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25
1325회. 너는 신의 행세를 하지만 본질은 저 인간들과 같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태고신이라고도 불리는 혼돈에서 이 세상 만물이 탄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태고신의 세계에 마나 프트라스가 침략한다.
결국 샤이틴의 마족과 마나 프트라스의 티탄족이 마하카브에서 전쟁을 벌였다.
그 전쟁에서 패한 샤이틴은 최후의 힘으로 어비스를 만들어 숨는다.
지상에 남겨진 마족들이 마나 프트라스를 피해 북부로 이동하자, 마나 프트라스는 빙벽을 세워 마족들을 영원히 그곳에 가둔다.
마나 프트라스도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힘의 대부분을 잃게 된다.
그는 남은 힘으로 인간을 만들고, 자기를 대신해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그것이 이 세계의 숨겨진 역사다. 마나 프트라스는 창조신이 아니라, 태고신 샤이틴님에게서 이 세계를 강탈한 도적에 불과한 것이다.”
안타르가 원통한 얼굴로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한참을 듣고 있던 엘리오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니까 샤이틴을 따르는 마족과 마나 프트라스를 따르는 티탄족이 싸웠다는 거지?”
“그렇다.”
“그런데 티탄족은 어디 있어? 티탄족이 있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그들은 약탈자다. 이 세계를 손에 넣자, 천공성만 남겨 두고 모두 별들 속으로 사라졌다.”
“천공성을 남겨 뒀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엘리오는 안타르 신의 입에서 갑자기 천공성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티탄족들이 이 세계를 침략할 때, 하늘에는 천공성과 같은 부유성이 가득했다. 지금은 천공성 하나만 남아 있지만 말이다.”
“천공성이 티탄족들의 것이라는 거야?”
“그렇다.”
“티탄족은 신이야?”
인간 군주의 질문에 안타르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너는 신이냐?”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신으로 보일걸?”
“티탄족도 그러하다. 신이란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그걸 알 만한 자가 그런 질문을 하다니? 너는 아직 덜 여물었구나.”
“늘 그런 것만 생각하면서 사는 건 아니니까. 잠시 깜빡할 수도 있지. 그렇다면 질문을 바꿀게. 너는 티탄족을 신이라고 생각해?”
“그럴 리가. 티탄족은 상위 마족과 비슷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들의 무기는 신들조차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지만.”
“그러니까 티탄족이 신은 아닌데, 그들의 무기는 너희 신들에게도 치명적이었다?”
“그렇다. 마하카브에서 소수의 신들만 살아남았을 정도니까.”
“마나 프트라스는 티탄족들의 신이었나 보네?”
“그가 샤이틴님과 대등하게 싸운 걸 보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샤이틴이 마나 프트라스에게 패했지만 안타르 신은 자존심 때문에 ‘대등하게 싸웠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
“너는 이제 마나 프트라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계속 그를 위해 용병 노릇을 하려느냐?”
“…….”
잠시 생각하던 엘리오가 물었다.
“그 마하카브의 전쟁이라는 거 말이야. 언제 적 이야기야? 천공성만 해도 수천 년 전부터 있던 거라서.”
“이만 년 전의 일이다.”
“천공성이 알려진 건 수천 년 전인데, 이만 년 전이라고?”
“천공성이 그때 만들어진 건 아니니까. 이만 년 전에 티탄족의 부유성들이 하늘을 가득 메웠었다.”
“그렇군.”
“그래서 너의 대답은?”
안타르 신이 인간 군주를 응시했다.
본래 마족의 신들은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그는 왠지 대화로 해결하고 싶었다.
본능이 엘리오 라고아라는 인간 군주가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인간 군주가 신격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의외다.
하지만 지금은 본능의 경고에 따르기로 했다.
과거 마하카브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도 그래서였으니까.
엘리오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안타르 신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 것은 아니다.
마족들에게 침략자 소리를 듣는 동안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다.
마침내 엘리오가 입을 열었다.
“사람 목숨은 길어야 백 년이야. 그런 나에게 이만 년 전의 전쟁 이야기는 너무한 거 아냐? 나는 샤이틴이나 마족에게 유감 없어. 샤이틴과 마나 프트라스의 전쟁에 끼어들 마음도 없고. 내가 원하는 건 우샤스 운드라 하나뿐이야. 그를 나에게 내어 주면, 너를 죽이겠다는 말은 없던 것으로 해 줄게. 솔직히 이것도 나에게는 진짜 힘든 결정이라고.”
안타르 신을 죽이겠다고 선언했으면 죽여야 한다.
말의 번복은 언법이라는 단단한 둑에 구멍을 뚫는 것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오는 안타르 신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것이 협객을 추구하는 그의 마지막 배려였다.
엘리오의 진심 어린 말은 유감스럽게도 안타르 신에게 통하지 않았다.
안타르 신은 인간 군주의 터무니없는 말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찜찜해서 인간 군주에게 기회를 주었는데, 저런 소리라니.
그는 다시 인간 군주를 보았다.
인간의 경지를 초월해 온몸이 영기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직 육체에 얽매인 존재.
육체가 파괴되면, 아무리 영기가 초월적이라 해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그에 반해 신의 육신은 기본적으로 영체(spiritual body)다.
무엇으로도 파괴되지 않으며, 설사 영체가 파괴되더라도 의지만 남아 있으면 ―시간이 걸릴 뿐이지― 재건할 수 있다.
신을 가리켜 ‘텔레마(불멸의 의지)’라고 하는 것도 그래서다.
자신이 완전한 텔레마라면, 인간 군주는 반쪽짜리 텔레마다.
그의 의지가 아무리 굳세다 해도, 육체가 파괴되면 재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침내 안타르 신의 입이 열렸다.
“물론 너의 영기는 신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너도 알 테지? 너 자신이 육체에 얽매인 존재라는 것을. 너는 신의 행세를 하지만 본질은 저 인간들과 같다.”
“인정.”
엘리오는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신들과 싸워 이길 정도로 강하지만, 인간이었으니까.
안타르는 인간 군주가 너무도 선선히 시인하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는 상대가 말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싸움에 앞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 줘야 할 것 같다.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 주지. 마족들이 네 일행에게 하는 짓을 잘 보아 두어라. 그것이 곧 너의 미래가 될지니.”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제 와서 두려우냐?”
“어, 두려워. 내가 저들과 함께 다니는 건 인간의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아서야. 너에게 기회를 준 것도, 마족들을 살려 둔 것도, 모두 나에게 인간의 마음이 남아 있어서 그런 거거든? 내가 이 마음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엘리오가 무심한 눈으로 안타르 신을 보았다.
순간 안타르 신은 흠칫했지만 애써 불안한 마음을 눌렀다.
‘그래 봐야 인간 주제에…….’
그러면서도 안타르 신은 마족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무시하려 했지만 인간 군주의 맑은 눈동자가 영 마음에 걸려서다.
생각해 보면 굳이 적을 악에 받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놈의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그냥 두는 게 나을 것 같다.
상대가 잠잠하자 엘리오는 거듭해서 말했다.
“어이, 안타르 신이라고 했지? 조금이라도 이길 가능성이 있는 싸움을 하고 싶으면, 나에게서 사람의 마음을 없애지 마. 내가 괴물이 돼서 날뛰면 샤이틴도 안 될걸?”
“오만하구나, 인간이여.”
“오만하다고? 지금까지 내 손에 죽은 신들이 한둘인 줄 알아?”
엘리오가 마하담에서 ‘공허의 검’을 꺼내 들었다.
‘공허의 검’ 특유의 묵직한 존재감이 주변을 잠식해 들어갔다.
안타르 신조차 한동안 대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디서 저런 칼이…….’
과거 티탄족의 무기만큼이나 섬뜩한 느낌이 드는 칼이었다.
그런 안타르 신을 놀리듯 엘리오가 말했다.
“나한테 육체에 얽매인 존재라고 했지? 이 칼 앞에 너의 그 몸뚱어리는 다를 것 같아?”
“…….”
안타르 신은 대답 대신 하늘로 손을 들어 올렸다.
슈아아악―!
날카로운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타르 신의 무기인 ‘초월자의 창’이었다.
안타르 신이 허공에 창을 한 바퀴 돌린 후 인간 군주를 보았다.
“신의 영체는 부서질지언정 소멸하지 않는다. 인간의 육체도 그러할까?”
엘리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인간은 육체가 부서지면 죽어. 그런데 말야. 영체가 소멸하지 않는다고 누가 그래?”
“…….”
안타르 신은 이를 악물었다.
단 한마디도 지지 않는 놈이다.
이렇게 된 이상 신과 인간의 차이를 직접 알려 주는 수밖에.
그는 초월자의 창을 힘껏 흔들었다.
휘우우웅―!
창의 움직임에 맞춰 일어난 태풍이 인간 군주를 쓸어 갔다.
엘리오 역시 지지 않고 공허의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
태풍과 광풍이 중간에서 마주쳤다.
‘꽈광!’ 하고 귀를 찢는 폭발음과 함께 한순간 적막이 찾아왔다.
바람이 잦아들자마자 안타르 신은 두 손으로 창을 들어 힘껏 내리찍었다.
번쩌억―!
창끝에서 뻗어 나간 번개가 일직선으로 엘리오를 향해 날아갔다.
엘리오도 뢰검분형(蕾劍賁亨)으로 맞받았다.
‘공허의 검’에서 일어난 뇌전과 벼락이 허공에서 만났다.
꽈르르릉―! 꽈광―!
사방으로 하얀 불꽃이 튀었다.
불꽃이 내려앉는 곳마다 하얗게 타들어 갔다.
운 없게 불꽃에 노출된 마족들이 소리 지르며 지면을 굴러다녔다.
그러나 불꽃은 마족을 완전히 태우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꺼지지 않았다.
안타르 신과 엘리오도 하얀 불꽃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폭발에서 가장 가까웠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하얀 불꽃도 안타르 신의 보호막과 엘리오의 강기막을 뚫지는 못했다.
대신 하얀 불꽃은 두 사람의 몸 주위를 한동안 밝혔다.
하얀 불꽃이 사그라들자 안타르 신은 인간 군주를 향해 내달렸다.
원거리 공격이 번번이 막히니 근거리에서 직접 손을 쓰기로 한 것이다.
엘리오도 피하지 않고 선불 맞은 맷돼지처럼 상대를 향해 달려갔다.
곧이어 ‘초월자의 창’과 ‘공허의 검’이 맞부닥쳤다.
쾅! 쾅! 콰앙―!
안타르 신과 엘리오는 미친 듯 상대를 몰아쳐 갔다.
그러나 누구 하나 물러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인간 군주를 몰아쳐 가던 안타르 신은 내심 안도했다.
‘이 정도인가?’
직접 맞부닥쳐 보면 상대를 알 수 있다.
인간 군주의 힘은 보기보다 강했지만 예상했던 범주 내였다.
큰소리와 달리 그의 능력은 마나 프트라스 휘하의 신들과 비슷했다.
아니 종합적으로 보면 오히려 조금 약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면 죽어라.’
안타르 신의 움직임이 변했다.
초월자의 창은 한층 더 빨라졌고, 창에 실린 힘도 두 배나 늘었다.
쾅! 쾅! 쾅! 쾅! 콰앙―!
눈으로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진 창 움직임에 엘리오의 손도 덩달아 바빠졌다.
‘씨발! 씨발!’
엘리오는 속으로 연신 욕을 해 댔다.
이 정도면 할 만하다 싶은 순간, 갑자기 속도와 힘에 변화가 생겼다.
적의 공세는 더 빨라졌고, 창에 부닥칠 때마다 손목이 욱신거린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언제나처럼 싸우다 문득 보니 정신없이 몰리고 있다.
안타르 신은 자신이 지금까지 싸워 왔던 신들과 완전히 달랐다.
그는 마법이나 권능 따위가 아니라, 영체의 힘으로 자신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