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11
1211회. 이것도 장난이죠? 그런 거죠?
대중들에게 모험가는 용병과 비슷했다.
대다수 모험가가 용병 출신이다 보니 그렇게 인식되어진 것이다.
모험가의 역사는 어비스 개발의 역사와 같다.
본래 어비스는 마수와 마물의 소굴로 인식되어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한 용병단이 어비스에서 마도시대의 물건을 발견했고, 그것이 고가에 거래되자 너도나도 어비스로 몰려갔다.
초기에는 용병들밖에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도시대 물건이 계속 발굴되었다면 지금까지도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보물이라 일컬어지는 마도시대 물건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거의 강가에서 황금 덩어리를 발견할 확률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결국 용병단은 발을 뺐다.
하지만 일확천금을 노리는 용병들은 여전히 성지를 순례하듯 어비스로 향했다.
용병단 다음으로 어비스에 눈을 돌린 곳이 남부 왕국들이다.
남부 왕국들은 가장 먼저 ‘모험가’라는 전에 없던 직군을 만들었다.
겉으로는 일반인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실은 어비스를 통제하기 위해서다.
사설 길드가 아니라 치안대에서 등록증을 발급하는 것도 그래서다.
용병 길드들은 어비스의 주도권을 왕국에 빼앗겼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단순 무식한 그들에게 어비스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용병과 달리 남부 왕국의 대귀족들은 보물보다 어비스의 자원에 눈을 돌렸다.
그들은 모험가를 앞세워 고밀도 마나석 광산을 개발하고, 희귀한 약재들을 채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국은 남부 왕국들의 정책에 보조를 맞춰 주는 정도였다.
남부 대수림을 지나야 하는 어비스까지 제국의 손길이 미치기 어려우니 당연하다.
그러던 중에 마도시대의 보물이, 마치 뒤늦게 존재감을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창 호기심 많은 싱크레어 지터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모험가가 뭐예요?”
“모험을 즐기는 사람?”
“그럼 나도 모험가예요?”
“네가 왜?”
“나도 모험을 즐기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진짜 모험가가 되려면 치안대에 가서 등록을 해야 돼.”
“왜요? 등록 안 하면 안 돼요?”
“어비스라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있는데 거기에 들어가려면 치안대에서 모험가 등록증을 받아야 돼. 너무 위험해서 모험가만 들어가라고 그렇게 한 거야. 그곳에는 마수와 마물이 살고 있거든.”
마수와 마물이 산다는 말에 싱크레어 지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비스에 안 가면요?”
“음, 모험은 즐길 수 있지만 진짜 모험가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어비스에 들어가는 사람을 모험가라고 부르니까.”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거리던 싱크레어 지터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나도 모험이 좋은데…….”
“어비스가 무서워서 고민이야?”
“네.”
“그럼 아빠처럼 마나석을 연구하는 건 어때? 안전한 연구실에서 일하잖아.”
“그건 좀…… 답답해서 싫어요. 재미도 없고. 나는 모험가가 될래요.”
“세상에는 모험가만 있는 게 아니란다. 기사도 있고, 마법사도 있고, 재단사도 있고…….”
“그래도 모험이 제일 재밌잖아요.”
딸이 모험가가 되겠다고 하자 샤인 코울스로는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재미는 있겠지만 가난해. 평생 너 혼자서 살 거면 모험가를 해도 되는데, 결혼을 할 거라면 다른 걸 하는 게 나을 거야.”
“가난해요?”
“어비스에서 보물을 찾아야 돈이 되는데, 보물이 쉽게 찾아지면 보물이라고 부르겠니? 백 명의 모험가가 있으면 백 명이 가난하단다.”
뒷자리에서 듣고 있던 안드리아 지터가 ‘험! 험!’ 하고 헛기침을 터뜨렸다.
그제야 샤인 코울스로는 얼른 좋은 말을 덧붙였다.
“물론 진짜 진짜 운 좋게 보물을 발견해서 부자가 될 수도 있기는 해.”
“나는 보물을 발견해서 부자가 될 거예요.”
딸이 헛된 꿈에 부풀자 샤인 코울스로는 딸의 팔을 꽉 잡고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응, 아니야. 꿈도 꾸지 마.”
때마침 마차가 ‘덜커덩!’ 하며 한차례 크게 흔들렸다.
한번 그러고 말려니 했는데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차 바퀴가 자꾸 뭐에 걸리는지 계속해서 덜커덩거렸다.
그러더니 급기야 ‘쾅!’ 소리와 함께 마차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마차 차체가 지면에 쓸리자 마부가 급하게 고삐를 잡아당겼다.
선두의 말들이 앞발을 높게 치켜들고 소리를 내지르면서 멈춰 섰다.
앞선 마차가 멈추자 뒤따르던 두 대의 마차도 자연히 정지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왔던 가드들이 마차 바퀴를 보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자기들의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마부들이 한데 모여 숙덕거리더니 바퀴를 갈아야 한다며 승객들을 내리게 했다.
밖으로 내몰린 안드리아 지터 일가족은 한겨울 강추위에 오들오들 떨었다.
보다 못한 엘리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마하담(공간 창고)에서 새끼손톱만 한 파이어 스톤 한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안드리아 지터에게 다가가 파이어 스톤 조각을 불쑥 내밀었다.
마나석 감정사인 안드리아 지터는 단번에 파이어 스톤을 알아봤다.
“헉! 파이어 스톤입니까? 이 귀한 걸, 감사합니다!”
염치 불고하고 파이어 스톤을 받은 그는 즉시 점화를 했다.
손톱만 한 크기의 파이어 스톤 조각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파이어 스톤 앞에 모여 몸을 녹이는 안드리아 지터 일가족에게 엘리오가 지나가는 투로 한마디 했다.
“모험가라고 다 가난한 거 아닙니다.”
“그러믄요. 모험가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 진짜 부자는 모험갑니다.”
말과 함께 안드리아 지터는 부인의 팔꿈치를 툭 건드렸다.
“죄송해요. 제가 모험가를 잘 모르고 함부로 말을 한 것 같네요.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싱크레어, 너도 인사해야지.”
민망해진 그녀는 얼른 딸을 끌어들였다.
싱크레어 지터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숙였다.
“따뜻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엘리오는 싱크레어 지터의 인사를 받은 후에야 일행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오자마자 파비안이 물었다.
“우리는 없습니까?”
“수리 금방 끝날 텐데 뭐. 추우면 작은 하늘 회로(small heavenly circuit, 小周天)나 돌려.”
입을 삐죽이던 파비안이 기어코 한마디 했다.
“파이어 스톤은 히르헤라 주둔지에서 챙긴 거고. 솔직히 부자는 아니시잖습니까?”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하지도 않지. 영지가 두 개나 있다는 걸 잊었냐?”
모두 맞는 말인지라 파비안은 대꾸하지 못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나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수리는 1시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끝내 운송 책임자가 나서서 마부들과 말을 나누더니, 엘리오 일행에게 다가왔다.
“바퀴의 축이 휘어져 펴던 중에 부러졌다고 합니다. 다른 부품이 없어 대장간에서 구매해야 하는데, 1시간은 더 가야 마을이 나옵니다. 수리가 끝날 때까지 앞으로 2시간은 더 걸릴 겁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레온 토로스는 잠시 말을 끊고 세 남자를 보았다.
정복 느낌을 주는 옷에 허리의 롱소드까지, 자유기사 아니면 용병이다.
그래서 대하기가 더 조심스럽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안심이 된다.
“2시간 정도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파비안이 일행을 대표해 나섰다.
“저 가족들까지요? 여성과 어린애에게는 조금 무리일 것 같은데.”
“부인과 딸의 자리는 어떻게든 만들어 보겠습니다. 하지만 남성분들의 자리까지는 어렵습니다.”
마침 다른 마차에도 어린애가 한 명 있으니 어른이 안고 타면 한 자리는 만들 수 있다.
쥐어짜도 그 정도가 전부다.
다 큰 남자를 무릎에 앉히고 가겠다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파비안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즉시 운송 책임자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십쇼.”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가드가 필요하십니까?”
“우리는 괜찮습니다. 다른 승객들이나 잘 보호해 주십쇼.”
“감사합니다.”
레온 토로스는 다시 안드리아 지터의 가족에게 다가가 같은 이야기를 했다.
곧이어 안드리아 지터의 부인과 딸이 운송 책임자를 따라갔다.
두 대의 마차와 가드들을 먼저 떠나보낸 뒤 엘리오 일행은 파이어 스톤으로 다가갔다.
안드리아 지터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남자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모험가 님들.”
엘리오 일행은 그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파이어 스톤 주변에 둘러섰다.
네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장난기 심한 파비안이 돌연 정색을 하며 안드리아 지터에게 물었다.
“지터 씨, 우리가 누군지 알고 그렇게 반기는 겁니까?”
“모험가 님들이시라고…….”
“코랄 상회의 마나석 감정사 지터 씨, 지부와 광산 간 마나석 부정 거래의 감시를 위해 파티마 공국으로 가는 중, 맞습니까?”
“마, 맞습니다만……. 왜 그러시는지요? 설마,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요?”
‘이 세 남자가 자신을 노리고 온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안드리아 지터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파비안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후후후, 왜 이곳에 우리만 남겨졌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마나석 감정사 지터 씨.”
“부정 거래에 협조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요?”
“모, 못 합니다. 저는 지터 남작가의 일원으로 불법적인 일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부인과 딸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으신가 봅니다? 지터 씨?”
“…….”
뜻밖의 말에 안드리아 지터는 숨넘어갈 것 같은 얼굴로 덜덜 떨었다.
보다 못한 엘리오가 나섰다.
“파비안, 장난이 심하다. 지터 씨, 놀라지 마세요. 저놈이 헛소리한 겁니다.”
“장난……이라고요? 정말 아닙니까?”
확인하듯 되묻는 안드리아 지터의 눈빛은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예, 아닙니다. 파비안, 사과드려라. 장난도 상대를 봐 가며 적당히 쳐야지.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끔찍한 짓이냐! 저걸, 확 그냥!”
엘리오가 버럭하자 파비안은 안드리아 지터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지터 씨. 제 장난이 지나쳤습니다. 분위기가 어색해서 풀어 보자는 취지로 그랬는데…… 선을 넘은 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십쇼. 우리 그런 사람들 아닙니다. 정직한 모험갑니다.”
그제야 안드리아 지터의 얼굴에 혈색이 조금씩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정체불명의 남자들에 대한 찜찜함으로 이전처럼 해맑게 웃지 못했다.
약속대로 2시간 만에 운송 책임자가 보낸 사람이 부품을 가지고 왔다.
수리를 마친 마차가 다시 움직였다.
1시간을 달리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마을이 나타났다.
그제야 비로소 굳어 있던 안드리아 지터의 얼굴이 풀어졌다.
하지만 그런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식당 밖으로 그들을 마중 나온 운송 책임자인 레온 토로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30분 전에 부인과 따님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살 것이 있다고 잡화점에 가셨는데, 돌아오지 않아서 찾아가 보니……. 이미 나가신 지 한참 됐다고 하더군요. 지금 가드들이 마을 곳곳을 뒤지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납치를 당한 것 같습니다.”
멍하니 듣고 있던 안드리아 지터가 파비안을 향해 돌아섰다.
“이, 이것도 장난이죠? 그런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