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72
372회. 연남천이 남자로 보여?
연남천의 행동을 지켜보던 여화경이 피식 웃었다.
‘여동빈’의 속가제자들은 엄선된 사람들답게 문장이 뛰어났다.
백설연의 경우 필체까지도 뛰어났지만 다른 속가제자들도 명문이었다.
그런데 연남천은 어린아이들처럼 더듬거리며 썼는데, 글자도 악필이다.
결국 보다 못한 손연수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내가 발로 써도 저보다는 잘 쓰겠다.”
그녀의 진심 어린 농담에 여화경과 반화선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다른 속가제자들은 웃지 않았다.
예상 밖의 분위기에 삼화(三花)는 슬그머니 웃음소리를 줄여 나갔다.
그동안 연적하의 부적도 완성됐다.
백운 도사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연남천을 빤히 보았다.
벼락을 관장하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 아닌 다른 신에게 빌어도 될까?
그게 가능하다면 부적술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부적이 연남천의 손에서 떠났다.
부적은 다른 속가제자들의 것과 같이 하늘로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불길에 휩싸였다.
화르륵-.
부적이 불탄다는 것은 둘 중에 하나다.
‘발화부’처럼 본래의 목적을 이루었거나, 신에게 바쳐졌다는 뜻이다.
휘이이이-.
돌연 서원(西園) 하늘 위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뒤이어 하얀 구름을 밀어내고 먹구름이 자리를 잡았다.
청명한 하늘이 사라지고 서원 일대만 어둑어둑하게 어두워졌다.
연적하의 ‘벽력부’불타면서 함께 일어난 현상이다.
부적은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백운 도사와 열여섯 명의 속가제자들은 갑작스러운 기현상에 눈만 끔뻑였다.
특히나 백운 도사는 스승의 ‘벽력부’로도 보지 못한 광경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부적에 의한 건지, 날씨가 갑자기 변덕을 부린 건지 모르겠구나.’
그는 눈앞에서 일어난 현상을 자신이 수용 가능한 범위에 맞추려 했다.
‘벽력부’가 일으킨 조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월한 광경인 까닭이다.
다음 순간 ‘꽈르릉’ 소리와 함께 십 장(약 30미터) 안쪽에 뇌전(雷電)이 떨어졌다.
꽈광!
그게 시작이었다.
뒤이어 수십 개의 뇌전이 무차별적으로 서원에 떨어져 내렸다.
꽈광! 꽝! 꽝! 꽝-.
머리 위로 뇌전이 쏟아지자 백운 도사와 속가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으악!”
“사람 살려!”
“어이쿠!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신의 죄를 빌기까지 했다.
연적하 역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까운 전각으로 부리나케 달렸다.
그가 막 처마 밑에 도착할 즈음이다.
폭풍처럼 서원을 휩쓸던 뇌전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청명한 하늘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살피던 백운 도사와 속가제자들이 하나 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배운 도사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믿기 어려웠지만 기상이변이 아니라 ‘벽력부’가 일으킨 풍운조화였다.
제자보다 못한 스승이라는 열패감이 밀려왔지만 이내 사라졌다.
상대는 청불노의 기명제자니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겠는가!
“연남천, 정말 대단하구나. 역시 청불노 노사의 기명제자답다. 모두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오룡궁의 술법이다. 풍운조화가 너희 손에 달려 있음을 알아라!”
백운 도사의 말에 속가제자들은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의 소원은 연남천만큼 술법을 하는 것이었다.
부적술 공부가 끝나고 백운 도사가 떠났다.
주섬주섬 도구를 챙기던 속가제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향했다.
연남천.
얼굴은 흉칙하지만 술법 하나만큼은 가히 천하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 모두가 연남천이 오룡궁에 온 지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달밖에 안 된 사람이 저 정도인데, 몇 년이 지난다면 어느 경지일까?
연남천을 힐끔거리던 반화선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저, 저 정도 실력이면 얼굴은 안 봐도 되는 거 아닌가요?”
“무슨 소리야?”
손연수가 의아한 눈으로 반화선을 보았다.
평소 엉뚱한 소리를 잘하는 반화선이지만 지금은 너무 의미심장했다.
“제 인생을 희생해서 잡아도 되는 남자일까 싶어서요.”
“남자? 네 눈에는 연남천이 남자로 보여?”
손연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술법이 뛰어나다 해도 저 얼굴은 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희생이라고 했잖아요. 우리 백화궁에는 저런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그녀의 지적에 손연수는 반박하지 못했다.
확실히 백화궁에는 저런 술사가 하나쯤은 필요하다.
현재 백화궁의 상황은 최악.
관리하는 구역도 없고, 무력도 그저 그래서 제자들을 파견하지 못했다.
이런 식이면 폐문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명성을 얻으려면 강호에서 활약해야 하는데, 너무 무명이다보니 불러 주는 곳도 없다.
오룡궁에서 술법을 배우려는 이유도 ‘호천맹’에 가입하기 위해서다.
무공에 술법을 보강하면 ‘호천맹’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할 테니까.
사매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화경이 끼어들었다.
“얼굴의 부스럼만 아니면 정말 괜찮은 남자이긴 한데, 감당할 수 있겠니?”
“우리 백화궁의 약으로 어떻게 치료가 안 될까요?”
호광성 골모산의 백화궁은 무공보다 약제술로 더 알려진 곳이다.
칠파일문과 사대세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평범한 의원보다 나았다.
호광성 일대에서 백화궁의 금창약은 명품 대접을 받는다.
지금까지 아슬아슬하게 백화궁이 명맥을 이어 온 것도 금창약 덕분이었다.
“금창약과 부스럼에 쓰는 약은 달라서 힘들 거야.”
부정적인 여화경의 말에 손연수가 한마디 했다.
“사저, 우리 백화궁의 약당에서 못 만드는 약은 없다고 봐요.”
“흐음!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만들 수는 있겠지. 언젠가는.”
여화경도 손연수의 말에 동의했다.
백화궁 약사들의 실력이 뛰어나니 부스럼 약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긴 될 게다.
하지만 궁주님이 그걸 허락할까?
잠시 생각하던 여화경이 반화선에게 물었다.
“너는 연남천이 궁주님의 눈에 찰 거라고 생각하니? 약당에 금창약 대신 부스럼 약을 만들라고 할 정도로?”
“네. 그의 부적술이라면 ‘호천맹’에 가입하고도 남잖아요.”
반화선이 확고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천맹’에 들어가는 게 궁주님의 목표니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손연수가 말했다.
“그런데 그의 의견도 들어 봐야 하지 않나?”
“예?”
반화선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손연수를 보았다.
잘난 척 하자는 게 아니라 백화궁의 ‘삼화’라면 호광성에서도 알아주는 미녀들이다.
오룡궁의 도사들도 ‘삼화’라고 부를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의 의견을 들어 봐야 한다니?
여화경이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물었다.
“손 사매, 설마 연남천이 셋째를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반화선은 백화궁의 삼화다.
호광성 남자라면 누구라도 얻고 싶어하는 삼화를 연남천이 마다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의 속을 누가 알겠어요? 어제만 해도 우리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잖아요?”
“그야 주제를 알고 피한 거겠지. 그런 남자가 어디 한둘이었니?”
“소매는 잘 모르겠어요. 그가 부족함을 알고 피한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잠시 생각하던 여화경이 반화선에게 말했다.
“화선아, 네가 가서 말을 걸어 봐. 그럼 알 수 있겠지.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반화선이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어서 그런지 불안불안했다.
“저어, 그런데 아직 저를 희생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반화선이 자신 없는 얼굴로 두 사저를 번갈아 보았다.
괜히 말 한번 잘못했다가 마음에도 없는 남자에게 꼬리를 치게 생겼다.
그녀가 어깨를 움츠리자 여화경이 짜증을 냈다.
“백화궁의 약으로 그의 부스럼을 치료하겠다고 해 놓고 이제 와 딴소리야?”
“아니, 저는 그저 치료가 되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그 전에 너를 희생하겠다고 했잖아?”
“네에…….”
여화경의 등쌀에 반화선은 연남천이 있는 곳으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연남천의 곁에는 청천석과 백설연은 물론 이도주까지 있었다.
연적하에게 열심히 부적술에 대해 묻던 백설연이 고개를 힐끔 돌렸다.
“반 사매, 무슨 일이야?”
“저어, 연 사형에게 볼일이 있어서요.”
“뭔데?”
“그게 개인적인 일이라……. 따로 뵙고 말씀드리려고요.”
개인적인 일이라니 백설연은 고개를 돌렸다.
삼화가 연남천에게 꼬리를 칠 모양인데 그건 자신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었다.
연적하는 무심코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나?”
순간 반화선은 이를 악물고 연남천의 얼굴을 직시했다.
가까이서 보니 몹시 힘들었지만 그걸 내색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네. 잠시 시간 좀 되세요?”
연적하가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반화선이 급히 돌아섰다.
반화선은 연적하를 데리고 서원 뒤편의 가산(假山)으로 향했다.
반화선이 멈추자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물었다.
“뭔데……요?”
“사형, 말씀 놓으세요.”
“어, 그래? 뭔데?”
연적하는 바로 말을 놓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기요’라고 부르더니 달착지근하게 ‘사형’이란다.
자신의 ‘벽력부’를 보고 사람대접을 해 주기로 한 모양이다.
한편 반화선은 상대가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자 은근 실망했다.
손연수의 말처럼 관심이 없는 걸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한참 머뭇거리던 반화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 사형은 혹시 혼인을 했다거나, 좋아하는 분이 있으신 건 아니죠?”
“혼인을 약속한 사람이 있는데? 왜?”
뜻밖의 대답에 반화선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아, 있으시구나. 연 사형이라면 왠지 그럴 것 같더라니까요.”
횡설수설에 가까운 그녀의 말에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용건이 뭔데?”
당황한 반화선은 얼떨결에 품 안에서 기름종이로 싼 금창약 한 덩어리를 꺼냈다.
“이, 이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거 좀 써 보시고 어떤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게 뭔데?”
연적하가 기름종이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무슨 약제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데 어디에 쓰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백화궁의 금창약이에요. 약당에서 새로 만든 건데 괜찮은지 어떤지 몰라서……. 사형이 써 보시고 나중에 한 말씀 해주십사 하고.”
“술사가 금창약 바를 일이 있겠어? 술사가 칼 맞을 정도면 끝난 건데.”
구시렁거리면서도 연적하는 금창약을 챙겼다.
아직 남궁세가에서 받은 약도 남았지만 이런 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서다.
금창약을 챙긴 그는 본래의 자리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던 반화선도 사저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뭐라고 하든?”
“좋대?”
여화경과 손연수가 상기된 얼굴로 번갈아 물었다.
사매들의 지나친 관심에 반화선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답했다.
“관심이 없더라고요. 혼인을 약속한 사람이 있대요.”
“…….”
반화선의 말에 여화경과 손연수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 만에 여화경이 중얼거렸다.
“와아!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더니……. 어떤 여자인지 참 답답하겠다.”
“사람이 아니라 보살일 거예요.”
흔히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지만 두 여자에게는 그 반대였다.
세상에 연남천 같은 남자의 짝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