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ignore the joint again! RAW novel - Chapter 12
012. 사파인들에 대한 토벌을 의뢰하려 합니다.
“거기선 힘을 조금 더 빼야지.”
“이렇게요?”
– 하앗!
현천검을 펼치며 수련에 매진하는 명화에게 정문이 조언을 건넨다.
얼마 전 명화의 검술을 조금 고쳐준 이후로는 매일 이렇게 수련을 봐주고 있다.
진명과 묵환의 수련도 도움을 주려 했으나, 첫날 수련을 조금 도와준 이후로는 둘에게 맡기기로 했다.
스스로가 깨우쳐야 할 영역이 그들에게는 아직 존재했기 때문이다.
명화는 가르치는 대로 곧잘 따라오며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사형이 지도해주신 이후로 성취가 빠른 거 같아요. 정말 신기해요!”
명화가 신나서 소리쳤다.
“혼자보다 둘, 둘보다는 셋, 셋보다는 그 이상이 더 나은 법이지.”
“다른 사제들도 함께 수련하면 어떨까요? 다들 사형의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거 같아요.”
정문의 대답에 명화가 기다렸다는 듯 쏟아낸다.
대사형은 사라지기 전부터 늘 이랬다.
자신이 가진 성품과 실력에 비해 주변에 사람을 끌어모으려는 경향이 없었다.
그런 성향이 진명이나 자신, 그리고 묵환을 끌어들이긴 했지만.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언젠가는 다 함께 수련하도록 하자. 공동의 방식은 바뀌어야 해.”
“그런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요!”
명화의 얼굴이 살짝 상기된다.
그녀 역시 지금 공동의 수련 방식에 완전히 만족하진 않는 것 같다.
“하긴 이제 곧 태청궁이 다시 열리면 함께 수련할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요.”
“태청궁이?”
“못 들으셨어요?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개궁한다 들었어요.”
“태청궁이 열리면 뭐가 바뀌지?”
“사문 내에 쌓였던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야겠죠. 우선은 외부랑 관련된 것들부터요.”
“외부면 속가를 말하는 건가?”
“속가뿐 아니라 따로 일을 부탁해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공동에···?”
“예?”
“아니, 부탁은 무슨 부탁을 말하는가 해서.”
“사파 토벌도 있고··· 외부 행사 초청도 있고··· 뭐 그렇죠.”
공동에 토벌을 부탁하고 행사 초청을 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운 정문.
공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종남도 화산도 있는데 굳이?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얼른 지워버렸다.
사실 구파면 그런 부탁이 있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고.
자신은 공동에 그런 부탁이 있다 들은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공동에 이런 부탁들이 있다고 해도 그다지 중원 무림의 정세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기에 자신에게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나도, 사매도, 진명이도 다들 바빠지겠군.”
정문이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이건 자신의 계획과는 다른 부분이다.
구파의 제자라고는 해도 이렇게 사무에 치이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건 또 아니죠.”
“?”
“우린 태청궁에 나가지 않아요.”
“왜?”
“밀렸으니까요. 뒷배한테.”
“설마 사풍이 놈 때문인가?”
“정확히 말하면, 그 조부님 덕이죠.”
진사풍의 조부.
공동의 태상장로라는 그자의 영향력이 계속 언급된다.
태상장로가 뭐 얼마나 큰 뒷배겠냐 생각했던 정문이지만, 계속해서 그 이름이 나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공동에 미치는 그의 입김이 꽤 큰 것 같다.
진사풍의 다른 공작이야 진명이 어떻게든 막아볼 수 있었다곤 하지만 태상장로가 나선 일에선 진명 역시 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감히 맞서볼 항렬도 아니고, 진명에게는 그런 뒷배가 있지도 않았으니까.
힘으로 억누를 수 있는 자신의 사제에 비해 태상장로는 정문이 생각해도 상대하기 쉬운 존재가 아니다.
특히 태청궁을 손주의 파벌로 채운 수는 정문이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 수였다.
속가나 외부와 소통하며 대외적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곳이 태청궁이 아닌가.
진사풍이 태청궁에 머물며 여러 일을 직접 처리하다 보면 훗날 외부적인 명성과 평가에 있어서 자신의 손주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자신에게 전이된 기억으론 태청궁주인 자명 도인은 자정 못지않게 실권이 강한 장로 중 한 명이다.
그런 자명이 있음에도 그곳을 손주의 파벌로 채운 것은 태상장로들의 입지가 장문인과 태청궁주에 비견할 만하다는 뜻일 것이다.
“어쩌면··· 파고들 틈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정문의 혼잣말에 명화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정문은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그저 야릇한 미소만 살짝 지을 뿐이었다.
* * *
공동산의 산문을 지나면 2000계단이라 부르는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그런 계단을 겨우겨우 올라 처음으로 만나는 전각이 있으니, 공동파의 대문과도 같은 태청궁이 바로 그곳이다.
무당에 해검지, 화산의 접객당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태청궁이다.
외부의 일을 접수하여 위로 전달하기도 하고 향화객을 맞이하기도 한다. 무인이 방문했을 시 해검을 담당하며 전서를 받는 것 또한 태청궁의 업무 중 하나이다.
즉, 태청궁은 외부와 공동파를 연결해주는 입이며, 눈이며, 귀가 되는 곳이다.
그런 태청궁을 지나 조금의 계단을 더 오른다면 공동이 자랑하는 ‘진짜’ 대문인 조천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속세와 도문을 분리하는 하나의 경계.
그렇기에 조천문의 웅장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정도다.
태청궁이 있기에 조천문을 따로 지키거나 하지는 않으나, 늘 새벽마다 제자들이 돌아가며 조천문의 앞을 깨끗이 쓸어놓는다.
조천문은 곧 공동의 첫 얼굴과도 같은 곳이니까.
두 달 전, 정문이 이곳으로 비틀거리며 찾아왔을 때도 새벽 청소를 하던 사제 덕에 얼른 발견될 수 있었다.
정문은 두 달여 만에 조천문의 외관을 바라본다.
“이렇게 생겼었군.”
자신이 이 문을 향해 걸어왔다고는 하나, 자신의 기억에는 없다. 분명 여기까지 걸어온 것은 이전 이정문의 의지였음이 분명했다.
어쩌면, 죽기 직전의 이정문은 지금 자신이 바라보는 이 풍경이 미치도록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
– 끼이익.
조천문이 열린다.
‘?’
천천히 열리는 조천문 사이로 묵환의 얼굴이 서서히 나타났다.
“어어어어?”
정문의 얼굴을 보자 기겁을 하는 묵환.
사실 묵환은 정문이 검을 버리라는 충고를 해준 뒤 알게 모르게 그를 피해 다니는 중이었다.
“사형을 보고는 어어어어가 뭐냐.”
“아, 그, 저, 사형을 뵙습니다.”
묵환이 차마 눈을 바라보지 못한 채 얼른 고개를 숙인다.
“날 피해 다니는 거냐?”
“하하, 제가···제가요? 설마요!”
“내가 했던 말 때문이냐?”
“······.”
“그저 조언한 것뿐이야. 선택은 네 몫이라 했잖아. 그러니 검을 버리기 싫으면 마음대로 해. 날 피하지도 말고.”
정문의 쏟아냄에 묵환이 말없이 고개만 푹 숙였다. 분명 자신을 귀여워하기만 하던 사형이었는데, 2년이라는 세월 때문일까? 지금은 정문이 어렵기만 하다.
“···예, 사형.”
“그래. 수련하다 막히면 찾아오고.”
정문이 묵환을 지나쳐 조천문으로 들어서자 이제야 묵환이 이상함을 알아챈다.
이 새벽녘에 조천문을 나서 어디를 다녀온다는 말인가.
조천문 밑에는 산문과 태청궁, 그리고 울창한 산길이 있을 뿐이었다.
“사형···, 어디를 다녀오시는 건가요? 혹시 또···”
사문을 떠나려 했냐는 말이 목을 타고 올라왔으나 얼른 삼켜버렸다.
정문 역시 그런 묵환의 염려를 알았는지 살짝 웃으며 답해줬다.
“잠시 밑에. 산문은 나서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
묵환이 다시 고개를 갸웃했으나, 설명은 거기까지였다. 정문은 대신
“곧 재밌어질 거야.”
란 말만 남긴 채 조천문을 넘어서려 했다.
그때.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온다.
걸음마다 힘이 실려 중심이 맞지 않은 소리가 난다.
분명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의 발걸음 소리였다.
정문과 묵환의 시선이 동시에 계단으로 향했다.
!!
그들이 시선이 닿은 곳에는 도문인, 그러니까 도사들이 있는, 공동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 하나 헐떡이며 이곳을 바라본다.
“스···님?”
묵환이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아무리 도기가 좋다지만 스님이 도문에 찾아오다니···
이건 도사 생활이 10년이 넘는 둘, 모두 처음 보는 광경이다.
무공이 좀 고강한 스님이라면, 황포(黃布)를 두른 스님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림승이라면 구파의 일각인 공동에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아쉽게도, 지금 조천문에 선 저 노승은 아무런 기도가 느껴지지 않음은 물론이고 황포 또한 걸치지 않고 있다.
즉, 소림승은 아니란 뜻이다.
정문이 먼저 나선다.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여긴 공동산, 공동파의 조천문입니다.”
혹여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지 정확히 이곳의 위치와 이름을 집어준다.
사실 잘못 찾아오려야 잘못 찾아올 수도 없지만 말이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태청궁을 지났을 것인데 거기에는 서래제일(西来第一) 도원소재(道源所在) 공동산(空洞山)이라 적힌 현판이 용사비등(龍蛇飛騰)하게 걸려있기 때문이다.
– 후우우
크게 숨을 한번 몰아쉰 노승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제가 맞게 찾아왔군요.”
!
“공동파에 찾아오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왜···?”
“자정 도장을 뵈러 왔습니다.”
노승의 말에 정문과 묵환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많은 생각이 그들의 얼굴에 스친다.
“죄송하지만, 외인을 함부로 사문에 들일 수는 없습니다. 태청궁이 열기를 기다리시지요.”
이번에는 묵환이 나서 최대한 완곡히 거절의 의사를 표한다. 이렇게 사문으로 찾아온다 해서 아무나 장문인을 만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부러 태청궁이 열기 전에 찾아왔습니다. 또한, 외인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법화사(法話寺)에서 왔습니다.”
공동산은 도기가 좋은 명지로 유명한 곳이다. 오죽하면 도원소재라는 말을 당당히 내걸 정도이니.
허나, 불즉도며 도즉불(佛卽道, 道卽佛)이니
만류귀종(萬流歸宗)이란 말 역시 존재한다.
어찌 신성한 기운이 하나의 신앙에만 한정되겠는가?
공동산에는 도기를 다스리며 도가를 수행하는 공동파 외에도 불교 사찰이 하나 들어서 있다. 산문의 옆길로 들어서면 나오는 거친 숲길 너머에 있는 작은 사찰, 법화사.
공동산을 함께 공유하는 이웃이라고는 하나 신앙도 다르고 그 규모 역시 차이가 컸기에 교류라 부를 것이 딱히 있지는 않았다.
법화사는 무공을 수련하는 절도 아니었고.
정문과 묵환 역시 법화사란 사찰이 공동산에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 법화사의 비구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법화사라···. 스승님과 안면이 있으신지요?”
“가끔 들러 서로 안부를 전하던 사이입니다. 장문인께 법화사에서 급히 부탁드릴 것이 있어 왔다 기별을 넣어주시지요.”
노승의 부탁이 과하지가 않다.
물론 아직 자정에게 어떤 청탁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태청궁이 열기도 전에 찾아온 객 치고는 예의가 바르다.
다짜고짜 들어가 장문인을 만나겠다는 것이 아닌, 기별을 넣어주면 이곳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이다.
“괜찮으시다면, 제게 먼저 무슨 일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스승님께 말씀을 전함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
태청궁이 열기도 전에 찾아온 손님이다. 거기에 장문인과는 이전부터 알던 사이이고.
이건 예삿일이 아니라는 걸 정문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보고 과정에 자신을 넣어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린다.
원래라면 스승에게 바로 달려가 말씀을 전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정문은 우선 정보를 더 캐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노승은 덜컥 정문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자정을 스승이라 부르긴 하나, 믿어도 되는 제자인지 노승 역시 아직 경계심이 모두 풀리지는 않아 보인다.
“빈도는 공동의 일대제자 이정문이라 합니다.”
정문은 그런 경계심을 조금 풀어보고자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밝혔다.
!!
두 눈이 커지는 노승.
통했다.
이건 정문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못해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
그래도 공동산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이인데.
“대제자셨군요!”
“못난 몸이지만 그리 불리고 있습니다.”
정문은 최대한 겸손한 자세로 포권하며 상체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어서 사정을 말하라는 듯 노승의 얼굴에 두었다.
노승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소승은 법화사의 주지로 있는 만화(滿和)라 합니다.”
“만화 대사셨군요. 귀인을 몰라뵀습니다.”
만화가 자신의 신분을 밝힘에도 정문은 여전히 자리에 선 채 말만 대꾸할 뿐이다.
얼른 용건을 다 털어놓으라는 뜻이다.
“······. 대제자시니, 어차피 아셔야 할 듯합니다.”
“편히 말씀하십시오.”
결국, 만화대사는 정문의 뜻대로 자신의 용건을 털어놓게 되었다.
“평량에 숨어든 사파인들에 대한 토벌을 의뢰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