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69
1169회. 무슨 마의 해역이 이러냐
마의 해역에 대한 하데스 항구 주민들의 생각은 각기 달랐다.
예컨대 어떤 이들은 마의 해역을 두려워해 언급하는 것조차 꺼렸지만, 또 다른 이들은 그것을 괴담 중에 하나로 여겼다.
괴담이라 믿는 사람들은 사고의 원인을 기상 변화로 돌렸다.
그 근거로 마의 해역에서 사라진 배와 다른 항로에서 실종되거나 침몰한 배의 숫자가 비슷하다는 것을 들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마의 해역이라는 괴담이 만들어진 것은 마탑에서 천공성을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일견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마탑 마법사들의 입을 통해 마의 해역이 대륙에 알려진 까닭이다.
마력범선의 선장 알트헬름도 괴담론자 가운데 하나였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마의 해역 조사’라는 항해 목적을 밝혔음에도 흔쾌히 계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다.
선원들 중에도 마의 해역에 대한 소문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그 반대도 존재했다.
항해사 브루노는 알트헬름 선장의 대척점에 선 사람이었다.
각설하고, ‘마의 해역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라’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요구에 알트헬름 선장이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항해사였다.
그렇지 않아도 마의 해역 소리를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사람인데 이걸 알면 길길이 날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마의 해역을 개 똥으로 아는― 무식한 북부 귀족들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평민들의 사정을 귀족들이 알아줄 리 없지만, 자신도 미신 따위에 휘둘릴 사람이 아닌 때문이다.
선장이 떠나지 않고 머뭇거리자 엘리오가 삐딱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뭐, 더 할 말 남았어요?”
“아니요.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마의 해역을 오락가락해 보겠습니다. 저어, 그런데 언제까지 그래야 하나요?”
“옛날 사람들이 왜 마의 해역을 뒤지고 다녔는지 알아요?”
“천공성을 찾느라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잘 아시네. 우리도 천공성을 찾고 있어요. 선장님 횡재하신 거예요.”
“횡재요?”
“천공성 찾을 때까지 우리가 계속 바다로 나올 거거든요. 선장님은 배만 띄우면 돈을 벌 수 있으니 그게 횡재죠.”
“아! 그렇군요. 맞습니다. 횡재네요. 횡재.”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알트헬름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전쟁이다 뭐다 해서 여행객들이 팍 줄어든 상태에서 북부 귀족들은 확실한 돈줄이었다.
그것으로 엘리오 일행과 선장의 대화가 끝났다.
귀족들이 자신을 빤히 보자 알트헬름은 꾸벅 인사를 올린 후 조타실로 돌아갔다.
멀어져 가는 그를 보던 엘리오가 중얼거렸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더니……. 정말 안 되는 일이 없네.”
“선장이 마의 해역에 대한 소문을 믿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항구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마의 해역이라면 덜덜 떠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선장이 그런 사람이었으면 계약이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 모든 사람이 그 소문을 믿는 건 아닌가 봐?”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럼 진짜 헛소문 아냐? 지금까지 누구도 천공성을 발견하지 못한 걸 보면 왠지 뜬소문 같은데?”
“글쎄요. 여하튼 마의 해역에서 일어나는 안개와 파도가 일반적인 안개나 파도와 다르다고 하니 보면 알겠죠.”
“진짜였으면 좋겠다.”
엘리오가 밤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밝은 달빛을 반사하는 밤바다는 파도 하나 없이 잠잠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갑판으로 나간 엘리오 일행에게 선장이 다가와 말했다.
“2시간쯤 후면 마의 해역에 도착합니다. 지금부터 고깃배들이 슬슬 보일 겁니다. 마의 해역 인근이 황금 어장이라서요. 로렌 공국뿐 아니라 타우로스와 라티움 공국의 고깃배들까지 몰려와서 바글바글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부터 수평선에 몇 척의 배들이 보였다.
엘리오 일행은 아예 갑판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들이 식사를 마칠 즈음 고깃배는 수십 척으로 늘어났다.
“와아!”
주변의 고깃배를 보며 엘리오가 탄성을 내지르자 지나던 선원 하나가 말했다.
“조금 더 가면 시장처럼 바글거릴 겁니다. 지금이 골드 피쉬가 나올 시기라서요.”
“골드 피쉬요?”
“본래 이름은 푸른 줄 붉은 도미인데 워낙 비싸서 골드 피쉬라고 부릅니다. 다 자란 성체 한 마리가 1실버나 하니까요.”
“물고기 한 마리가 1실버라고요?”
엘리오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하데스 항에 있는 여관의 하룻밤 숙박비가 1실버가 채 안 되는데, 물고기 한 마리 값이 1실버라니 놀란 것이다.
남작의 월급이 30실버니 실로 골드 피쉬라 부를 만했다.
“예, 그래서 골드 피쉬가 나올 시기에 여길 지날 때는 선장님도 바짝 긴장합니다. 졸다가 자칫 다른 배와 부딪칠 수가 있거든요.”
“아하! 혹시 마의 해역에도 골드 피쉬가 있나요?”
“거긴 없습니다.”
“그렇군요.”
“마의 해역에 골드 피쉬가 있었으면 사고도 엄청나게 났을 겁니다.”
“그건 또 왜요?”
“거기에는 안개가 자주 끼거든요. 큰 배에 받혀서 작은 배는 죄다 침몰할 겁니다. 그곳에 골드 피쉬가 없다는 게 축복이지요. 있으면 목숨 걸고 잡으러 들어가야 하니까요.”
“마의 해역보다 큰 배가 더 무서운가 봐요?”
“마의 해역이야 뭐, 등 따뜻하고 배부른 사람들이 지어낸 말 아닙니까. 저희처럼 뱃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씁니다.”
“뱃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안 믿어요?”
“그건 아닙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또 그걸 맹신하더라고요?”
“아하.”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마의 해역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한마디로 믿고 싶은 사람만 믿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불안했다.
정말 미신이라면 천공성 찾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엘리오가 입을 다물자 선원은 꾸벅 인사를 한 후 가던 길을 갔다.
고깃배는 점점 늘어나 바다가 시장처럼 변했다.
다행히 마력범선의 갑판 높이가 고깃배들보다 한참 높아 답답하지는 않았다.
마력범선은 조심스럽게 고깃배들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선장과 교대하고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온 조타수 딜로스가 선수에 있는 엘리오 일행에게 다가갔다.
파비안이 힐끔 돌아보자 딜로스가 어설프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래도 바다가 거울이라 편안하네요. 파도가 높았으면 고깃배를 피해 이리 틀고 저리 트느라 멀미가 났을 겁니다.”
‘거울’이라는 말에 엘리오 일행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수면이 거울처럼 매끈했다.
그런 엘리오 일행에게 딜로스가 설명하듯 말을 이어 갔다.
“바람 한 점 없는 이런 날은 마력으로 움직입니다. 마력을 사용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바람이 불 때까지 오도 가도 못했지요.”
문득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물었다.
“바람은 언제쯤 부나?”
“그건 모릅니다. 한 시간 후가 될 수도 있고, 반나절 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는 넘기지 않으니 안심하십시오. 게다가 저희 마력범선은 마력 구동 기관이 있어서……. 바람이 없어도 특정 해역을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딜로스는 ‘특정 해역’을 힘주어 말한 뒤에 북부 귀족들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북부 귀족들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바다만 응시하고 있었다.
뻘쭘하게 서 있던 그는 다시 조타실로 돌아갔다.
방향타를 잡은 알트헬름이 돌아보지도 않고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사자 무리에 가까이 가서 좋을 게 없어.”
“바다는 처음인 것 같더라고요. 조용히 뭍에나 있지 무슨 영화를 바라고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우리 같은 사람도 먹고살지. 이 배는 고깃배가 아니라고.”
“선장님은 언제까지 이 배를 모실 겁니까? 이제 고깃배 살 돈 정도는 모으지 않으셨습니까?”
“그 정도 돈은 진즉에 모았지.”
“그런데 왜 이 배에 남아 계십니까? 독립하지 않으시고요?”
“비린내가 지긋지긋해서. 그물질이나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그럼 평생 남 좋은 일만 하다가 가시려고요?”
“누가 평생 그런다고 했나? 눈 침침해지면 은퇴할 거야. 그전까지 벌 수 있는 만큼 벌려고. 왜? 내 자리가 탐나?”
“탐난다면 주실 겁니까?”
“말했잖아. 눈 침침해지면 은퇴한다고. 아직 내 눈 멀쩡해.”
“하하! 그 눈은 언제쯤에나 나빠진답니까?”
“글쎄, 한 십 년? 이십 년?”
“그냥 제가 돈 모아서 고깃배 사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난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어.”
“예, 예.”
“오후에 방향타 잡으려면 가서 좀 쉬게. 옆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알겠습니다. 눈 침침해지면 아무 때라도 불러 주십쇼.”
“눈은 싱싱하다니까 그러네.”
선장이 발끈하자 딜로스는 키득거리며 조타실을 빠져나갔다.
고깃배들 숫자가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부터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마력범선이 마의 해역에 들어선 것이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바다는 정말 거울을 보는 듯했다.
수면을 내려다보던 엘리오가 중얼거렸다.
“정말 거울 같네.”
그러자 파비안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러게요. 이런 건 처음 봅니다. 너무 맨들거리니 기분이 이상하네요.”
“무섭냐?”
“그보다는 제가 알고 있던 상식과 맞지 않아서…… 조금 당혹스럽습니다. 수면이 맨질맨질한 게 달려가도 될 것 같지 않습니까?”
“달려 보든가. 혹시 알아? 정말 거울처럼 받쳐 줄지.”
“에이, 저 그렇게 멍청한 사람 아닙니다.”
둘이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시간을 보낼 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말했다.
“몇몇 선원들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선장이 선원들에게 항해의 목적을 자세히 알려 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파비안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랬을 겁니다. 어젯밤에 선장과 만났던 걸 생각해 보십쇼. 선장도 자작님이 마의 해역을 오락가락하라니 놀라지 않았습니까? 선원들도 그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겁니다.”
수면을 살피던 엘리오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백작님 생각은요?”
“선장에게 못을 박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항구로 돌아가거든 마의 해역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원들로 교체하라고 말입니다.”
“이번 항해는 강제로 끌고 가야겠네요?”
“그렇습니다. 이미 바다로 나왔으니 도리가 없습니다.”
“들었냐? 파비안, 무섭다고 툴툴대는 선원들 보이면 바로 손써라.”
“패라는 말씀이십니까?”
“어르든 패든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내가 그런 것까지 가르쳐 줘야겠냐?”
“혹시나 해서 여쭤 본 겁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본래 돈으로 회유하려던 그는 생각을 바꿨다.
자신 있어 하는 파비안을 보니 그에게 맡겨도 괜찮을 것 같아서다.
거울같이 잠잠한 바다는 하루해가 저물도록 고요했다.
그 바람에 마력범선은 첫날부터 하루 종일 마의 해역을 떠다녔다.
마침내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떨어졌다.
엘리오 일행은 물론 뜨거운 태양에 축 늘어져 있던 선원들까지 갑판으로 몰려나왔다.
여전히 바람 한 점 없었지만 해가 진 가을 바다는 선선했다.
거울처럼 맨질거리는 수면을 보던 엘리오가 맥없이 중얼거렸다.
“무슨 마의 해역이 이러냐.”
기묘한 안개니, 폭풍우니, 세이렌이니 하는 것들이 먼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