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08
1308회. 침략자, 전사, 사냥감
선두가 멈추자 결국 엘리오 일행은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후미에 있던 엘리오가 앞으로 나섰다.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말투가 파비안이 아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향한 질문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답했다.
“산길을 두고 이야기하던 중입니다. 자연적으로 생긴 길인지, 만들어진 길인지 조금 애매해서요. 라고아 경이 보기에는 어떤 것 같습니까?”
엘리오의 시선이 산에 난 길로 향했다.
자연적으로 생긴 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이 다져진 것 같다.
“마물들의 이동 통로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그러기에는 마물의 배설물이나 사냥의 흔적이 없습니다.”
마물의 이동 통로가 아니라는 소리다.
“짐승도 아니고, 마물도 아니면…… 뭐가 남죠?”
그러자 아까부터 히르헤라를 떠올리던 파비안이 끼어들었다.
“혹시 마족이 아닐까요?”
한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잠시 생각하던 엘리오가 그럴 리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마족이 왜 여기 있어? 북부면 몰라도 여긴 남부라고. 남부라고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비스에 마물도 있는데 마족이라고 없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비스에 왜 마족이 있냐고? 마족은 북부의 빙벽 너머 타메이온에 살고 있잖아.”
스쿠툼이라 불리는 빙벽이 마족의 땅인 타메이온과 대륙을 막고 있다.
이세계에서 빙벽은 마족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나누는, 창조신 마나 프트라스가 세운 일종의 결계와도 같다.
그런데 뜬금없이 남부에 마족이라니?
이세계 사람이 아닌 엘리오가 듣기에도 그건 황당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파비안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마족이 타메이온에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빙벽이 생기기 전에 남부에 살았던 마족일 수도 있잖습니까?”
“하지만 어비스의 출입구는 인간이 발굴하기 전까지 수천 미터 땅 밑에 있었다고. 노천 광산은 빙벽이 세워진 이후에 개발됐을 거야. 하워드, 내 말이 맞지?”
엘리오의 물음에 하워드 솔론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노천 광산은 스쿠툼이 세워진 뒤에 개발됐습니다.”
“거봐. 마족과 어비스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니까. 생각해 봐. 대수림에도 마족이 없었어. 왜? 대수림은 남부에 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어비스에 마족이 있냐고. 마족은 절대 아니야.”
엘리오가 강하게 부정했지만 파비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것저것 다 빼면 마족밖에 안 남는다니까요. 납득이 안 돼도 받아들이십쇼.”
“거기서 마족은 왜 안 빼는데? 시기적으로 맞지 않으면 빼야지.”
“다 빼고 남은 게 마족밖에 없으니까 안 빼는 겁니다.”
“네가 꼴리는 대로 뺄 것과 안 뺄 것을 선택하지 말라고!”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자 크레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어, 어느 분 말씀이 맞는지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곧 알게 되지 않을까요?”
맞는 말인지라 엘리오와 파비안은 눈만 끔뻑거릴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격려하듯 파비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후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재빨리 오마르 백작을 따라붙은 파비안이 넌지시 물었다.
“오마르 경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조건에 맞지 않는 것을 지워 나가면 하나가 남게 되지. 조바심 내지 말게. 그것이 무엇이든 곧 마주하게 될 테니까.”
“역시 오마르 경도…….”
하지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에 시들해진 파비안도 입을 다물었다.
오마르 백작의 기대와 달리 한참을 내려갔지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미개척지답게 마물은 끊임없이 출몰했다.
해거름 무렵, 산 아래에 도착한 파비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족이라 생각 될 만한 게 보이지 않아서다.
굽이굽이 잘 뚫린 산길은 여전히 의심스러웠지만 그게 전부였다.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다가가 축 늘어진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것은 명백히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흉내 낸 것이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두 사람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역시나 파비안과 그것에 관해 말을 하지 않기를 잘했다.
그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집요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파비안, 네가 말한 마족은 없는 것 같다. 그러게 아카데미에 다닐 때 고대사 공부를 좀 열심히 하지 그랬냐? 어떻게 야인인 나보다…….”
엘리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두운 숲에서 뭔가 한 무더기 날아왔다.
츠츠츠츳―!
깜짝 놀란 엘리오는 일행들을 보호하기 위해 급히 영기를 발출했다.
마법사의 실드처럼 생긴 반투명한 벽이 엘리오 일행 앞에 세워졌다.
퍼퍼퍼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지면으로 십여 개의 화살이 떨어졌다.
지면에 나뒹구는 화살을 본 엘리오가 기괴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야 저거?”
좀 크다 싶었는데 땅에 떨어진 걸 보니 공성 병기인 발리스타에서나 쓸 법한 크기다.
뒤늦게 화살을 본 파비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건 덩치가 큰 마족이 아니면 다룰 수 없는 물건인 까닭이다.
“와아! 저 화살 봐! 야인은 아니겠지?”
당연히 어비스의 미개척지에 야인이 살고 있을 리 없다.
그건 단지 엘리오를 약 올리기 위한 허튼소리였다.
잠시 후 활과 창으로 무장한 거인들이 숲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걸 본 파비안이 득의양양한 얼굴로 소리쳤다.
“기간타스들이네요. 마족입니다. 타메이온의 마족이 어비스에도 있었습니다!”
기간타스는 싸이클롭스와 아스타로이드의 혼혈로 거인족 중 최강이다.
엘리오가 똥 씹은 얼굴로 열세 명의 기간타스들을 보았다.
그들 중 하나가 굵직한 저음으로 뭐라 소리쳤다.
그러나 엘리오 일행은 마족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 눈만 끔뻑였다.
엘리오는 무심코 반지를 매만졌다.
루나 마일러스가 사라지기 전에 돌려준 통역 아티팩트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그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아카드 산지에서 만난 부라퀴족 족장 판이 떠올랐다.
―저희 부족의 보물인 트레듀서라는 아티팩트입니다. 군주님께서 마족의 언어를 모르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걸 사용하시면 마족들과 대화가 되실 겁니다.
그러고 보니 자신에게는 판에게 받은 통역 아티팩트가 하나 더 있다.
엘리오는 마하담에서 검은 수정 목걸이(트레듀서)를 꺼내 목에 걸었다.
그리고 한껏 투기를 발산하고 있는 마족들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땅 위에서 내려온 사람이다.”
기간타스 전사들의 리더인 쿰이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소리냐? 땅 위에 우리가 서 있다. 내려갈 수 없다.”
엘리오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켜 보였다.
“저 하늘 위의 땅을 말하는 거다.”
“헉! 침략자다!”
그의 외침에 기간타스 전사들이 벼락처럼 무기를 뽑아 들었다.
분위기가 한순간 돌변하자 파비안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라고아 경! 뭐라고 말했길래 저렇게 화를 냅니까?”
“땅 위에서 왔다니까 침략자라며 저런다!”
“그 밖에 다른 말 한 건 없고요?”
“무슨 말?”
“속 뒤집는 말 잘하시잖습니까!”
“그건 너고.”
막상 무기를 뽑았지만 쿰은 전사들에게 공격을 명하지 않았다.
조금 전 인간이 보여 준 마법에 망설이는 것이다.
마물들도 꿰뚫어 버리는 화살을 반투명한 벽으로 막는 건 족장이나 가능하다.
침입자 중에 그런 능력자가 있다고 생각하니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틈에 엘리오가 다시 말을 걸었다.
“왜 우리를 침략자라고 하나? 우리는 뺏으러 온 게 아니다.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이렇게 적은 숫자로 누굴 침략한다는 거냐!”
그제야 쿰은 인간들을 유심히 살폈다.
수컷 넷에 암컷 하나.
침략을 하러 왔다고 하기에는 확실히 적은 숫자다.
게다가 변변한 장비도 보이지 않았다.
수컷과 암컷의 무장도 맨몸에 칼 하나 달랑 차고 있는 게 전부였다.
“그럼 이곳에는 왜 왔지?”
대화가 시작되자 기간타스 전사들은 들고 있던 무기를 슬그머니 내렸다.
“우샤스 운드라(금사)라는 신을 찾고 있다.”
“우샤스 운드라?”
“그래, 그 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나는 모른다. 어이! 우샤스 운드라라는 신에 대해 알아?”
쿰의 물음에 기간타스 전사들이 우렁찬 음성으로 답했다.
“몰라!”
그러자 쿰이 다시 인간을 향해 돌아섰다.
“들었지? 모른단다.”
“기간타스도 무리를 지어 살지? 우샤스 운드라에 대해 알 만한 기간타스도 없어?”
“족장님이라면 혹시 알지도 모르지. 우리 부족에서 가장 지혜로우니까.”
“족장을 만나게 해 줘.”
“그런 어렵지 않다. 그러려면 우리 부족으로 가야 하는데, 괜찮겠나?”
“왜? 문제 있어?”
엘리오가 빤히 거인을 올려다보았다.
기간타스는 마족들 중에서도 순진한 편에 속해 거짓과 거리가 멀다.
“족장님이 너희를 침략자라고 하면, 너희는 죽는다. 그래도 따라오겠냐는 말이다.”
“그런 거래면 괜찮아. 우리를 죽이는 건 쉽지 않을 거야.”
“대단한 자신감이군. 좋다, 내가 너희를 족장님과 만나게 해 주겠다. 따라와라.”
말을 마친 쿰은 기간타스 전사들과 함께 숲으로 걸어갔다.
마족과 대화를 마친 엘리오가 일행에게 말했다.
“우샤스 운드라에 대해 아냐고 했더니 모른다네요. 족장이 알지도 모른다고 해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파비안이 급히 물었다.
“설마 마족들에게 가는 겁니까?”
“어. 우리가 가야지, 부른다고 오겠냐?”
“라고아 경, 마족들에게 사람이 별미라는 거 아십니까?”
“마족만 사람을 먹는 줄 아냐? 사람도 사람 먹어.”
엘리오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자 파비안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불현듯 타메이온에서 마족들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똥이 되어 타메이온에 뿌려졌을 게다.
크레아가 하워드 솔론 남작에게 속삭였다.
“오라버니, 마족에게 사람이 진짜 별미예요?”
“과장된 말은 아닐 거야. 마족 눈에는 사람이 소나 양처럼 보일 테니까.”
“…….”
크레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기간타스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도 다짜고짜 활부터 쐈다.
그건 분명 사냥을 하는 행위였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자세히 말했다.
“상위 마족들도 사람을 좋아한다네. 사람이 원숭이의 골을 먹는 것처럼, 그들도 사람의 골을 좋아하지. 재밌게도 사람과 닮은 마족일수록 사람 고기를 좋아한다고 하더군.”
“으으…….”
크레아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너무 겁먹지 마. 오마르 경과 라고아 경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돼.”
하워드 솔론 남작의 말에 크레아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숲속에 난 길을 따라가던 기간타스 전사 투토가 쿰에게 말했다.
“저들이 침략자라고 생각하나?”
“난 모르겠다. 족장님이 판단해 주실 거다.”
“이상해. 아무리 봐도 침략자가 아닌 것 같다. 저들에게서는 단지 달콤한 냄새가 날 뿐이야. 음식이 어떻게 침략을 하나?”
그의 말에 기간타스 전사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쿰이 전사들을 나무랐다.
“웃지 마라. 인간의 마법을 봤잖나. 사냥감이 아니라 전사다. 방심하지 말란 말이다.”
그 말에 다른 기간타스 전사들은 뜨끔한 얼굴이지만 투토는 달랐다.
“솔직히 나는 인간이 너무 작아서 손에서 힘을 뺐다. 화살에 맞아 몸통이 터지면 안 되니까. 전력으로 쐈다면 분명히 마법도 뚫렸을 거다. 어이! 너희는 어때? 전력으로 쐈나?”
“아니!”
“저렇게 작은 사냥감에게 전력을 다했냐니! 농담하지 마라!”
기간타스 전사들이 받아치자 투토가 쿰을 돌아보았다.
“들었나? 네가 너무 신중한 거다.”
그러자 쿰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결정한 일이다. 족장님이 침략자인지, 전사인지, 사냥감인지 정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