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천룡검신의 말이라면 (2)
“…천룡검신.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어떻게 왔겠어요? 괴물 박살내면서 왔지. 그리고 지금 어떻게가 중요해요? 왜 왔는지가 중요하지.”
몇 달 만에 마주한 천룡검신은 이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조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래. 다시 묻지. 왜 여기까지 왔지?”
각 성은 자신의 생존에 여념이 없는 상황. 그의 근거지인 계룡성도 다급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 성을 비우고 북경까지 달려오다니. 어지간히 중요한 용건이 있을 터.
하지만 이어진 서림의 말에 조량은 숨을 멈추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말이었기 때문.
“궁주님. 내가 균열을 닫을 방법을 찾았습니다.”
“균열을 닫을 방법?!”
서림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궁주님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협조라니. 가당치 않은 말이다. 균열을 닫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글쎄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네요.”
서림이 조량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 위에 새끼손톱만한 구슬이 놓여 있었다.
“이게 뭔가?”
“생명석입니다. 균열을 닫기 위해 필요한 것이죠.”
작은 구슬은 마치 마핵처럼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탐색술로 잡히는 마력은 없었다.
“마력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명력을 유형화한 것이에요.”
“……이 생명석의 주인은 어떻게 되었지?”
다른 사람도 아닌 천룡검신이다. 그가 타인의 목숨을 쉽게 취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명석에 대한 그의 설명은…….
“아직은 살아 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죽겠지요.”
서림이 어깨를 추키며 말을 이었다.
“인간은 다 그렇잖아요?”
***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초월의 탑 7층에서 만나죠.
천룡검신의 일행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조량은 서림이 남긴 말을 곱씹었다.
-초월의 탑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결국 들어갔군. 그곳에서 방법을 찾은 건가?
서림은 초월의 탑에서 알게 된 바를 간략히 설명했다.
7층에서 발견한 균열의 틈새.
그 뒤 흡성대법으로 오아시스의 생명력을 일부 흡수해 세계수를 공격했다.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세계수를 잘라내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균열을 닫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생명력이 필요했다.
-궁주님은 어떻게 균열이 열렸는지 아십니까?
-내 초월자에게 들었다. 인간의 생명력을 재료로 주술을 시행했다더군.
-그때 주술사가 7층에 살아 있더라고요.
생명력을 유형화하는 방법.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암핵(暗核)의 존재가 그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으므로.
그러나 주술사가 알고 있는 것은 타인의 생명력을 뽑아내는 방법이었다.
서림과 은영단은 이후 연구를 거듭해 본인이 직접 자신의 생명력을 유형화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게 자신의 생명력 중 4분의 1을 뽑아낸 거예요. 어렵지 않아요. 위험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생명력이지.
-네, 생명력이죠.
-유형화한 만큼의 수명이 줄어들겠군.
-그럴 거예요.
-자네 지금, 나더러 파천궁의 궁민들에게 자신의 수명을 내놓으라는 명령을 내리라는 건가?
-그딴 명령을 내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궁주님을 찾아오지도 않았어요.
서림이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하지만 생명석은 필요해요. 이대로 있으면 모두 뒈질 테니까. 사람들도 모르지는 않겠죠.
-……얼마나 필요하지?
-아주 많이요. 10톤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수명을 내놓으라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다니.
아주 굳건한 신뢰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조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요, 파천궁에서 얼마나 가능하겠어요?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수명을 쉬이 내놓을까?
블랙데이가 반 년 째 이어지고 있다 해도,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해도, 자발적으로 그 생명을 내놓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조량은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군사.”
“하명하십시오.”
“내가 없어도 북경성의 방어가 가능하겠나?”
“가능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마음 편히 다녀오십시오.”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할 수는 없는 지시였다. 직접 성을 다니면서 모을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임무를 맡기고 떠났군.’
***
“저분이 천룡검신님?”
“거래! 작년 겨울에 몬스터 웨이브로 무너질 뻔했던 혜산성을 구하신 분이디!”
“그러면 뭐허나. 그 혜산성은 블랙데이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는데.”
여자가 무심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옆의 사내가 여자에게 핀잔하듯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시라우. 저분이 없었드라면 나넌 진작 지난 겨울에 뒤졌수다.”
“내래 아들은 혜산성에서 죽었다래. 혜산성이 무너질 때 천룡검신은 어디서 무엇을 허고 있었디?”
중년의 여자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 기세에 눌려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혜산성이 무너질 때 천룡검신은 그곳에 없었다. 전각련이니 뭐니 해도 결국 그의 성은 계룡성.
천룡검신의 덕에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수많은 성민들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으나 결국 필요한 때에 천룡검신은 그의 아들을 구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무신 뒷북이디?”
“들어나 보디요.”
“아, 거그 조용히 좀 합시다! 검신님께서 말씀허신디 무신 지방방송이 그리 많어?”
강계성의 광장은 인파로 가득했다.
원래 강계성민이었던 사람, 혜산성이 무너지면서 강계성으로 옮겨온 피난민, 그리고 강계성 주변의 중소성이 무너지며 강계성으로 피난온 사람들…….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이들은 겨우 입에 풀칠하며 끈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하루에도 몇 명씩 굶어 죽는 이들이 생겼다. 그나마 지금은 가을이라 얼어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공기가 차가워졌다. 얼기설기 얽어 만든 여자의 허름한 집은 추위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내래 살 만큼 살았다. 죽어도 상관없디. 허디만 내 딸은 아즉 안 된다. 절대로…….’
여자는 최근 며칠, 딸을 보낼 자리를 알아보느라 분주했다. 강계성의 토박이 중 몇몇이 그의 딸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이 든 남자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
이전이었다면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입을 찢어 버렸겠지만 이제 그렇게라도 딸을 살려야 했다.
여자는 잡화점을 하는 김 씨와 만두 가게를 하는 리 씨를 두고 저울질을 하는 중이었다.
김 씨는 이미 두 명의 첩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고, 리 씨는 성정이 난폭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라도 김 씨가 낫갔디.’
여자는 오늘 저녁 김 씨를 찾아가겠다고 마음을 굳히며 인파를 헤쳤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사장은 1분만 지각해도 월급에서 지각비를 제했다.
천룡검신 때문이다. 대체 뭣허러 강계성에 와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지! 필요헐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놈이!
가슴팍이 지끈거리며 아팠다. 아들을 잃은 뒤 생긴 화병이었다.
여자가 제 가슴을 주먹으로 두들기며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귀에 맑은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천룡검신이 광장에 모여든 수만의 인파를 향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균열을 없앨 방법이 있습니다.”
수군거리는 소리로 들끓던 광장이 일순간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여자는 자신이 출근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단상 위에 올라선 서림을 올려다보았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1차 블랙데이가 시작된 지 30년. 균열을 없앨 방법은 그 누구도 찾지 못했다.
과거 정부가 있었던 때도, 자동차가 도로를 구르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녔을 때도, 그 세계의 초강대국이었던 미국도 균열을 없앨 방법은 찾지 못했다.
결국 그런 방법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었는데-.
‘……사실이갔디? 천룡검신이 거짓을 말허는 사람은 아니디.’
불쑥 솟은 희망이 천룡검신에 대한 옅은 원망을 단번에 수그러들게 하였다.
그들을 한 바퀴 둘러본 서림이 이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균열을 닫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광장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모두가 가느다란 희망을 붙잡은 채 서림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필요한 것. 그것이 대체 무엇일까. 내 목숨이라도 내놓…….
“여러분의 생명력입니다.”
……정말로, 목숨?
여자가 숨을 들이쉬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디? 균열과 목숨이 무슨 관계이기에?
“…하여, 이 ■■■이 있어야 합니다. ■■■를 ■■하기 위해서는 ■■■의 힘이 필요하므로…….”
뒤이은 천룡검신의 설명을 여자는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천룡검신은 입을 열어 말하고 있으나 그 소리가 마치 무엇인가에 가린 듯 막혀 있었기 때문.
“뭐래는 거야?”
“검신님, 안 들립네다!”
“다시 말씀해 주시라예.”
말을 멈춘 서림이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소란이 느릿느릿 잦아들었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저를 믿으십시오. 나 천룡검신 서림이 지금껏 걸어온 길을 믿으십시오.”
천룡검신 서림이, 걸어온 길?
여자는 그가 천룡검신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원산성의 혁명당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붙잡힌 혁명당원과 그 가족을 구한 젊은 청년.
혁명당이 포로를 구출할 수 있도록 혼자서 보위대와 원산성주와 싸웠다는 이야기를 소문을 들었을 때는 100배 정도 뻥튀기된 과장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뒤, 그가 재앙 백호와 청룡과 현무를 소멸시켰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뒤에는 평양성의 반인반괴를 인간으로 되돌렸다는 소문까지.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디.’
혜산성에 몬스터 웨이브가 닥쳤을 때, 반인반괴가 괴물과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여자도 목격했었다.
천룡검신께 은혜를 입었다. 그 은혜를 갚으러 왔다-.
반인반괴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그들 덕에 몬스터 웨이브를 무사히 넘겼다. 그 뒤의 긴 겨울 또한…….
‘전 국왕이 저런 말을 지껄였다면 믿을 수 없었겠지만, 천룡검신님의 말이라면 다르디.’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뽑으라면 모두들 천룡검신을 뽑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 균열을 막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어놓을 수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생명력을 내놓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런 그의 귀에 불퉁한 목소리들이 파고들었다.
“생명력? 생명력을 내놓으면 죽는 거 아닙네까?”
“당신은 어쩌고 우리더러 뒈지래?!”
잠잠하던 군중에서 불쑥 외침이 솟았다. 서림의 피로한 시선이 그를 응시했다.
침묵은 길지 않았다.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대로 있으면 여러분이 얼마나 오래 살지 생각해 보십시오.”
***
김강산이 조용히 방을 나섰다.
방금 전 개소리를 지껄인 놈들의 얼굴을 그는 똑똑히 기억했다. 그놈을 흠씬 두들겨 주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듯했다.
각성자라면 혀를 뽑아 버리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놈은 각성자가 아니었다.
‘일반인이어서 산 줄 알아라.’
발소리도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숙소를 나선 김강산이 모자를 눌러 썼다.
계룡좌룡의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 머리카락을 감춘 김강산이 이내 자리를 떴다.
긴 다리가 거침없이 골목 사이를 돌았다.
곧 그의 걸음이 작은 대문 앞에 멈추었다.
그의 목표물이 있는 곳. 서림에게 ‘당신은 어쩌고 우리더러 뒈지래?!’라는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개소리를 지껄인 인간도 아닌 새끼.
하지만 김강산은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철제 현관문 안에서 사람들의 흥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
“천룡검신님께, 뭐가 어째?!”
“검신님을 아직도 그리 몰라? 그분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이미 자신의 생명력을 쏟아 부은 뒤라는 걸!”
“정 동무, 괜히 헛심 빼지 마시라우. 말로 해서 알아들을 인간이라믄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디도 않았갔제.”
“리 동무 말이 옳다. 거저 인간도 아닌 새끼다.”
그들은 혜산성의 피난민들이었다.
곧이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주먹질 소리,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네?
귀 따갑게 들리던 신음 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그리고 뚝 끊겼다.
문 안쪽에서 새어나오던 타격음을 고려하면 팔 하나 부러진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터.
‘목숨은 붙어 있을지 모르겠네.’
김강산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돌아섰다.
막 발길을 돌리는 김강산의 어깨를 손 하나가 붙잡았다.
“산아. 여기에서 무엇 하느냐?”
“그러는 형들은?”
“뭐, 발길 닿는 곳으로 오다 보니…….”
나란히 선 최지수와 서은창이었다. 그 뒤에 눈에 불을 켠 하하민까지.
최지수가 데굴데굴 눈을 굴렸다. 서은창이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이 두 형이 이렇게 양심에 찔리는 일은…….
“형들도 저 새끼 두들겨 패러 왔구나?”
“어허. 두들겨 패다니. 나는 그저 사실 관계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 그래! 사형이 지금까지 선천진기를 얼마나 가져다 썼는지 모르고 있으니깐 알려줘야지.”
김강산이 피식 웃었다.
이 점잖다 못해 답답하기까지 한 두 형까지 냅다 달려오다니.
그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최지수까지도.
“정보원을 못 쓰게 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
“그러니까 말야. 림이 형은 왜 여론 조작 하지 말라고 난리냐? 지수 형은 알어?”
생명석을 모으기 위해 전각련의 성을 돌면서 서림은 여론 작업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괴물을 막는 것이 우선이므로 괜한 일에 힘을 빼지 말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사람들이 지불해야 하는 것이 생명력이니까. 중요한 것이지 않느냐.”
김강산에게 대꾸하며, 최지수는 서림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림아. 그러지 말고 정보원을 동원하자꾸나. 각성자가 아닌 정보원도 얼마든지 있다. 각 성에 상주하는 정보원을 활용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쪽으로 여론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이후에…….
-그런 이후에? 여론에 휩쓸려서 내놓은 생명력을 가져가자고?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중요한 종족이다. 생명력을 내놓고 싶지 않아도, 일단 여론만 그쪽으로 조성하면 필요한 생명석을 확보할 수 있을 거다.
-뭐, 아마 그렇겠지.
서림이 눈을 깜박이며 최지수를 올려다보았다. 최지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서림의 생각을 읽으려고 애썼다.
서림의 마음을 이제는 거의 이해한다고 여겼었는데 이번에는 또 깜깜이었다.
-근데, 형.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네.
하고 싶지가 않다니?
서림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든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