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90
190회. 강호, 강호인
내당 당주 약대몽은 한 시진(2시간) 만에 개봉의 유명한 방술사 고월상인을 데리고 왔다.
“방주님, 이분은 하남성에서 방술의 일인자로 알려진 고월상인이십니다. 상인, 저분이 우리 삼보방의 녹 방주님이십니다.”
약대몽의 소개에 고월상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고월이라 하오. 급하게 방술사를 찾으신다고 해서 달려왔소이다.”
“하하, 잘 오셨소. 녹일취요. 잠시 앉으십시다. 약 당주는 완 당주 옆에 있거라.”
“예.”
고월상인이 녹일취의 맞은편에 앉았다.
약대몽은 뒤로 물러나 한쪽 구석에 있는 외당 당주 완자경의 옆으로 갔다.
녹일취는 자신의 앞에 앉은 고월상인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배꼽까지 늘어진 허연 수염에 번쩍이는 눈빛, 누가 봐도 신선의 풍모다.
“제가 아직 방술 쪽으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상인께서는 어느 문파에서 공부를 하셨습니까?”
녹일취는 고월상인의 기도에 주눅이 들어 저도 모르게 자세를 낮췄다.
“젊은 시절에 모산파에서 수도를 했소.”
“아! 모산파 분이셨군요.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모산파라는 말에 녹일취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칠파이문이나 사대세가의 무공만큼이나 모산파의 술법은 유명하다. 고월상인이라면 연 공자가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알 수 있으리라.
“허허. 녹 방주께서 방술사를 찾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소?”
“실은 오늘 제 수하들이 해괴한 일을 당해서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분명 사술에 당한 것 같은데, 확인을 하려고 모시라 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들어나 봅시다.”
고월상인이 웃으며 독일취를 보았다.
거마비(車馬費)로 은자 오십 냥이나 받았으니 최대한 도움을 줄 생각이다.
“외당 당주와 제 아들 녀석이 방도들과 함께 점주들을 만나러 갔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한 이십 대 청년이 끼어들어 손짓만으로 방도들을 제압했다고 합니다.”
“손짓만으로요?”
녹일취가 완자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완 당주, 그자가 어떻게 했는지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예, 연 공자가 손을 흔들자 제 몸이 따라 움직여 벽에 부닥쳤습니다. 그 충격으로 저는 정신을 잃었고요. 나중에 들으니 함께 갔던 방도들도 저처럼 나가떨어져 기절했다고 했습니다.”
“흠!”
고월상인의 입에서 무거운 침음성이 들렸다.
지금 말만으로는 술법인지 허공섭물과 같은 고절한 절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완 당주라 했소? 연 공자라는 사람의 나이가 어느 정도나 되오?”
“스물도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하!”
고월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일취가 사술이라고 단언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잠시 생각하던 고월상인은 품 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짧게 주문을 외운 후에 와락 움켜잡았다.
화르륵.
돌연 주먹에서 불길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사그라졌다.
이윽고 고월상인이 완자경에게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완자경의 몸이 고월상인의 손으로 빨려들었다.
“어? 어?”
완자경은 버티지 못하고 고월상인의 앞에 나뒹굴었다.
고월상인이 다시 손을 떨치자 완자경은 벽으로 튕기듯 날아갔다.
콰당.
벽에 부닥친 완자경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 맞습니다! 이렇게 당했습니다!”
고월상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가 사용한 것은 접인부(接引籍)라는 부적이오. 이것은 사람이나 물건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수법이라 할 수 있소.”
녹일취가 제 무릎을 탁 내리쳤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놈이 접인부로 허공섭물인 척했던 거로군요!”
“사실 이십 대에 접인부를 그처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외다. 무인이 내력으로 각종 기공을 사용한다면, 술사들은 법력으로 술법을 사용한다오. 이십 대에 접인부를 사용하다니, 그것참! 법력을 높이는 법보라도 있다는 건가?”
중얼거리던 고월상인이 덧붙였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닐 것이오.”
“상인의 말씀은, 술법인지 알아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본래 술법이란 그런 것이라오.”
잠시 고민하던 녹일취가 넌지시 운을 뗐다.
“상인께서 저희 삼보방에 도움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은자 삼백 냥을 더 드리겠습니다.”
“돕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운영 중인 선원(仙院)을 관리해야 해서…….”
고월상인은 슬쩍 말끝을 흐렸다.
어딘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돕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 개봉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오고 가는 데 한 시진(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내어 보리다.”
한 시진에 삼백 냥이면 썩 괜찮은 조건이다.
보통 한번 움직이면 사례비로 백 냥 정도씩 받았으니 말이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삼보방으로 와 주십시오.”
“알겠소이다.”
***
화상촌.
저녁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자살 바위로 가서 녹담평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 여아홍을 홀짝거렸다.
구천노도 심통이라도 곁에 있으면 덜 적적했을 텐데 새삼 외로웠다.
창고에서 나와 오봉산에서 생활할 때만 해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잘 몰랐다.
하지만 아홉 명이나 되는 의형제와 심통을 늘 곁에 끼고 살다가 홀로 지내니 적적했다.
구천기를 연성하기에는 최적의 날들이지만 재미가 없었다.
심 노인은 사기꾼들을 잡았을까?
청운검 남궁천과 화용독심 남궁연은 잘 지내고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의형제들은 물론 설차수 일행의 근황까지도 궁금해졌다.
‘쩝, 무림첩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니 모두 남경에 갔으려나?’
연적하가 다시 빈 잔을 채울 때다.
조심조심 이 층에서 내려온 남수경이 앞자리에 살짝 걸터앉았다.
“왜 나왔어?”
“개운해서 그런지 가만히 있기가 어렵네요. 연 공자는 왜 안 들어갔어요?”
“녹 씨가 잘하고 있는지 보고 왔지.”
“훗! 정말 그에게 삼년상을 시킬 거예요?”
“모르지. 세상일이 내 뜻대로 다 되는 건 아니니까.”
연적하의 표정과 말투는 어딘지 허허로웠다.
“죽은 사람들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힘만 빠지지 인생에 도움이 안 되잖아요.”
“그렇기는 해. 참! 녹 씨가 옆에 있는데 신경 쓰이지 않아?”
“내 옆에 그보다 백배는 더 강한 친구가 있어서 괜찮아요.”
“나를 믿는 거야?”
“네.”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제 너도 강호인이 되었구나.”
“내가 강호인이라고요?”
남수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적하를 보았다.
흔히들 무림인들이 살아가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강호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신은 무공과 거리가 먼 보통 사람이다.
“당연하지. 자력으로 자신을 구제하는 사람은 모두 강호인이야.”
“난 무공을 모르는데요?”
“강호에 무림인만 있는 건 아니야. 상인과 도둑, 점소이 등등. 강호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아.”
“그건 그냥 주변인 아닌가요?”
“지난해에 어떤 상인이 돈으로 살수를 고용해서 내 의형제들을 죽이려고 했어. 무림인을 죽이려고 한 상인이 고작 주변인이라고 생각해?”
“그건 또 그렇네요.”
남수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강호를 단지 ‘무공’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안 될 것 같다.
“이전의 너는 문제를 피해 달아나려고만 했지. 하지만 이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맞서 싸우려고 하잖아. 강호에 발을 내디딘 거라고.”
“아!”
그제야 남수경은 연적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자신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낭인이라도 고용할 각오가 되어 있다. 자신의 힘이든, 남의 손을 빌리든, 약육강식의 세계에 뛰어든 셈이다.
“연 공자는 나이도 젊은데 이 세상의 이치를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풍부한 경험에서 체득한 삶의 지혜 같은 거겠죠?”
남수경이 존경 어린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험, 험. 나라고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건 아니야. 그냥 너보다 경험이 많은 것뿐이지.”
연적하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까지 늘 주변의 돌봄을 받았는데, 풍부한 경험에서 체득한 삶의 지혜가 있단다.
“저도 경험이 쌓이면 연 공자처럼 현명해질까요?”
“그럴걸?”
연적하는 제 얼굴에 금칠을 하고 민망해서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하필 그때 쉬러 가기 전 객잔을 둘러보던 남초결이 식당에 도착했다.
“수경아, 늦었는데 들어가지 왜 나와 있느냐?”
“아, 할아버지. 곧 갈게요.”
손녀가 백수건달에게 마음을 줄까 봐 걱정이 된 남초결은 탁자로 다가갔다.
“자네는 온종일 빈둥거리더니 늦게까지 술인가?”
남초결은 오후 내내 식재료 계약 문제로 점주들과 만나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녹담평 일행이 객잔에서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지 못했다.
연적하가 발끈해서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남수경이 빨랐다.
“할아버지,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연 공자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요.”
“도움은 개뿔. 너는 얼른 가서 쉬라니까.”
남초결은 손녀를 쫓아내기 위해 그녀의 옆자리에 철푸덕 앉았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엉망이 되자 남수경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 연 공자, 내일 봬요.”
남수경이 이 층으로 올라가자 남초결은 탁자 위의 빈 잔에 술을 가득 부었다.
“자네, 혹시 내 손녀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건 아니겠지?”
“다른 마음이라니요?”
“행여나 객잔을 노리고 내 손녀를 꼬실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말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그런 꼴은 못 보니까.”
“노인장, 그런 말 쉽게 하지 마. 노인장 눈에 흙 넣는 건 일도 아니니까.”
“뭐가 어째?”
“내가 노인장 눈에 흙 넣을 수 있을 것 같아? 없을 것 같아?”
연적하가 남초결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람 눈에 흙 넣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얼굴에 흙 한 주먹 확 뿌리면 되는데.’
무덤덤한 그 눈빛에 섬뜩함을 느낀 남초결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괜히 신경 건드리지 말자. 저놈은 나를 죽이고도 남을 놈 같으니까.’
뻔뻔하게 ‘노인장을 죽일 수 있을까? 없을까?’ 묻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결국 남초결은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하아! 부탁이니 내 손녀는 건드리지 말게. 객잔에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좋네. 그러니 손녀만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게 내버려 두게.”
“이 노인네가 지금 누가 누굴 건드린다고 그래? 와아!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네.”
“알겠네. 나도 아니라고 믿겠네.”
“절대 아니야. 아니라고 믿는 게 아니라, 그냥 아니니까, 제발 헛소리 좀 하지 마요.”
가만히 듣고 있던 남초결은 여아홍을 단숨에 들이마신 뒤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허면 내 하나만 부탁함세.”
“또 뭔데요?”
“수경이 근처에 얼쩡거리지 말아 주게. 자네가 옆에 딱 붙어 있으면 그 아이가 다른 남자를 어떻게 만나겠는가?”
“노인장,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내가 얼쩡거리는 게 아니야. 수경이가 심심해서 친구인 나를 찾아오는 거라고. 이 근방에서 수경이 또래라고는 나밖에 없잖아. 그게 정 싫으면 다른 친구를 찾아 주든가.”
“자네는 정말 우리 수경이에게 마음이 없는가?”
“나는 친구일 뿐이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수경이는 내 취향도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잘 나가다 말고 연적하가 말을 끊었다.
‘좋아하는 사람은’이라고 운을 떼니 왠지 고백이라도 하는 느낌이 들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