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50
250회. 바람과 구름
하남성.
정주.
칠리하촌.
동편 야산.
봄이 되자 시커멓던 가지가 푸르스름하게 변해 갔다.
어떤 나무들은 벌써 가지 끝에서 연초록빛의 새순이 돋기도 했다.
새소리도 없는 조용한 산에 가끔 짧은 기합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핫!”
산 정상에서 나는 소리였다.
인적이 없는 산 정상에서 한 남자가 검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구천구검을 연공하고 있는 연적하다.
그는 빠르게 한 차례, 그리고 느리게 한 차례 구천구검을 펼친 후 멈춰 섰다.
거울 속에서 보았던 연공법은 여기까지가 전부다.
검을 갈무리하는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제는 검법이 몸에 익어 빠르게 펼치나 느리게 펼치나 차이가 없었다.
구천구검을 완벽하게 터득했다는 뜻이리라.
연공 시간을 늘려도 더 나아지지 않으니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연적하는 바위 끝에 걸터앉아 먼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이제는 뭘 더 연습해야 할까?
물론 답은 알고 있다.
‘이기어검이다.’
그렇다고 ‘구천구검’이 ‘이기어검’의 아래라는 것은 아니다.
‘구천구검’과 ‘이기어검’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건 마치 ‘바람’과 ‘구름’ 같았다.
구천구검은 바람이다.
자신의 뜻에 따라 미풍도 되고, 강풍도 된다.
물론 ‘구천 하늘에 닿는 검’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은 없으니 얼추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그에 비하면 이기어검은 구름이다.
이거다 싶다가도, 전혀 다른 것이 되니 말이다.
예컨대 처음에는 단순히 ‘기로 검을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천둔검’을 익히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천둔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기로 검을 움직이는 것’은 ‘접인공’이다.
천둔검이 말하는 어검술은 ‘기가 만물에 응하는 것’이었다.
검 한 자루가 아니라, 만물에 응해야 어검술이라는 거다.
정확히는 그것도 ‘어검의 시작’이다.
만물에 응한 다음에는 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처럼 천둔검은 알면 알수록 자꾸만 뜻이 바뀐다.
마치 바람에 흘러가며 이리저리 모양이 변하는 저 구름처럼 말이다.
자신은 아직 ‘구천구검’이나 ‘천둔검’에 대해 잘 모른다.
구천노도 심통이 들으면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사실이다.
‘구천하늘에 닿는 검’과 ‘하늘에 숨긴 검’이라니?
지금으로서는 구천구검의 ‘실체’와 천둔검의 ‘오의’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몰라서 답답하냐고?
천만의 말씀, 오히려 그래서 더 재밌기만 하다.
만약 ‘구천구검’이나 ‘천둔검’에 대해 다 알아 버렸다면, 하루가 꽤나 길게 느껴질 게다.
딱히 할 일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구천구검과 천둔검을 연성하다 보면 하루가 짧다.
지금도 아침에 올라와서 잠깐 연공한 것 같은데 벌써 점심 시간이다.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나자 연적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산길을 따라 빠르게 내려가던 연적하의 걸음이 느려졌다.
겨울까지만 해도 거무죽죽하게 죽어 있던 가지가 되살아나고 있다.
벌써 새순이 돋은 가지도 많았다.
겨우내 검게 죽어 있던 가지 속에 저런 생명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천둔검도 저런 걸까?’
순간 어떤 영감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두정(頭頂)이 열리고 찰나지간에 우주의 비밀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다.
‘아!’
그러나 번쩍이던 영감은, 바람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흩어져 버렸다.
천둥 치듯 충격을 안겨 주었던 영감은 ‘숨겨져 있다’는 것만 남기고 사라졌다.
어디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연적하는 그것만 골똘히 생각하며 걸음을 떼어 놓았다.
세를 내서 살고 있는 집의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불청객이 보였다.
연설주다.
연적하는 멈춰 서서 인상을 확 찡그렸다.
툇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던 연설주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녀는 오봉산 이후로 첫 만남인지라 어색했지만 애써 자연스러운 척했다.
“적하야.”
“왜.”
연적하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사정사정해서 와룡검까지 돌려줬는데 왜 또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이야. 그때보다 얼굴이 더 좋아졌네?”
“흥! 이번에는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찾아온 거야? 복수전이라도 하고 싶어?”
녹림도 답게 연적하의 입은 거칠었다.
연설주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너 만나려고 온 거야. 이 년 전에야 알았어. 네가 넷째라는 거.”
“헛소리하지 말고 용건이나 말해.”
“정말인데……. 누나가 왔는데 차 대접도 안 해 줄 거야?”
연적하가 삐딱한 시선으로 보며 말했다.
“미쳤구나? 마지막 기회를 줄게. 용건만 딱 말해. 용건 없음 나 돌아 나간다. 배가 고파서 뭐라도 먹으러 갈 생각이거든.”
“…….”
단호한 연적하의 태도에 연설주는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정말 저놈은 별종이다.
하기야 그러니 자신을 볼모로 와룡장에서 돈까지 뜯어 갔겠지.
아무리 배다른 누나라 해도 누나인데, 저놈에게는 남만도 못한 것 같다.
물론 자신도 그를 가족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꼭 받아 가야 할 게 있으니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
“알았어. 말할게.”
그녀는 행여나 연적하가 바로 사라질까 봐 운부터 띄웠다.
연적하의 얼굴에 냉소가 어렸다.
그럼 그렇지!
욕심 많은 연씨가 그냥 차를 마시러 왔다니?
그거야말로 개가 웃을 소리다.
“큰 오라버니가 너에게 와룡검을 돌려 달라고 했다면서? 미안해. 큰 오라버니 욕심이 좀 과했어. 큰 오라버니를 대신해서 내가 사과할게.”
연설주는 자신이 강요한 일을 연무백의 탓으로 돌렸다.
“서론이 기네. 용건이나 말하라니까. 그냥 간다?”
“알았어. 말한다고. 네가 준 와룡검 때문에 둘째 오라버니 팔이 잘렸어.”
순간 연적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치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투로 말한 까닭이다.
“지랄. 내가 준 와룡검 때문이라고? 생선 처먹다가 목구멍에 뼈가 걸려도 내 탓이라고 할 여잘세.”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오해하지 마. 그냥 와룡검을 쓰다가 둘째 오라버니 팔이 잘렸다고. 그걸 얘기하고 싶었어.”
연설주는 책임론이 씨도 안 먹히자 얼른 말을 돌렸다.
하기야 양심이 있는 놈이라면 녹림도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며 계속해서 말했다.
“큰 오라버니는 너만이 와룡검을 제대로 다룰 수 있다고 했어. 사실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대로 다룬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테면 검술 실력은 물론 내공과 경험까지도 ‘제대로 다룬다’에 들어간다.
하지만 거기서 왜 자신이 거론된단 말인가?
천지맹에 뛰어난 검사가 한두 명이 아닌데 말이다.
“너에게 와룡검을 다루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어. 큰 오라버니는 ‘그게 없다면 와룡검은 그저 잘 만든 검에 불과하다’고 하던데?”
“헛!”
기가 막힌 연적하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처음에는 와룡검을 법보라고 하더니, 이젠 다루는 법이 따로 있단다.
“이왕 와룡검을 돌려줬다면 다루는 법도 알려 주기를 바라. 우리도 연씨잖아. 나와 오라버니들도 와룡검 다루는 법을 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뭔가 크게 착각하는데. 와룡검은 법보가 아니야. 그러니 당연히 그걸 다루는 특별한 방법 같은 것도 없어. 만약 그게 법보였으면 내가 돌려줬을 것 같아?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
“넌 와룡검으로 마물을 처치했잖아.”
“요즘 소문 못 들었어? 천문산의 마물도 내가 죽였는데? 연무백이 준 이 검으로. 왜? 이 검도 법보니까 돌려 달라고 해 보시지?”
연적하가 허리춤에 있는 검을 툭툭 쳐 보였다.
“정말 법보가 아니었다는 거야?”
“그게 법보면 마르고 닳도록 내가 썼지. 오봉산에서 당하고도 아직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연설주는 연적하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빛과 뻔뻔한 표정을 보니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순간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법보가 아니라고 말해 줬어야지! 둘째 오라버니는 와룡검만 믿고 마물과 싸우다가 팔이 잘렸다고!”
“와룡검은 법보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거든? 말할 때는 안 믿고 왜 내 탓을 해? 잘못되면 다 내 탓이야? 세상 편하게 사네?”
씩씩거리던 연설주가 마지못한 얼굴로 말했다.
“좋아. 알았어. 네 말이 맞다고 쳐. 하지만 큰 오라버니는 여전히 너에게 특별한 방법이 있다 믿고 있어.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건 선조들이 유실한 내공심법일 거야. 너와 우리가 다른 건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녀는 이 년 전 진안 야시장[晉安夜市]에서 풍연초와 탁고명이 싸우던 광경을 떠올렸다.
그날 밤 두 사람이 사용한 도법은 와룡장의 구천세법이었다.
하지만 형태는 비슷한데 결과가 와룡장의 것과 천지 차이였다.
아마도 선조들이 유실한 내공심법을 익혔으리라.
“어때 내 말 틀려?”
연설주의 물음에 연적하는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연씨 선조가 잃어버린 내공심법을 익힌 건 사실이었다.
구천구검은 전혀 다른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연적하가 무덤덤한 얼굴로 되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설주가 바라는 게 뭔지 모른다면 바보일 게다.
“너는 오봉산의 도적들에게까지 연씨의 비전절기를 가르쳐 줬더라?”
“난 말 빙빙 돌리는 거 진짜 싫어하거든? 본론만 말해.”
“간단히 말할게. 그건 우리 연씨들의 거니까, 우리에게는 그걸 익힐 자격이 있어. 우리에게도 가르쳐 줘. 그렇게 해 주면 큰 오라버니도 납득할 거야.”
“뭘 납득해?”
“말했잖아. 큰 오라버니는 너에게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니까. 연씨 선조들의 것을 우리에게도 가르쳐 줘. 그럼 모든 게 다 정리돼.”
그러자 연적하가 앞머리를 위로 쓸어 올린 뒤 연설주에게 내밀었다.
“내 이마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좀 봐 줄래?”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아.”
연적하는 이마를 연설주에게 더 바싹 들이밀었다.
“아니야. 분명히 뭐라고 적혀 있을 거야.”
“깨끗하다니까. 대체 뭐가 적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이마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연설주는 슬그머니 상체를 뒤로 뺐다.
“잘 봐. ‘호구’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을 거야.”
“…….”
그제야 연설주는 그가 놀리고 있음을 알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이 정도에 포기할 거였으면 아예 찾아오지도 않았다.
“도적들에게까지 가르쳐 줘 놓고, 정작 주인인 우리를 빼놓을 작정이야?”
“도적 도적 하지 마. 듣는 도적 기분 나쁘니까.”
“네가 어머니 때문에 와룡장에서 고생한 거 알아. 하지만 그래서 너도 와룡장과 외가는 물론, 큰 오라버니의 사돈댁까지 망하게 했잖아. 그정도면 복수는 넘치도록 한 거 아니야? 형제자매들에게까지 그래야겠어?”
묵묵히 듣고 있던 연적하가 나직이 말했다.
“형제자매라 만나 주고 있는 줄 알아. 그나마도 아니었으면 너희는 내 근처에 오지도 못했어.”
“왜? 우리가 너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우린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이었다고. 설마 우리에게도 원한이 있다는 거야?”
“나는 창고에 십 년이나 갇혀 있었어. 어린애라고? 너희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나를 구해 주지 않았잖아. 설마 내가 창고에 갇혀 있는 걸 몰랐다고 할 셈이야?”
“너도 어머니와 원로들 고집 알잖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연설주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그것만큼은 거짓이 아니다.
솔직히 연적하라는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지만, 설사 알았다 해도 구할 방법이 없었다. 백가장 무사들이 창고를 주야로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흥! 그러니까 연씨의 것을 가르쳐 달라?”
“응.”
연설주가 뜨거운 눈빛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진안 야시장에서의 싸움 이후로 간절히 소원하던 일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