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92
1192회. 사과는 나무에서 먼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
‘크나우프 대공가에서 조사관이 왔다’고 알려 준 셀리는 바닷바람 태번 문을 열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었다.
“해산물이 질리셨죠? 다행히 오늘 저녁은 양 통구이가 주 메뉴예요. 특제 소스를 발라 구운 거라서 마음에 드실 거예요.”
조사관을 의식한 그녀는 쉬지 않고 저녁 메뉴에 대해 떠들다가 돌아갔다.
때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라 엘리오 일행은 숙소로 올라가지 않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엘리오가 아쉬운 눈으로 전망 좋은 창가 쪽 자리를 쳐다보았다.
이 순간만큼은 ―공포로 하데스 항에 군림하던― 특무대가 그리웠다.
그들은 자신들이 입항하면 항상 저 자리를 비워 두곤 했었기 때문이다.
창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이지적인 외모를 가진 삼십 대 여성이었다.
때마침 눈이 마주친 여자가 인사하듯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
얼떨결에 엘리오도 가볍게 묵례를 했다.
그걸 본 파비안이 창가 쪽 자리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아는 사람입니까?”
“몰라. 인사하길래 받아 준 거야.”
“옷차림이 딱 봐도 기사인데요? 처음 보는 여기사라……. 느낌이 오네요.”
그 말에 엘리오는 다시 한번 여자를 살폈다.
과연, 허리에 찬 롱소드를 보니 어쩌면 정말 크나우프 대공가의 조사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후 셀리가 요리를 내왔다.
자신의 앞접시로 고기를 덜어 담던 엘리오가 한마디 했다.
“양 통구이라더니 양은 어디 갔지?”
“크큿! 그럼 양 한 마리를 식탁 위에 올려 주는 줄 아셨습니까?”
“아, 난 양 한 마리를 통으로 주는 줄 알았지.”
“식탐이 어마어마하시네요. 양 한 마리는 줘도 못 먹습니다.”
“누가 다 먹는다고 했냐? 하도 양 통구이를 강조해서 혹시나 해 본 거다.”
엘리오는 포크로 양고기를 찍어 입에 넣었다.
셀리가 특별한 요리인 것처럼 자랑한 것치고는 맛이 그저 그랬다.
마의 해역에서 고생을 한 때문인지 엘리오 일행은 묵묵히 식사를 했다.
잠시 후 세 사람이 식사를 마칠 즈음, 창가에 있던 여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크나우프 대공가의 카티아 미켈 남작입니다. 제가 누군지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서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러자 파비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일행을 소개했다.
“이쪽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님이시고, 저분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님, 그리고 저는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입니다.”
파비안의 소개가 끝나자 카티아 미켈 남작이 정중하게 요청했다.
“실례가 아니라면 잠시 합석을 해도 되겠습니까?”
파비안은 반사적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할지를 묻는 것이다.
엘리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합석을 허락했다.
그 역시 크나우프 대공가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사관과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나란히 앉힐 수는 없어서다.
자연스럽게 카티아 미켈 남작은 파비안의 옆에 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엘리오였다.
“혼자 왔어요?”
“아닙니다. 일행은 항구 관리인들을 만나 보고 있습니다.”
엘리오는 이내 관심을 끊었다.
카티아 미켈 남작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딱딱해서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찻잔을 집어 들자 눈치 빠른 파비안이 나섰다.
“미켈 남작님은 공식적인 직함이 어떻게 됩니까? 예컨대 저는 라고아 자작님의 수행기사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크나우프 대공가에서 조사관의 일을 맡고 있습니다.”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 각하의 일로 오셨다고 생각하면 됩니까?”
“네, 그렇습니다. 참고로 특무대의 관계자들은 이미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파비안의 물음에 카티아 미켈 남작은 빙긋 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았다.
파비안의 헛발질에 엘리오가 혀를 찼다.
“쯧쯧! 너한테 크나우프 대공가의 조사관님이 그런 걸 말해 주겠냐? 입으로 말하기 전에 머리를 좀 거치는 습관을 들여라.”
“그냥 무심코 나온 말이었습니다. 꼭 대답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고요. 정보부 사람들이니 자기들 유리하게 각색했겠죠. 결투 중에 저격을 하고도 마나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니.”
순간 카티아 미켈 남작의 눈이 반짝였다.
특무대는 ‘후작 각하께서 마나탄의 기술을 사용했는데, 무식한 북부 귀족들이 그걸 저격으로 착각해 항의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저격이라고 확신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 자작님이 후작 각하를 몰아붙이다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습니다. 그 직전에 멀리서 마력총 쏘는 소리가 들렸고요. 지금도 자작님 등짝 한복판에 불로 지진 듯한 상처가 있습니다. 그때 특무대장이 뭐라고 한 줄 압니까? 후작 각하의 마나탄이 가슴을 관통해서 등으로 나갔답니다. 자작님, 멀쩡한 가슴 한번 보여 주시죠.”
“에이, 구차하게 뭐하러 그런 걸…….”
구시렁거리면서도 엘리오는 옷깃을 시원하게 열어젖혔다.
“보십쇼. 관통한 흔적이 없죠? 뒤에서 누가 마력총을 쐈다니까요. 자작님, 말 나온 김에 구멍 날 뻔한 등도 좀 보여 주시죠.”
“아, 진짜! 뭐 볼 게 있다고…….”
상의를 훌렁 벗은 엘리오가 카티아 미켈 남작에게 등을 내밀었다.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등에 붙어 있던 거즈를 보란 듯 잡아 뜯자,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상처가 드러났다.
정중앙의 ―손가락 한마디 정도 깊이로 패인― 구멍에서 붉은 피가 스멀스멀 배어 나왔다.
“보셨습니까? 보통 기사였으면 진짜 가슴까지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을 겁니다. 그랬다면 특무대의 거짓말이 통했겠죠? 아!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친다.”
부르르 떨던 파비안이 거즈를 붙이자 엘리오는 다시 옷을 입었다.
카티아 미켈 남작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마나를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체술의 마스터들이 사용하는 ‘에소테로피(내부 파괴)’의 기술은 마나가 내부를 부수고 뒤로 터져 나갑니다. 지금 보이는 상처처럼 말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후작 각하의 스페라 오블리오(마나탄)를 똑똑히 목격했다. 너는 내가 스페라 오블리오와 에소테로피도 구별하지 못할 사람으로 보이느냐?”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그처럼 ‘마나탄의 효과도 소드마스터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뜻에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격이 아니라 마나탄의 효과다?”
“저는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볼 뿐입니다. 판단을 내리시는 분은 대공 전하십니다.”
“후후. 크나우프 대공가의 체면이 걸린 일이니 어련하겠나. 하나만 묻자.”
“예.”
“혹시 지금까지 크나우프 대공가의 결투를 다 그런 식으로 처리했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크나우프 대공가는 언제나 정정당당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고 싶겠지만 우리도 본 게 있어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따라 마나탄 효과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야 크나우프 대공 전하께서 더 잘 알겠지. 크나우프 대공가의 마나탄이 에소테로피와 같은지 아닌지.”
“…….”
허를 찌르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말에 카티아 미켈 남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맞다.
그것이 저격인지, 크나우프의 마나탄 효과인지는 크나우프 대공이 더 잘 알 터였다.
대화가 끊어지자 파비안이 말했다.
“또 없어요? 이를테면 왜 결투가 일어났느냐 하는 건 안 물어봐요? 특무대는 자기들이 늘 하던 대로 정보를 조작했을 텐데.”
“그보다는 라고아 자작님께서 대전사로 나서신 이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어차피 결투에 대한 건 벤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보다는 북부 귀족인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자아, 말해 보시오. 제국의 기사들처럼 명예를 얻기 위해 크나우프 대공가를 건드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지.’
엘리오가 못마땅한 눈으로 카티아 미켈 남작을 보았다.
자신이 대전사로 나선 이유는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의 후안무치한 행동 때문이다. 그건 결투가 일어난 이유를 들으면 자연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저 크나우프의 조사관은 ‘결투가 일어나게 된 원인’보다 ‘자신이 대전사가 된 것’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결투의 원인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라니!
기사들 간의 결투에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다고?
“후작 형님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벤젤 경을 도와준 겁니다. 더 궁금한 것 없으면 가요. 그쪽 하는 짓도 특무대 못지않을 것 같아서 기대가 안 돼. 그걸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사과는 나무에서 먼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그 나물에 그 밥]. 응? 이게 맞나? 파비안, 이해가 가냐?”
“예,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십니다.”
“그럼 됐고. 조사고 나발이고 가요, 가. 훠이!”
엘리오가 손을 흔들자 카티아 미켈 남작은 머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나우프 대공가의 이름으로 나선 조사에 이와 같은 대우는 처음이다.
하지만 상대는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의 그곳조차 잘라 낸 인물.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인지도 몰랐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남은 일정에 마나 프트라스님의 가호가 있으시길 기원…….”
마무리 인사를 하던 카티아 미켈 남작이 말을 흐렸다.
북부 귀족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황망한 얼굴로 서 있던 카티아 미켈 남작은 꾸벅 인사를 하고 태번을 빠져나갔다.
태번을 나서는 그녀의 귓가로 북부 귀족들의 말이 들려왔다.
“에이, 차 맛 버렸다. 크나우프 대공가의 조사관이라길래 기대했는데 엉망이네.”
“그래도 저 정도면 양호한 편입니다. 보통은 죄인 취조하듯 합니다.”
“조사관이라면서 사실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어. 나는 저렇게 권력에 빌붙어 사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나.”
“불쌍한 인생이려니 생각하십쇼. 저 사람은 대귀족들 비위를 맞추는 걸 ‘일 잘하는 것’으로 믿고 있을 겁니다. 또 그렇게 해야 크나우프 대공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테고요.”
“아랫사람들이 윗사람 입맛에 맞는 말만 하는 건 다 윗사람 잘못이야. 크나우프 대공도 고슬링 후작과 비슷한 것 같아. 하기야 그 나무에 그 열매지. 에이, 개쓰레기들.”
카티아 미켈 남작은 차마 더 듣지 못하고 두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대륙 최고의 검술 가문인 크나우프 대공가를 상대로 저런 험담을 하다니!
‘아! 이걸 크나우프 대공 전하께 보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보고하자니 너무도 치욕스럽고, 생략하자니 주군을 속이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넋 나간 얼굴로 터덜터덜 걷는 카티아 미켈의 앞에 선술집이 나타났다.
답답한 마음에 선술집 안으로 들어가자, 두 명의 조사관이 그녀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카티아 미켈 남작은 두 사람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선술집 주인에게 독한 술을 주문했다.
이윽고 술잔을 받아 든 그녀는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로 나갔다.
‘권력에 빌붙어 사는 사람’이니, ‘불쌍한 인생’이니 하는 말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런데 왜 그렇게들 격분했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왜 결투가 일어났느냐는 건 안 물어봐요?’라는 남작의 말을 무시한 뒤로 생긴 일이었다.
‘그 부분은 순차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했다면 달라졌을까?’
어쩌면 크나우프 대공가의 조사관 생활로 다져진 불친절한 말투에 북부 귀족들이 오해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북부 귀족들의 잘못을 왜 내가 이해하려고 애써야 하는 건데!’
순간 울컥한 그녀는 들고 있던 술잔을 길바닥에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