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89
189회. 그럼 오늘부터 하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수경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백화검 주화영에게 살짝 물었다.
“주 소저, 연 공자는 무림인인가요?”
주화영은 의외의 질문에 남수경을 힐끔 보았다.
긴가민가한 표정을 보니 정말 무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하기야 칼이나 권장을 쓰지 않으니 일반인의 눈에 헷갈릴 만도 하다.
“네.”
“아, 그렇구나. 그는 삼보방보다 강한가요?”
남수경은 상대가 삼보방의 소방주인지라 은근히 불안한 눈치였다.
“연 공자님의 무위라면 삼보방 같은 방파 열 개가 몰려와도 끄떡없어요.”
“정말요?”
남수경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몇 번을 다시 봐도 평범해 보이는 연적하가 그렇게 뛰어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때마침 그때 연적하가 남수경을 불렀다.
“친구! 이리 좀 와 봐.”
“왜요?”
남수경이 다가오자 연적하가 말했다.
“이놈을 어떻게 할까?”
“어떻게라니요?”
남수경은 연적하의 말에 눈만 끔뻑였다.
그녀는 폭력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며 살아왔던지라 선뜻 답하지 못했다.
“복수 말야. 괴롭힘을 당했다면서? 오늘도 벌써 한 대 맞은 것 같은데. 어떻게 복수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
남수경은 머뭇거렸다.
지난 이 년간 그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만 오늘과 같은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다. 당연히 복수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놈이 괴롭힐 때 어떻게 돌려주고 싶었냐고.”
“나는 무서워서 피할 생각만 했어요. 그를 만나지 않은 날에는 살 것 같았고, 어쩌다 만나면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으니까요.”
“쯧! 그런 일로 죽긴 왜 죽어. 낭인이라도 고용해서 처리하면 되는 걸.”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친구. 모름지기 태어난 생명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죽고 싶을 만큼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죽여야지. 그게 괴롭다고 내가 죽으면 되나? 누구 좋으라고 내가 죽어 줘? 안 그래?”
“그렇기는 하지만…….”
남수경의 얼굴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사람은 살기 위해서 소도 잡아먹고, 양도 잡아먹고, 오리도 잡아먹잖아. 내가 직접 죽이지 않았다고 도축에 책임이 없는 건 아니라고. 그래도 마음이 편한 건 살기 위해 먹은 거라서 그래. 일단 태어났으면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누군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면, 죽이는 게 당연한 거야.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 생명에 대한 모욕이야.”
연적하의 열변에 남수경은 살짝 갈등했다.
“죽이고 싶지 않으면 네가 괴로웠던 것의 일부만이라도 돌려주든가.”
“어떻게요?”
연적하가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걸로 찔러도 되고, 아니면 속이 풀릴 때까지 의자로 후려쳐 봐.”
남수경이 고민하자 녹담평은 애절한 눈으로 의자를 바라보았다.
칼에 찔리는 것보다는 의자가 덜 위험해 보여서다.
남수경의 눈이 녹담평을 향했다.
그토록 무섭던 남자가 지금은 조마조마한 눈으로 눈알을 굴리고 있다.
갑자기 모든 게 시시해졌다.
녹담평이 별것 아닌 사람임을 알게 되자 공포도,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의 응어리가 눈 녹듯 사라졌다.
우두커니 서 있던 남수경은 녹담평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힘껏 그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강한 충격에 녹담평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곧이어 남수경은 손을 탁탁 털고는 연적하에게 말했다.
“내 속은 이제 다 풀렸어요. 이런 남자를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그것으로 충분해?”
“네. 연 공자 덕분에 내가 바보처럼 살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놈을 살려 두면 나중에 또 괴롭힐지도 몰라.”
그러자 무릎 꿇고 있던 녹담평이 미친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절대 안 그럴 거야! 진심이야!’
남수경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모아 놓은 돈으로 낭인을 고용할 거예요. 어차피 이판사판이잖아요. 연 공자 말대로 난 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거니까.”
녹담평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수경이 고작 뺨 한 대로 과거를 청산하겠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럼 이젠 내 볼일을 봐야겠네.”
연적하는 단검을 다시 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녹담평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내 친구를 괴롭혔겠어. 난 무시당하고는 못 살아.”
순간 녹담평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남수경의 복수로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그는 속으로 ‘오해십니다!’ 부르짖으며 열심히 두 손을 비벼 댔다.
하지만 연적하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녹담평을 질질 끌고 나간 뒤 단숨에 자살 바위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를 패대기 쳤다.
철퍼덕.
바위에 짐짝처럼 던져진 녹담평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끄응…….”
“아프냐?”
녹담평은 미친 듯 고개를 저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통증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나는 강호가 좋아. 세상에는 맞을 만한 짓이 없다지만, 강호에는 있거든. 너도 법이나 규칙보다는 힘을 더 좋아하잖아.”
‘아니요. 저는 법대로 살겠습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녹담평이 고개를 저으며 애절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지금 내 말이 틀렸다는 거야?”
‘헉! 아닙니다. 맞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녹담평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틀렸다는 거네? 죽음 앞에서 도자기 소신을 당당하게 밀고 나가다니. 그냥 미친놈이었구나?”
‘아니요! 아닙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녹담평은 목에서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세차게 좌우로 돌렸다.
“아니야?”
끄덕끄덕.
“아직 사람이 덜된 너에게 꼭 맞는 일이 있어. 그게 뭔지 알아?”
절레절레.
녹담평이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모릅니다. 말씀만 해 주십시오. 해 드리겠습니다!’
“공자가 그러더라. 부모가 죽으면 삼년상은 지내야 한다고. 너 왜 공자가 콕 찍어 삼 년이라고 한 줄 알아?”
절레절레.
“사람이 태어나면 최소한 삼 년은 부모 품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래. 그러니까 아낌없이 받은 삼 년을 돌려줘야 한다는 거지.”
녹담평은 감동을 쥐어짜 눈으로 쏟아 냈다.
그리고 ‘나도 우리 부모님의 귀한 자식이니 제발 살려만 주십쇼!’라고 소리 없이 외쳤다.
“이곳에 와서 지내는 동안 문득 알았는데, 나는 그 삼년상을 못 지켰더라고.”
‘그래서 뭐? 나더러 어쩌라고?’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난 공자의 말과 상황이 약간 달라.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죽었고, 아버지는 날 돌보지 않았거든.”
‘…….’
삼년상에 관한 설이 길어지자 녹담평의 집중력도 조금씩 떨어졌다.
“나는 하루도 부모의 보살핌을 받은 것이 없던 거지. 그래도 남들처럼 삼년상이란 걸 해 볼까 하는 마음은 있어. 하지만 보살핌받은 적이 없는 내가 하면 위선적이잖아. 그러니까 나를 대신해서 네가 해라. 여기서.”
‘…….’
녹담평은 멍하니 연적하의 얼굴을 보았다.
‘나를 대신해서 네가 해라. 여기서’라는 마지막 말만 머리에 남았다.
대체 뭘 대신하라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녹담평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이 바위는 자살 바위로 불려. 이 아래가 깊고 소용돌이까지 있어서 빠지면 골로 간대. 나 대신할래? 싫다면 상체만 점혈해서 아래로 던져 줄게. 다리 잘 쓰면 살아서 나올 수도 있을 거야.”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이럴 때는 ‘무조건’이다.
녹담평은 혹시라도 연적하가 못 알아먹을까 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대신 네가 여기서 삼년상 지내기로 약속했다?”
‘헉! 삼년상이라고?’
혹시 부모의 무덤 옆에서 초막 짓고 지내는, 그 삼년상을 말하는 건가?
확인이라도 해 주듯 연적하가 설명했다.
“초막 짓고, 여기서 지내는 거야. 삼 년 동안 술, 고기, 여자에 손대면 죽여 버릴 거야. 자살 바위에서 벗어나도 죽어. 그럼 오늘부터 하루다.”
녹담평의 입이 쩍 벌어졌다.
다른 사람의 부모를 위해 삼년상을 지내라니?
그런 억지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못 한다고 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무서웠다.
넋 나간 얼굴로 쪼그리고 있는 녹담평을 보며 연적하가 말했다.
“그 대신에 나도 삼보방은 건드리지 않을게. 나 효도하고, 너 사람 되고, 삼보방 살아남고. 이런 걸 두고 일석 삼조라고 하는 거야. 하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말해. 너 던지고, 바로 개봉에 가서 삼보방도 없애 버릴 테니까.”
“……하겠습니다.”
자포자기한 녹담평은 ‘말하면 혀를 뽑는다’는 경고도 잊고 답했다.
연적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처럼 효도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어 상당히 보람찬 느낌이다.
“그래도 심심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이 자리를 좋아해서 매일 나오거든.”
‘오지 마.’
“조금 있으면 쌀쌀해질 테니까 초막 튼튼하게 잘 짓고. 삼보방에 잘 말해. 음식을 직접 해서 가져다주든가, 객잔에 배달을 시키라고.”
“예.”
녹담평의 침울한 눈이 황하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저 흙탕물에 꽉 뛰어들어 죽고 싶었지만, 참았다.
석양이 질 무렵.
그제야 깨어난 외당 당주 완자경은 수하들을 수습해 개봉으로 돌아갔다.
***
개봉.
삼보방.
“뭐라! 담평이 객잔에 볼모로 잡혀 있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인검 녹일취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완자경을 노려보았다.
“볼모가 아니라……. 삼년상을 대신 치르기로 했다고 합니다.”
순간 녹일취가 바람처럼 몸을 날려 완자경의 상체를 발로 걷어찼다.
퍼억.
쿠당탕.
연이어 녹일취는 뒤로 나뒹군 완자경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윽. 윽.”
“이 미친놈아!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삼년상이라니? 그게 말이야? 방귀야? 담평이는 제 어미가 죽은 날에도 떡이 되도록 술을 처마신 놈이야! 그런 담평이가 남의 삼년상을 대신해 준다고! 그걸 말이라고 씨불이는 것이냐?”
“윽! 속하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연 공자라는 자가 그렇게 시켰다고.”
“그럼 수하들을 모아서 복수를 하자고 해야지! 어디서 뻔뻔하게 담평이가 삼년상 지내기로 했다는 말을 해? 네놈 눈에는 내가 그렇게 호구로 보이더냐!”
계속된 녹일취의 발길질에 완자경은 몸을 한껏 웅크린 채로 답했다.
“윽! 방주님, 상대는 허공섭물의 고수입니다. 그런 자를 무슨 수로 당해 내려고 그러십니까?”
“허공섭물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어디서 사술에 당하고 와서는 허공섭물이래? 허공섭물이 뉘 집 개 이름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라면서? 그런 놈이 허공섭물을 쓰면, 나는 검선 여동빈이다! 이 병신 같은 놈아!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한참 동안 씩씩거리던 녹일취가 밖을 향해 소리를 빽 내질렀다.
“약 당주! 거기 있느냐!”
“예! 방주님.”
“지금 당장 개봉에서 제일가는 방술사를 데리고 와라!”
“알겠습니다!”
내당 당주 약대몽의 대답을 들은 후에야 녹일취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두 손으로 머리를 싸안고 있던 완자경이 슬그머니 얼굴을 들어 올렸다.
방주가 방술사를 찾는 걸 보니 왠지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 연 공자라는 놈은 도검은 물론 권장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젠장. 정말 사술에 당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