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91
191회.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남직례성.
정의맹.
의사청.
늦은 밤까지 칠파이문의 대표들과 무림 세가의 사람들은 숙소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리를 지켰다.
긴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사람들의 얼굴은 다들 굳어 있었다.
십두마병에 대한 보고를 들은 뒤부터 내내 싸늘한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사술’이라는 측과 ‘청운검과 화용독심이 그 정도도 모를 리 없다’로 나뉘었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의견은 좀처럼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답답해진 맹주 풍뢰도 장강호는 총사 신기수사 제갈승운에게 짐을 떠넘겼다.
“제갈 총사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의 측근 중에는 제갈승운이 가장 지혜로웠으니 현명한 결정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제갈승운에게 모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전부터 십두마병에 대한 보고가 간간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녹림 총순찰인 연적하와 관계된 것이었지요. 그것은 정주 지부의 사람들이 동행하면서 목격했다는 것과 일치합니다. 저는 십두마병의 능력은 사술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제갈승운의 말에 사람들이 한차례 술렁거렸다.
“두 가지 근거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째 연적하의 나이입니다. 고작 스물한 살의 도적이, 청운검조차 감당하지 못한 십두마병들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했지요. 사실 좌도방문의 고수들이 사파에 많다는 걸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닙니다. 그들은 본래 방술에 능한 자들이니까요.”
제갈승운의 설명에 사술이 아니라던 사람들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제갈승운의 말에 흔들린 건 ‘뇌신과 마룡으로 변했다’는 증언 때문이다.
좌도방문에서 뭔가를 할 때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게 뇌신이나 마룡 같은 요괴였다.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제갈승운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어렸다.
“두 번째는 은하장과 남궁세가의 혈겁에서 십두마병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건 다시 말해 십두마병의 전력이 미미하다는 뜻이지요. 의기대와 남궁세가의 무위가 뛰어나 사술이 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제갈승운이 담담한 얼굴로 무리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걸 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때 말석에서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총사께서 두 가지 근거를 대셨는데, 동의할 수가 없군요.”
남궁연이었다.
발언자를 확인한 제갈승운의 얼굴에 부자연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과 화용독심을 두고 사람들은 ‘남경에 두 개의 산이 있다’고 했다.
그 두 개의 산 가운데 하나가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칠파이문의 대표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남궁연과 제갈승운을 번갈아 보았다.
최근 멸문당해 오대세가에서 제외된 남궁세가와 그런 남궁세가를 대신해 떠오르고 있는 제갈세가의 기 싸움이니 그럴 만도 하다.
“화용독심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어떤 부분에서 동의하지 않는지 말씀해 보시오.”
제갈승운의 요청에 남궁연이 차분하게 답했다.
“첫째로 연적하의 나이가 젊다는 것을 드셨지요. 하지만 강호는 장유유서로 무공 서열이 정해지는 게 아니에요. 오직 약육강식일 뿐이지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크게 술렁거렸다.
맞다.
무공의 뛰어남과 나이는 무관하다.
솔직히 칠파이문 내에서도 배분과 무공 서열은 뒤죽박죽이었다.
사람들은 이내 떠들던 것을 멈추고 다시 남궁연에게 주목했다.
“둘째로 은하장과 남궁세가의 혈겁에서 십두마병이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만, 그것 역시 오해예요. 백두마군의 무위는 십대고수에 육박하고, 십두마병은 장로와 장문인 급이지요. 은하장에는 혼세검마 척진경이, 그리고 남궁세가에는 무산낭랑 이매화와 월하선자가 있었어요. 유명교가 앞도적으로 강했기에 십두마병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
사람들의 시선이 제갈승운에게로 향했다.
제갈승운은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한데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지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신도 한때 저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저건 모두 ‘추측’일 뿐이다.
자신은 ‘결과’를 취합하여 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남궁 소저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막연한 추측일 뿐, 사실로 증명된 것이 없소.”
남궁연이 지지 않고 반박했다.
“총사께서 말씀하신 좌도방문의 사술이라는 것 역시 추측이 아닌가요?”
“맞소. 그러나 내 추측의 배후에는 정의맹이 수집한 다양한 정보가 있소. 정의맹의 보고서가 남궁 소저에게까지 간 것 같지는 않소만?”
제갈승운의 말에 사람들이 실소를 흘렸다.
정의맹 총사가 접하는 정보와 멸문한 남궁세가의 것이 같을 리 없다.
그 한마디 말로 분위기는 정리됐다.
남궁연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논쟁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맹주 장강호는 더 이상의 반론이 없자 회의를 끝냈다.
사람들이 의사청에서 빠져나갈 때 장강호는 제갈승운에게 다가갔다.
“수고하셨소.”
“별말씀을요. 고생은 맹주께서 하셨지요.”
“이제는 공격대를 구성하여 싸울 일만 남았구려. 앞으로의 일도 잘 부탁하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남경으로 달려와 주셨습니다. 정의맹이 반드시 이길 겁니다.”
“나도 들었소. 유명교 쪽에 줄 섰던 사람들이 슬슬 빠져나가고 있다지요?”
“그렇습니다. 민심은 천심이라지 않습니까?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오. 해서 말인데 화용독심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소? 그녀의 지략이 제갈량 못지않다고 하던데…….”
장강호는 ‘아차’ 싶어서 말을 얼버무렸다.
제갈세가의 가주 앞에서 남궁연이 제갈량 못지않다는 말을 했으니 난감했다.
“화용독심의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만 오늘 보니 소문만 못한 것 같아서……. 그래도 맹주님께서 말씀하시니 고려는 해 보겠습니다.”
“총사께서 잘 알아서 하리라 믿겠소. 그럼, 내일 봅시다.”
장강호는 제갈승운에게 큰 짐을 던진 뒤에 휘적휘적 걸어갔다.
의사청에 홀로 남은 제갈승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화용독심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오늘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고얀 것. 감히 칠파이문의 장문인들 앞에서 나를 무시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철저히 따돌리고 싶으나 맹주의 말이 걸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의맹 내에서 화용독심의 명성은 높다.
남경의 무가들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그녀부터 찾는다.
맹주가 그런 말을 남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남궁세가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여전한 그녀를 생각하니 뭐가 얹힌 기분이다.
***
화상촌.
아침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자살바위로 나갔다.
녹담평이 있다고 해서 마음에 드는 자리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바위 위에 초막 비슷한 게 보였다.
이젠 완연한 가을이라 저녁이면 쌀쌀해지니 급하게 만든 모양이다.
초막 안에서 코 고는 소리가 요란했다.
녹담평이라는 놈은 얼마나 게으른지 아침이 됐는데도 늘어져 자고 있었다.
“와, 나보다 더한 놈일세.”
연적하는 그를 깨우지 않고 바위 끝에 걸터앉았다.
발아래로 황토색 물이 거칠게 내달리고, 건너편에는 단풍에 알록달록 물든 산이 길게 펼쳐져 있다.
물 빛깔이 조금 이질적이지만,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한동안 발을 까닥거리며 장난치던 연적하는 습관처럼 명상에 잠겼다.
꼬르륵.
녹담평은 배 속에서 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잠잘 때는 몰랐는데 일단 잠에서 깨니 미칠 듯 배가 고팠다.
오늘이 삼년상의 둘째 날.
이렇게 개처럼 삼 년을 살아야 한다니!
벌써부터 절망이 엄습해 왔다.
이리저리 뒤척이던 녹담평은 허기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젠장! 뭐야. 왜 아무도 안 와. 완 당주가 아버지에게 전하지 않았나? 그릴 리가 없는데.”
자신이 여기 잡혀 있는 걸 알면 아버지가 나와 봤을 것이다.
당연한 반응이 없으니 답답했다.
손톱을 물어뜯던 녹담평은 슬쩍 입구에 걸쳐 둔 거덕때기를 들췄다.
가장 먼저 낯익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연 공자라는 놈이 태평스럽게 바위 끝에 앉아 있었다.
시선을 조금 돌리자 그의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검이 보였다.
방심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나를 시험하는 건가?
살금살금 초막을 빠져나간 녹담평은 혹시나 싶어 나직이 그를 불렀다.
“연 공자님?”
“…….”
그래도 연 공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미동도 없는 걸 보니 운기조식에 든 모양이다.
‘미친!’
녹담평은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내가 기공의 고수들은 아침저녁으로 운기조식이라는 것을 한다.
그래야 내공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적을 가까이 두고 그러는 사람은 없다.
운기조식 중에는 외부의 공격에 취약해 은밀한 곳에서 하는 게 기본이다.
왜냐고?
운기조식 중에는 어린애가 뒤통수 한 대만 때려도 큰 부상을 입는다.
강적 앞에서 진기를 돌리는 것과 운기조식은 차원이 다르다. 소주천이든, 대주천이든 마무리를 지어야 몸에 무리가 없다.
단전에 내력을 갈무리하지 않고 강제로 중지하면, 내력이 흩어지면서 몸에 강한 반동(反動)이 온다.
그 충격의 강도에 따라 내상을 입기도 하고, 주화입마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운기조식 중에 마음이 흔들리면 그 충격은 배가 된다.
“어이쿠! 이거 연 공자 운기조식 중인가 보네? 조용한 골방에서 하지 왜 이런 데서 그러고 계신대? 내공이 깊을수록 반동도 크다고 하던데, 큰일 났네.”
이죽거리며 다가간 녹담평은 연적하의 검을 낚아채듯 집어 들었다.
역시나 운기조식이 확실하다.
연적하는 그때까지도 깨어나지 못한 듯 반응하지 않았다.
녹담평은 검을 뽑으며 스산한 어조로 말했다.
“오만한 거야? 기초가 없는 거야? 고맙게……. 응? 응?”
검이 나오질 않는다?
‘이건 뭐지?’
검 손잡이를 움켜잡고 용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당황해하고 있는 그의 귓가에 연적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 명상과 운기조식의 구별도 못 하는 걸 보니 헛배웠구나?”
녹담평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명상이라고? 그런데 검은 왜 안 빠지는 건데?’
그때 갑자기 검집에 녹아 붙은 듯 미동도 않던 검이, 저 홀로 거꾸로 빠져나갔다.
어찌나 힘이 강했던지 녹담평의 손아귀가 찢어질 정도였다.
챙-.
맑은 검명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 검이 매처럼 황하 위를 빙빙 맴돌았다.
곧이어 멈추는가 싶더니, 황하를 향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잠시 후 흙탕물을 뚫고 뭔가 하늘로 치솟았다.
촤아아-.
녹담평은 검신에 꿰어져 있는 물고기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연 공자가 고수라는 건 알았지만 이기어검으로 낚시까지 할 줄이야!
이윽고 되돌아온 검이 녹담평의 발치에 떨어졌다.
펄떡. 펄떡.
검신에 꿰인 채 뛰고 있는 물고기를 보며 녹담평은 슬그머니 검집을 내려놓았다.
“녹 형제.”
“예.”
“나 나쁜 사람 아니야.”
녹담평은 지은 죄가 있는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데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녹담평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순간 연적하의 주먹이 얼굴에 꽂혔다.
“악!”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이자 녹담평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웅크렸다.
웅크린 그의 몸을 연적하는 사정없이 걷어찼다.
“왜! 왜!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냐고! 이러면 나는 마음이 편한 줄 알아!”
힘주어 말할 때마다 발길질이 따라갔다.
녹담평의 애처로운 비명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