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70
370회. 잘생긴 사내들이 친절하더라
백화궁 출신의 여제자들에게 연남천은 그저 운수 대통한 남자에 불과 했다.
그녀들뿐이 아니다.
팔선각에서 문답식을 준비하는 모든 수련자들이 그렇게 보고 있었다.
거기다 백화궁 출신의 여제자들은 무림인들이다.
무인이 그 어려운 문답식까지 통과했으니 그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런 그녀들에게 연남천은 특혜를 받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었다.
거기에 아직도 ‘하선고’에서 고생하고 있는 동문들이 있으니, 그를 볼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선배 대접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여화경, 손연수, 반화선이 연남천의 뒤를 따라가면서 떨떠름한 시선을 교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서원(西園)을 가로지른 연적하가 한쪽 구석에 있는 허름한 창고 앞에서 멈춰 섰다.
“장작과 불쏘시개 따위는 이 안에 있으니까 잘해 봐요.”
연적하는 인생은 복불복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여동빈’의 막내일 때는 여름이라 화톳불 따위가 필요 없었다.
자신의 아래로 들어온 세 명의 사제들도 운이 좋았다.
그때도 환절기였지만 불까지 피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백화궁 출신의 사매들은 오자마자 불 당번을 맡게 되었다.
그녀들은 후배가 들어올 때까지 매일 이 짓을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속이 좀 풀리는 느낌이다.
연적하는 세 사매들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돌아섰다.
그가 막 걸음을 떼어 놓으려고 할 때다.
“저기요.”
여화경이 그를 불러 세웠다.
“이왕 돕는 김에 장작도 같이 날라 주면 안 돼요? 많이 가져가야 할 것 같은데.”
물론 무거워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다.
단지 오락가락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싶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장작을 나르면 두 번 올 일도 한 번이면 족하니까.
여화경은 연남천에게 무리가 되는 일이 아니니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남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가 버렸다.
여화경이 황당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대체로 남자는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지금까지 그녀가 봐 왔던 남자들은 예외 없이 모두 그랬다.
물론 혼인하면 돌변한다고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여자가 갑이고 남자가 을이다.
왜냐고?
남자를 선택할 권한이 여자에게 있으니까.
무당산에 와서도 그런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팔선각의 남제자들은 백화궁 출신의 여제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가볍게 말 한마디만 건네도 남자들은 혼신의 힘으로 응대를 했다.
‘그런데 무려 부탁까지 하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건 얼굴만이 아닌 모양이다.
저런 추한 얼굴이라면 미녀들과 같은 장소에만 있게 해 줘도 황송해함이 마땅한데…….
손연수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한마디 했다.
“와, 그냥 가네요?”
여화경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만약 상대가 괜찮은 남자였으면 참담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대가 연남천이라 그런지 황당하기만 했다.
“하는 짓이 얼굴을 따라가는구나. 대체로 잘생긴 사내들이 친절하긴 하더라만.”
여화경의 말에 손연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사저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다들 친절한데 유독 저 사람만 까칠하네요. 그냥 무시하세요. 개한테도 대접받지 못할 얼굴이잖아요.”
“풉! 대접은커녕 물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여화경은 실소를 흘리며 텁텁한 감정을 털어 냈다.
저런 구질구질한 남자를 상대로 감정을 소모하는 것은 낭비였다.
세 사람은 장작을 한 아름씩 안고 마당으로 이동했다.
서원 마당에는 벌써 속가제자들이 나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여화경, 손연수, 반화선은 부랴부랴 마당 한쪽에 장작을 쌓았다.
장작이 쌓이자 여화경은 부싯돌로 불을 붙이려 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서인지 불씨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탁, 탁.
쪼그리고 앉아 진땀을 흘리는 그녀에게 청천석이 다가갔다.
그리고 품에서 발화부 하나를 꺼내 가볍게 장작 더미에 던졌다.
화르륵-.
발화부에서 일어난 불이 장작에 옮겨붙자 여화경은 감복한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사형, 감사합니다.”
갓 속가제자가 된 여화경의 눈에는 모든 게 신기했다.
부적으로 불을 붙이다니 과연 오룡궁이다.
손연수와 반화선도 존경의 눈으로 청천석을 바라보았다.
말로만 듣던 술법이 이렇게도 사용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그녀들에게는 청천석이 보여 준 기초적인 술법조차도 경외의 대상이었다.
청천석은 피식 웃어 보인 후 자리로 되돌아갔다.
잠시 후 고학 도사가 월동문을 지나 서원으로 들어섰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그는 활활 타오르는 화톳불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백화궁 출신의 세 여제자들에게 치하의 말을 건넸다.
“너희가 백화궁의 삼화(三花)로구나. 오자마자 첫날부터 불을 피우느라 수고했다. 선배들도 거쳐 간 일이니 고생이 되더라도 참아야 할 것이다.”
고학 도사의 말에 삼화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건 모든 방파에서 관행처럼 일어나는 일인지라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당장 백화궁에서도 늦게 입문한 제자들이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까닭이다.
이윽고 고학 도사의 시선이 속가제자들을 향했다.
“오늘은 영보천존십이수주(靈寶天尊十二手呪)에 대해 가르치도록 하겠다. 제일은 영보천존 여의수주진언(靈寶天尊 如意珠手眞言)이다…….”
고학 도사는 열두 개의 진언을 가르친 후에 각각의 의미를 풀어 주었다.
“영보천존은 삼청의 한 분이신 만큼 진언의 힘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술사의 법력이 약하면 그 효과도 미진하니 법력을 키우는 데 매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속가제자들이 우렁차게 답하자 고학 도사의 얼굴에도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가르침을 끝낸 고학 도사가 돌아갔음에도 속가제자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의 배움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술법은 진언의 글자에 큰 의미가 담겨 있으니 잘못 외우면 사달이 난다.
자연히 속가제자들은 가장 뛰어난 연남천의 주위를 기웃거렸다.
한편 여화경은 자신이 외운 주문을 점검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의논할 상대가 없었다.
두 사매의 상태는 자신보다 좋지 않으니 처음부터 제외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의 눈에 말끔한 인상의 이도주가 들어왔다.
“저어, 사형.”
“응? 왜 그러느냐?”
연남천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부지런히 걸어가던 이도주가 고개를 돌렸다.
“오늘 배운 영보천존십이수주에 대해 물어볼 게 있어서요. 잠깐 시간 되세요?”
이도주는 슬쩍 연남천을 확인했다.
백설연과 청천석에게 붙잡혀 있는 걸 보니 바로 가 봐야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울 것 같다.
‘이따가 따로 만나 봐야겠군.’
마음을 정한 이도주는 여화경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나도 잘 모르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라.”
“아유, 아니에요. 사형께서 조금만 봐주시면 나중에 배로 갚을게요.”
여화경은 이도주가 무인 출신임을 알기에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여화경이 이도주를 잡자, 눈치 빠른 손연수와 반화선도 찰싹 달라붙었다.
얼떨결에 삼화에게 둘러싸인 이도주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한창 이도주에게 가르침을 받던 반화선의 눈에 연남천이 들어왔다.
‘청 사형과 백 사저는 왜 저런 사람과 함께 있는 거지?’
청천석과 백설연은 ‘여동빈’의 속가제자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왜 연남천 같은 흉물과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반화선이 물었다.
“사형, 청 사형과 백 사저가 왜 연 사형과 어울리는지 아세요? 아까부터 계속 같이 있는 것 같은데.”
이도주는 그녀의 말속에 들어 있는 반감을 의식하지 못하고 순진하게 답했다.
“그야 연 사제가 여동빈에서 가장 뛰어나니까 그러지.”
“예? 연 사형이 가장 뛰어나다고요?”
“아직 몰랐나 보구나? 하기야 ‘여동빈’ 사형제들 입이 좀 무겁기는 하지.”
여동빈의 속가제자들은 팔선각의 속인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그들은 속가제자로 무당파 사람이 됐지만, 팔선각의 수련자들은 여전히 외부인인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연적하에 대한 이야기도 ‘여동빈’ 밖으로 흘러 나가지 않았다.
“연 사형은 문답식도 거치지 않았잖아요?”
반화선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이도주를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수련자들에게 문답식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물론 삼화에게 문답식을 건너뛴 연남천은 가장 아래에 속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가장 뛰어나다니 놀란 것이다.
뒤늦게 이도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연 사제는 청불노 노사의 기명제자야. 청불노 노사가 아무나 기명제자로 삼았을 것 같아? 사매는 문답식이 뭐라고 생각해?”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걸러내기 위한 거죠. 아닌가요?”
“맞아. 거기에 하나가 더 추가되어 있더라고. 그게 뭔지 알아?”
“뭔데요?”
“언젠가 고학 도사님이 말씀하셨다. 문답식은 그릇의 크기를 보는 자리라고. 연 사제는 문답식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릇이 큰 사람이야.”
“피이. 별로 그럴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요?”
“사매도 곧 알게 될 거야. 고학 도사님조차 술법을 가르칠때는 연 사제 눈치를 본다고.”
“예? 정말요?”
“그렇다니까. 요즘은 가르치는 고학 도사님보다 더 잘하니 그럴 수밖에.”
“에이, 설마.”
반화선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녀는 이도주가 갓 올라온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그건 여화경과 손연수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이도주가 자리를 떠났다.
그때쯤에는 서원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삼화는 모닥불 피웠던 자리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남은 장작을 창고로 옮겼다.
청소를 다 끝낼 때쯤에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우물가에서 재 묻은 손을 씻던 여화경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말일까?”
“뭐가요?”
손연수가 여화경을 힐끔거렸다.
손 씻다 말고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연남천이 속가제자 중에서 술법을 가장 잘한다는 거 말야.”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속가제자 수준에서 잘해 봐야 거기서 거기지.”
손연수의 말에 여화경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기야 그녀의 말이 맞다.
그래 봐야 속가제자다.
오룡궁 도사들에 비하면 턱도 없을 게다.
하지만 연남천에 대한 그녀들의 편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날.
서원.
교육 시간이 되자 백운 도사가 나타나 누런 종이를 들고 흔들었다.
“이게 뭔지 알고는 있으렷다?”
“예! 괴황지입니다.”
속가제자들이 큰 소리로 답하자 백운 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적을 만드는 괴황지다. 부적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주문의 힘으로 좋은 것을 더 좋게 만들어 주는 것과 사악한 것이나 액운을 물리쳐 주는 것이다. 평범한 술사들은 딱 거기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오룡궁의 술사들이다. 우리는 단지 운을 끌어모으거나, 액운을 막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백운 도사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속가제자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기대 어린 눈으로 보는 속가제자들에게 한 자 한 자 끊어서 말했다.
“우리, 오룡궁의, 도사들은, 이 한 장의, 부적으로, 풍운조화를 일으키고, 악귀를 물리친다!”
그는 붓을 들어 괴황지에 ‘벽력(霹靂)’이라는 글자를 적은 뒤 하늘로 던졌다.
뒤이어 마른하늘에서 ‘쿵’ 하는 뇌성이 일어났다.
비록 소리는 작았지만 그 신묘한 조화에 삼화의 눈은 찢어질 듯 부릅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