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71
371회. 구천현녀와는 잘 아는 사이고?
여화경, 손연수, 반화선의 입이 쩍 벌어졌다.
평범한 무림인들에게 부적은 그저 마음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예컨대 행운을 불러오거나, 악귀를 쫓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민간에서도 술사를 사기꾼 취급할 때가 있다.
강호에서 무인이 술사를 무시하는 풍토도 그런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오룡궁은 달랐다.
부적으로 청천석은 장작에 불을 붙였고, 백운 도사는 풍운조화를 불러 일으켰다.
삼화(三花)는 백운 도사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과연!
무림 방파인 백화궁에서 오룡궁으로 제자들을 보낼 만도 하지 않은가.
“보았느냐? 나는 벽력부로 천둥을 일으켰다. 나의 법력이 부족해 이 정도로 끝난 것이다. 돌아가신 내 스승께서 벽력부를 쓸 때는 오 장(약 15미터) 안쪽에 벼락이 떨어지기도 했다.”
백운 도사가 자부심 어린 얼굴로 속가제자들을 둘러보았다.
부족한 자신의 법력에도 속가제자들은 토끼처럼 휘둥그렇게 눈을 뜨고 있었다.
‘내 법력이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벼락 하나쯤은 떨어뜨렸을 텐데…….’
그랬다면 속가제자들도 놀라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을 것이다.
마치 스승의 벽력부를 처음 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걸 재현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속가제자들의 놀란 얼굴을 보니 만족이다.
“부적은 너희가 배운 것처럼 부주칠법(符籌七法)에 따라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허나 부주칠법을 온전히 체득하고 나면 ‘부서(符誓, 원하는 바를 적는 부분)’만으로도 신통력이 발휘된다. 그것은 마치 ‘선향(仙香)’을 피우는 것과 같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백운 도사가 속가제자들을 둘러보았다.
선향에 빗대어 한 말을 가장 먼저 누가 알아들었는지 알고 싶어서다.
청천석이 손을 들고 답했다.
“선향을 피울 때도 상향(上香)의 방법과 절차가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은 ‘향에 불을 붙이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지요. 마음과 정성을 다할 수만 있다면, 방법과 절차를 생략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백운 도사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배움이 오래된 만큼 말귀도 빨리 알아듣는다.
“그렇다. 부주칠법도 결국은 술사의 마음을 담는 형식과 절차다. 한 마음 한뜻으로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면, ‘부서’만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다. 조금 전에 나는 ‘부서’로 부적을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보았듯 천둥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제야 속가제자들은 백운 도사의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여화조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도사님, 이건 조금 다른 질문인데요. 오룡궁의 도사님들도 천지맹에서 유명교와 싸웠나요?”
그녀는 오룡궁의 도사들이 술법에 뛰어나니 분명 그랬을 거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오룡궁은 천지맹에 참여하지 않았다.”
“예? 왜요?”
“오룡궁에서 가장 뛰어난 술사는 오룡칠사다. 지금은 청불노 노사께서 등선하시어 오룡육사가 되었지만. 너희가 보았듯 그분들은 연세가 많아 활동에 어려움이 있다. 그분들의 기명제자들은 법력이 일천해 하산을 허락받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천지맹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아! 그래도 아쉽네요. 오룡궁 도사님들 술법이라면 천지맹에서 깜짝 놀랐을 텐데.”
“술법은 보여 주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오룡궁의 술사들이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것은 그 엄격한 기준 때문이다. 문답식을 통과한 너희들이라면 그 차이를 알 것이다.”
백운 도사가 문답식을 거론하자 여화조는 이내 수긍했다.
속가제자들도 그렇게 까다롭게 받아들이는데, 하물며 본산의 제자를 내보내는 일이야 오죽할까.
“잡담이 길었다. 지금부터 마음과 뜻을 모아 ‘부서’를 쓰도록 하겠다. 너희에게 가르칠 것은 조금 전에 내가 보여 준 벽력부다. 괴황지에 그저 ‘벽력’이라고 써서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속가제자들이 의아한 눈으로 백운 도사를 보았다.
‘부서’만 쓰면 된다고 하더니, 그것만 해서는 들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속가제자들에게 백운 도사가 담담하게 진언을 읊조렸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시여, 다만 의지하오니 신력으로 벽력을 드러내 주소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 但慿霹靂威神力]. 이 진언을 외우며 ‘부서’를 쓰거라. 마음과 뜻을 글자에 담으면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속가제자들은 백운 도사가 가르쳐 준 진언을 웅얼거리며 외웠다.
간단한 진언이라 소란은 이내 가라앉았다.
백운 도사가 준비해 온 괴황지와 주사를 속가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괴황지와 주사를 받았지만 속가제자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속가제자들을 향해 백운 도사가 말했다.
“벽력부는 그저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이후로 너희는 모든 부적을 ‘부서’만으로 만들어야 한다. 강호에서 활동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코앞에 적이 있는데 어느 세월에 ‘부주칠법’을 하겠느냐?”
그의 가르침에 삼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특히나 백화궁은 무림의 방파다.
강호에서 부주칠법으로 부적을 그릴 시간이 주어질 리가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가장 먼저 여화경이 괴황지에 ‘벽력’이라는 글자를 썼다.
백운 도사가 계속해 보라고 손짓을 보냈다.
여화경은 자신이 만든 벽력부를 힘껏 공중으로 집어 던졌다.
하늘로 날아오른 부적은 낙엽처럼 이내 지면에 떨어져 내렸다.
“헤헤…….”
여화경이 계면쩍게 웃으며 바닥에 뒹구는 부적을 집어 들었다.
사저가 솔선수범하자 손연수와 반화선도 글자를 적어 나갔다.
두 개의 부적이 하늘로 날아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삼화는 실패한 부적을 꼬깃꼬깃 접어 품에 넣고 주위를 살폈다.
속가제자들은 마치 일생일대의 대적을 앞에 둔 얼굴로 괴황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후 이번에는 이도주와 여화조가 거의 동시에 부적을 완성했다.
먼저 이도주의 부적이 날아올랐다.
때마침 ‘휘익’ 하고 바람이 불었지만 이도주의 부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벽력이 생긴 것도 아니다.
변화를 일으킬 듯 빳빳하게 서 있던 부적은 이내 흐늘거리며 떨어졌다.
여화조의 부적은 이도주에게 미치지 못했다.
그녀의 부적은 삼화가 만든 것처럼 허공에 자리를 잡을 새도 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백운 도사는 이도주의 부적이 일으킨 미미한 변화를 감지해 냈다.
“이도주, 잘했다. 태화궁에서의 공부가 헛되지 않았구나. 조금만 더 정진하면 성과를 볼 것이다. ‘부서’를 쓸 때의 마음을 잊지 말거라.”
백운 도사가 이도주를 칭찬하자 여화조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도주와 같은 날 ‘여동빈’에 올라왔는데 결과가 극명하게 갈린 탓이다.
그 뒤로도 십여 명이 더 부적을 완성했지만 이도주를 넘어서는 사람은 없었다. 부주칠법을 생략한 부적은 술법보다 어려웠다.
속가제자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여동빈’의 최고수라는 청천석, 백설연 그리고 연남천이 앉은 곳이다.
저 셋은 서안에 다녀온 뒤로 똘똘 뭉쳐 다녔다.
정확히는 청천석과 백설연이 연남천을 따라다니는 형국이었다.
청천석이 백설연을 힐끔 보았다.
요즘 그녀와 이인자의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은형술에서는 백설연이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부적술까지 밀리고 싶지는 않았다.
청천석의 눈에서 광망이 번득였다.
그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의 진언을 외우며 힘차게 ‘부서’를 적어 갔다.
그런 뒤 자리에서 일어나 만들어진 부적을 던졌다.
쿵-.
하얀 구름 속에서 은은한 뇌성이 울렸다.
백운 도사에게는 못 미치지만 확실한 뇌성이 들렸으니 대성공인 셈이다.
격동이 치밀어 오른 청천석은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속가제자들이 ‘와!’ 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같은 속가제자가 해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백설연은 황급히 바닥에 놓인 괴황지로 시선을 돌렸다.
청천석이 끝냈으니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괜히 머뭇거리다가 연남천이 부적을 쓰면 자신의 초라함만 부각될 터였다.
그녀는 붓에 주사를 흠뻑 묻힌 뒤 일필휘지로 글을 적었다.
속가제자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백설연이 일어나 우아하게 부적을 날려 보냈다.
쿠쿵-.
소리는 작았지만 두 번이나 울렸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청천석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백설연의 벽력부가 낸 소리는 자신보다 약했지만 무려 두 개나 된다.
“청천석, 백설연, 훌륭하다. 오룡궁의 도사들이 긴장해야 할 정도로 잘했다. 법력만 받쳐 준다면 술사로 일가를 이루어도 될 정도다.”
백운 도사의 극찬에도 청천석과 백설연은 별반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연남천의 경지에 비하면 자신들이 ‘새 발의 피’임을 알아서다.
이윽고 속가제자들의 시선이 연적하에게로 향했다.
백운 도사가 부담스러운 얼굴로 운을 뗐다.
“연남천, 준비가 됐느냐?”
“도사님.”
“왜?”
“꼭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에게 빌어야 하나요?”
연적하의 엉뚱한 질문에 백운 도사는 일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교에는 많은 신이 있다.
그중에서도 벼락을 담당하는 신이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다.
그러니 자연히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에게 빌어야 정상이 아닌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 벼락을 관장하는 신이시니 그분께 빌어야지, 그럼 누구에게 빌려고?”
백운 도사의 말에 삼화가 ‘풋’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이도주가 연남천이 ‘여동빈’의 최고수라고 해서 은근 긴장했는데 아무래도 놀리려고 한 말 같다.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최고의 술사란 말인가?
“구천현녀에게 빌면 안 되나요?”
“물론 구천현녀도 도교의 신이시니 안 될 것까지는 없다만, 그래도 벼락은 뇌성의 신에게 부탁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이름도 길고, 제가 잘 모르는 신이라서, 들어줄지 어떨지 자신이 없어서요.”
“허허.”
백운 도사의 입에서 너털웃음이 흘러나왔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의 이름이 길고, 들어줄지 확신이 없어 구천현녀에게 부탁하고 싶단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구천현녀와는 잘 아는 사이고?”
백운 도사의 짓궂은 농담에 지켜보던 속가제자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거렸다.
진지하던 부적술 시간이 갑자기 만담의 자리로 변해 버렸다.
여화경이 두 사매에게 속삭였다.
“미치겠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청불노의 기명제자가 됐지?”
“그러게 말이에요. 이름이 길어서 못 하겠다니 진짜 못 말리겠네요.”
손연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연남천의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
순간 반화선이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어머, ‘네’래요.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아, 미치겠다. 저 눈물 나려고 그래요.”
하지만 다른 속가제자들은 삼화만큼 웃지 않았다.
연남천의 술법 경지를 생각하면 마냥 농담으로 치부하기도 어려운 까닭이다.
백운 도사 역시 더는 농담으로 받아치지 않았다.
“솔직히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과 구천현녀의 관계는 모르겠다만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해 보거라. 구천현녀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다음부터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에게 빌도록 하고.”
“예, 그럴게요.”
대답과 함께 연적하는 보란 듯 진언을 외웠다.
“구천현녀님, 다만 의지하오니 신력으로 벽력을 드러내 주십쇼[九天玄女 但慿霹靂威神力].”
그리고 붓으로 주사를 쿡 찍은 뒤에 벽력이라는 글자를 더듬더듬 적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