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87
187회. 반나절도 안 걸릴 거예요
천화방 방주 벽옥검 성이월과 세 명의 단주들은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그녀들은 맹세코 이와 같은 경지의 고수와 만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큰 물고기는 큰물에서 논다.
천화방은 그저 삼류 방파에 불과해 검기발현만 봐도 ‘오오!’ 하고 감탄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천외천의 경지를 보았으니 기함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연적하가 돌아서자 성이월과 세 단주들은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녀들은 감히 연적하를 마주 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이런! 물고기를 구워 먹으려면 불을 피워야 하는데, 나무가 없네.”
연적하의 중얼거림을 들은 성이월이 세 단주들에게 지시했다.
“나무, 나무를 주워 와라.”
세 명의 단주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태우기 좋은 마른 나무를 쓸어 왔다.
바위 한쪽에 나뭇단이 쌓이자 연적하는 품에서 부싯돌을 꺼내 던졌다.
나뭇단 옆에 부싯돌이 ‘딸그락’거리며 떨어졌다.
우두커니 서 있던 성이월은 뒤늦게 부싯돌로 몸을 날렸다.
지금은 연적하가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알아서 행동해야 했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부싯돌로 불을 피웠다.
세 명의 단주들은 아직 이런 일의 경험이 적은지라 대신 나선 것이다.
탁. 탁. 탁.
불꽃은 튀었지만 성이월도 불을 쉽게 피우지는 못했다.
그녀 역시 십여 년쯤 전부터 허드렛일을 하지 않았기에 헛손질로 시간이 갔다.
성이월은 반 각(약 7분) 만에야 겨우 불을 피웠다.
그녀는 나뭇가지에 불이 옮겨붙자 땀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막 한숨을 돌리는데 연적하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런! 소금하고 술이 필요한데…….”
성이월은 멍하니 서 있는 주화영에게 지시했다.
“화영이 너는 빨리 객잔에 가서 소금과 술을 얻어 오거라. 가연이는 고기를 굽고, 은이는 다른 사람들을 주변에서 물리도록 해라.”
“네.”
세 단주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한 뒤 부지런히 움직였다.
주화영은 객잔으로 달려갔고, 수가연은 물고기를 손질하고, 고은은 바위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제자들을 일단 객잔으로 돌려보냈다.
성이월이 나서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운만 띄우고 묵묵히 지켜보던 연적하는 다시 황하로 시선을 돌렸다.
쉬이익.
바위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검이 다시 저 홀로 움직였다.
촤아아-.
또 한 마리의 물고기가 검에 꿰어 바위로 날아왔다.
수가연은 펄떡이는 물고기를 검에서 뽑아 내장을 긁어냈다.
나뭇가지에 꿰인 물고기 두 마리가 모닥불 위로 올라갔다.
연적하는 무려 다섯 마리나 잡은 뒤에야 느긋하게 신형을 돌렸다.
오십 대 여자의 지휘 아래 세 아가씨들이 열심히 물고기를 굽고 있다.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구경만 했다.
잠시 후 성이월이 잘 구워진 물고기를 접시에 담아 두 손으로 바쳤다.
“연 공자님의 입맛에 어떤지 모르겠네요.”
연적하는 별말 없이 물고기를 뜯어먹었다.
소금 간을 해서 그런지 담백하면서도 짭쪼름한 게 감칠맛이 났다.
그가 한쪽에 놓인 술병으로 손을 뻗었다.
술병이 둥둥 떠서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성이월이 두 손으로 술잔을 들어 연적하 앞에 공손히 내밀었다.
“뭐 이런 걸 다.”
그가 술잔을 받아 들자 성이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천녀(賤女)가 공자님께 술을 따라 드려도 될까요?”
그녀의 말에 연적하는 흔쾌히 술병을 넘겼다.
성이월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손이 가볍게 떨렸다.
천화방에 대한 그의 의도를 알기 위해 술을 따르겠다고 했다.
‘다행이야.’
만약 그가 거절했다면 암울했을 것이다.
잔심부름을 시키고, 술까지 따르게 하는 걸 보면 죽일 뜻은 없는 것 같다.
“아줌마. 어디 아파? 아직 노인네도 아닌데 손을 왜 그렇게 떨어?”
“송구해요. 너무 긴장이 되다 보니…….”
“그러게 긴장할 짓을 왜 했어?”
연적하가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자 성이월은 흠칫 놀라 숨을 멈췄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뭘 그런 일로 사람을 죽여. 나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 아니야.”
“가, 감사합니다.”
“저 객잔, 내 친구가 운영하는 곳이야.”
“헉! 남초결 어르신이 친구인 줄은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미쳤어? 내가 왜 그런 노인네랑 친구를 해? 내 친구는 남수경이야.”
“아, 남 소저가 친구분이셨군요.”
“화상촌에 있는 식재료 싹 쓸어 간 거 아줌마 짓이지?”
“예, 앞으로는 그냥 무상으로 공급해 드릴게요.”
“아냐. 거래는 거래지. 재료는 그냥 싸게 줘. 대신에 영업을 방해하는 어중이떠중이들 처리는 무상으로. 내 말 무슨 소리인지 알지?”
“예, 예!”
성이월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식재료는 싸게 넘기되, 보호비를 받지 말고 객잔을 지켜 주라는 뜻이다.
“내 친구와 노인네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서 마무리 잘하고 돌아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아줌마.”
“예?”
“한 번은 몰랐으니까 그럴 수 있다 고칠게. 두 번은 나를 엿 먹이는 거야. 그때는 병풍 뒤에서 향냄새를 맡게 해 줄게.”
“저, 절대로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손에서 젓가락 놓고 싶지 않으면, 객잔에 문제 생기지 않게 잘해.”
“예.”
“가 봐. 아, 참. 그리고 당신.”
연적하가 주화영을 콕 찍어 가리켰다.
단주들 속에 섞여 있던 주화영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말하는 거 보니까 한 성질 하겠던데.”
“요, 용서해 주세요. 제가 주제를 모르고 나댔어요.”
“알긴 아는군. 그런 싸움닭 같은 모습으로 내 친구 주변이나 좀 살펴 봐. 누군가에게 꽤 오랫동안 괴롭힘 당한 것 같으니까. 누가 그랬냐고 물어봐도 내가 다칠까 봐 말을 안 해 주네.”
“예? 예.”
죽다가 살아난 주화영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던가.
객잔을 드나들며 연적하의 지인과 친해지면 오히려 천화방에 득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연적하가 황하로 몸을 돌렸다.
성이월과 세 단주들은 그의 뒤통수에 머리를 조아린 뒤 조용히 물러났다.
***
개봉.
삼보방.
오전.
내당 당주 약대몽이 방주 사인검 녹일취를 찾아갔다.
숙취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녹일취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끙! 그래 무슨 일이냐?”
“다관 빈객의 점주가 아침에 찾아왔었습니다. 요즘 소방주께서 사나흘에 한 번씩 다관을 엎어서 통 장사를 할 수가 없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녹일취는 비스듬하게 앉아 있던 허리를 세웠다.
아들이 사고를 치고 다닌다니 숙취로 흐리멍텅하던 머리가 한순간 맑아졌다.
“소방주께서 이 년간 공을 들인 여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남 모라고 하는 여자인데, 그 여자가 최근 다관에서 일을 했나 봅니다.”
“그런데? 다관을 왜 부숴?”
“한 달쯤 전에 여자가 말도 없이 종적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소방주께서 다관의 기물을 부수고 있답니다. 달아난 여자를 찾아내라고.”
“여자가 왜 달아나?”
“그것이 소방주께서 잠자리를 거부한다고 주먹질을 하신 모양입니다.”
“쯧쯧! 널린 게 여자거늘 왜 싫다는 년을 따라다녀?”
“어제도 찾아와 다관을 부수었다고 하니 그냥 넘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더 소문이 나기 전에 방주님께서 손을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달아난 년은 누구냐?”
방주가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자 약대몽은 자세히 설명했다.
“남수경이라 하는데, 조부와 단둘이 생활하던 여염집 여자입니다.”
여염집 여자라는 말에 녹일취가 인상을 찡그렸다.
다관에서 일했다기에 화류계를 떠돌던 여자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지금 당장 외당 당주와 소방주를 찾아 함께 들어오라 해라.”
“예.”
약대몽이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한 식경(약 30분)쯤 지났을까?
외당 당주 완자경과 녹담평이 나란히 집무실로 들어왔다.
녹일취는 녹담평의 얼굴을 보자마자 탁자 위에 있던 벼루를 집어 던졌다.
녹담평이 황급히 고개 돌려 피하자 벼루는 벽에 부딪쳐 박살 났다.
콰앙!
“아, 아버지, 왜 그러세요?”
“왜? 너 이 쌍놈의 새끼! 요즘 돌아다니면서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무슨 짓거리라니요? 요즘 얌전히 점포를 둘러보고 있습니다만.”
녹일취가 기막힌 얼굴로 콧방귀를 뀌었다.
“흥! 얌전히? 그런 놈이 다관을 부수고 다녀? 그깟 계집 하나 달아났다고? 네놈이 그러고도 남자냐!”
“다관 주인이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내 이 잡놈을 그냥. 콱!”
적반하장이라고 녹담평이 화를 내자 녹일취는 ‘쾅!’ 하고 탁자를 후려쳤다.
“닥치지 못할까! 삼보방의 소방주라는 놈이, 보호비를 내고 있는 점포를 부수고 다녀? 네놈이 그러고도 삼보방의 소방주냐!”
“오해예요. 죄다 그 점주 놈과 여급들의 잘못이에요. 제가 사귀던 여자를 뒤로 빼돌리고서 모른 척하기에 혼쭐을 낸 거라고요.”
“오해고 육해고 간에 다시 한번 다관을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가는 용서치 않겠다. 알았느냐!”
“…….”
녹담평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방바닥만 노려 보았다.
그 모습에 분통이 터진 녹일취가 이번에는 붓통을 집어 들었다.
“그래도 이놈이!”
그제야 녹담평은 마지못해 대꾸했다.
“그럴게요.”
부들부들 떨던 녹일취는 맥없이 붓통을 내려놓았다.
“세상에 여자가 어디 그년 하나뿐이더냐? 너 싫다고 달아난 년을 왜 찾아? 돈이라도 빌려주었느냐?”
“아뇨.”
“그것도 아닌데 왜 찾아? 외로워서 그러느냐? 혼처를 알아봐 주랴?”
“아직은 혼인을 할 마음이 없어요.”
“다시는 못난 짓 하지 마라. 그년을 찾아 행패 부린다는 소리가 다시 한번 내 귀에 들어오면, 내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예.”
“시간이 남아도니까 그러고 다니는 거겠지? 네게 한 가지 일을 맡기도록 하겠다.”
“일요?”
“그래, 수일 내로 화상촌을 접수해라. 완 당주. 화상촌에 대해 알아보았느냐?”
“예, 그곳에는 객잔을 포함해 열 개의 점포가 있습니다. 개봉에서 반 시진(1시간) 거리이니 관리에 큰 어려움도 없습니다. 다행히 아직 하오문이나 천화방에서 손을 쓰지 않았더군요. 화상촌의 상권을 손에 넣으려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녹일취가 녹담평에게 시선을 돌렸다.
“들었느냐? 아직 이렇다 할 주인이 없는 마을이다. 네가 가서 화상촌의 점주들을 삼보방으로 끌어들여라. 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있냐고요? 완 당주만 가도 찍소리 못 하고 숙이고 들어올 텐데. 하고도 많이 남죠. 제가 가면 반나절도 안 걸릴 거예요.”
듣고 있던 완자경이 껄껄 웃으며 거들었다.
“그건 소방주의 말이 맞습니다. 누가 감히 삼보방의 제안을 거절하겠습니까?”
그러자 녹일취가 노파심에서 말했다.
“말을 안 듣는다고 겁박해서 점포를 인수할 생각은 하지 마라. 돈을 투자할 정도로 상권이 활성화된 곳은 아니니까. 그저 천화방이 진출하기 전에 우리가 선점하는 게 목적이다. 알겠느냐?”
“아이고, 하루 이틀 하는 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 걱정하세요? 제가 깔끔하게 처리할게요.”
녹담평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녹일취를 보았다.
여자 문제로 잃은 점수를 만회할 기회인지라 뭔가 보여 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