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01
1001회. 혼돈을 따라가라
구천현녀가 뜻밖이라는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당연히 ‘네 번째 하늘’과 현세 간의 시간 차이를 알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거절하니 의외였다.
하지만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진리의 문은 두드리는 자들에게만 열리기 때문이다.
“더 궁금한 것이 있느냐?”
“천자마와 금사를 빨리 찾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시면 더 좋고. ‘네 번째 하늘’에 가면 알려 주시는 건가요?”
언제 또 올지 모를 기회니 궁금한 건 다 물어봐야 했다.
“혼돈 속에 그들이 있으니 혼돈을 따라가거라.”
“혼돈요?”
연적하가 애매한 눈으로 구천현녀를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범위가 너무 넓은 것 같아서다.
그러자 구천현녀가 설명을 덧붙였다.
“혼돈은 천자마와 금사가 만든 파국(破局)의 현장을 의미한다. 그 수라장(修羅場)의 끝에 천자마와 금사가 있을 것이다.”
연적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파국이니, 수라장이니, 듣기만 해도 살 떨리는 소리였다.
“구체적인 장소는 모르시나 봐요?”
“지금의 천자마와 금사에게 물리적인 공간은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혼돈을 따라가라고 한 것이다.”
“아…….”
예상치 못한 답에 연적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래서야 언제 그들을 만나게 될지 알 수가 없는 까닭이다.
“더 궁금한 것이 남았느냐?”
“아! 하나 더 있어요. ‘네 번째 하늘’에서도 제 영기를 사용할 수 있는 건가요? 아시다시피 현세에서는 사용하기가 좀 까다로웠잖아요. 그곳에서 구천현녀님의 보증을 부인한다거나 하면…….”
연적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는 ‘네 번째 하늘’에서 영기의 사용에 제약을 받는다면 가 봐야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현세에서 영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은 그것이 현세의 규칙에서 벗어난 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 번째 하늘’은 ‘왕들의 하늘’보다 상계다. 그곳에는 너와 같은 ‘영기’는 물론, 그보다 뛰어난 ‘근원의 힘’도 있다. 그러니 네 영기가 제약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영기보다 뛰어난 힘이 있다고요?”
“그러하다. ‘왕들의 하늘’에 내공과 영기가 공존했음과 같은 이치다.”
순간 연적하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하고 넘어갔다.
구주의 종문에서 영기를 얻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기 어려웠다. 만약 ‘네 번째 하늘’에 영기보다 강한 힘이 있다면 그것도 고민거리였다.
“천자마와 금사도 그 힘을 가지고 있고요?”
“그야 물론이다.”
“제가 그들을 죽일 수 있기는 한가요?”
“너에게 구천검령이 있음을 잊었느냐? 네가 아니라 구천검령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느니라.”
‘아!’ 하고 제 머리를 긁적이던 연적하가 다시 물었다.
“그 힘을 천자마와 금사만 가진 건 아니겠죠?”
종문제자들과 천족, 그리고 마천의 마인들이 떠올라 물은 것이었다.
“그렇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가 그 힘을 가진 건 아니다. 하계로 치면 왕족과 고관대작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째 현세처럼 계급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계급은 곧 차별을 의미한다.
영기보다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인 것일까?
구주를 종문이 다스리듯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구천검령만 믿고 가야 하는데, 남궁연의 조언에 의하면 그건 최후까지 꺼내지 않는 게 낫다.
그 말은 즉, 천자마와 금사를 만날 때까지 그 힘보다 약한 자신의 영기로 버티어야 한다는 소리다.
“뭐, 알겠습니다. 까짓것 해 보죠. 이제 저를 ‘네 번째 하늘’이라는 곳으로 보내 주세요.”
“나는 너를 ‘네 번째 하늘’로 보내 줄 수 없다.”
“예? 그럼 어떻게 가나요?”
“그 일은 오직 너만이 가능하다.”
“제가요?”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구천현녀를 보았다.
자신에게 상계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리가 없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구주의 천문(天門)을 기억하느냐?”
“예.”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세로 돌아오기 위해 구천검령으로 그것을 부수었던 일이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천문은 그 자체로는 능력이 없다. 돌기둥에 담겨 있던 창조신의 권능이 천문이다.”
“아!”
“아홉 개의 구천검령이 돌기둥을 파괴할 때 창조신의 권능은 구천검령으로 전이(轉移)되었다.”
“그건 설마, 구천검령이 천문이 되었다는 뜻인가요?”
“그렇다.”
순간 연적하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그 이야기는 자신이 원하는 때에 현세로 돌아올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현세와 상계를 오가는 게 그처럼 간단하다면 구천현녀가 뜸 들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제가 현세와 ‘네 번째 하늘’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나요?”
연적하의 생각을 짐작한 구천현녀가 고개를 저었다.
“천문은 차원의 하늘을 오가는 문이다. 너는 그것을 열고 들어갈 수 있지만, 그 너머에 항상 현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은하에만 서른여섯 개의 하늘[三十六天]이 있다. 거기에 우주를 포함하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하늘이 있느니라. 그중에는 들어가자마자 타 죽거나, 얼어붙는 하늘도 있다. 심지어 녹아 버릴 수도 있지. 네가 현세로 돌아오기란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렇게 어려운데 ‘네 번째 하늘’은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연적하의 음성에 울분이 실렸다.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자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구천현녀가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창조신께서 너를 바른 목적지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창조신의 뜻 안에서 천문을 사용해야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느니라.”
순간 연적하의 눈빛이 반짝였다.
‘창조신의 눈에 들면 현세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겠구나!’
하지만 문제가 있다.
창조신이 누구며,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구천현녀님, 창조신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내가 창조신의 대리인이니 나와의 만남이 곧 창조신을 만나는 것이다.”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말은 곧 만나 주지 않겠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아, 예에. 그럼 천문도 구천현녀님이 열라고 할 때만 열어야겠네요?”
“너를 위해서라도 그러는 편이 낫다.”
“오늘은 창조신이 ‘네 번째 하늘’로 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거죠? 일을 마치면 현세로 돌아가게 도와주고?”
“그렇다.”
“쩝, 이제야 천문이 뭔지 알겠네요.”
연적하가 떨떠름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처음에는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는데, 창조신을 위해서만 쓸 수 있는 반쪽짜리 문에 불과했다.
문득 창조신도 꽤나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그러니 천자마와 금사가 타락했겠지…….’
자로고 피조물은 창조주를 닮는 법.
천자마와 금사가 괜히 엇나간 게 아니다.
천자마와 금사를 떠올리던 연적하가 뒤늦게 생각난 듯 물었다.
“아! 중요한 걸 안 물어봤네요. 천자마와 금사의 이름이 그곳에서도 천자마와 금사인가요?”
“천자마는 카마 데비아스, 금사는 우샤스 운드라라고 불린다. 그러나 진신이 그렇게 불릴 뿐, 다른 이름으로 유희에 나설지도 모르니 주의하는 게 좋을 게다.”
“예.”
다른 이름을 쓸 수도 있다는 말에 연적하는 실망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느냐?”
“아뇨. 이제는 가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구천검령을 어떻게 해야 천문이 열리는 건가요?”
“천공(天空)에 팔괘를 따라 놓되 순서는 다음과 같다. 건(乾)은 굳건하고, 곤(坤)은 유순하며, 진(震)은 움직이고, 손(巽)은 들어가며, 감(坎)은 빠짐이고, 이(離)는 떠남이며, 간(艮)은 그침이고, 태(兌)는 나타남이다. 팔괘가 갖추어지면 빛이 길을 안내할 것이다. 그곳에 마지막 하나의 구천검령을 세우면 천문이 열릴 것이다.”
조용히 듣고 있던 연적하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니까 구천검령을 팔괘의 방향에 순서대로 놓으라는 거죠?”
오룡궁에서 술법을 배울 때 팔괘에 대한 공부도 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잘 아는구나.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야 할 것이다.”
“와아! 쉽지 않네요. 동쪽이 어딘지만 알면 될 것 같은데…….”
팔괘의 위치를 알려면 방향을 알아야 하는데, 그의 일천한 점성술로 캄캄한 밤에 방향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했다.
탄식하던 연적하는 구천현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구천현녀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적하의 속내를 짐작한 구천현녀가 빙그레 웃었다.
“내가 바라보는 곳이 정남향이니라.”
말과 함께 구름이 자욱하게 일어나 제단을 뒤덮었다.
연적하는 구천현녀가 사라지려 함을 알았지만 잡지 않았다.
이제는 ‘네 번째 하늘’로 떠날 일만 남은 까닭이다.
역시나 구름이 사라진 제단 위에는 세월에 퇴색한 구천현녀의 목상(木像)만 남아 있었다.
제단으로 다가간 연적하는 구천현녀 목상의 시선이 향한 곳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갔다.
휘영청 밝은 달이 사위를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다.
잡초 우거진 마당에 선 연적하가 손을 가볍게 흔들자 사당 문이 ‘덜커덩!’ 하고 열렸다.
그는 구천현녀상의 시선이 향한 방향으로 돌아섰다.
정남향이 어딘지 알았으니 이제는 순서에 맞게 구천검령을 세우기만 하면 된다.
기분이 묘했다.
구주에서 아홉 종문의 천문을 부술 때만 해도 그걸 다시 사용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천문을 내 몸속에 넣고 다녔다는 거네?”
기가 막혔다.
구주의 아홉 종문에서 알면 입에 거품을 물 일이다.
팔맥에서 구천검령을 꺼낸 연적하는 구천현녀가 가르쳐 준 순서대로 검령을 하나씩 세워 나갔다.
구천현녀의 사당 위 하늘에 여덟 개의 거대한 검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듯 세워졌다.
소피를 보러 나왔던 몇몇 무당파 제자들이 넋 놓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마도 그들은 평생 저 거대한 검에 대해 떠들어 대리라.
달빛을 받은 여덟 개의 구천검령이 신비하게 빛났다.
그러나 연적하는 왠지 마뜩잖은 표정이다.
구천현녀는 분명히 팔괘가 갖추어지면 빛이 길을 안내한다고 했는데, 저 빛은 본래 구천검령의 빛깔이었다.
“뭐지? 방향이 조금 어긋났나?”
연적하는 즉시 ―두 팔을 높게 치켜들고―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여덟 개의 검령을 조종했다.
밤하늘에 대칭으로 서 있던 여덟 개의 검령들이 동시에 한쪽 방향으로 살짝 움직였다.
우우웅―.
기이한 공명음과 함께 여덟 개의 검령에서 서기가 뻗어 나왔다.
서기는 이내 한곳에 모여 눈부시게 빛나는 점이 되었다.
‘저게 길이구나!’
연적하의 양미간에서 번쩍하고 빛이 났다.
신맥에 깃들어 있던 마지막 구천검령이 빠져나간 것이다.
구천검령은 유성처럼 밤하늘을 가로질러 빛나는 점에 꼿혔다.
쿠우웅―!
묵직한 종소리가 하늘과 땅을 울렸다.
이윽고 연적하의 눈앞에 ―마치 무저갱을 보는 것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의 공간이 열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연적하는 이내 이를 악물고 검은 구멍 속으로 몸을 날렸다.
밤하늘에 떠 있던 아홉 자루의 구천검령이 연적하를 따라가듯 검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쓰아아아―.
구천검령을 빨아들인 직후 검은 구멍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고금제일인 남천 연적하가 사라진 구천현녀의 사당 위로 고요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