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천룡검신의 말이라면 (3)
최지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서림을 설득했다.
-각 성에서 모인 생명석이 모자라면 균열을 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블랙데이가 영원히 이어지게 된다. 그리하면…….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고?
이런 체념적인 태도라니. 너무나 서림답지 않았다.
최지수는 말을 멈춘 채 서림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서림은 입술 끝을 비스듬히 들어 올린 채 웃고 있었다.
최지수의 시선이 서림의 얼굴을 신중하게 훑었다.
신이 신경 써서 빚은 듯한 곧은 콧날. 짙은 검은빛의 그렁그렁한 눈동자. 옅게 진 쌍거풀. 매끈한 목선.
그가 아주 잘 알고 있던 그 얼굴이다.
하지만 비스듬히 올라간 입술 끝의 각도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예전에 비해, 계룡문을 세울 때에 비해 그 입술 끝은 2도 가량 아래로 처져 있었다.
……림이가 언제부터 저런 표정을 지었나?
최지수는 찬찬히 기억을 더듬었다.
균열 안에서 월악문의 백골을 발견했던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오아시스에게 쫓길 때?
‘아니다. 훨씬 전부터였다.’
조선국왕이 죽고, 안미령이 자결했을 때? 안미령의 아이들이 엄마에게 데려가 달라며 서림의 양팔에 매달려 철없이 보챘을 때?
서림은 지쳐 보였다. 지치고 또, 피로해 보였다.
최지수를 올려다보며 서림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생명석이 모자라 균열을 닫지 못한다면…….
-못한다면, 어찌할 생각이냐?
-……인간은 거기까지인 거겠지.
서림의 그 말은 마치 인간이 멸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것이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또 우리 모르게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깊은 생각에 잠긴 최지수의 어깨를 김강산이 두들겼다.
“형. 저어기 분위기가 이상한데?”
김강산의 손끝이 강계성주가 마련해준 그들의 숙소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최지수가 서둘러 탐색술을 펼쳤다.
숙소 방향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상당했다. 그 숫자도, 그 크기도-.
“또 뭔 일이래?”
“모르겠다. 아무튼 서두르자.”
“대표님한테 또 징징거리려고 몰려든 거 아냐?”
어찌된 연유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림이를 찾아온 사람들이다.
아까 광장의 분위기로 판단하건데, 아마 좋은 일은 아닐 터.
‘인간은 정말로 여기까지일까, 림아.’
최지수는 대답 없는 물음을 삼키며 마력을 일으켰다.
곧 네 줄기의 빛살이 골목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여든 인파를 헤치고 숙소 앞에 도착한 그들이 목격한 광경은-.
“성주님. 좋게 말할 때 그만 하시죠?”
의혼검을 움켜쥔 서림이 서늘하게 내뱉는 모습이었다.
서림의 앞에 버티고 선 사람은 전(前) 혜산성주 박판석.
“그럴 수는 없디. 나에게도 책임이라는 것이 있으이.”
서림과 박판석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가장 빨리 숙소에 도착한 김강산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좌룡보도를 뽑아 쥐었다.
‘이 새끼들이??!! 우리 형이 블랙데이를 끝내보겠다고 균열에까지 들어갔다 왔는데??!! 또 뒤통수를 쳐??!!’
더 이상 볼 것도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수십 번도 넘게 반복되었던, 지긋지긋한 상황.
김강산은 어금니를 짓씹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좌룡보도의 두터운 검날이 일순간 무형의 불길에 휩싸였다. 그 불길이 박판석의 등줄기를 향해 발출되려는 찰나.
“야아아! 김강산 잡아!”
“산아, 그거 아니다. 아니라고!”
“산이 선배! 눈치 좀 챙기세요!”
한 발 늦게 도착한 서은창과 최지수와 하하민이 김강산의 두 다리와 어깨를 붙들었다.
“지금 박석판 저 새끼가 우리 형 뒤치기 하잖아!”
“아니다. 진짜 아니다. 아니니까, 당장 마력 흩어라! 사람들을 다 태워 죽일 생각이냐?”
“됐고, 이거 놔!”
“안 된다!”
“나는 경고했다?”
콰아아!
작은 폭음과 함께 최지수와 서은창과 하하민이 김강산에게서 튕겨 나갔다.
서림이 호신강기를 응축해 폭발시키듯, 화염방어막에 마력을 집중해 폭발시킨 것.
세 사람에게서 놓여나 자유로워진 김강산이 서림을 향해 달려가다가,
“형! 걱정 마! 이 새끼는 이제 내가 맡을 테…… 악윽악!”
머리를 움켜쥐고 바닥에 엎어졌다.
서림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거 아니라고, 이놈아.”
***
김강산이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서은창이 혀를 내두르고, 하하민이 입을 헤 벌렸다.
최지수가 말을 더듬다가,
“이, 이게 다 생명석이냐?”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 뭘 또 물어?”
“그래도, 이게 다 생명석이라니……. 이 정도면 온 강계성민이…… 꼬르륵!”
거품을 물고 고꾸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강계성의 사람들이 줄지어 가져온 생명석은 서림의 방 한 칸을 다 채울 지경이었다.
방 안에 대자로 누운 최지수를 내려다보며 서림이 끌끌 혀를 찼다.
그 입술 끝에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안심하는 듯한 미소.
곧 시선을 든 서림이 그를 뒤따라 온 박판석에게 말했다.
“보셨죠? 여기서는 이 정도면 충분해요. 전각련의 성이 강계성만 있는 줄 아나? 이제 그만 가져오라고 전하세요. 이러다가 강계성민 다 죽어요.”
“이미 목표량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전달했네.”
“잘하셨어요. 그러니까 성주님도 그만 꺼지시라니까요? 이거 마력 많다고 생명력이 많은 거 아니라고요. 성주님 더 생명력 더 뽑다가 여기에서 비명횡사한다니까?”
“나넌 이제 성주가 아니네. 성을 잃은 성주가 어띠 성주겠나. 그러허니 내래 이 늙은 목숨을 바쳐 블랙데이를 끝내고…… 앆윾악!”
서림에게 대가리를 후려 맞은 박판석이 철푸닥 바닥에 엎어졌다.
서림이 손짓을 하자 다가온 전(前) 혜산성의 성방원들이 박판석을 들춰 업었다.
“너네 성주님 좀 내 눈앞에서 치워라.”
“옙! 검신님!”
“그리고 성주님 일어나면, 생명석 더 가져와도 그건 균열에 안 가져가겠다고 전해. 나 한입두말 안 하는 거 알지?”
“옙! 알겠습네다!”
발을 구르며 경례를 붙인 이들이 방 밖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쳐다보던 서은창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림을 돌아보았다.
“사형. 이 기세면 걱정 없겠는데요.”
서림이 어깨를 가볍게 추켰다. 입가에 매달린 미소가 짙어졌다.
“그러게. 아직 인간이 쓸 만한데?”
***
계룡성의 성벽 바깥은 온통 흰빛이었다.
봄이 가까워지는데도 지나간 겨울을 붙잡으려는 듯 한바탕 눈이 내렸다.
눈밭을 향해,
스팟!
이바름이 검을 휘둘렀다. 검끝이 오우거의 허벅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검날을 타고 피어오른 불길이 오우거의 가죽 안쪽을 불태웠다.
“꾸웨엑!”
괴성을 지르며 양팔을 거세게 휘젓는 오우거의 양쪽에서 달려든 전사가 오우거의 두꺼운 목을 잘라냈다.
바로 그 순간.
“팀장님! 위!”
이바름의 왼손에서 발출된 청염구가 허공을 수직으로 가르고,
파아아아앗!!!!
공중 한가운데서 수십 개의 작은 청염구가 되어 산개되었다.
하강하던 한 떼의 히포그리프의 중앙을 푸른 불길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 뒤를 따라 성벽에 대기하고 있던 술사들이 공중 공격을 시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룡성의 서쪽 성벽을 습격한 이십여 마리의 히포그리프는 재와 시체로 변했다.
“팀장님 또 성장하셨습니까?! 저거, 저거, 폭염 맞죠?”
“키아, 여윽시 우리 팀장님! 계룡화룡이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네요!”
이바름이 피식 웃으며 가볍게 검을 휘저었다. 작은 불길이 검날을 감싸고 검에 묻은 괴물의 체액을 불살랐다.
“박수 치기에는 너무 이르잖아. 교대할 때까지 살아 있으면 박수를 치라고.”
“에이. 또, 그 소리십니까? 우리가 위험하면 팀장님이 구해주실 거면서.”
“내가? 아닌데?”
“우리 7팀이 가장 생존률이 높잖아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제가 7팀으로 발령났다는 이야기 듣고 얼마나 기뻐하셨는데요!”
이채민이 이바름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바름이야말로 이채민의 새로운 우상이자 롤모델이었다.
계룡문의 팀장에다가 계룡문의 원년멤버. 더군다나 이제 셋밖에 남지 않은 은영단원이다.
계룡성 방위대장님이신 박명칠 대장님께서 그의 팀장님을 알게 모르게 의지하고 있다고 들었다.
권력의 노른자위 중의 노른자위에 있으면서도 어쩌면 저리도 담백하고 겸손하신지. 더군다나 와이프가 계룡문 최고의 전사 계룡맹룡(鷄龍猛龍) 조은조님이시니…….
‘성골 중의 성골이지. 나도 계룡문에서 활약하다 보면 언젠가는 저렇게 될 수도 있겠지?’
이채민을 흘깃 돌아보며 이바름이 씁쓸한 미소를 삼켰다.
위험해지면 팀장님이 구해줄 거라니-.
선뜻 그러겠다 대답하기에는 잃은 팀원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했던 사람을 이바름은 알고 있었다. 항상 그의 앞에서 검을 휘두르던 사람은 지금 그의 곁에 없었다.
지금 계룡성에 남은 것은 그의 거대한 동상뿐이었다.
동상 앞에는 천룡검신의 무사귀환을 비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님. 이번에도 무사히 돌아오실 거죠?’
서림은 균열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다시 이 세계로 돌아왔을 때 최초의 균열이 있다는 시베리아로 떨어졌다고 했다.
그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광활한 괴물의 땅.
얼음과 눈의 길을 가로질러 계룡문에 돌아온 서림이 계룡에 머무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강계성부터 순천성까지. 전각련의 성을 빠짐없이 방문한 서림은 산더미만큼 쌓인 생명석을 가지고 계룡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짊어지고 다시 균열에 들어갔다.
김강산과 최지수, 하하민과 서은창과 함께.
언제나 그렇듯 바람처럼 나타나 총알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이바름은 이번에도 그들과 함께 가지 못했다.
그들이 두 번째로 균열에 들어가고 계절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균열을 없애겠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천룡검신이 그것을 해내리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이바름 역시 서림이 돌아오리라 믿었다.
세계수를 없애고, 균열을 닫은 서림은 분명 이 계룡성에 돌아올 것이다. 환히 웃으면서, 언제나 그랬듯이.
……그러나, 너무 늦는다면?
계룡성에 남아 있는 것은 시체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두지는 않아. 절대로, 그렇게 두지는 않겠어.’
결연한 얼굴로 검을 움켜쥐던 이바름의 표정이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그의 시선에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오는 흰 매가 들어왔기 때문.
“월매야!”
“끼우, 뀨우우-!”
월매가 이바름의 머리 위를 한 바퀴 휘돌고는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 발에 종이가 묶여 있었다.
이바름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풀었다.
“본부에서 온 연락입니까?”
“어떻게 되었대요?”
“당연히 순산이겠지! 계룡문 최강의 전사이신데 뭐가 걱정이야!”
몰려든 팀원들이 작은 종이를 향해 머리를 디밀었다.
“이야, 축하드립니다!”
“벌써 둘째라니……. 팀장님 진짜 빠르십니다?”
“우리 팀장님을 닮으면 큰일인데. 3팀 팀장님을 닮으면 미인일 텐데 말야.”
“우리 팀장님이 왜?!”
“솔직히 인물은 은조 팀장님이 훨 배 낫…… 악윽악!”
팀원의 머리를 후려친 이바름이 씩 웃으며 종이를 뒷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지금이 웃고 떠들 때냐? 다들 정신 안 차려?”
“그럼요. 팀장님도 살아서 교대하셔야 둘째 얼굴도 보죠.”
“자아. 팀장님 오늘은 조심해서 싸우십시오. 근접전투는 하지 마시고 저어기, 저어기 떨어져서 속성 공격만 하세요.”
“헛소리. 야, 집중들 해라. 저놈들 또 온다.”
성벽 바깥에 까맣게 늘어선 괴물들 사이에서 수십 마리의 오크가 튀어나왔다. 오크의 뒤를 따라 오미호가 성을 향해 쇄도했다. 그 뒤에 두억시니, 그 뒤에 불길거미, 그리고 또…….
하지만 어떤 놈들이 얼마나 공격해 들어오든지 상관없었다.
이바름이 결의를 다지며 검을 움켜쥐었다. 일렁이는 불길이 그의 검을 휘감았다.
내가 여기 있는 한 계룡성은 절대…….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이바름이 멍하니 눈을 껌벅였다.
달려들던 오크의 몸뚱아리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지우개로 지워낸 듯한 느낌. 혹은, 오크의 몸뚱아리를 이 세계에서 오려내 다른 세계로 들어 옮긴 듯한 느낌.
사라지고 있는 것은 오크만이 아니었다. 오크의 뒤 오미호가, 그 뒤의 두억시니가, 그 뒤의 불길거미가…….
“티, 팀장님!!!”
이채민의 당황한 외침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우는 것도 같고 웃는 것도 같은 외침을 들으며, 이바름이 눈을 껌벅였다.
뺨이 축축했다.
그는 검을 쥔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축축해진 손으로 반대쪽 눈물을 닦아냈다.
“……괴물, 괴물이이이이!!!”
“꺄우아!!! 검신님!!!!”
“천룡검신님!!!!!!! 검신님!!! 우어어어엉엉엉!!!!!”
성벽 곳곳에서 환호가 튀어 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르는 환호성과 울음으로 성벽이 무너질 기세였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는 팀원을 응시하며 그는 축축한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구겨진 종이에 손끝이 닿았다.
‘……대표님. 이번에도 해내셨군요.’
이바름이 흐린 시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희끄무레하게 쌓인 봄눈은 흐릿했다. 멈추지 않고 흘러내린 눈물이 시야를 뿌옇게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