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86
186회. 아니야, 너희는 알아야 돼
무림은 태풍 전의 고요에 잠겼다.
유명교와 정의맹의 전쟁이 임박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정의맹이 남경에서 추계비무대회를 개최하자, 유명교는 정주에서 봉축 행사를 가졌다. 각각 남경과 정주에 고수들을 모은 셈이다.
인심은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
어제까지만 해도 유명교와 줄이 닿았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뒤이어 대륙 각지에서 기묘한 현상이 발생했다.
유명교와 정의맹이 대립하고 있는 틈에 정사지간과 사파가 영역을 넓혀 나간 것이다.
개봉의 천화방도 그런 방파들 가운데 하나였다.
천화방의 방주 벽옥검 성이월은 아직 주인이 없는 화상촌에 손을 뻗었다.
개봉.
천화방.
점심 무렵.
안채의 넓은 전각에 여자 넷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방주 성이월과 세 명의 단주들이다.
오십 대 미부인 성이월이 웃으며 젊은 단주들을 격려했다.
“내 욕심으로 너희가 고생이 많구나. 너희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모란단의 단주인 백화검 주화영이 웃으며 화답했다.
“무슨 말씀을요. 오히려 저희들이 방주님에게 감사해야지요. 방주님이 아니었으면 여전히 기루에서 웃음이나 팔고 있었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다른 두 명의 단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화방의 단주들이 기녀 출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본래 방주인 성이월도 기녀였다.
그러다 운 좋게 무림의 은거기인의 눈에 들어 무공을 전수받았다.
후에 그녀가 어린 기녀들을 모아 만든 게 천화방이다.
물론 지금은 하오문 출신의 남자 제자들도 많아 ‘천화(千花)’라는 이름이 무색해졌지만 말이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단주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어느덧 주화영의 차례가 되자 다들 그녀를 주목했다.
“어제 화상촌의 객잔 주인을 만났어요. 그런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우리 쪽 제안을 거절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밤에 손을 썼지요. 마을에 있는 식료품점의 물건을 모두 사들이고, 합마청고를 앞세워 다른 곳에 물건을 팔지 못하게 계약했어요. 머지않아 객잔은 문을 닫게 될 거예요.”
“아예 객잔을 인수할 생각이냐?”
성이월의 물음에 주화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생각으로 한 건 아니에요.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아서 굳이 인수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그냥 겁만 잔뜩 주고 식재료의 공급 단가와 보호비를 올려 받을까 해요. 하는 짓이 괘씸해서.”
“그가 어쨌기에?”
“촌구석의 늙은이가 어떻게 된 게 도시의 점주들보다 더 욕심이 많아요. 처음에는 손님이 적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주인이 둘이라 혼자 결정하기 어렵다는 둥 뻔한 소리를 늘어 놓더라니까요.”
장미단의 단주인 수가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저, 혹시 그 늙은이의 뒤에 다른 방파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건 아니더라고. 화상촌에 진출한 방파는 아직 없어. 마을에 무림인도 보이지 않던걸.”
“와아. 그럼 정말 간덩이가 부은 늙은이네요. 뭘 믿고 그렇게 튕겼지?”
“내 말이. 그래서 이참에 혼쭐을 내 주려고. 일벌백계라고나 할까? 그래야 화상촌의 다른 점주들을 장악하기도 쉬워질 테니까.”
“싹싹 빌 때까지 봐주지 마세요.”
그러자 동백단의 고은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요. 우리 천화방이 다른 방파에 비하면 얼마나 후한데, 그걸 거절하다니!”
단주들이 한마디씩 쏟아 낼 때다.
누군가 마당을 가로질러 전각으로 다가왔다.
천화방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남제자였다.
“방주님, 화상촌에서 왔다는 아이가 방주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객잔에서 보냈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러자 세 명의 단주들이 꺄르르 웃었다.
“뭐야? 하루 만에 항복하는 거야?”
“어머, 너무하다. 못해도 사나흘은 갈 줄 알았는데.”
“어제 좀 그렇게 나오지. 하여튼 좋은 말로 하면 못 알아먹는 사람들이 많아요.”
단주들의 소리가 잦아들자 성이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리고 오너라.”
“예.”
잠시 후 남제자가 열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를 뒤에 달고 왔다.
사내아이, 상도가 쭈뼛쭈뼛 앞으로 나섰다.
단번에 상도를 알아본 주화영이 일부러 차가운 얼굴을 하고 물었다.
“너는 객잔에서 일하는 아이구나. 무슨 일로 방주님을 찾아왔느냐?”
“아, 예, 그게, 그러니까, 저희 객잔의 연 공자님이 방주님을 꼭 모셔오라고.”
“연 공자가 누구기에 방주님을 모셔 오라는 것이냐?”
“사기꾼들에게 사기를 당한 분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점소이의 말에 주화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 이야기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상도는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간추려 들려주었다.
“……그 뒤로 심 노인은 사기꾼들을 잡으러 가고, 연 공자님만 객잔에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한 달 남짓 주인 행세를 하던 자가 방주님을 모셔 오라고 했다는 말이냐?”
“예.”
주화영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성이월을 보았다.
남초결이 헛소리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주인도 아닌 자가 왜 방주님을 찾는단 말이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상도는 차마 연적하가 한 말을 전하지 못하고 시치미를 뚝 뗐다.
세 명의 단주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래도 심 노인이 무림인인 것 같아 다들 조심하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성이월이 상도에게 말했다.
“알겠으니 그만 가거라.”
“예.”
이윽고 남제자가 상도를 데리고 돌아갔다.
기묘한 침묵이 전각에 감돌았다.
한참 만에 성이월 말했다.
“개봉에 와서 행수를 데리고 가는 데 한 식경도 안 걸렸다니. 실로 믿어지지 않는 경공술이로구나. 심 노인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사람이 있느냐?”
주화영, 수가연, 고은이 고개를 저었다.
방주보다 강호의 식견이 부족하니 당연한 일이다.
머뭇거리던 주화영이 나섰다.
“방주님, 제가 먼저 가서 연 공자라는 사람을 만나 볼까요?”
“아니다. 그가 나를 지목했다면 필시 그만한 자격이 있을 터이니, 내가 응하는 게 맞다.”
성이월의 말에 주화영은 입을 다물었다.
하기야 심 노인의 무위를 생각하면 방주가 직접 나서는 게 옳았다.
***
다관(茶館) 빈객(賓客).
“그러니까 그년이 어디로 튀었는지 말하라고! 이 개새끼들아!”
와장창.
“악!”
집기 부수는 소리와 여자들 비명이 다관에 울려 퍼졌다.
삼보방의 소방주 녹담평은 미친놈처럼 돌아다니며 탁자를 뒤엎었다.
콰앙. 콰앙. 쿵.
다관 일꾼들은 한쪽 구석에 모여 숨죽이고 그의 패악질을 지켜만 보았다.
벌써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는 일인지라 그러려니 하는 얼굴들이다.
한바탕 난리를 친 녹담평이 다관 주인을 쏘아보았다.
“분명히 말하는데 내가 이대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년이 어딨는지 말하기 전까지 너는 장사 못 해.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알았어?”
“소방주님, 제발 사정 좀 봐주십시오. 저희도 남수경이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야반도주한 것 같은데 저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니야, 너희는 알아. 알아야 돼. 알아내. 그년 주변을 탈탈 털어서라도 어디로 달아났는지 알아내. 그러지 않으면 장사 접어야 할 거야.”
“…….”
녹담평은 살기등등한 눈으로 주위를 노려보다가 다관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제야 다관 일꾼들은 탁자를 일으켜 세우고, 부서진 다기들을 치웠다.
멍하니 서 있는 다관 주인에게 일꾼 하나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이번에는 칠 일 만에 왔네요. 점점 뜸해지다가 그만둘 겁니다.”
“그전에 내가 홧병이 나서 죽을 거야.”
다관 주인은 녹담평을 떠맡기고 사라진 남수경이 원망스러웠다.
***
화상촌.
신시(오후 3시-오후 5시) 무렵.
열 명의 남녀 무림인들이 마을에 들어섰다.
천화방의 방주 성이월과 세 명의 단주, 그리고 여섯 명의 일대제자들이다.
그들은 마을을 가로질러 황하강변으로 나아갔다.
잠시 후 객잔이 나타나자 길 안내를 하던 손계영은 뒤로 슬쩍 물러났다.
객잔을 본 성이월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작군.”
개봉의 객잔과 비교하면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의 규모다.
그러니 주화영이 인수하지 않고 보호비만 받으려고 한 것이리라.
입맛이 썼다.
이보다 큰 거래도 단주들 손에서 정리가 됐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속으로 혀를 차던 성이월은 이내 객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습관적으로 인사하던 상도가 굳었다.
천화방의 방주가 정말 사람들을 이끌고 찾아와 놀란 것이다.
성이월이 눈치를 보고 있는 상도에게 말했다.
“연 공자를 만나려고 왔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공자님은 지금 자살바위에 계십니다.”
“자살바위?”
대놓고 불길한 이름에 성이월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자살바위라니.
“제가 얼른 가서 모셔 오겠습니다.”
말과 함께 뛰어나가려는 상도를 성이월이 불러세웠다.
“꼬마야. 나를 그에게 안내하거라.”
“예? 아, 예.”
막 숲에서 빠져나간 상도가 앞쪽을 가리켰다.
“저기 계시네요. 공자님!”
상도가 연적하에게 달려가려 하자 성이월이 만류했다.
“이제 됐다. 너는 그만 객잔으로 돌아가라.”
“예.”
그렇지 않아도 부담을 느끼고 있던 상도는 달아나듯 자리를 피했다.
점소이가 사라지자 성이월은 제자들을 이끌고 천천히 바위로 다가갔다.
바위 아래에 도착한 성이월과 세 명의 단주들은 훌쩍 위로 뛰어올랐다.
천화방도들을 등 뒤에 두고도 연적하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 그의 태도에 주화영이 아미를 찡그렸다.
“이봐요. 당신이 연 공자라는 사람인가요?”
순간 고개를 돌린 연적하가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 손가락을 입술 위에 세웠다.
“쉿!”
그리고 다시 황하로 시선을 돌렸다.
성이월과 세 명의 단주들도 얼떨결에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았다.
황토색 물이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황하와 연 공자라는 사람을 번갈아 보던 성이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미친 사람인가?’
아니, 십여 장 아래에 흐르는 흙탕물을 봐서 뭐 하려고?
천화방의 방주를 맞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저곳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의 기행을 보다 못한 주화영이 버럭 소리쳤다.
“귓구멍이 막혔느냐! 네놈이 연 공자냐고 물었다!”
그때 연적하 옆에 놓여 있던 검집에서 ‘챙’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빠져나갔다.
검집에서 나간 검은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그대로 황하의 수면 위로 날아갔다.
곧이어 멈추는가 싶더니 한 마리 매처럼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주화영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처 알지 못한 채 멍하니 황하를 보았다.
그러나 방주인 성이월은 달랐다.
그녀의 눈은 청년의 오른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앞으로 뻗은 오른손 검결지다.
‘저건 설마…….’
대답이라도 하듯 그의 검결지가 하늘을 가리켰다.
촤아아!
흙탕물을 뚫고 검 한 자루가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놀랍게도 검신에는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꿰어져 있었다.
물고기가 펄떡거리자 사방으로 튄 물방울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헉! 이기어검으로 물고기를 잡았다고?’
실로 믿어지지 않는 광경에 성이월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연적하가 손목을 돌리자 검이 되돌아왔다.
쉬이익.
검은 주화영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악!”
공포를 느낀 주화영은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풀썩 주저앉았다.
검은 주화영의 머리 위를 한 바퀴 선회한 후 연적하 옆에 툭 떨어졌다.
털거덕. 털걱.
검신에 꿰여 있던 물고기가 간헐적으로 펄떡였다.
그럴 때마다 검 손잡이가 바위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