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70
270회. 너는 국법이 두렵지도 않으냐!
주작대에는 도검으로 무장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열둘이나 된다.
제마단의 술사들이다.
그들 중 여섯은 초기부터 있던 사람이지만, 나머지는 새로이 보충된 사람들이었다.
사십 대의 이화선도 추가로 투입된 술사였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실제로는 천지맹 추밀각(樞密閣)의 일원이다.
그녀에게 내려진 임무는 하나다.
주작대의 활동을 가감 없이 윗선에 보고하는 것.
각 대의 공과(功過)를 평가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내부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천지맹에 사파를 끌어들이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다.
풀숲에 숨어 있던 이화선은 불타오르는 호두산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유명교도와 싸우기 위해 저 거대한 산에 불을 지르다니?
전시(戰時)에도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해가 지면 비가 내릴 거라고? 돌았군.’
아무리 화용독심이 무불통지라 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대주가 검왕 남궁벽이 아니었다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소리였다.
검왕은 결국 이성이 아닌 감정적인 판단을 내렸다.
‘민간의 피해가 엄청 날 텐데…….’
작은 전과는 올릴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천지맹의 손해다. 이번 산불로 황실에는 확실하게 미운털이 박힐 테니 말이다.
그녀가 한탄하고 있을 때 연기를 뚫고 일단의 무인들이 튀어나왔다.
유명교도들이었다.
은신하고 있던 주작대와 인대 고수들의 눈이 먹이를 발견한 야수처럼 번들거렸다.
***
거력패도 옥계생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젓가락보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이십 대 초반의 청년이 걸터앉아 방아 찧듯 까불어 대고 있었다.
“웬 놈이냐!”
“산에 불을 지른 게 네놈이냐!”
“개놈아! 너는 국법이 두렵지도 않으냐!”
옥계생의 뒤에서 수하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하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그들은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들의 눈은 젓가락보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꽂혀 있었다.
저런 곳에 앉아 방아질을 해 대는 무위(武威)라니!
청년, 연적하가 엉덩이춤을 멈추었다.
“국밥이 무서워? 아주 배가 불렀구나?”
국법을 국밥으로 받아치자 유명교도들은 일순 멍한 얼굴로 눈만 끔뻑였다.
이 와중에 농담을 하다니?
보기보다 무공이 더 뛰어나거나 미친놈일 것이다.
그런데 왠지 느낌은 전자다.
적이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십여 명의 유명교도들은 움츠러들었다.
보다 못한 옥계생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너는 누구냐? 네가 산에 불을 질렀느냐?”
“불은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낸 거지. 개를 굽다가 불을 냈잖아!”
연적하는 마치 자기가 본 것처럼 말했다.
옥계생은 청년이 방화를 유명교에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걸 알았다.
“미친놈. 감히 누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아서라,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내가 바로 유명교 십두마병인 거력패도 님이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적하가 손을 내저었다.
순간 그의 허리춤에 있던 검이 저 혼자 뽑혀 옥계생에게 날아갔다.
쉬이익-.
갑자기 검이 가슴으로 날아오자 옥계생은 다급하게 땅바닥을 굴렀다.
“악!”
검은 옥계생의 뒤편에 있던 유명교도 하나를 관통하고 하늘로 솟구쳤다.
후다닥 일어서던 옥계생은 검이 하늘에서 선회하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기어검?”
이기어검의 수법은 천하십대고수들만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었다.
천하십대고수가 아닌데 그 정도의 무위에 도달한 놈은 하나다.
‘연적하?’
옥계생은 부지런히 눈알을 굴렸다.
연적하는 유명교가 처단해야 할 숙적이자 십두마병의 천적이었다.
백두마군이 아니라면 상대도 되지 않을 고수.
그는 전의를 잃고 달아날 궁리만 했다.
유명교도들도 청년이 펼친 단 한 수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연적하다!”
“연적하!”
옥계생을 믿고 있던 유명교도들은 메뚜기 떼처럼 사방으로 튀어 달아났다.
얼마나 놀랐는지 연기 자욱한 산으로 다시 올라간 자도 있었다.
연적하는 유명교도들을 쫓아가지 않았다.
그는 옥계생만 물고 늘어졌다.
허공을 선회한 검이 다시 옥계생에게 떨어져 내렸다.
대경실색한 옥계생은 거력패도라는 별호답게 강맹한 힘으로 검을 쳐 냈다.
쩡-.
무거운 파열음과 함께 옥계생의 도가 뒤로 튕겼다.
그 반동으로 그의 상체 역시 뒤로 젖혀졌다.
본의 아니게 활짝 열린 그의 가슴에 연적하의 검이 들이닥쳤다.
퍽.
옥계생이 불신의 눈으로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검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몸에 이런 게 박힐 줄은 몰랐다.
기괴한 장면에 받은 충격이 가실 무렵,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크윽!”
옥계생은 본능적으로 검을 잡아 뽑으려 했다.
그러나 어렵게 검 손잡이를 잡았지만 손아귀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얹어진 손의 무게로 상처가 더 벌어지는지 고통이 조금씩 가중됐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옥계생에게 연적하가 다가갔다.
다 죽어 가는 옥계생을 복잡한 눈으로 보던 연적하가 검을 뽑았다.
순간 옥계생의 상체가 검붉은 피로 물들었다.
“너는 왜 우리를…….”
억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던 옥계생은 힘에 부치는지 잠잠해졌다.
곧이어 그의 몸이 스르륵 무너졌다.
한동안 미미하게 기복을 일으키던 가슴은 이내 움직이지 않았다.
으드득. 뿌득.
죽은 옥계생의 몸이 뒤틀리며 옷가지가 터져 나갔다.
연적하가 한 걸음 물러서며 답했다.
“왜냐고? 결국 이렇게 될 걸 아니까. 누군가는 마무리해 줘야 하잖아.”
이윽고 키가 십 척(약 3미터)에 이르는 검붉은 몸체의 마물이 일어났다.
초열마인이었다.
용암처럼 붉은 피부는 쩍쩍 갈라졌는데 그 사이로 검은 연기가 풀풀 새어 나왔다.
“크르르르.”
초열마인의 입에서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흡사 사나운 개가 물어뜯기 직전에 그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초열마인은 연적하를 발견하자 번개처럼 덮쳤다.
그리고 연적하를 압살하려는 듯 양손바닥을 힘껏 마주쳤다.
꽝!
바위와 바위가 맞부닥치는 폭발음이 들렸다.
그러나 연적하가 한발 빨랐다.
허공으로 도약한 그는 구룡번신의 수법으로 위치를 바꾸며 공력을 끌어모았다.
초열마인의 머리가 연적하를 좇아 옆으로 돌아갔다.
순간 하늘에서 뢰검분형(雷劍貴亨)의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꽈광!
초열마인의 정수리가 움푹 파이며 사방으로 정체 모를 파편이 튀었다.
꽤나 충격이 컸던지 초열마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기회를 놓칠 연적하가 아니다.
그는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구천구검 일식 현녀강림을 펼쳤다.
콰직.
연적하의 검이 초열마인의 정수리에 깊게 박혔다.
치명적인 일격에 초열마인은 버둥거릴 틈도 없이 절명하고 말았다.
푸스스스-.
십 척에 달하는 몸은 이내 재가 되어 흩어졌다.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던 그는 이내 처음의 자리로 돌아갔다.
연적하는 낭창낭창한 가지에 앉아 몸을 끄덕였다.
무시하려 했지만 ‘너는 왜 우리를’이라던 옥계생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왜일까?
연적하는 자신이 왜 십두마병을 죽이고 있는지 생각했다.
복수 따위의 감정은 분명 아니다.
와룡장을 그렇게 박살 낸 것은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그는 와룡장의 몰락을 인과응보로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부친의 시체가 모욕을 당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정이 없어 참을 만했다.
남궁세가에 대한 복수는 더더욱 아니다.
그 일이 벌어졌을 때는 남궁세가와 특별한 관계도 아니었다.
오히려 십두마병을 척살하고 다니는 동안에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다.
“아, 몰라. 그러게 누가 나쁜 짓들을 하래? 수도자를 제물로 바치고, 마물로 변하고. 그러니까 죽일 수밖에 없는 거잖아.”
연적하는 들어 줄 사람도 없는데 구구절절이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현재 그는 주요 하산로 하나를 단독으로 떠맡은 상태였다.
북쪽만 터놨다고 하지만 호두산이 워낙 넓어서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물론 제마단이 유명무실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
십두마병 구벽신장 발홍악은 연신 가래침을 퉤퉤 뱉어 댔다.
연기를 잔뜩 마셔서 그런지 아무리 뱉어도 개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홍악의 수하들도 그를 따라 했다.
그들은 발홍악의 행동에 속이 메스꺼워 자신들의 침을 삼킬 수 없었다.
그렇게 발홍악과 그의 수하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침을 뱉으며 하산했다.
막 연기에서 빠져나간 그들이 마지막으로 입에 고인 침을 뱉어 댈 때다.
“와아!”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숲에서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명교도들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적과 싸워야 했다.
예기치 않은 급습으로 악에 받친 발홍악은 미친놈처럼 소리 지르며 날뛰었다.
“이 개만도 못한 놈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뒈져라!”
퍽. 퍼억.
발홍악의 권장에 얻어맞은 주작대 고수들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평소였다면 발홍악은 쓰러진 그들의 머리를 밟거나 차서 터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개떼처럼 몰려드는 다른 적들로 인해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발홍악은 열심히 손발을 휘두르며 전진했다.
일단은 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복수고 나발이고 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
정신없이 나아가던 발홍악은 묘한 기류를 느끼고 멈춰 섰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에게 덤벼드는 적들이 없었다.
자신만 전장에서 떨어졌음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투기장처럼 적들은 자신의 주변을 빙 둘러서 있었다.
그 인의 장벽 너머로 수하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가는 게 보였다.
철저히 준비된 자리라는 생각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웬 놈들이냐! 설마 천지맹이냐!”
검왕 남궁벽이 쾌속하게 달려가며 답했다.
“그래. 검왕이 친히 네놈의 목을 가지러 왔다!”
“헉!”
발홍악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비록 자신이 권장의 고수이기는 하지만 검왕은 천외천의 존재였다.
거기에 맨손과 검이라는 차이까지 더해졌으니 기함을 할 만도 하다.
발홍악은 싸울 생각을 버리고 뒤돌아 달아났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무인들은 삼류 잡배가 아닌 천지맹의 정예들.
몇차례 드잡이질을 하던 발홍악은 다시 돌아서야 했다.
등 뒤에 저 무시무시한 검왕을 달고 다른 적과 싸울 수는 없었다.
문득 당랑거철이라는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딱 지금의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비록 자신이 십두마병이긴 하나 검왕을 상대로는 한참 부족했다.
“검왕! 나는 남궁세가와 아무런 관련도 없소. 그러니…….”
“네가 유명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본가의 원수다. 구차한 모습 보이지 말고 깨끗하게 가라.”
남궁벽은 시간이 촉박한지라 벼락처럼 발홍악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쉬이익. 쉬익.
빛살처럼 날아드는 검기에 발홍악은 이리저리 피해 다녔지만 삼 초식을 넘기지 못했다.
서걱.
남궁벽의 검끝이 발홍악의 목울대를 스치고 지나갔다.
“컥!”
발홍악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두 손으로 피를 철철 뿜어 대는 제 목을 부여잡고 버둥거리던 발홍악이 쓰러졌다.
모로 누운 상태에서 한동안 경련하던 그의 움직임이 마침내 멎었다.
으드득. 으득.
뼈 뒤틀리는 섬뜩한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곧이어 키가 팔 척(약 2미터 40센티)에 달하는 마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크라라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