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6
156회. 둘 중에 하나일 거예요.
구룡객점.
다음 날 아침.
혈죽어옹 천수산이 직접 이두 마차를 가지고 객점을 찾아왔다.
그는 식당에서 쉬고 있던 연적하 일행을 발견하자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머리를 조아렸다.
이런 것만 보면 어제 연적하의 말대로 영락없는 점소이다.
“총순찰님, 마차에 건량까지 채워 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아무 때라도 사용하시면 됩니다.”
“어, 고마워. 수고했어. 천 채주, 혹시 옛날에……. 아니야.”
연적하는 점소이 출신이냐고 물으려다가 참았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니야.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예, 아무쪼록 속하의 충심을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꼭 기억해 둘게. 참, 그런데 정의맹에서 천 채주 목에 포상금을 걸었다지?”
“허허, 금액이 낮아 입에 올리기도 부끄럽습니다. 다른 분들을 따라가려면 멀었습니다.”
“그래? 괜히 남 좋은 일 시키지 말고 머리 간수 잘 해.”
“예,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건이 끝났음에도 천수산은 연적하의 곁에 시종처럼 붙어 서 있었다.
은근히 신경 쓰인 연적하가 가라고 손짓한 뒤에야 그는 객점을 떠났다.
진설하가 멀어지는 천수산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와아! 연 공자님의 말씀을 들어서 그런지 정말 점소이 같네. 정주 지부에 돌아가서 이런 얘기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야.”
“그나저나 무산소축의 십두마병들이 돌아갔으니 당분간은 안심해도 되겠지요?”
말과 함께 유근식이 남궁연을 힐끔거렸다.
“유명교에서 적하의 목적과 행선지를 알게 되었으니 둘 중에 하나일 거예요. 죽일 작정으로 적하를 기다리거나, 녹림에서 손을 떼거나.”
그녀의 대답에 무거운 침묵이 맴돌았다.
연적하를 죽일 작정으로 대비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위험해지는 까닭이다.
잠시 시간을 두고 남궁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다음 목적지인 동호수채는 저들도 대비할 틈이 없어요. 저들이 뭔가 준비를 한다면 그곳은 아마 대별산채가 될 거예요.”
청운검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여기서 동호수채가 있는 무한까지 뱃길로 사나흘 정도라, 동호수채 채주는 알아도 대비할 틈이 없습니다. 유명교에서 십두마병 들의 복수를 하겠다면 그 장소는 대별산채가 될 겁니다.”
“남궁 대협, 유명교가 동호수채와 대별산채에서 그냥 손을 떼지는 않을까요?”
유근식은 그랬으면 하는 눈치였다.
십두마병의 무위가 너무 뛰어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니 당연하다.
“저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나 남궁천의 표정은 어두웠다.
유명교의 악행을 생각할 때 이대로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 않아서다.
***
남직례성.
합비 남쪽 소호.
무산소축.
당주이자 백두마군인 무산낭랑 이매화의 집무실에 네 사람이 모여 앉았다. 이매화와 총호법 독심귀랑 양소란, 혈검, 옥불이다.
양소란의 말이 끝나자 이매화가 기막힌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총순찰 연적하의 무위가 백두마군과 비슷하다고? 고작 스무 살밖에 안 먹었는데?”
눈치를 보고 있던 혈검이 한마디 보탰다.
“나이는 어리지만 실로 잔인한 놈이었습니다. 장강일괴는 웃으며 대화를 하다가 놈의 기습에 즉사했습니다. 파천마군이 그런 놈을 총순찰 자리에 앉힌 걸 보면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매화가 양소란에게 시선을 돌렸다.
“연적하가 정말 그런 말을 했는가? 총채주가 녹림에 있는 유명교를 정리하라 시켰다고.”
“예,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십두마병에 대한 원한은 따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십두마병들이 자신을 공격해서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하는 걸 보면.”
“흐음! 장강일괴가 폭발시킨 배가 무한으로 가는 배였다고 했는가?”
“예.”
“허면 지금쯤 동호수채로 가고 있겠군. 장강수채가 가장 남쪽에 있었으니 북쪽의 광풍채와 삼도산채의 채주들은 모두 죽었겠고.”
“말하는 투가 그런 것 같았습니다.”
“남은 건 동호수채와 대별산채쯤 되려나. 하아! 동호수채에 연락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그렇다면 결국 대별산채만 남았다는 소리인데…….”
“연적하에게 복수를 하실 생각이신가요?”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닐세. 그놈이 백두마군의 경지라면 다른 교당의 도움을 받아야 하네. 또한 파천마군이 그놈의 죽음을 묵인하겠느냐 하는 점도 고려해 봐야 해.”
“하지만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파천마군이 유명교를 우습게 볼 겁니다.”
양소란은 다른 건 몰라도 연적하는 죽이고 싶었다.
처음에는 백산의 복수였지만, 지금은 자존심이 달린 문제였다.
놈의 마지막 말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이봐 할망구. 당신들이 죽인 수도사들은 그렇게 죽어도 되는 사람들이었어? 어디서 호걸 흉내를 내고 있어. 자꾸 내 속 긁어서 좋을 일 없으니까, 곱게 보내 줄 때 가. 내가 지금 참고 있는 건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야. 뭘 알고 떠들어.
그 어린놈은 자신을 사장통에서 장사를 하는 노파처럼 대했다.
십두마병이 되기 전에도 그런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다.
하물며 십두마병이 되어 무상의 내공을 갖게 된 지금에야 말해 무엇하랴!
이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고작 한 사람에게 꼬리를 말고 싶지는 않았다.
“파천마군이 연적하를 보내 우리 반응을 떠본 걸 수도 있네. 그렇다면 우리도 그에 맞게 응대를 해 줘야겠지. 병신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말이야.”
“허면…….”
양소란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다른 교당들까지 다 끌어들이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대별산채는 여주 은하장의 영역에 있네. 은하장주 척진경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대별산채를 그냥 포기하지는 않을 걸세. 은하장에 전서구를 보낼 테니 자네가 다시 한번 수고해 줄 텐가?”
“수고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당주님께서 가지 말라 하시면 보내 달라고 청하려 했습니다.”
“연적하에게 은원이 있었던가?”
“놈이 강주진에서 저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한지라.”
“저런, 그런 일이 있었던가. 천하의 독심귀랑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 죽어도 싸구먼. 연적하를 죽이고 산채에서 손을 떼면 파천마군도 그냥 덮으려 하겠지.”
“십두마병은 몇이나 보내실 생각이신지요?”
“우리가 셋, 은하장에서 셋, 그렇게 여섯이면 되지 않겠나?”
이매화가 양소란을 힐끔 보았다.
연적하를 직접 만나 본 그녀의 반응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부족하다면 더 보낼 용의도 있었다.
하지만 양소란은 그 정도 숫자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충분합니다.”
십두마병 여섯이면 거의 유명교 교당 하나에 해당하는 전력이라 할 수 있다.
그 정도면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 그리고 정체불명의 여자까지 정리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
호광성.
무한 교량촌.
정오 무렵.
배에서 내린 이두 마차 한 대가 천천히 마을로 들어섰다.
연적하 일행이 탄 마차였다.
마차는 교량촌의 반점 앞에서 멈춰 섰다.
마부석 옆에 앉아 있던 남궁천이 가볍게 몸을 날려 내려섰다.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은 그의 표홀한 신법에 놀라 연신 힐끔거렸다.
뒤이어 마차에서 내린 남궁연과 진설하의 미모는 지나던 사람들의 걸음을 잡았다.
연적하 일행은 무례하리만치 집요한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반점으로 들어갔다.
남궁연과 진설하의 등장으로 잠깐 멈췄던 거리가 다시 분주하게 돌아 갔다.
“어서 옵쇼!”
때마침 연적하 일행을 발견한 점소이 하나가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이 층에 빈자리가 있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점소이가 앞장서 이 층으로 안내했다.
연적하 일행은 점심 무렵인데도 운 좋게 창가 쪽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주변을 휘둘러보던 유근식이 중얼거렸다.
“무림인들이 몇 보이네. 상방 쪽 사람들인가 본데.”
한쪽에 비켜서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던 점소이가 나직이 말했다.
“예, 천검문 분들입니다. 천검문에서 태평상방에 호위무사들을 보내기로 약조하는 자리라고 들었습니다.”
“천검문?”
유근식은 정주 사람이라 무한의 천검문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라 다들 점소이의 입만 보았다.
“예, 무한에서 알아주는 문파입니다.”
“정도 문파인가?”
“그렇습니다.”
“정의맹에 소속되었고?”
“아직 정의맹에는 속하지 않았습니다.”
점소이, 소칠이 계면쩍은 미소를 흘렸다.
천검문은 정의맹에 가입할 만큼 큰 문파가 아니었다. 방금 제 입으로 ‘무한에서 알아주는 문파’라고 한 것과는 반대로 말이다.
다행히 유근식은 더 파고들지 않았다.
정의맹에 있으면서 약소 문파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넘어가 준 것이다.
천검문 문주 활인검 유진원이 옆자리의 일대제자 유의민에게 말했다.
“태평상방 사람들이 왜 늦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이왕 모임이 늦어졌으니 이 사범에게도 시간이 되면 오시라 전하고.”
“예.”
유의민이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유진원은 계약을 하기로 한 태평상방이 늦자 계단 쪽을 자꾸만 힐끔거렸다.
보다 못한 그의 딸 유소운이 한마디 했다.
“아버지, 어련히 오지 않을까 봐서요. 태평상방의 방주는 허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잘 아시잖아요. 느긋하게 기다리세요.”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그러는 거 아니다.”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생겼나 보죠. 요즘 상방이 한창 바쁠 때잖아요.”
“그럼 다행이지만 요즘 칠상문에서 이상한 짓을 한다는 소리가 들려서.”
“칠상문은 신경 쓰지 마세요. 태평상방이 우리와 계약을 하겠다는데 무슨 걱정이세요.”
칠상문은 천검문과 같은 지역에 있는 정사지간의 문파였다.
그들도 태평상방에 오래도록 공을 들였지만 태평상방의 방주는 결국 천검문을 선택했다.
제자의 숫자나 문파의 힘은 칠상문이 천검문보다 월등하게 강하다. 그러나 상인들은 칠상문도들의 기질이 사나워서 함께 일하기를 꺼려 했다.
그와 반대로 약소 문파인 천검문도들은 순해서 상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유의민은 그로부터 일다경(약 20분)이 지나서 돌아왔다.
계단을 올라오는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유의민의 얼굴을 본 유진원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갔던 일은 어찌 되었느냐? 태평상방이 왜 늦는지 알아보았느냐?”
“그게 칠상문이…….”
“그들이 왜?”
유의민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들이 태평상방의 방주를 데리고 있다 합니다. 방주와 함께 곧 이리로 올 모양입니다”
“끙! 결국 칠상문이 훼방을 놓고 말았구나. 강제로라도 계약을 체결할 거라는 말은 들었는데. 정말 그런 짓을 벌일 줄이야.”
“오라버니, 칠상문이 왜 태평상방의 방주를 데리고 있대요? 그들이 무슨 자격으로?”
“하아! 우리에게 태평상방의 상권을 지킬 힘이 없다는 걸 직접 보여 주겠단다. 공개적으로 우리를 손봐 주고 계약을 채 가겠다는 속셈이지.”
“아니, 뭐 그런 미친 사람들이 다 있대요? 그런 식으로 계약을 강제로 빼앗아 가다니? 그건 그냥 강도짓이잖아요? 아무리 강호 도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자기들이 녹림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죠?”
유소운이 언성을 높였다.
백주에 자기들 힘만 믿고 그런 파렴치한 짓을 벌이다니?
어찌나 억울하고 분했던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다 핑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