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13
1413회. 그야 대장군과 북진에서 고민할 문제이지요
남궁연의 단언에 연적하는 잠시 멈칫했다.
앞으로 십 년 후면 자신이 무림에 발을 끊은 지 삼십 년.
자신이 석경장에 칩거한 뒤 태어난 사람들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자신은 ‘전대의 고수’다.
나이 오십 대 후반에 ‘전대의 고수’ 소리를 듣게 되다니!
곰곰 생각해 보니 자신도 천하십대고수 이전의 고수들은 잘 모른다.
천하십대고수도 ‘전대’소리를 듣는데 자신은 그들보다 삼십 년이나 일찍 강호에 발을 끊었다.
체감상 무림인들에게는 전전 대의 느낌일 터.
거기까지 생각한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세월이 무섭네요.”
“무섭죠. 지안이에게 젖을 먹이던 날이 어제 같은데,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는다잖아요.”
대화가 이상한 데로 흐르자 진재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외삼촌, 남옥 대장군이 아버지를 참수하기 전에 구해 주십시오.”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한겨울에는 참수를 거행하지 않으니까. 봄이나 돼야 참수를 시작할 게다. 물론 그 전에 내가 꺼내 줄 테지만. 네 어머니에게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라 해라.”
“예! 감사합니다!”
진재영은 이마가 방바닥에 닿도록 머리를 조아렸다.
고금제일인인 남천 대협이 나선다면 아버지의 누명도 벗어질 터였다.
진재영은 다음 날 아침 석경장을 나섰다.
걱정하며 기다릴 어머니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다.
***
남경.
남옥 대장군부.
추위가 절정에 달한 대한.
점심 무렵 별다른 기별도 없이 건원표국의 표두가 방문했다.
총관이 무슨 일인가 싶어 만나니 표두는 품 안에서 봉서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뭔가?”
“석경장의 장주이신 남천 대협께서 남옥 대장군께 보내는 편지입니다.”
“석경장? 남천 대협이면 연적하? 그 사람이 직접 보낸 게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남천 대협에게 받았습니다.”
“연적하가 대장군님에게 보냈다고?”
총관은 일부러 무림의 별호를 입에 올리지 않고 일반인 대하듯 했다. 그런 식으로 남옥 대장군부의 위세를 드러낸 것이다.
남옥 대장군부가 두려운 표두는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하게 답했다.
“예.”
“남옥 대장군님은 무림인들과 왕래를 하지 않으시는데……. 괴이하군.”
“저희도 전해 드리기만 할 뿐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표두가 발뺌하자 총관은 그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대장군부에서도 종종 표국을 이용하기에 그들의 업무를 잘 아는 까닭이다.
“알았네. 가 보게.”
그 말에 표두는 꾸벅 인사를 한 뒤 홀가분한 얼굴로 돌아섰다.
막 떠나려는 표두를 문득 총관이 불러 세웠다.
“잠깐.”
“예?”
표두가 의아한 얼굴로 총관을 돌아보았다.
“편지를 연적하에게 직접 받았다고 했지?”
“예.”
“그가 불로불사의 선인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게 사실인가?”
사람들은 연적하가 무당파의 제자라서 늙지 않는 그를 ‘선인’이라고 했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괴물’이라 불렸을 것이다.
“불사는 모르겠으나 얼굴만큼은 확실히 이십 대로 보였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석경장의 제자인 줄 알았으니까요.”
“그렇군. 수고했네.”
표두는 다시 한번 꾸벅 인사를 올린 뒤 부랴부랴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날 오후.
남옥 대장군 양재승이 퇴청하자 총관은 연적하의 편지를 들고 양재승의 거처로 갔다.
“무슨 일인가?”
양재승이 피곤한 얼굴로 총관을 보았다.
하루 종일 고관대작들에게 시달렸는지 그의 말투는 조금 날카로웠다.
“석경장의 연적하가 대장군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연적하? 남천이라 불리는 무림인?”
“예.”
대답과 함께 총관은 공손히 두 손으로 편지를 건넸다.
양재승은 편지를 받고도 바로 개봉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한지 한동안 편지를 만지작거리던 그가 말했다.
“무림인들은 한 걸음에 삼 장(약 9미터)을 가고, 칼로 바위도 자른다지?”
“과장된 소문입니다. 제가 만나 본 칠파이문의 무인들은 일 장(약 3미터)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낚시꾼들의 허풍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낚시꾼들의 허풍이라. 하하하!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군.”
“대장군님께서는 달리 보고 계십니까?”
“이십 년쯤 전 내가 명위장군(明威將軍, 정4품)에 제수되었을 때……. 금군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었네.”
“이상한 소문이요?”
“황성을 수비하던 일만의 금군이 천외이선이라 불리는 유명교 고수들에게 당했다고 하더군. 단 두 명에게 일만 명이 당했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무림인에 관한 소문이 대개 그런 식입니다.”
총관이 장단을 맞췄다.
“당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다치거나 죽은 사람도 없었네. 말 그대로 소문만 무성했지.”
“유언비어였군요.”
“그런데 꼭 그렇다고만도 볼 수 없던 게, 그 천외이선이 무영전(武英殿)에서 생활을 했거든. 황실의 일원도 아닌데 황궁에서 지냈다 이 말일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무영전 일대는 황궁에서도 금지라 나조차도 근처에 갈 수 없었네. 하지만 천외이선이 그 당시 무영전에서 지냈다는 건 확실해.”
“황실에서 유명교를 믿고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호국의 종교로 유명했잖습니까. 관군과 함께 북방 정벌도 나갔을 정도로.”
기억을 되살리던 양재승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다.
“그 천외이선을 황궁에서 내쫓은 사람이 연적하였네. 물론 기록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천외이선의 실력이 형편없었을 겁니다. 천외이선과 금군에 관한 일은 유명교에서 지어낸 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십 년도 더 된 과거의 일이라고 총관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양재승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황궁에 연적하와 관계된 기록이 없어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십 년 전에 금의위에서 연적하를 관리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담당자들이 모두 낙향해 누구 하나 잡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총관과 이야기를 나누니 복잡하던 머릿속이 조금 정리된 느낌이다.
양재승은 밀봉을 뜯었다.
종이는 편지라고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글자수가 많지 않았다.
[진우생을 곱게 풀어 줄 것.]부탁인지 협박인지 모를 내용에 양재승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
“왜 그러십니까?”
“직접 보게.”
양재승이 편지를 서탁 위에 툭 내던졌다.
간단한 동작이지만 눈동자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총관은 조심스럽게 편지를 집어 들고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광오 한 자로군요.”
“광오? 아니야. 미친 거지. 내가 병신도 아니고 저따위 편지에 놓아줄 것 같은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연적하에 대한 조사를 따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네는 조금 전에 낚시꾼의 허풍이라 하지 않았나?”
“그랬습니다만 대장군님을 상대로 이 정도 자신감이라니……. 조금 찜찜해서요. ‘만사불여(萬事不如) 튼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흐음.”
양재승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홧김에 미쳤다고 했지만 자신도 연적하의 자신감이 조금은 신경 쓰인 까닭이다.
손가락으로 서탁을 톡톡 내리치던 앵재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금의위 지휘사를 좀 만나고 와야겠어.”
총관이 뒤따라 일어나며 물었다.
“이 시간에요?”
“내일 금의위 지휘사가 등청할 때까지 도저히 못 기다리겠어. 이런 마음으로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거야.”
말을 마친 양재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
그날 밤.
금의위 지휘사 곽일언의 저택.
남옥 대장군 양재승은 금의위 지휘사 곽일언과 만나자마자 연적하에 대해 물었다.
“석경장의 남천 연적하에 대해 알고 싶소.”
남옥 대장군 양재승은 정이품의 고관이지만 금의위 지휘사는 황제의 최측근인지라 정중하기만 했다.
“그것을 어찌 저에게 물으십니까? 제가 금의위 지휘사라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곽일언은 황제의 최측근, 황제의 숙부 편인 양재승을 도울 이유가 없었다.
“곽 대인이 오늘 나를 돕는다면, 장차 곽 대인이 곤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 나도 돕겠소. 적을 늘리는 것보다 친구를 늘리는 게 낫지 않겠소?”
말과 함께 양재승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곽일언을 보았다.
그 말은 언젠가 정변이 일어났을 때 뒤를 봐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금의위라고 모두가 황제의 편은 아니다.
당장 북진만 해도 황제의 숙부 쪽으로 돌아선 사람들이 많았다.
곽일언은 듣지 못한 척 딴청을 했지만 그렇다고 거절하지도 않았다.
‘지혜로운 토끼는 굴을 세 개 준비한다[狡兎三窟]’고 하지 않던가.
먼저 청한 것도 아니고 상대가 도와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진우생의 일 때문입니까?”
곽일언의 말에 양재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알고 계셨구려. 연적하에게 진우생을 풀어 주라는 편지를 받았소.”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
“내가 연적하에 대해 아는 것은, 그가 이십여 년 전에 무영전에서 천외이선을 쫓아냈다는 것 정도요. 그런데 천외이선이나 연적하에 대한 기록이 없어 그들의 능력을 알 수가 없더이다. 금의위라면 연적하에 대해 알 것 같아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온 것이오.”
“제대로 찾아오셨습니다. 황궁에서 연적하에 대해 우리 금의위만큼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들어 봅시다.”
“그 전에 저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곽일언도 닳고 닳은 여우인지라 간단하게 정보를 넘겨주지 않았다.
“무엇이오?”
“남경의 남진무사와 천호가 모반죄로 하옥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금의위 지휘사인 저의 책임 또한 없다 하기 어려울 텐데…….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어느 선까지입니까?”
금의위 지휘사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지라 어쩌면 당연한 의문이었다.
“진위 대장군 풍승이오.”
“허면 남진 역시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해야 하겠군요.”
“남진무사 장수천이 반대파의 좌장이라 들었소.”
양재승은 대담하게도 황제를 따르는 장수천을 ‘반대파의 수장’이라 했다.
하지만 곽일언은 그 말을 듣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진우생은 장수천이 아끼는 수하입니다.”
“장수천, 진우생이 이승 대인을 독살했고, 그것을 사주한 이가 풍승이오.”
“진우생을 참수하면……. 그의 죽음과 관계된 모든 이들이 죽을 것입니다.”
순간 양재승이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그 무슨 해괴한 소리요! 한낱 무림인 따위가 어찌!”
“과거 천외이선은 단 두 사람이 일만의 금군을 제압했습니다.”
“그게 가능하오?”
“금군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지휘관들을 제압하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천외이선들조차 연적하를 당해 내지 못했습니다.”
“끙!”
양재승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곽일언은 계속해서 말했다.
“과거 연적하를 추포하기 위해 몇 차례 천호소의 군사가 동원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괴멸적 피해를 입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후 모양 대인께서 연적하와 관계된 모든 서류를 불태우라 하셨지요. 왜냐고 물으니 ‘혹시라도 추후에 누군가 연적하에게 죄를 묻자고 할까 봐 두려워 그런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건 모두 소문이 아니오?”
“그 서류들을 불태운 사람이 접니다. 화포까지 동원했지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는 기록도 보았습니다.”
“하아! 모반죄로 이미 장수천과 진우생을 추포했는데……. 어찌 진우생만 풀어 줄 수 있겠소?”
“그야 대장군과 북진에서 고민할 문제이지요.”
곽일언은 넌지시 거리를 뒀다.
황제의 최측근인 그가 양재승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일이 아닌 때문이다.
뒤늦게 자신의 실태를 깨달은 양재승은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
‘쯧! 서두르다 뻔한 수작에 넘어갈 뻔했군.’
잠시 분위기에 휩쓸렸지만 돌이켜 보니 모두가 말뿐이다.
금군은 물론 금의위에도 천외이선이나 연적하의 능력을 증명할 자료는 없었다.
양재승은 불쾌감을 숨기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움을 주어 고맙소. 오늘의 일은 돌려줄 날이 있을 게요.”
물론 진우생을 풀어 줄 일은 없다.
연적하는 ‘곱게 풀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미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
계획대로 장수천과 진우생을 참수하고, 진위 대장군 풍승을 끌어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