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22
1322회. 내 챔피언이 될 기회를 주겠다
하위 마족인 사티로스족들의 상반신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엘리오가 일행에게 말했다.
“모두 뒤로 빠져 있어요.”
그의 말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 등은 마족들이 없는 곳으로 살짝 자리를 피했다.
초월자인 아르파고, 앙네스 로덴, 카우슬란은 인간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군주만 처리하면 나머지는 신전의 다른 마족들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드라고니안(용족)인 아르파고는 인간 군주의 투지를 높이 샀다.
“인간 군주여! 달아나지 않는 게 가상하다만 너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안타르 신께서 내리는 벌을 달게 받아라!”
말을 마친 아르파고가 벼락처럼 인간 군주를 덮쳤다.
엘리오는 드라고니안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향해 돌진했다.
콰아앙―!
아르파고는 체술에 자신이 있는지 무기를 뽑아 들지 않았다.
엘리오 역시 그에 맞춰 육신의 힘으로 그를 상대했다.
군주와 초월자의 싸움이 시작되자 사티로스들은 자해를 멈추고 싸움에 집중했다.
인간들처럼 그들의 운명도 저 싸움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사티로스의 족장 카렐 마운트는 군주가 자기들 뿔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전심전력으로 초월자들을 응원했다.
앙네스 로덴과 카우슬란은 처음부터 싸움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먼저 제삼자의 눈으로 군주의 기량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상대를 모르고서 싸우는 것보다 어느 정도 정보를 얻은 뒤에 싸우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물론 아르파고는 드라고니안 특유의 자신감으로 돌진했지만 말이다.
콰앙! 쾅―!
무지막지한 폭발음과 함께 충격파가 사방으로 몰아쳐 갔다.
창문은 진즉에 터졌고, 신전 벽에도 구멍이 숭숭 뚫렸다.
엘리오와 아르파고는 상대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자 눈에 띄는 변화가 찾아왔다.
엘리오는 그대로인데 반해 아르파고의 얼굴은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누구보다 힘의 차이를 느낀 것은 아르파고다.
‘인간이 이렇게 강할 수가 있나?’
그는 인간을 상대로 거칠어진 자신의 숨소리가 부끄러웠다.
초월자들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다.
왜냐면 똑같은 초월자라 해도, 월등한 능력을 가진 종족이 그렇지 않은 종족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상위 마족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 게 드라고니안이다.
인간은?
마족도 못 되는 소나 양과도 같은 가축에 불과하다.
그런 인간이 종족을 초월해 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말이다.
‘크윽!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다.’
초월자를 인간의 범주에 놓고 보면 안 되지만, 이건 진짜 너무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진 아르파고는 훌쩍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검을 뽑았다.
나름 허세를 부려 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음은 알지 못했다.
쓴웃음을 지으며 보던 앙네스 로덴과 카우슬란이 그의 좌우편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를 홀로 싸우게 놔뒀다가는 곧 죽어 버릴 것 같아서다.
엘리오도 마하담에서 ‘공허의 검’을 꺼냈다.
인간 군주의 검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존재감에 초월자들은 멈칫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갖추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문득 엘리오의 입이 열렸다.
“내가 타메이온의 군주들 중에 하나라는 건 알 테지? 너희는 내가 싸워 본 마족 군주들보다 조금 약한 것 같아. 물론 상위 마족들보다는 훨씬 강하지만. 마족들은 인간들보다 더 서열을 따지잖아? 너희 초월자들의 위치는 어디쯤 되는 거야?”
마족 군주들보다 약하다는 말에 초월자들은 짜증이 났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그건 당연한 일인 까닭이다.
앙네스 로덴이 말했다.
“마족 군주는 한 지역의 최고 통치자로 사람으로 치면 왕이다. 그 아래가 초월자다.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초월자를 챔피언이라 하고, 그 외는 그저 초월자로 불린다.”
“아하! 그러니까 너희는 군주를 모시지 않은 상태인 건가?”
“그렇다.”
“초월자들은 모두 군주가 되고 싶어 하지 않나? 그런데 왜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의 종 노릇을 하지?”
“혼자서 수련하는 것보다 군주의 후원을 받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건 인간과 비슷하군. 혹시 마족 군주 대신 선택한 게 안타르 신인 거야?”
엘리오의 질문에 앙네스 로덴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게 아닌 건 뭐야? 맞으면 맞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왜냐면 챔피언을 포함한 모든 초월자들이 안타르 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족 군주 대신 안타르 신을 선택했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챔피언도 안타르 신을 섬긴다고? 군주도 신과 다름없는데?”
“군주는 한 지역의 통치자지만, 안타르 신은 온 세상의 신이시니까. 군주와 안타르 신은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다.”
“그래? 그럼 군주와 안타르 신의 명령이 다르면? 챔피언은 누구 명령을 따라?”
“…….”
그런 것까지 생각해 본 적 없는 앙네스 로덴이 우물쭈물하자, 카우슬란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때는 챔피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겠지. 너는 군주면서 왜 챔피언에 대한 것을 우리에게 묻느냐? 아, 인간 군주라서 충성을 맹세한 마족이 없겠군. 쿠쿠쿠쿳!”
그는 자기가 말하고도 웃기는지 크게 웃었다.
엘리오는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강호의 격장지계를 떠올렸다.
‘뱀 같은 놈.’
대가리만 보면 뱀에 가까운 놈을 보고 있으려니 메스껍기까지 했다.
순간 재밌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귀하신 몸이 하찮은 너희들에게 살 기회를 한번 줄 생각인데, 들어 보겠나?”
초월자들은 모멸감에 치를 떨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거부하지는 않았다.
인간 군주의 엄청난 능력을 한차례 목격한 탓이다.
군주와 자신들이 목숨 걸고 싸우면 최소한 초월자 둘 정도는 죽을 터였다.
최악의 경우 셋이 모두 죽을 수도 있다.
안타르 신의 명령이 중하다 해도 자기들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었다.
갈등하는 아르파고와 카우슬란을 대신해 앙네스 로덴이 나섰다.
“말해 보아라.”
“너희들에게 내 챔피언이 될 기회를 주겠다. 나를 따르면 살 것이고, 거역하면 죽는다. 참고로 나는 너희가 섬기는 안타르 신도 죽일 것이다. 그러니 나와 안타르 신 중에 하나를 선택해라.”
말을 마친 엘리오가 ‘공허의 검’에 영기를 가득 불어넣었다.
고오오오오―!
검에서 귀가 먹먹할 정도의 기운이 쏟아져 나와 신전을 가득 채웠다.
가공할 압력을 견디지 못한 신전 벽이 쩍쩍 갈라져 나갔다.
콰드드득! 콰득―!
신전이 무너질 듯 흔들리자 마족들은 앞다퉈 밖으로 달아났다.
엘리오가 보란 듯 숨을 위쪽으로 크게 내뿜었다.
돌풍이 위로 솟구치자 무너질 듯 위태롭던 천장이 대번에 날아가 버렸다.
그 무시무시한 신위에 사티로스족들은 안타르 신의 이름을 부르며 밖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라르바 오마르 백작 등은 자리를 지켰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시선에서 벗어났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다.
사방의 벽면만 겨우 남은 신전 안에 엘리오와 초월자들이 마주 섰다.
엘리오가 ‘공허의 검’으로 초월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답은?”
초월자들이 빠르게 눈빛을 나누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인간 군주의 챔피언이 되라는 것은 개소리였다.
안타르 신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인간 군주의 챔피언이라니?
목숨이 열 개라도 살아남지 못할 터였다.
뜻을 정한 아르파고와 앙네스 로덴, 카우슬란이 인간 군주를 향해 내달렸다.
기다렸다는 듯 엘리오도 ‘공허의 검’을 휘둘렀다.
츠츠츳―!
‘검의 화신(化身)’ 세 개가 초월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초월자들은 들고 있던 각자의 무기로 날아오는 검을 후려쳤다.
콰콰쾅―!
폭발음과 함께 초월자 셋이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초월자들은 밀려난 것보다 더 빠르게 앞으로 짓쳐들어 갔다.
상위 마족 초월자에 걸맞게 경시할 수 없는 몸놀림이다.
아르파고는 드라고니안의 기술인 강체술로 신체를 드래곤처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검에 자신의 마력, 즉 카오스를 덧씌웠다.
이제는 누가 죽든지 결판이 날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작정이다.
앙네스 로덴은 꼭꼭 감춰 두었던 여섯 쌍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한 쌍의 날개마다 지고의 권능이 담겨 있다.
그것을 무려 여섯 개나 한번에 꺼낸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수호, 축복, 강화의 권능을 부여했다.
반면 인간 군주를 향해서는 멸절, 저주, 혼란의 권능을 뿌렸다.
카우슬란도 다른 초월자들처럼 처음부터 자신의 비기를 드러냈다.
인간 군주와 아르파고가 싸우는 걸 보니 아끼다 똥이 될 것 같아서다.
인간 군주를 흉측하게 생긴 수십 개의 눈들이 에워쌌다.
그것은 ‘죽음의 눈’이라 불리는 크라노스족 궁극의 기술로, 그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쳐도 즉사를 면치 못한다.
‘이래도 살 것 같으냐?’
카우슬란은 그것으로도 부족해 양손에 구불구불한 단검을 들고 치달렸다.
그는 이곳에 있는 세 초월자들이 힘을 합치면 군주 하나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 생각했다.
자신만만하게 신전 문을 박찬 것도 그래서다.
조금 전 아르파고와의 싸움을 보고 살짝 위축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후 승자가 초월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셋 중에 가장 먼저 엘리오와 격돌한 것은 아르파고였다.
‘검의 화신’이 통하지 않음을 본 엘리오는 순수하게 ‘공허의 검’으로 아르파고를 상대했다.
‘공허의 검’과 아르파고의 마력이 깃든 블레이드가 마주쳤다.
콰자자작―!
바스라지는 소리와 함께 아르파고의 검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아!’
예상치 못한 결과에 아르파고가 놀라고 있을 때 ‘공허의 검’이 그를 덮쳤다.
그 순간 앙네스 로덴이 날려 보낸 멸절, 저주, 혼란의 권능이 ‘공허의 검’을 휘감았다.
쩌저저적―.
멸절의 권능으로 ‘공허의 검’에 거미줄처럼 실금이 생겼다.
저주의 권능은 순백의 ‘공허의 검’을 먹물처럼 시커멓게 물들였다.
혼란의 권능에 ‘공허의 검’이 멈칫했다.
찰나지간의 틈을 이용해 죽음 직전에 놓였던 아르파고는 뒤로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실금이 사라지고, 시커멓던 검이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깜짝 놀란 아르파고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강체술을 믿고 잡으려 한 것이다.
서걱.
손가락과 손바닥이 잘려 나가고, 목 부위가 화끈하더니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아르파고의 머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으아아아! 안 돼에―!”
강체술의 질긴 생명력으로 아르파고는 쉽게 죽지도 못하고 비명만 질러 댔다.
아르파고의 눈과 허공에 떠 있던 흉측한 눈 하나가 우연히 마주쳤다.
그제야 아르파고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아르파고의 죽음과 함께 흉측한 눈 하나가 꺼지듯 사라졌다.
아르파고의 머리가 잘려 나가는 것을 본 앙네스 로덴은 멈칫했다.
권능 세 개가 파괴된 지금 그녀가 내세울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곁을 카우슬란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이 그녀가 본 살아 있는 카우슬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