아가고 있는 이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어떨까요?”
그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