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37
437회. 적극적으로 매달리라는 소리다.
적월 공취산은 단전이 파괴된 뒤로 해탈이라도 한 사람 같았다.
그러나 세상을 보는 눈만큼은 탈혼마검 노도경만큼이나 부정적이었다.
연적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남과 다르다고 생각한 적은 물론, 착하고 정의로운 척한 적도 없는데 무슨 헛소린지 모르겠다.
“늙은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착하고 정의로운 척이라니? 어디서 소름 돋는 소리를 하고 있어. 녹림의 도적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미쳤다고 할걸? 소악마라고 불리는 사람한테 그게 무슨 망발이야?”
“말은 그렇게 해도 너는 협객 흉내를 내며 살아가고 있지 않으냐. 그러니 위선이라고 한 게다.”
“협객 흉내?”
“뒷배 믿고 깝치는 놈을 패면서 일장 훈계한 것이 협객 흉내가 아니면 뭐냐.”
“아! 그럼 앞으로 협객이랑 비슷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네? 어이쿠! 어디 눈치 보여서 내 맘대로 살겠어요?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어떻게 한 가지 모습으로만 살아? 당신 좀 미친 거 같아.”
“…….”
공취산도 자신의 말이 조금 억지스러웠음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
***
호광성 안찰사 장공래의 저택.
장거문이 실려 오자 장공래의 집은 발칵 뒤집혔다.
보름쯤 전에 강도를 만났다고 한 날은 그래도 사지는 멀쩡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양쪽 어깨는 화살에 맞은 듯 구멍이 났고, 남근에는 젓가락이 박혔다.
장거문의 치료를 위해 무한에서 유명하다는 의원들이 모두 동원됐다.
황산문도 그중에 하나였다.
그가 남근에 박혀 있던 젓가락을 제거하자 장공래가 급히 물었다.
“어떻소? 사내구실은 할 수 있겠소?”
무로 상투적으로 쓰는 말이 아니라 생식 기능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이 황산문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남근의 상처가 깊어 치료가 어렵습니다. 예후를 좀 지켜봐야 가부를 알 것 같습니다.”
“가능성이 보이는지 아닌지만이라도 알려 주시오.”
“지금으로서는 뭐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상처가 악화되면 남근을 잘라야 할지도 몰라서……. 지금은 살아 있는 것만도 천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르르 떨던 장공래가 버럭 소리쳤다.
“누구냐! 어떤 놈이 너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느냐!”
넋 나간 얼굴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던 장거문이 답했다.
“……연남천이라는 자입니다. 자기 말로는 무당파 제자라고 했습니다.”
“연남천?”
이를 빠드득 갈던 장공래가 개방 무한 분타주 백일취 노우조에게 시선을 돌렸다.
“노 대협, 연남천에 대해 아시오?”
“하아! 노부도 조사해 보았으나 무한에서 그 이름을 아는 자가 없더군요. 대인께서 직접 무당파에 사람을 보내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노 대협이 가 보는 건 어떻소?”
“솔직히 말씀드려 칠파일문은 개방을 눈 아래로 보기에 제대로 된 대화가 어렵습니다.”
“알겠소. 내 직접 무당파에 사람을 보내리다.”
장공래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놈! 무당파 제자가 아니라 장문인이라 해도 잡아다가 고자로 만들어 주마.’
자신의 능력으로 부족하면 사촌인 미인(美人)을 이용해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
십이월.
하남성.
정주.
정오 무렵.
연적하와 적월 공취산을 태운 이두마차가 천천히 도시로 들어섰다.
한겨울이지만 낮의 햇살이 좋아서 그런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 바람에 마차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사람들 뒤를 졸졸 따라가야 했다.
창밖으로 사람들을 보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여기도 다시 보니 반갑네.”
정주에 오니 칠리하촌에서 구천노도 심통과 지낼 때가 떠올랐다.
‘심 노인과 제자들은 뭐 하고 있으려나.’
주루를 하면 취객을 상대해야 할 텐데 그 지랄맞은 성격에 잘 할지 의문이다.
마부는 언제나처럼 마차를 반점 앞에 세웠다.
그리고 연적하와 공취산이 반점으로 들어가자 마방으로 천천히 마차를 몰았다.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반점은 텅 비어 있었다.
연적하와 공취산은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이 앉자마자 십 대로 보이는 점소이가 따뜻한 찻주전자를 들고 왔다.
“무엇으로 드릴까요?”
“우리가 여행 중이라 잘 못 먹었거든. 이 집에서 잘하는 거로 내와 봐.”
“동파육(東坡肉)과 백육(白肉, 간장을 찍어 먹는 돼지고기 요리), 고노육(古老肉, 탕수육과 비슷), 포자 (包子, 만두), 초반(妙飯, 볶음밥), 규화계(叫花鷄, 닭요리) 정도면 되겠습니까?”
점소이가 힐끔 손님의 눈치를 봤다.
고작 두 사람에게 너무 많은 요리를 권하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배 속에 거지가 들었는지 듣고 있던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싹 다 가져와.”
“예!”
권하는 걸 전부 주문하자 점소이가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갔다.
입맛을 다시던 연적하가 빈 잔에 차를 따를 때, 공취산이 한마디 툭 던졌다.
“요리를 너무 많이 시키는 게 아니냐? 태반은 남기는 것 같던데.”
“이제 곧 산서로 접어드는데 많이 먹어 둬.”
“…….”
공취산은 듣지 못한 척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그러고 보니 벌써 정주다.
정주에서 유명교 성지인 산서성 풍지산까지는 한 달 보름 정도 걸린다.
한 달하고도 보름 후면 죽는다는 뜻이다.
한때 동고동락한 사이라고 하지만 교주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날 그랬던 것처럼.
사십 칠 년 전.
사천성.
고명산 태일관.
그 밤에 사저와 야반도주했던 공취산은 삼 년 뒤 다시 태일관을 찾았다.
그때 양여령은 십두마병이 되어 있었다.
“왜? 마음이 바뀌었어?”
“…….”
공취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형제들을 십두마병의 제물로 쓰는 게 어떻겠냐?’고 한 사람은 그녀였다.
처음에는 좋다고 했다.
스승의 추한 모습을 본 뒤로 태일관은 떠올리기도 싫은 과거였다.
하지만 막상 태일관에 오니 심사가 복잡하다.
돌이켜 보면 그런 일이 있기 전까지 태일관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태일관 사람들을 제물로 쓰고 싶지 않아서 그래?”
글쎄다. 공취산은 지금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밤 이후로 태일관과 관계된 모든 것을 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을 눈앞에 두자 몸이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다.
“네가 하지 않겠다면 강요하지는 않을게. 너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일지도 모르니까.”
그 말이 오히려 불을 붙였다.
소중한 사람이라니?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요. 할게요.”
태일관의 도사들을 모두 잡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무공과 거리가 먼지라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공취산은 피멍이 든 얼굴로 무릎 꿇고 있는 무광 진인을 일으켜 세웠다.
사저에게 제압된 스승은 모든 걸 포기한 얼굴이었다.
“우리에게 선을 베풀며 살라고 가르쳤잖아요. 그런데 왜 그랬어요?”
스승은 말 속에 담긴 뜻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툭 떨구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구나. 모두 내 잘못이다.”
맞다.
스승의 잘못이다.
“도사들은 항상 말뿐이죠. 하지만 언젠가는 행동으로 책임을 져야 해요. 지금이 그 순간이에요.”
말과 함께 스승의 목울대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쭈글쭈글하게 주름진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는 걸 보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늙은이가 사저의 몸을 탐했다니.
흥분으로 떨고 있는 공취산의 어깨를 양여령이 가볍게 매만졌다.
“진언을 외워.”
“옴 마니미아예 상천하지 다라야마……. 두은병영마졸 옴옴급급여율령 사바하.”
공취산은 십두마병이 되기 위한 첫 제물로 스승을 바쳤다.
그 뒤로 사형제들을 하나씩 죽였다.
열 번째 도사가 죽었을 때 그는 비로소 두 번째 십두마병이 될 수 있었다.
초저녁에 시작된 제사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
그가 피에 젖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양여령이 말했다.
“밤새도록 네 손이 피에 젖었으니 ‘적월’이라고 하자. 어때?”
그녀는 사형제들의 시체를 옆에 두고 웃었다.
공취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죽음 확정이다.
사형제들까지 제물로 만든 사람이 자신을 살려 둘 리가 없지 않은가.
“왜 먹다 말고 궁상을 떨어?”
연적하의 말에 공취산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제 손으로 죽인 스승과 사형제들을 생각하니 입맛이 싹 달아났다.
“뭐야? 벌써 다 먹은 거야?”
“너는 왜 묻지 않느냐.”
“뜬금없이 식사하다 말고 무슨 소리야? 내가 뭘 물어야 되는데?”
“유명교주가 왜 나만 잡아 오라고 했는지 궁금하지 않으냐?”
“안 가르쳐 준다며?”
“아쉬운 사람이 더 적극적으로 매달려야지. 세상일이란 본디 그런 게 아니더냐.”
“내가 왜 아쉬워? 난 관심 없어. 그냥 잠깐의 호기심이었을 뿐이라고.”
“…….”
공취산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연남천을 보았다.
그게 저놈의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짜증이 났다.
“손자가 말하기를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그게 뭐?”
연적하가 닭 다리 하나를 길게 찢어 입에 물었다.
그가 무림의 일보다 먹는 데 더 집중하자 공취산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녹림이든 무당파든 결국 유명교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 언제가 됐든 반드시 그렇게 될 게다. 네놈은 유명교주와 싸울 팔자다.”
“호천맹주나 녹림 총채주님이 알아서 하라고 해. 나는 몰라. 생각하기 싫어.”
“무당파나 남궁세가가 혈사에 휘말려도 알아서 하라고 할 테냐?”
“아, 진짜. 거기서 왜 무당파와 남궁세가가 나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적극적으로 매달리라는 소리다.”
“매달리면 가르쳐 줄 거야?”
“혹시 아느냐? 네놈 정성에 내 굳은 결심이 조금 약해질지.”
“지랄도 풍년일세. 그냥 입이 간지러우면 말을 해. 내 핑계 대지 말고.”
연적하의 폭언에 공취산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어차피 곧 죽을 목숨.
이대로 가자니 억울해서 몇 마디 흘리려 했는데 받아먹는 놈 자세가 영 아니다.
“좋다. 진심으로 매달리면 가르쳐 주마.”
공취산의 말에 연적하는 입에 물고 있던 닭 다리를 슬며시 내려놓았다.
“어떻게 해야 진심이 느껴지는데?”
“허. 내가 밥을 떠서 네놈 입에 처넣어 주기까지 해야 하느냐?”
“아니, 시간을 절약하자 이 말이지. 내가 매달렸는데 진심이 안 느껴지면 서로 피곤하잖아.”
“걱정 마라. 이 나이쯤 되면 눈빛만 보면 아니까.”
“알긴 개뿔이나. 내가 데리고 다니던 심통이라는 늙은이가 당신 나이인데. 그 늙은이도 나랑 같이 사기 당했었어.”
“그래서 안 매달리겠다고?”
“어허, 늙은이가 애들도 아니고 그렇게 조급하면 쓰나. 그냥 그렇다 이 말이지. 좋아, 진심을 원한다 이거지. 내 눈을 봐. 내가 진짜 알고 싶거든? 그러니까 말해 봐. 유명교주는 왜 당신을 잡아 오라고 한 거야?”
“…….”
공취산은 묵묵히 연남천을 응시했다.
두 달이 넘도록 그와 함께 지내는 동안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입은 녹림답게 거칠었지만, 정작 하는 짓은 어린아이였다.
천진난만하다는 뜻이 아니다.
마치 선악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그의 언행은 순수하면서도 잔혹했다.
자신에게 아무렇게나 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파의 협객은 일단 사로잡으면 상대가 죄인이라 할지라도 정중하게 대했다.
하지만 놈은 반말이 기본이고, 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성현이나 할 법한 ‘언행일치’를 추구하니 뭐가 뭔지 모르겠
‘내 인생도 참 복잡하군.’
젊어서 사저를 만나 인생이 꼬였는데, 죽기 전에 이런 괴상한 놈이라니.