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88
188회. 너는 이미 죽은 목숨이야
신시(오후 3시-오후 5시) 무렵.
일곱 명의 무인들이 삼보방의 문을 나섰다.
녹담평과 외당 당주 완자경, 그리고 외당에 속한 방도 다섯이다.
한참 걷던 완자경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소방주, 오늘 열 명의 점주들을 다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소방주가 실적에 눈이 멀어 너무 서두른다고 생각했다. 열 명의 점주들과 계약하려면 못해도 반나절은 걸릴 것이다.
녹담평이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거기 객잔이 있다면서요? 어차피 우리가 관리하게 될 객잔이니 하루 묵읍시다.”
“쩝. 일곱 명이면 숙박비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완자경은 불필요한 외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촌구석보다 개봉의 집에서 쉬는 게 훨씬 몸과 마음이 편해서다.
“숙박비 걱정은 할 것 없습니다. 가자마자 객잔부터 접수할 생각이니까. 주인이 감히 우리에게 숙박비를 청구하겠습니까?”
“허! 일곱이나 되는데 그냥 공짜로 묵자는 겁니까?”
완자경이 녹담평을 힐끔 보았다.
방주인 녹일취도 그 정도로 사람들을 등쳐 먹지는 않았다. 그런데 녹담평은 아직 나이도 젊은데 생각하는 게 벌써부터 남달랐다.
“앞으로 같은 식구가 될 텐데 그 정도는 기본이지요. 그나저나 방주님은 왜 그렇게 화상촌에 집착하는 겁니까? 돈 주고 살 필요도 없는 촌 동네를 장악하라니?”
“그건 천화방 때문입니다. 소방주도 알다시피 천화방과 우리 삼보방은 경쟁 관계 아닙니까? 천화방에서 화상촌을 먹으려고 하니 먼저 손에 넣으시려는 거지요.”
“그까짓 작은 마을 줘 버려도 되지 않나? 개봉에서 더 짭짤한 곳을 취하면 될 텐데.”
“개봉에는 더 이상 진출할 곳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뭔가를 더 가지려면 다른 방파나 상방에서 빼앗아야 합니다. 천화방이 화상촌을 노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요.”
“쳇! 그러니까 우리 삼보방이 약해서 촌 동네나 뒤지고 다닌다는 겁니까?”
“하하! 우리 삼보방이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를 부러워하는 방파도 많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화상촌의 표지판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화상촌이네요. 바로 객잔으로 모실까요? 아니면 마을을 한번 둘러보시렵니까?”
“뭐 볼 게 있겠다고. 그냥 객잔으로 가요.”
“알겠습니다. 객잔은 마을을 지나야 있습니다. 황하 강변에 바로 붙어 있지요.”
완자경은 녹담평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며 객잔에 대해 설명했다.
“주인은 남초결이라는 노인입니다. 이 년 전에 건강이 나빠져서 객잔 문을 닫았는데, 한 달쯤 전 다시 열었습니다. 하루에 대여섯 명의 손님들이 투숙하고 있습니다. 하루 숙박비가 삼백 문이니 한 달에 대략 마흔닷 냥이 들어오는 셈입니다. 운영 비로 대략 스물닷 냥이 들어갈 테니 못해도 스무 냥은 벌고 있을 겁니다.”
“호오! 한 달에 스무 냥이나 번다고요?”
녹담평의 눈이 욕심으로 번들거렸다.
이렇게 외지고 작은 마을에서 한 달에 스무 냥이라면 굉장한 소득이다.
“보호비로는 세 냥 정도가 적당할 겁니다.”
말이 보호비지 실상 여기까지 와서 깽판을 칠 놈은 없다. 그냥 한 달에 세 냥씩 공돈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완 당주님.”
“예.”
“사람이 왜 그렇게 물러요? 스무 냥이나 벌어먹는 늙은이에게 고작 세 냥이라니? 못해도 닷 냥은 받아 내야지.”
“닷 냥은 개봉의 점주들에게 받는 금액입니다. 화상촌에는 우리가 도와줄 일이 없으니…….”
“쯧쯧! 그렇게 안 봤는데 많이 무르시네. 우리가 닷 냥을 받아도 열닷 냥이나 벌어요. 그 늙은이의 가족이 어떻게 됩니까?”
“손녀 하나만 있다고 합니다.”
“거봐요. 단둘이 사는데 한 달에 스무 냥이라니? 수입이 너무 많아. 닷 냥쯤은 보호비로 바쳐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닷 냥에서 시작합시다.”
“설마 그 이상도 받을 생각이십니까?”
“딸린 식구가 없다니까 분위기 봐서 금액을 조절하려고요.”
“너무 많은 보호비를 요구하면 나중에 뒷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객잔 주인이 다른 곳에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고요.”
“다른 곳이라고 해 봐야 이곳에 관심을 둔 방파는 천화방뿐이라면서요? 천화방이 그 객잔 하나 먹겠다고 우리와 전쟁을 치르겠습니까?”
“그러지는 않겠지만…….”
“본래 장사라는 게 그래요. 뒷배가 없으면 많이 뜯기는 겁니다. 그게 세상의 이치예요. 알면서 왜 그러실까.”
완자경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주인 녹일취도 저 정도는 아닌데, 녹담평은 욕심이 좀 과한 것 같다.
객잔에 도착한 녹담평은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와! 황하에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어도 괜찮은지 모르겠네? 강물이 범람하면 바로 저승길로 가겠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곳에 객잔을 지었지?”
“그래도 이곳은 상류라서 괜찮을 겁니다. 여기까지 물이 찰 정도면 개봉도 쓸립니다. 그 정도 홍수면 어차피 어디에 지어도 작살납니다.”
“그런가? 어차피 내 건물도 아닌데 걱정해 줄 필요는 없겠지? 들어가 보자고.”
녹담평이 휘적휘적 객잔으로 걸어갔다.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오자 상도가 쪼르르 달려갔다.
“어서 오세요!”
녹담평은 점소이를 힐끔 보고는 식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막 자리에 앉으려던 녹담평이 건너편의 여자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천화방 모란단의 단주 백화검 주화영이었다.
때마침 혼자서 차를 홀짝거리고 있던 주화영도 녹담평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내 똥 씹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개봉에서 녹담평은 개망나니로 알려져 있기에 상종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충 아무 자리나 앉으려던 녹담평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천화방도들과 함께 있다면 모를까?
혼자 있는 주화영은 노리갯감에 불과했다.
녹담평은 완자경과 다섯 명의 수하들을 믿고 주화영 앞에 털썩 앉았다.
“녹담평. 무슨 짓이냐?”
주화영이 살기 어린 눈으로 녹담평을 쏘아보았다.
평소 천화방과 삼보방은 개봉에서 마주쳐도 알은체를 하지 않고 지냈다.
오히려 두 방파는 그동안 수차례 칼부림을 한 적대적인 관계다.
자연히 그녀는 신경을 바싹 곤두세웠다.
“이런 곳에서 만나니 반가워서. 주 단주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나 봐?”
“미친놈. 함부로 내 이름을 입에 담지 마라.”
상대의 싸늘한 반응에도 녹담평은 오히려 실실 웃었다.
“후후. 이거 왜 이래? 내가 조금 전에 주변을 둘러봤는데 천화방도들은 안 보이더라. 혼자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너무 허세 부리지 마.”
“흥! 삼보방과는 할 이야기가 없으니 물러가라.”
“이봐. 나는 네년이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고 갈 사람이 아니야.”
슬슬 화가 나는지 녹담평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그래? 그럼 내가 자리를 옮겨야겠네?”
말과 함께 주화영이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뒤따라 일어난 녹담평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두 사람은 잡아먹을 듯 상대를 노려보았다.
때마침 객실 청소를 돕던 남수경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무심코 새로 온 손님들을 둘러보던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주화영의 시선이 남수경을 향했다.
녹담평은 누가 나타났나 싶어 주화영을 따라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남수경?”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더니 여기서 만날 줄이야!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녹담평이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너 이년!”
곧이어 그는 굶주린 호랑이가 먹이를 발견한 것처럼 그녀에게 달려갔다.
“…….”
남수경은 공포에 질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의 폭력이 무서워 달아났는데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다니?
남수경의 앞에 선 녹담평은 다짜고짜 주먹으로 그녀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가 돌아갔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주화영이 바람처럼 달려가며 검을 뽑았다.
“이 미친놈아! 무슨 짓이냐!”
뒤늦게 완자경과 다섯 명의 삼보방도들도 병장기를 빼 들고 몸을 날렸다.
한순간 객잔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뒤에서 주화영의 검이 찔러 오자 녹담평은 황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미친년!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구석에 쭈그리고 있지 왜 남의 일에 끼어들어!”
녹담평은 갑자기 덤벼드는 주화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삼보방의 고수들이 깔려 있는데 왜 제 일처럼 지랄이란 말인가?
주화영이 남수경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아무도 남 소저의 몸에 손대지 못한다!”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말로 할 때 비켜라.”
“흥! 너는 이미 죽은 목숨이야. 남 소저에게 손찌검을 했으니 너와 삼보방 모두 끝났어.”
예사롭지 않은 주화영의 말에 완자경이 슬쩍 끼어들었다.
“소방주,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저 뒤에 있는 년이 바로 개봉에서 내가 찾던 년이에요. 그런데 주화영이 방해를 하네요.”
완자경이 이번에는 주화영에게 물었다.
“주 단주, 너는 왜 우리 소방주님을 공격하느냐? 정말 삼보방과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전쟁? 호호호! 전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남 소저는 그분의 친우시다. 그분의 친우를 건드렸으니 너희 삼보방은 끝이야.”
완자경이 인상을 찌푸렸다.
주화영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니 거짓은 아닌 것 같다.
그녀가 믿는 그분이 대체 누구기에 저토록 기세등등하단 말인가?
“그분이 누구라고 그러는 거냐?”
주화영이 막 연적하의 이름을 말하려고 할 때다.
객잔 문을 열고 연적하와 상도가 들어왔다.
상도는 탈진한 얼굴로 객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헐떡거렸다.
상기된 얼굴을 보니 자살 바위까지 뛰어가 연적하를 데리고 온 모양이다.
연적하를 본 주화영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우! 연 공자님, 남 소저를 괴롭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셨죠? 삼보방의 녹담평이었네요.”
연적하가 하얗게 질려 있는 남수경을 보았다.
뽀얗던 눈두덩이가 퉁퉁 부은 걸 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만도 하다.
잠시 눈치를 살피던 완자경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우리는 삼보방의 사람들이오. 나는 외당 당주 완자경이라…….”
연적하가 무심한 얼굴로 손을 까닥였다.
순간 완자경의 몸이 거칠게 객잔 벽으로 밀려났다.
우당탕. 쾅.
완자경의 몸에 쓸린 탁자와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그는 정신을 잃었는지 일어나지 못했다.
연적하가 다시 한번 손짓하자 이번에는 다섯 명의 삼보방도들이 벽으로 날아갔다.
쿠당탕. 쿵쾅.
다섯 명의 삼보방도들까지 당하자 녹담평은 재빨리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연적하가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그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곧이어 연적하가 손을 뒤집자 철퍼덕 소리와 함께 녹담평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녹담평은 연적하를 향해 기어가며 소리쳤다.
“대협! 살려 주십시오! 저는 삼보방의 소방주 녹담평이라 합니다!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삼보방에서 무엇이든 들어 드릴 것입니다!”
가만히 지켜보던 연적하는 의자 하나를 꺼내 앉았다.
녹담평은 계속해서 무릎걸음으로 나아갔다.
“대협!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일단 나는 대협이 아니야.”
“소, 소협. 살려만…….”
“소협도 아니야.”
“…….”
녹담평은 상대가 왜 아니라고 하는지 알지 못해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무림의 고수들은 소협 아니면 대협이다.
사파의 고수들도 ‘마두’보다는 ‘대협’이라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럼 대체 뭐라고 부르라고?’
눈을 끔뻑이고 있는 녹담평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너는 내 앞에서 말할 자격이 없어. 한마디만 더 하면 혀를 뽑아 버릴 거야.”
찔끔 놀란 녹담평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번만 봐 달라는 듯 애처로운 얼굴로 연적하의 입을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는 게 있어도 삼보방은 들어주지 못해. 왜냐면 삼보방은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연적하의 선언에 대경실색한 녹담평은 머리로 바닥을 쿵쿵 찧었다.
그래도 혀가 뽑히는 게 무서운지 입만은 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