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80
179. 나가의 섬 1
브투마로 가는 길은 걸어서 일주일 이상 걸린다. 다행히 브투마에서는 수운이 잘 발달해 있어서 아자딘은 키말하지 백작령에서 배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 대장.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사소한 문제는 개뿔. 나도 알겠다. 썩은 내가 진동하잖아.”
배 밑전에는 가축이나 희귀동물을 수송하기 위한 커다란 선실을 따로 준비해두고 있었는데 거기에 넣어둔 스콧의 언데드 표범이 썩고 있었다.
죽은 시체를 사령술로 조종하는 거니 당연한 일이다만 스콧이 앞으로 한 일주일은 안전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것이다.
하지만 날이 덥고 습한 브투마에서 언데드 표범은 바로 썩어 버렸고 엄청난 악취가 배 전체에 진동했다.
“아, 이거 역시 경험은 모든 지식의 어머니라더니만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있단 말이지. 하지만 대장.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돼. 우리는 지성의 등불을 들고 미지의 오지를 헤쳐 나가는 탐험가란 말이지. 약간의 손해는…. ”
“내리쇼. 당장. 아니면 강물로 던져드릴까?”
선장과 선원이 아자딘 일행에게 물가를 가리켰다.
“미, 미안하게 되었군.”
아자딘은 선장에게 돈을 추가로 지불했다. 선장이 부하들에게 턱으로 신호하자, 선원들이 보트를 내리고 크레인을 준비했다.
“당신네 산양도 내려주겠소. 죽어가던데.”
“…뭐?”
아자딘이 당황할 때 선원들은 선창을 열어 기운이 빠져있는 아자딘의 산양을 크레인에 실어서 보트로 내려주었다.
“아니… 자, 잠깐.”
아자딘이 당황했지만 선원들은 줄사다리를 가리켰다.
“가쇼. 좋게 말로 할 때.”
“아니, 이것들이 진짜.”
샤티는 선원들의 험악한 취급에 분개했다.
“아자딘! 그냥 다 쓸어 버리면….”
“스, 스웨터가….”
샤티는 선상 반란을 하자고 주장했지만 아자딘은 자신의 산양이 죽어간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하긴 당신 성격상 어지간히 성질 긁지 않으면 먼저 상인을 공격하진 않겠지.”
샤티는 투덜거리며 줄사다리를 타고 보트로 내려갔다.
*********
그렇게 선원들은 아자딘 일행의 짐과 아자딘을 물가에 버려두고 다시 배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표범 버리고 가자고 했잖아.”
샤티가 지면을 박차며 신경질을 냈다.
“이렇게 금방 썩을 줄은 몰랐지. 나의 첨단 사령술은 원래 잘 안 썩는다고.”
“그런데 썩었잖아?”
“…이 경우는 스콧을 믿은 내 잘못이지.”
아자딘은 스콧의 뛰어난 마법실력에 그만 그가 오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많은 신뢰를 주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런 꼴이었다.
“뭐 그럼 표범은 버리고, 대장의 케림 산양은?”
“…저기 아자딘 형제님.”
지스와가 당황해서 아자딘의 케림 산양을 살펴보았다.
“어떻지, 지스와?”
“이 산양. 하마 열병에 걸린 것 같은데요?”
“하마 열병?”
“네, 브투마 인근의 하마들에게서 가축에게 옮는 질병인데 걸리면 대부분 죽습니다.”
아자딘이 살펴보니 과연, 스웨터는 몸에 열이 나고 털 밑의 피부에 발진이 있고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윽. 이봐, 샤티. 치료할 수 있겠어?”
“코브라 여왕의 마법이 치유력을 끌어올려주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연적으로 치유될 상처를 빨리, 더 좋게 회복시켜주는 거야. 만약 병의 약이 있다면 그걸 먹이고 빠르게 낫게 해줄 수는 있어. 하지만 약도 없는 병이라면….”
“큰일인데.”
여기서 아자딘의 산양을 잃으면 일행은 여행의 짐 상당수를 잃어야 했다.
물론 아자딘이 힘이 좋으니 억지로 끌고 가서 가까운 마을에서 다른 운반수단을 얻거나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해서 짐을 줄일 수도 있겠지만 짐말을 잃는 것 이상의 문제가 또 있었다.
아자딘에게 이 산양은 전령으로 임명된 후 쭉 동고동락해온 녀석이다. 어지간하면 살리고 싶다.
“청건당의 비약을 먹여보도록 하지요.”
지스와가 제안했다.
“그런데 지스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건 오염된 거잖아? 그림스로운의 피까지 섞여 있는 거. 그림스로운의 수액이라면 내 그 곤봉에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저희들이 쓰는 비약은 수액을 희석하고 거기에 각종 약초를 섞어서 만든 것입니다. 수액 원본을 그냥 먹이면 큰일 날 것입니다.”
“오염된 걸 먹여도 문제되지 않겠어?”
“그걸 먹여서 일단 살리고 난 뒤에 그 전령일족 여자가 준 약을 써서 중화시키면 될 거 아닙니까?”
“하긴 그런 방법이 있겠군. 해보자.”
아자딘은 자신의 산양에 청건당 비약을 먹이는 것에 동의했다.
*********
-쏴아아아.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자딘은 빗줄기 속에 진창이 되어 버린 길을 보며 망연자실해 있었다.
청건당 비약을 먹였지만 결국 아자딘의 산양은 죽어 버렸다.
80도 경사도 평지처럼 뛰어오르고 그 어떤 맹수나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고 뛰던 스웨터가 어이없게도 브투마의 하마 열병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스콧이 그런 케림 산양에 네크로맨시 마법을 걸어서 일단 짐을 실어나르게는 하고 있었지만….
브투마의 덥고 습한 기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데드가 썩어 버리는 것을 이미 보았다. 케림 산양도 얼마 버티지 못하리라.
“아 젠장. 전령으로 임명되면서 받은 내 산양이! 스웨터가….”
“너무 자책하지 마, 대장. 원래 회자정리라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법이지.”
“…….”
“별로 위로가 안 되는 모양이야?”
“아니, 지금 총체적 난국이잖아.”
아자딘은 눈살을 찌푸렸다.
브투마는 토성을 쌓을 수 있을 만큼 짙은 황토 재질의 땅이라서 비가 오면 순식간에 진창이 되어 버린다.
황제가 직접 만든 황제 가도, 제국 가도조차 브투마에서는 허물어져 버렸다.
스콜이 쏟아지고, 여름과 가을에 쉴 새 없이 찾아오는 폭풍에, 황토질 흙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황제 야에슬라트의 위대한 건축물조차 버티지 못하고 망가졌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올 때는 이동할 수가 없다.
스콜이 잠깐만 와도 황토질 흙은 진탕이 되어서 도저히 지나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재 아자딘 일행은 근처의 나무를 쪼개서 최대한 면적을 넓힌 후 물 위에 띄우고 아자딘의 산양에 네크로맨시 마법을 걸어서 물 밑바닥을 걷게 하면서 그 뗏목을 끌게 하고 있었다.
임시변통으로 만든 뗏목이라 뒤집어지지 않게 무게 배분을 해가며 조심스럽게 타야 하니 온 신경이 곤두선다.
“야. 이렇게는 도저히 멀리 못 가겠다. 어디 최대한 가까운 곳에 마을을 찾아보자!”
아자딘은 황제의 목소리를 선견조 삼아 하늘로 올려보냈다.
[마을이 있다. 남서쪽 약 3리 정도!]“이렇게 해서 3리나 더 가야 한다고?”
아자딘은 경악했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마을에 도착할 때쯤 되니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그러나 길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었다.
황토질의 브투마에서 사람들은 비가 오면 주로 배로 이동하는데, 행여 육지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땅 위에 널빤지를 깔아두고 그 위만 밟아야 했다.
게다가 해도 떨어졌기에 아자딘은 이 마을에서 머물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숙소가 있는지 물어보니 그들은 원두막을 가리켰다.
“저기서 묵어. 돈은 은화 한 닢이면 되겠구먼.”
“네? 사방이 다 트여 있고 지붕만 있는 건물에 은화 한 닢이요?”
아자딘은 바가지에 기겁했지만 일단 돈을 내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아자딘 일행에게 과일과 생선을 가져와 주었다.
‘아, 먹을 거 포함이면 뭐 오히려 싸네.’
게다가 브투마는 밤이 되어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서 이런 원두막에서도 잘 만했다.
오히려 집 안이라면 더워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
뗏목을 타고 오는 게 의외로 피곤했는지 아자딘 일행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야경꾼을 따로 세워두지 않아도 황제의 목소리가 주위에 다가오는 이들을 경고해주었기 때문에 간만에 다들 푹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바로 떠날 준비를 하자 마을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제정신인가?”
“이제 곧 또 비가 올 거야. 함부로 나가면 위험하네.”
“네? 그게 무슨….”
“배가 없으면 여행 다니지 않는게 좋네.”
확실히 현재 길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물이 빨리 빠지는 곳은 진창이 되었어도 걸을 만하지만, 물이 고여 있는 곳은 진흙탕물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다.
이런 길을 가다가는 제명에 살 수 없으리라.
“그, 그럼 혹시 배를 빌릴 수 있나요?”
아자딘이 물어보자 마을 사람들이 황당해했다. 그들의 상식으로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질문을 던진 것 같다.
“우리가 어부긴 한데….”
“배는 안 팔지.”
“배는 있는 대로 다 쓰고 있어서 남는 게 없소.”
“그럼 어디 큰 도시로 태워다 주실 수는 없나요?”
“글쎄올시다. 도시 갈 일이 없어서.”
“돈을 드릴께요.”
“우리 마을에서 돈이야 가끔 상인이 오니까 거래하긴 하지만, 딱히.”
어부들은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애초에 금전 거래가 자주 없는 오지 마을에서 금은은 그냥 만약의 사태를 위한 비축물일 뿐이지 그렇게 탐낼 만한 물건이 아닌 것이다.
“그보다 자네는 정말 근육도 끝내주고 얼굴도 잘생겼구먼. 이왕 온 거 우리 딸내미랑 살림 차리고 내 사위 하지 않겠나? 팔뚝도 굵은 게 그물 잘 당기겠구만.”
다들 스콧에게 관심이 가는지 스콧을 꼬드겼다.
“저, 진짜 급한데요. 바로 브투마로 가야 합니다, 저희.”
“그렇다면 곧 오는 방랑상인과 교섭해보게. 배를 태워주긴 할 거야.”
“아.”
아자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 마을에 상인이 찾아오는구나. 그렇지. 그물 수리하고 이것저것 물자 교섭을 안 할 수가 없겠지.’
겨우 안심한 아자딘은 이제 상인의 도착 시간을 물어보았다.
“곧이면 언젠가요?”
“이틀 뒤?”
“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브투마가 언제 나가들에게 공격당할지 모르는데 그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아, 오늘 오는 상인도 있는데.”
“오늘 오는 상인이 있다고요? 다행이군요.”
“저기, 그 친구는 나가잖여.”
“염병. 말해 버리면 안 되지!”
마을 사람들은 또 다른 상인에 대해서 언급했다.
“…나가 상인이라고요?”
“그래. 저기, 거시기. 나가는 싫어하남?”
“아, 아뇨. 지금 이 마을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야 뭐.”
“그렇다면 잘됐네.”
“상인은 저녁때쯤 올 건데 그때까지 쉬고 있으시오.”
*********
마을 사람들이 말한 대로 아자딘은 저녁때까지 푹 쉬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과연 강가에서 현악기를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초저녁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밝히기 시작하고, 어린아이들이 피리를 불며 신나게 강가로 달려갔다.
“안녕하시오. 안녕하시오.”
화려한 선박 한 채가 강가로 다가와 섰다. 목에 금목걸이를 건 젊은 청년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배에서 걸어 나왔다.
“나가로군.”
샤티는 그를 알아보고 혀를 찼다.
“그뿐만 아니라 모두 나가야.”
뱃사람도, 경호원도 전부 나가라고 샤티는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